『에로스와문명』 부록 - 김인환 2022.1.5. 바다사자
『에로스와문명』 부록 - 김인환 2022.1.5. 바다사자
수필의 철학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그 누구도 자신의 체계를 형성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체계를 자유자재로 참고하지만 어디까지나 체계의 반대자(335)로 남아 있었다. 이 글은 아도르노의 “수필론”을 요약하여 학파의 수필적 철학을 해설하는데 목적이 있다(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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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의 근대학문은 확실하고 분명한 개념으로 분량, 성질, 관계, 양식 따위의 범주들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사물처럼 취급할 수 있게 했다. 이를 정초한 대표자가 데카르트였다. 네 개의 규칙으로 그는 인식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하는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 확실한 인식이란 주의하는 정신 앞에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이고 분명한 인식이란 다른 모든 것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이다(337).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지금 의심하고 있는 나는 의심할 수 없음과 이는 직관-지성적 통찰력에 의해서만 파악된다고 했다. 직관은 네 가지 규칙에 의해 지식의 체계를 형성할 수 있다(338).
첫째, 명증하게 참되다고 안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 |
둘째, 문제 하나 하나를 해결에 필요한 만큼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
셋째,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것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것들에 이르도록 할 것 |
넷째, 완전한 枚擧와 전체에 걸친 통관을 행할 것 *매거: 실험이 동일현상에 대한 여러 설명들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 가를 가려내 주는 것 *통관: 귀납은 이미 알려진 지식의 체계를 더욱 확실하고 분명하게 해 줌(340). |
데카르트는 수학적 직관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는 세 가지 도덕에 따라 살아야 하는 영역을 따로 설정했다.
(1) 법률과 관습에 복종하고, 종교를 지키며 상식을 받아들이고 온전하고 극단에 따르지 말 것 |
(2) 의견을 수용하기로 결정하면 그것들을 따를 것 |
(3) 우리가 지배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의 생각밖에 없으며 성공하지 못할 것들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믿을 것(341). |
인간의 이성이 무엇을 어떻게 알며 어디까지 아느냐 하는 문제를 추구하던 칸트는 경험적인 요소와 합리적인 요소를 함께 인식 성립의 계기로 삼았다. 인식의 대상이 먼저 직관에 의해 받아들여져야 하며 직관에 의한 현실적 사물은 반드시 시간과 공간 아래 있으므로 감각과 경험을 중시하였다. 데카르트의 넷째 규칙을 더 엄밀하게 규정하였다. 직관에 의한 것은 통일과 질서가 없으므로 통일성을 부여해주어야 하는데 인간 정신 속(342)의 분량(단일성,다수성,전체성), 성질(실재성,부정성,제한성), 관계(실체성,인과성,상호성), 양식(가능성,현존성,필연성)을 따지는 순수한 오성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데카르트의 셋째 규칙을 일반화한 것이다.
후설은 데카르트의 넷째 규칙을 자유변경이라고 하고 셋째 규칙을 선험적 환원이라고 했다. 경험의 대상에 模像을 만들고 일반적인 구조를 포착하는 자유변경은 실험에 해당한다. 의심스러운 것을 재료로 삼아 납득할 만한 의미체를 구성하는 선험적 환원은 수학에 해당한다(343).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은 여전히 데카르트에 충실하다.
2
헤겔의 변증법은 역사적 현재 안에 있는 객관적 가능성을 가르고 밝히는 방법이었다(344). 현존재, 즉 규정된 존재의 해명에서 시작했는데 현존재란 수많은 관계들의 집합이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현존재의 본성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현존재는 다른 것들과의 관계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통합하면서 변화한다(345). 역사적 현재의 변형은 앞선 존재양식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양식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므로 역사적 현재의 구조에는 수학의 형식적 합리성이 적용될 수 없다. 현재의 변형에는 비약이 있게 마련이며 새로운 것은 낡은 것의 참다운 죽음이다. 현재의 끊임없는 소멸은 새로운 현재의 끊임없는 형성이다(346). 이것은 유한한 현재의 끊임없는 부정이다. 유한성과 무한성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 안에 있다. 역사적 현재를 변형하는 집단적 주체를 헤겔은 실존이라고 불렀다. 역사적 현재의 개별적 계기들은 본디 전체와 얽혀 있기 때문에 개별적인 것들을 현재의 구조해서 분리할 수 없다. 이미 주어져 있는 것들은 전체로서나 한 부분으로서나 항상 부적합한 상태에 있다(247). 역사적 현재의 객관적 가능성은 공존하는 두 적대적 힘들 사이의 대립을 통해서 실현된다. 이미 있는 현재의 구조에 대항하여 가능성이 참다운 내용을 나타내려면 욕구의 절제, 진보된 교양, 정치적 성숙 따위의 조건들이 현재의 내부에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348).
낡은 형태를 파괴하고 새로운 형태를 형성하는 과정은 역사적 현재가 참다운 자기로 돌아가는, 자기귀환의 과정이다. 역사적 현재의 자기 귀환은 낡은 것 안에 통일되지 않은 채로 존재하던 여러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통일하는 과정인 것이다. 역사적 현재의 객관적 가능성을 가르고 밝히는 변증법은 파악하는 활동이며 항상 새롭게 자기를 쇄신하는 집단적 주체의 창조적 활동이다(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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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노동의 윤리를 따르지 않고 주관적인 감정과 상상의 자발성을 따른다. 대상에 관하여 생각이 떠오르는 데에서 말하기 시작하여 스스로 그치고 싶은 곳에서 중단한다(350). 변하는 것, 무상한 것, 하찮은 것 속에 머물러 그것들을 영원한 대상으로 다룬다. 오히려 무상한 것 자체를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351). 수필의 정신은 이단의 정신이다. 수필의 쇄말주의는 보편적인 그물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말오줌나무와 밤꾀꼬리의 단순한 현존을 강조한다. 직접성과 착오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복합적이고 경이적인 현실에 침잠한는 수필은 개념의 질서에 굴복하지 않고 개념의 상호작용을 방치하면서 받아들인다(352).
수필은 데카르트주의에 반대한다(353).
첫째, 수필은 확실하고 분명한 인식을 요청하지 않는다. |
둘째, 수필은 분할을 요구하지도 총체성을 가정하지 않는다. |
셋째, 수필은 복합적이고 일상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처음부터 다각적 관점을 보유한다. |
넷째, 수필은 누락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균열 속에서 생각하며, 균열의 틈을 통하여 통일을 발견한다. 언제나 무관점이며 관점 철학에 대항하는 정신의 비판적 범주이다. |
수필의 정신은 질문하고 모색하고 반성하며 나아가는 개방된 정신이므로 본질은 새로움에 있다. 모순되고 대립되는 관점까지 포괄하면서 다각적 해석의 가능성을 언제가 갖는다. 변증법보다 더 변증법적이다.
수필의 이념은 행복에 있다. 사고의 쾌락원칙을 보존하기 위해 모든 언어와 논리가 이지러진 전체의 일부를 이루면서 허위로 전락한 현재를 부정하는 투쟁이 된다. 현재를 긍정하(354)고 정당화하는 모든 공식에 대항하여 수필은 언제나 새롭게 부정의 이름으로 행복을 표명하는 것이다(355)..
2. 놀이의 본질
놀이란 화합본능의 표현이다. 현실원칙에 자유롭고 오직 쾌락원칙에만 종속되는 정신활동인 상상력은 아이들의 놀이에서 시작되어 후에 백일몽으로 계속된다. 본능에 대한 의식의 억압이 아무리 심하여도 상상력과 놀이는 언제나 생생하게 활동한다. 양주 별산대놀이는 싸움과 애욕이 왜곡된 본능을 표현하지만 놀이라는 성격으로 보면 화합본능의 표현이 된다. 탈놀이뿐 아니라 모든 연극의 바탕은 놀이에 있다.
*본능은 화합본능과 파괴본능으로 형성되어 있다. 유기체의 원시상태로 퇴행하려는 충동이 화합본능이고, 무기체의 상태로 퇴행하려는 충동이 파괴본능이다. 둘은 서로 도우며 작용하여 본능 자체를 강화하고 확대하는 직능을 담당한다. 사물과 타인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화합본능의 일이고 존중과 이해에 거슬러 방해하는 세력을 부정하고 깨뜨리는 일은 파괴본능의 임무이다. 삶의 가장 큰 목적은 화합본능과 파괴본능의 어울림에 있다(360).
연극이 고도로 발달하여 놀이로서의 성격을 떠나면 연극의 사(363)멸이 시작된다. 연극이 현실의 문맥 가운데서 생생하게 살아있으려면 늘 놀이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양주 별산대 놀이가 함축하고 있는 놀이로서의 특징은 시공의 낙차가 심한 것이다. (364). 그러나 내면적인 통일성은 여전히 있다. 삶과 죽음, 출산과 사망, 성장과 노쇠의 변증법에 통일성이 있다. 또 하나의 특색은 빗나간 소리, 즉 헛소리와 신소리이다. 탈놀이에서는 이것이 흥청거림을 북돋아준다(366).
쾌락원칙의 표현인 놀이는 스스로 현실원칙에 대한 비판이 된다. 별산대 놀이에는 기존의 노동체계와 가족구조를 거부하는 항의와 비판이 함축되어 있다(369). 또 하나의 비판은 노장에 대한 것인데, 노름으로 돈을 모아 소무 둘을 데리고 희롱하는 이 중은 비판이 대상이 될 만하다. 노장은 놀이의 진행과정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 무언은 열반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쾌락과 죽음의 전율할 만한 결합인 열반원칙의 우위는 확립되자마자 해소된다.’는 정신분석의 관점에 서면, 열반은 있을 수 없다(370). 노장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도 열반의 불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