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발제문/철학

니콜로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pp.75-130 / 2022.10.21 맑시즘 세미나 / 테츠(哲)

테츠(哲) 2022. 10. 21. 20:19

 

니콜로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1권 서문부터 10장, 테츠(哲).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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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역사의 가치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길에 대한 자문자답과 함께 역사에 대한 글을 시작합니다. 역사의 가치는 무엇보다 앞서 걸어갔던 선례로서의 명성이자, 이를 따라 걸어가고자 하는 모방의 형태로서의 가치가 있다 말합니다. 이런 관점은 일견 참신한 부분이 있다 생각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우리가 기존의 역사를 국가적인 단위의 사건과 활동으로 접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의 실제 배우들이라 할 수 있는 왕, 장군, 시민, 입법가 등의 업적을 외면하고 이어져갈 수 있는 고대의 역량(antiqua virtù)’으로 만들어가고 있지 못한 부분을 지적합니다(76).

우리는 실제 고대로부터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민법과 분쟁의 조절, 질병의 치유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은 과거로부터의 경험과 실험들에 의해 발전해 온 역사가 있습니다. 여기서 마키에벨리의 관심은 왜 국가에 관해서는 고대의 선례를 참고하지 않느냐 하는 부분에 있습니다. 따라서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통해 역사적 사건들을 알고 이해하고 배워나가야 함을 역설하며 글을 시작합니다.



티투스 리비우스(BC 59~17) 상상도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
자료: 위키피디아

 

1. 도시 일반의 기원, 특히 로마의 기원에 관하여

이 챕터에서는 로마, 아테네와 베네치아, 알렉산드리아와 피렌체, 자유도시 등의 지중해 도시국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로마의 사례는 토착인과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방어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혹은 권위자의 제안으로 살기 좋고 방어가 용이한 곳으로 뭉쳤던 경우입니다. 아테네와 베네치아의 경우도 이에 해당하는데, 아테네는 테세우스(Theseus, 아테네 건국 시조)의 권위 하에 도시로 뭉쳐서 살게 되었으며, 베네치아는 로마 쇠퇴에 따라 야만인의 침입과 전쟁을 피해 아드리아해 북부 섬들에 도피한 이들에 의해서 생겨난 도시입니다. 이들은 바다를 방어선으로 삼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법을 제정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점차 강성한 도시국가가 된 사례입니다.

다른 사례로 알렉산드리아와 피렌체는 이방 종족이 들어와서 새운 도시로, 자유민들 혹은 타국 군주의 명령에 의해 식민(植民)의 인구 및 방어 정책에 따라 형성된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군주의 명령에 의해 건설된 도시들은 자유롭지 않아 발전을 이루는 경우가 드물고, 국가 치하에서 건설되는 경우의 도시입니다.

자유도시는 질병이나 전쟁 등의 요인으로 기존의 살던 땅을 버리고 새롭게 정착할 거주지를 찾아 건설됩니다. 성서의 모세처럼 정복으로 정착지를 획득 또는 신화의 아이네아스처럼 새롭게 도시를 건설하게 됩니다. 새로운 건설은 건설자의 장소 선택과 법제도를 정비하는 덕(virtù)의 역량에 따라 도시의 번영이 결정되게 됩니다.

척박한 땅에 건설된 도시들로부터 도시 개발을 위해 근면하고 서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단결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지만, “인간의 안전은 권력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82)하기 때문에 비옥한 곳에 자리 잡는 것이 필요하다 말합니다. 이는 도시가 향후 팽창하고 방어 능력을 가지며, 발전 가능성이 있기 위한 것으로, 비옥함으로 인해 사람들이 게을러질 수 있는 부분을 조정하기 위한 법률과 제도, 군사 훈련 등을 통해 성장하며 척박한 지역보다 더욱 강력한 군인이 양성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로마는 아이네아스에 따른 이방인 도시 혹은 로물루스에 따른 토착인 도시로 볼 수 있지만, 그 시작에 있어 자유도시로 출발하였다는 점은 분명하고, 비옥한 토지, 바다로의 접근성, 언덕 지형을 이용한 방어의 용이함, 향후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법과 군대의 활력(virtù)적인 요소에 의해서 최고의 도시로 위치를 지속할 수 있엇습니다.

 

2. 얼마나 많은 종류의 국가가 있는가 그리고 로마 공화국은 어떤 종류의 국가에 속하는가

마키아벨리는 정치체제를 폴리비우스의 구분에 따라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좋은 성향의 세 가지 형태에서 나쁜 형태로 변질된 참주정, 과두정, 무정부 세 가지의 정치체제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형태는 우연한 사태로부터 형성되었지만, 해악을 미연에 방지하는 법률을 통해 처벌과 정의를 시행하면서 정부를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군주를 선출하였습니다. 군주의 역량은 가장 대담한 자가 아니라 가장 현명하고 정의로운 자를 선호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정부의 형태도 달라지게 됩니다.

세습에 따른 군주정은 쉽게 타락하는 군주에 의해 참주정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군주를 퇴출하기 위한 음모와 반란, 군주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일어난 이후에는 독재를 거부하고 공동선에 따라 통치하지만, 이런 경험도 아래 세대에서는 퇴색되어 탐욕을 가진 소수의 통치로 전락되고, 앞서 참주가 쫓겨난 것과 같은 운명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처럼 통치와 지배, 권력을 가진 이들의 자유의 남용, 새로운 통치의 흐름으로 정부의 형태가 순환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좋은 형태의 정부는 단명하고, 사악한 정부는 퇴출되는 과정에서 도출된 좋은 정체(政體)의 성격을 모두 포함한 안정된 것을 도출하게 됩니다. 이는 군주정, 귀족정, 민중 정부의 여러 요소가 공존하면서 서로를 견제하는 것입니다.(91)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에 의한 정치질서는 800년의 국가 평화를 가져왔지만, 반면 아테네의 경우 솔론의 민중 정부와 참주정으로 통치가 찬탈되는 상황이 반복되며 정치 체제의 융합에 실패합니다.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BC800~730)

아테네의 솔론(BC638~558)
자료: 위키피디아

로마의 경우도 평민과 원로원 사이의 불화로 마찰을 빚었지만, 여러 왕들이 설정한 좋은 법률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 체제를 수립합니다. 로마에서는 두 명의 집정관을 두고, 왕이 아니지만 왕의 권력을 부여했으며, 원로원이 함께하는 방식으로 군주정과 귀족정이 혼합됩니다. 그리고 민중 정부의 역할을 위해서 호민관의 관직을 창설하여, 세 정부 유형이 융합되고 자기 자리를 가지게 되면서 공화국 체제를 오랜 시간 지속하게 됩니다. 이렇게 안정성을 가지게 되기까지는 민중과 원로원 사이의 불화가 있었습니다.

 

3. 로마에서 호민관을 창설하게 된 경위 - 국가를 더욱 완벽하게 만든 사건

법률은 인간이 악하고, 자유로울 때 사악하게 행동할 우려가 있다는 것을 상정하고 만들게 됩니다. 로마의 최후 왕인 타르퀴니우스(BC510)를 추방하면서 평민과 원로원은 단결하고 있었지만, 정치적 두려움이 사라진 귀족들은 평민들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귀족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창안될 필요가 있었는데, 평민과 귀족 사이의 수많은 불화와 소동, 내전의 위험을 거친 뒤 시민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호민관을 창설하고, 이들을 통해 원로원과 중재하고 귀족들의 거만함을 억제하게 됩니다.

 

4. 평민과 원로원의 대립이 로마 공화국을 자유롭고 강력하게 만들었다.

마키아벨리의 국가에 대한 관점은 명확해 보입니다. “좋은 군대가 있는 곳에는 으레 좋은 정부가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도시가 행운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란 좀처럼 없다는 점”(96)

공화국에는 인민과 귀족의 파벌(파벌에 대한 각주 35번이 재미있네요. pp.96-97) 사이의 불화를 조정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은 로마의 역사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왕의 추방 이후 그라쿠스 형제가 살해되는 기원전 2세기 시점의 300년 간, 민중과 원로원 사이의 내분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였습니다. 갈등과 불화를 조정하기 위해 좋은 법률이, 좋은 법률이 좋은 교육을, 좋은 교육을 토해 모범적인 처신이 가능한 정치가들을 양산하게 되었고, 이들로부터 공공의 자유를 위해 법과 제도가 생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호민관 제도를 통해서 인민들이 억압을 벗어나 자신들의 자유와 야심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고, 집회를 통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자유를 희구하는 인민의 열망이 자유에 해로운 경우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 열망은 억압에서 또는 억압이 발새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98)

또한 인민은 키케로의 말처럼 인민은 비록 무식하지만, 그들의 신망을 받는 사람이 무엇이 진리인지를 이야기해줄 때 그 진리를 납득하고 거기에 쉽게 복종하는 법’(98)이라는 표현처럼 상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분에서 탄생하였지만, 호민관이라는 제도는 공화국을 건강하게 만드는 새로운 힘이었고, 인민과 로마의 자유를 보호하였다고 평가합니다.

 

5. 인민과 귀족 중 어느 편이 더 확실하게 자유를 보호하는가 그리고 새로이 권력을 얻고자 하는 자와 기존의 권력을 보유하고자 하는 자 가운데 어느 편이 분란의 원인인가

공화국은 자유의 수호자를 잘 설립했는지에 따라서 정부의 지속이 결정되기 때문에 어느 편에 수호자의 지위를 맡겨야 할 것인지의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귀족의 손에 맡겼던 스파르타와 베네치아는 오랜 기간 자유를 누렸습니다. 반면 로마는 민중에게 맡긴 로마의 경우, 귀족이 아닌 자들은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갈망’, ‘자유 속에서 살고자 하는 강한 열망’(100)이 있기 때문에, 자유가 타인에게 독점당하지 않도록 잘 지킬 수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귀족이 수호자가 되는 경우, 귀족의 지배하려는 야망에 부합하고, 인민들의 변덕에 이끌리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평민들 또한 자신들의 수중에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며, 집정관을 비롯 다양한 공직에 평민 출신을 진출시키기 원했고, 귀족을 타도하려 했습니다. 술라와 마리우스가 대립하던 시대에는 수많은 귀족과 평민당이 숙청당하고 재산을 빼앗기고 추방당하는 결과 로마의 공화정 체제는 점차 힘을 잃게 됩니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귀족, 권력을 잡고자 하는 평민 중 어떤 것이 이롭거나 해로울지 알 수 없으며, 로마와 같이 제국으로 가는 공화국의 과정이면 로마의 선례를 다라서, 공화국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는 베네치아와 스파르타의 경우를 모방할 필요가 있습니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것과 새로이 얻고자 하는 야심은 분란의 원인이 되어 왔는데,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따라서 분란은 대부분 이미 가진 자가 초래’(103)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진 자들의 야심과 욕망은 분란의 원인이 되지만, 어느 편이든 욕망에 따라 분란이 생겨날 우려가 있습니다.

 

6. 로마에서 인민과 원로원 간의 대립을 소멸시킬 수 있는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는가

로마에는 평민과 원로원 사이의 수많은 분란이 있었지만, 분란을 해소하고 역사를 지속해 왔다는 것에서 정부의 형태에 대한 생각에 착안합니다. 소란이 있지만 그것을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정부의 종류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정부 형태가 로마에 채택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베네치아의 경우, 섬에 주민들이 모여 살게 되고 그 수가 증가하면서 정부의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그들은 도시 공공 문제를 심의하기 위해 의회를 만들고, 공화제 조직에 충분한 수가 구성되자 새로운 신참자가 정부에 참여할 길을 닫아버리게 됩니다. 그 수가 많아지면서 통치자들에게 명예를 부여하며 신사(gentlemen)라 부르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인민(people)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초기 베네치아 정부에는 충분히 참여가 가능했지만, 나중 이주민들은 정부 참여 기회가 없지만 어떤 것도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에 반란의 기회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스파르타는 1인의 왕과 원로원 체제가 지속되었는데, 이는 주민 수가 적고 이주해 오는 자들을 반기지 않았고 이에 인구 증가에 따른 정치 참여와 권력 분배의 부담이 생기지 않았으며, 오직 세워진 법률을 따르며 자신들만의 단결을 유지한 폐쇄적인 형태였습니다. 부의 분배는 평등하지만, 정치권력에서는 불평등을 유지하였습니다. 하지만 권력자의 청빈한 삶이 중요했기 때문에 평민은 관직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귀족은 평민을 괴롭히지 못했으며, 인민들은 두려워하거나 권한을 탐할 필요가 없고, 귀족은 권한을 침해당하거나 두려워할 일이 없어 분쟁이 불필요한 상황을 유지합니다.

평화로운 공화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베네치아처럼 권력을 주지 않지만 전쟁에 동원하지 않거나, 스파르타처럼 폐쇄적으로 통치체제를 유지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반면 로마는 소란이 일어났지만 꾸준히 덩치를 키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로마가 분란의 원인을 제거하기로 계획했더라면, 그것은 동시에 성장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기도 하였을 것’(107)이라는 표현처럼 성장 과정에서 성장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성장을 회피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베네치아나 스파르타의 경우처럼 작고 폐쇄적인 정부를 유지하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국가는 외부의 침략에 취약하고 국력이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확장 전략을 취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두 경우에서 어떤 방식이 폐해가 적을지를 고려해서 최선의 결정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부득이하게 성장하게 되는 상황에서 작은 국가 지향적인 정치적 토대는 쉽게 흔들리게 됩니다. ‘국가의 확장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확장된 영토를 유지할 수 있도록 조치를 미리 강구’(110)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로마의 정치체제 방식이 의의를 가질 수 있습니다. 불화가 생겨도 감당하고 필요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평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장치들을 통해 자유를 지키는 방식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호민관과 고발권이 자유의 획득에 중요한 역할을 함을 설명합니다.

 

7. 공화국에서 고소고발권(le accuse)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고소와 고발은 국가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좋은 법률적 조치입니다. 시민들은 고발이 두려워 국가에 반역을 꾀하지 않고, 당파적인 증오와 갈등이 해소될 수 있는 배출구로서 역할을 합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에서 식량 위기가 왔을 때, 인민에 적대적이었던 코리올라누스가 원로원에 곡물 배급을 중지하여 인민을 굶주리게 하고 통제하라는 의견이 평민들의 귀에 들어가 분노했을 때에도, 호민관이 소환하여 스스로를 변론하게 하지 않았다면 폭동과 살육이 벌어졌을지 모르는 사례를 통해 법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법률은 시민의 분노를 일부 해소할 수 있는 배출구를 제공합니다. 법률이 없다면 국가에 불법적 방법과 혼란이 초래되지만, 법률적 조치와 공적인 해결 방법은 혼란을 해소하는 역할을 합니다. 합법적인 방식의 해소 조치가 없다면 반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피렌체의 프란체스코 발로리의 살례처럼, 자기 야심을 위해 합법적 정부를 훼손하고 당파를 육성한 결과, 거기에 대항하기 위한 반대 당파와 무력적인 저항에 돌입하게 되고, 이로 권력자는 축출되었지만 다른 귀족들에게도 피해가 확산되고 맙니다.



셰익스피어 <코리올레이너스>, 코리올라누스의 변론과 추방
자료: 위키피디아

또 피에로 소데리니의 사례에서, 시민의 야심을 탄핵하기 위한 방책이 불완전하였기에 소데리니 축출을 위해 에스파냐 군을 끌어들이게 되었고, 불화를 해소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만약 고발제도가 갖춰져 있었다면 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외세를 끌어들이게 되는 원인은 도시의 나쁜 제도가 원인이라는 점에서, 로마는 외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설명으로 로마의 고발권 제도를 통한 탄핵 과정이 공화국에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고발제도는 중상모략을 꾀하는 이들에게 이용당하는 경우도 나타나게 됩니다.

 

8. 고소고발은 국가에 이로운 반면, 중상은 해롭다

푸리우스 카밀루스가 갈리아인들로부터 로마를 구하는 무공을 세우자, 이를 시샘한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는 대등한 영예를 누리고자 카밀루스를 중상하였습니다. 평민들에게 불온한 생각을 퍼뜨려서 소동을 일으켰지만, 원로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딕타토르를 임명하여 사건을 조사한 결과, 공개된 자리와 공중 앞에서 만리우스의 거짓이 드러나고 투옥되게 됩니다.

이런 사례처럼 중상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지만, 이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고발의 체계를 확립하고 이를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합니다. 중상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누구에게든 해를 끼칠 수 있지만, 고발은 진실성을 입증할 수 있는 정보와 정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함부로 고발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공화국은 고발 제도를 잘 정비하여 시행될 수 있도록 하고, 중상을 가하는 자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공개된 장소에서 행해져 공공성을 담보하고 중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합니다.

로마에 반하여 피렌체의 경우, 중상에 의해서 서로 증오와 분열이 싹트고 당파가 조직되며 파멸이 초래되고 말았다 말합니다. 중상은 권력을 잡기 위한 주요 책략이자 유효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를 고발하거나 중상을 처벌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보니, 자기가 권력을 직기 위해 도시에 해를 끼치는 이들을 관리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을 말하면서 중상으로 인한 조반니 구이차르디니의 피해 사례를 제시합니다. 고발은 절차와 입증의 과정이 중요하다보니, 쉽게 고발할 수 없으며, 고발이 사실이면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사실이 아니더라도 중상한 이를 처벌할 수 있는 유효한 방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9. 새롭게 공화국을 창건하거나, 구제도를 철저히 혁파하여 공화국을 쇄신하는 일은 한 사람이 단독으로 해야 한다

국가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한 인물이 조직하지 않는다면 잘 조직되거나 개혁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때 자신의 이익이 아닌 공동선을 추구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의 부당한 행위는 비난받을 것이라 할지라도 결과가 용서받을 만한 것이라면 적절하다고 표현합니다.(누군가를 배척하고 이루는 평화에 정의를 위하여라는 서사의 구조는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습니다.)

건국자는 사려 깊게 자기 권력을 유산으로 남겨서는 안 되고, 많은 사람에게 유지를 전해서 다양한 의견을 내고 책임을 분산하는 형태가 좋다고 말합니다. 건국자는 혼자이지만, 좋은 정부를 위한 형태는 공화적이라는 마키아벨리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물루스가 동생을 죽이는 일을 벌였지만 그는 원로원과 협의하고, 자기 권력으로서 전시 통수권과 원로원 소집권 이었다는 점, 왕정을 마무리하고 두 명의 집정관 체제로 갔지만 권력의 행사 내용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로마 제도의 적합성이 드러납니다.

그 외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하였지만 공동선에 부합한 법률을 제정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스파르타의 아기스(Agis) 왕은 권력을 장악하여 스파르타를 원래대로 되돌리려는 개혁에 착수하자 참주정을 행사하려는 것으로 지목되어 살해당합니다. 뒤이어 등극한 클레오메네스(Cleomenes)는 역시 권력을 장악해야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자신에게 반대할 만한 인물들을 일거에 살해하여 리쿠르고스의 법을 복원합니다. 그의 개혁은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시대적으로 마케도니아의 등장에 따라 무위에 그치고 맙니다. 하지만 의도와 결과에 따라서 살해 행위에 대한 비난이 아닌 용서 받을 가치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10. 공화국이나 왕국의 창설자는 명성을 누려야 하는 반편, 참주정치의 시조는 응당 비난을 받아야 한다

훌륭한 업적에 의해 명성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파괴와 파멸을 몰고 오는 이들, 미덕과 학문을 적대시하는 이들은 악명이 높고 사람들은 이들을 혐오합니다. 하지만 유능한 이들도 참주정의 유혹에 넘어가고 마는 것을 역사를 통해 보게 됩니다. 잠시의 달콤함에 영광과 명예를 포기하고 악명과 분란을 겪게 될지 이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역사는 독재자를 매도하고, 시민적인 업적을 이룬 이들을 칭찬합니다. 로마제국의 기초를 잡은 카이사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찬양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이를 경계합니다. 카이사르에 대한 찬양은 자유로울 수 없는 분위기에서 나온 이야기이며, 역사가들은 브루투스에게 칭송을 바치고 있음을, 카이사르에 대한 찬양은 그와 로마제국이라는 위세에 눌려서 그런 것이라 주장합니다.

이후 로마제국에서도 5현제의 시기에 법률에 따른 통치의 결과 그들의 품행이 존중받고 시민과 원로원부터 보호 받았던 것, 이에 대조적으로 칼리굴라와 네로 등은 그 품행으로 사악하게 평가받은 점을 조명합니다. 로마제국 역대 황제 중 16명은 살해되고, 10명만이 제명에 죽었습니다. 특히 군인황제의 시기에 수많은 부패와 사악한 통치, 세습된 군주의 잔악성에 대조되어 양자로 왕위에 오른 5현제 시기의 전성기가 추앙 받습니다.

카이사르가 공화국을 종결한 인물로서 마키아벨리의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카이사르는 파괴하고 파멸하였다 평가하지만, 로물루스는 파괴하고 개혁했다고 평가합니다. 좋은 도시국가를 우해서는 군주정은 포기되어야 하고, 명성을 남기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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