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발제문/철학

『에밀』 4장 청년기의 교육 P500~570 루소 2022.9.14. 바다사자

바다사자. 2022. 9. 14. 17:58

에밀4장 청년기의 교육 P500~570 루소 2022.9.14. 바다사자

 

4장 청년기의 교육

 

나의 방법은 자연이 기록해 놓은 것이다. 모든 배려 중 첫째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이다. 양심은 영혼의 소리이고 정념은 육체의 소리이다. 양심은 인간이 참 안내자이다(500). 우리 행동의 도덕성은 우리 자신의 판단 속에 있다. 선이 진실로 선이라면 우리 마음 속에도 선이어야 한다. 정의에 대한 가장 큰 보상은 자신이 정의를 실행하고 있다고 느껴야 한다 (501). 도덕성은 영웅적인 행동에 대한 열광적인 찬미, 미덕에 대한 열광에서 찾을 수 있다(502). 우리가 악인을 미워하는 것은 우리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악인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도 원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보면 동정을 금치 못한다(503). 숨겨진 죄를 은밀히 벌하거나 폭로해 버리는 회한이 화제가 된다. 자연에 따르자, 그렇게 하면 자연이 친절함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음과 자신이 좋은 인간임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선인의 명랑함은 내면적이다. 그 웃음은 기쁨의 웃음이고 그 근원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504).

인간의 정신 밑바닥에는 정의와 미덕의 천성적인 원리가 존재하며, 이 원리에 입각하여 자신과 타인의 행동을 판단한다. 이 원리를 양심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자들의 항의의 소리가 들려온다(505). 몽테뉴여!! 나에게 대답해 달라. 이 지상에서 성실한 것, 관대한 것, 친절한 것, 고결한 것이 죄악으로 간주되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군자가 경멸당하고 비열한 인간이 존경받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506).

우리는 인식하기 전에 느낀다. 행복을 추구하는 의지를 자연으로부터 부여받고 있고 선에의 사랑과 악에의 증오도 자연적인 것이다. 양심의 섭리는 판(507)단이 아니라 감정이다. 우리의 감성은 지성에 선행하므로 관념을 가지기 전에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 감정은 선천적이며 인간은 사교적이다. 양심은 자기 자신과 동포에 대한 두 종류의 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진 도덕적 체계로부터 생겨난다. 인간은 선에 대해 선천적인 지식을 가지지 않는다. 이성이 선을 가르치자마자 양심은 선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한다. 이 감정이야말로 선천적이다(508).

인간은 자신과 자신의 정념을 지배할 수 있다. 우리의 습관이 아직 형성되기 전 우리의 정신이 확장될 때에, 모르는 것을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잘 배우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본성에 따라서 선량하고 현명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우리의 의무를 즐거운 마음으로 실천하기 위해 성실히 지혜를 갈고 닦으면 되는 것이다(514).

나는 우주의 질서에 대하여 명상한다. 끊임없이 그것을 찬미하기 위해, 창조자를 숭배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와 교제하고 나의 모든 능력을 그 신성한 본질 속에 삼투시킨다. 그러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515). 선을 행할 힘을 주십사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가 양심과 이성과 선을 선택할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다. 신의 정의에 기대하는 단 하나의 일은 나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일이다. 나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진리의 근원은 내가 닿지 못하는 곳에 있다(516).

신에 대한 가장 중대한 사상은 오직 이성으로부터만 우리에게 온다. 특수한 교리는 절대적인 존재자에 대한 관념을 명백히 하기는커녕 혼란시키고 있다. 비천한 것으로 만들고 신비에 부조리한 모순을 덧붙이고 있다. 지상에 칼과 불을 가져오고 있다(519). 모든 민족이 각각 자기네식으로, 원하는 것을 신으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했다. 신이 인간의 마음에 이야기하는 것에만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면 지상에는 단 하나의 종교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결같은 형식의 신앙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의식과 종교 그 자체를 혼동하지 말자. 신이 요구하는 예배는 마음의 예배이다. 정신적으로 진실을 다한 숭배를 원한다. 그것이 모든 종교의 의무이다. 외면적인 의식은 단순한 규율상의 문제이다. 이런 것에는 계시 같은 것이 필요 없다(520). 내가 도달한 지점은 자연종교의 교리 속에서 모든 종교의 기초적인 요소를 발견했음이다. 우리가 진리를 정직하게 탐구하고 있다면, 신분이나 목사의 권위를 일체 인정하지 말고 어릴 때부터 가르쳐준 모든 것을 양심과 이성이 검토에 맡겨보자(522).

교리에 관해 이성이 말하는 바로는, 그것은 명료하고 빛나고 자명함에 의해 마음에 호소하는 것이어야 한다. 신앙은 오성에 의해 확실해지고 견고해진다. 모든 종교 중에서 최상의 종교는 가장 명쾌한 종교임에 틀림없다. 나의 이성을 복종시키라고 말하는 것은 이성을 제공한 자를 모욕하는 것이다. 진리에 봉사하는 자는, 나의 이성에 압박을 가하지 않고 이성을 이끌어준다(528).

유럽에는 세 가지 중요한 종교가 있다(유태교, 기독교, 회교). 그 하는 오직 하나의 계기를 인정한다. 다른 하나는 두 가지 계시를 인정하고, 나머지는 세 가지 계시를 인정한다. 각각의 종교는 서로 다른 두 종교를 증오하고 저주한다(533). 세 가지 계시에서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책은 그것을 따르는 국민들로서는 알 수 없는 국어로 씌어 있다. 유태인은 히브리어를 알지 못한다. 기독교도는 히브리어도 그리스어도 알지 못한다. 터키인, 페르시아인도 아라비어를 알지 못한다. 현대에서는 아라비아인 자신도 마호메트 시대의 말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충실한 번역이 가능한지 누가 보증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이 인간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번역자를 필요로 해야 한단 말인가(534). 인류의 3분의 2는 유태교도도, 마호메트교도도 기독교도도 아니다(536). 그 나라의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에게 선교사는 위선적인 열의를 가지고 찾아와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나라를 빼앗으려 한 교활한 책모가로서 알려져 있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537).

나는 모든 책을 덮어 버렸다. 모든 사람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책이 오직 한 권 있다. 그것은 자연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비로서 우리는 신성한 저자[]를 숭배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541).

성경의 숭고함은 나를 감탄시키고, 복음의 거룩함은 나의 마음을 감동시킨다(542).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죽음은 현자의 생애와 죽음이지만 예수의 생애와 죽음은 신의 생과 죽음이다. 소크라테스의 사적에 비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적만큼 확인되지 않은 것도 없다. 사실 이것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저쪽으로 밀어 놓는 것이다. 복음서에는, 뛰어나고 확실한 진리의 증거,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진리의 증거가 보인다.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신에게 봉사하고 있다. 교리는 조금도 나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다. 나는 각각의 종교가 모두 유익(544)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신에게 어울리는 형식으로 신을 공경한다면, 그 종교들은 모두 훌륭한 것이라고 믿는다. 신앙의 근본은 마음에 있다(545).

고향 산속 교구가 맡겨진다면 교회의 정신보다 오히려 복음서의 정신에 따라 가르치기로 한다. 복음서에는 단순한 교리와 숭고한 윤리가 담겨 있다. 나의 가까이에 프로테스탄트가 있다 해도 기독교적 사랑에 입각하여 나의 교구민과 차별하지 않을 것이다. 태어난 때부터의 종교를 버리게 하는 것은 나쁜 짓을 권하는 것이며 권하는 사람도 나쁜 짓을 하는 것이다(547).

그대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있다. 정신은 변하지 않는 것을 구하고, 마음은 그 형태와 성격을 받아들여, 선이든 악이든 일생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 결정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본질적인 것이 견고해져, 새로운 인상은 흔적이 새겨지지 않게 된다. 젊은이여, 아직 굳지 않은 그대의 마음 속 진리의 증거를 받아들이라. 그대의 양심을 분명하게 알고 싶어하는 상태에 놓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정직하게 되어야 한다. 나의 생각 속에서 납득되는(548) 것은 받아들이고 그밖의 것은 버려야 한다. 논쟁을 해서는 안된다. 논쟁을 통해서는 자기 자신도 다른 사람도 가르칠 수 없다(549).

그대가 신이 존재하기를 언제나 원하는 상태에 그대의 영혼을 머무르게 하라. 그러면 그대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가지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550). 정직하고 진실하라. 그러나 오만해서는 안된다. 무지를 배우도록 하라. 그러면 자신도 다른 사람도 속이는 일(551)이 없을 것이다. 맹목적인 신앙심은 광신을 이끌어 내지만, (552)만한 철학은 반종교를 이끌어 낸다. 양 극단을 피하라(553). 진실을 말하고 좋은 일을 하라. 인간에게서 소중한 일은 이 지상에서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는 일이다. 자신을 잊고 있을 때야말로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는(554) 것이다. 자기 이익의 추구가 우리를 오류로 이끈다. 정당한 희망만이 유일하고 믿음직한 안내자이다.

에밀과 나는 자연과 보조를 맞추어 일하고 있다. 자연이 육체적인 인간을 만들고 있을 때, 우리는 윤리적인 인간을 만들려 노력한다. 몸은 이미 건강해도 정신은 아직 힘이 없고 약하다. 육체는 언제나 이성에 앞선다. 이성을 키우는 것에 의해서 감성을 규제해 왔다. 지적인 대상은 감각적인 대상의 영향을 약화시켰다. 사물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감에 의해서 그를 관능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그를 자연의 연구로부터 그 창조자의 탐구로 끌어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555).

에밀은 완전한 자유 속에서 아이 시대를 지냈다. 어른이 되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며 싹트기 시작한 이성이 멍에에 복종하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한다. 이미 성숙한 그의 몸은 스스로 조종하게 된다. 반쯤 발달한 그의 정신은 높이 날아 오르기를 원한다. 이성을 작용시키는 시기가 된다(557). 이성의 발달을 돕고 자연의 진행을 늦추는 것에(558) 의해 이중으로 시간을 벌게 해 준다. 그러나 실제로 자연의 진행을 늦춘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 진행을 빠르게 하는 것을 막았을 뿐이다. 다른 종류의 수업을 통해 조숙한 수업과 균형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마침내 자연의 참 시기가 찾아온다. 그는 당신의 친구이며, 한 개인이다. 이제부터는 그를 그와 같이 취급해야만 한다(559).

어른을 인도해 가려면, 아이를 인도해 가기 위해 해 왔던 모든 일과 반대의 일을 해야 한다. 이제까지 주의깊게 숨겨 왔던 위험한 비밀을 그에게 가르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알지 않으면 안되므로 당신들에게서 배우도록 해야 한다(563).

독서·고독·한가함,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유약한 생활, 여성이나 젊은이들과의 교재, 이런 것들은 젊은이에게 위험한 것들이다. 나는 그러한 것과는 다른 감각적인 것에 의해서 그의 관능을 반전시킨다. 그의 정기의 흐름을 전환시키는 것에 의해서 흐름의 방향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그를 방황으로 이끄는 상상력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은 고된 훈련과 힘든 일에 의해서이다. 팔이 활발히 일하고 있는 동안에는 상상력은 잠을 잔다. 그를 도시로부터 끌고 나간다. 유혹할 우려가 있는 것들로부터 멀리 떼어 놓는다. 밭일도 충분치 않다. 그의 흥미를 자아내(566)고 기쁘게 하며 집중시킬 수 있으며 정열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수렵이다(567).

이 시기는 그후의 그의 생애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시기의 교육을 그의 기억에 깊이 새겨 놓도록 하자. 말이 주는 인상은 언제나 약하다. 이성만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 이성은 때로 사람을 멈추게 할 수는 있지만, 사람을 격려하여 위대한 일을 이루게 하(568)지 못한다. 강한 영혼에는 좀 더 다른 언어가 있다. 사람을 설득하여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언어인 것이다(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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