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사 논고』 11-26장 마키아벨리 2022.11.04. 개벽크
11장 로마인들의 종교에 관하여
종교에 대한 존중
로마는 로물루스를 최초의 입법자로 지니게 되었다. 그렇지만 하늘은 로물루스의 법률만으로는 그토록 위대한 제국을 만들기에 불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로마 원로원에 영감을 주어 누마 폼필리우스를 로물루스의 후계자로 지명하도록 했다.(130)
누마는 인민이 대단히 거칠다는 점을 발견하고 나서 평화적인 수단으로 그들의 시민적 복종에 익숙해지도록 하고자 했다. 그는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전적으로 필요한 수단으로 종교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종교를 기초로 하여 국가를 확립한 결과, 오랫동안 신에 대한 외경이 로마 공화국만큼 강한 나라가 없게 되었다. 그것의 결과로 시민들은 법률을 위반하는 것보다는 맹세를 어기는 일을 훨씬 더 두려워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됐다. 그들은 인간의 권능보다는 신의 권능을 더 존중했기 때문이다.(131)
누마가 종교를 통치에 사용한 방법
로마의 역사를 잘 검토한 자는 종교가 군대를 통솔하고, 인민에게 영감을 주며, 사람들을 선량하게 하고 사악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데 얼마나 커다란 도움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로물루스와 누마 중 누가 뛰어난 군주인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 할 수있다. 종교가 있는 곳에서는 평민을 무장시키기가 쉽지만, 무기만 있고 종교가 없는 곳에서는 평민을 무장시키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132)
개혁가들은 신에 호소한다
오늘날 국가를 세우려고 계획하는 자는 세련된 문화를 지닌 도시에 사는 데 익숙한 자들보다는 아무런 문화가 없는 산간벽지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세우는 것이 훨씬 쉽다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예를 들어 서툰 솜씨로 초벌 작업을 해놓은 대리석보다는 거칠지만 대리석 원석에다 쉽게 훌륭한 작품을 새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133)
강력한 군주인가 종교인가: 현명한 군주는 허약한 후계자에 대비한다
누마가 도입한 종교야말로 로마가 누리게 된 번영의 주된 이유라고 결론짓겠다. 종교는 좋은 법을 가져왔고, 좋은 법은 행운을 가져왔으며, 행운에서 도시가 노력한 모든 사업이 행복한 결실을 보게 되었다. 종교적 가르침의 준수가 국가의 위대함을 초래하듯이, 종교에 대한 경멸은 국가의 파멸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신에 대한 두려움이 결여된 곳에서는 왕국이 몰락하건 아니면 종교애서 결여된 것을 군주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충함으로써 왕국이 유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주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군주의 능력(virtu)이 쇠퇴하면 왕국 역시 즉각적으로 쇠퇴할 것이다. 그런즉 오직 한 인간의 활력(virtu)에만 의존하는 왕국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활력은 한 인간의 생명과 함께 사라지며, 세습의 과정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단테가 다음과 같이 사려 깊게 말한 바 있다.
사람의 미덕이 가지를 따라 전달되는 일이란 거의 없나니
이는 그것을 나누어준 신의 뜻이기도 할지어다.
미덕은 하느님에게서 하사받은 것이어라.
그렇다면 공화국이나 왕국을 구원하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 잘 다스리는 군주를 두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도 잘 유지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군주를 두는 것이다.(134)
12장 종교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이탈리아가 로마 교회의 처신으로 파멸에 처하게 되었는가
이교의 신탁
이교도의 삶은 신탁의 계시나 점술가와 복술가의 숭배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그들의 그 박의 다른 모든 의식, 희생물 및 의례는 이것들에 의존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신에게 미래의 행운 또는 액운을 예언할 수 있는 신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당신에게 부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교도들의 신전, 희생, 신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그 박의 모든 의식이 유래했다. 이로써 델피의 신탁, 주피터 아몬의 신전 및 다른 유명한 신탁이 세계의 찬미와 헌신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신전들이 권력자와 영합하기 위해 예언을 말하고, 그로써 그 거짓됨이 인민들에게 밝혀지게 되자,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게 되고 쉽사리 좋은 관습들을 무시하게 되었다.(136)
기독교는 타락했다
기독교의 쇠퇴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는 바로 로마 교회, 곧 우리 종교의 우두머리에 가장 가가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덜 종교적이라는 점을 목격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초창기를 회고하고 현재의 습관이 그 당시와 얼마나 다른지를 아는 사람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파멸과 심판이 임박해 있다고 결론지을 것이다.(137)
교회는 이탈리아를 분열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이탈리아인들이 교회와 성직자들에게 진 첫 번째 빚으로, 우리가 신앙심을 잃고 사악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훨씬 커다란 빚을 지고 있는데, 그것이 우리 몰락의 두 번째 이유다. 그 이유란 다름 아니라 교회가 이 지역을 분열시켜왔고 여전히 분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나 에스파냐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지역이든 그 전체가 단일한 공화국이나 왕국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으면 진정으로 단결되어 잇거나 행복하지 못하다. 이탈리아가 그(프랑스나 에스파냐)와 같은 상황에 있지 않고 단일한 공화국이나 군주가 다스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교회 때문이다. 비록 교회가 이곳에서 세속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교회는 이탈리아에 유일한 권위를 확립하고 나라 전체의 통치자가 될 만큼 강한 능력(virtu)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138)
교회는 야만인들을 이탈리아에 불러들였다
교회는 이탈리아를 장악할 만큼 강력하지도 못했고 다른 세력이 장악하는 것을 용납할 만큼 허약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교회야말로 이 나라가 하나의 우두머리 밑에 통합될 수 없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많은 군주와 영주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은 이탈리아 내분과 약화를 초래함으로써 강력한 야만인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 쳐들어오는 자는 누구나 손쉽게 이탈리아를 약탈할 수 있게 되었다.(139)
13장 로마인들은 도시의 여러 제도를 개혁하고 각종 사업을 수행하고 내분을 수습하는 데 종교를 어떻게 활용하였는가
평민들을 다루는 데 사용된 종교
로마인들이 도시의 여러 제도를 개혁하고 각종 사업을 수행하면서 종교를 활용한 실례를 제시하는 것이 본론에서 그다지 벗어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의 실레로 어느 해에 로마인들은 집정관의 권한을 가진 호민관들을 선출하였는데, 한 사람만 제외하고는 모두가 평민 출신이엇다. 같은 해에 질병과 기근이 있었고, 놀라운 징후가 나타났다.
차기 호민관을 선출하게 되었을 때, 귀족들은 이러한 징조가 제공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로마가 그 권력의 위엄을 잘못 사용했기 때문에 신이 노여움을 사게 되었으며, 따라서 과거의 방식으로 호민관을 선출하는 것 이외에는 신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 결과 평민들은 이러한 종교적 징후에 겁먹은 나머지 오직 귀족들만을 호민관으로 선출했다.(141)
14장 로마인들은 새점을 상황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해석했으며, 심지어 종교가 요구하는 바를 무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종교를 준수하는 외양을 신중하게 유지했다; 그리고 누구든 성급하게 종교를 경시하면, 그를 처벌했다
새점
점은 대체로 이교도들이 신봉한 고대 종교의 토대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 공화국에도 번영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로마인들은 공화국의 다른 어떤 제도보다 새점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 그들의 집정관의 임명, 사업의 시작, 군대의 출정, 전투의 수행 및 문무에 관한 중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때 점을 활용했다.
다른 점들 중에서도 그들은 이른바 풀라리라 부르는 일군의 점술가들이 내리는 점괘를 활용하면서 군대를 출정시켰다. 그 점괘란 것은 적군과 전투를 결정할 때 닭이 모이를 먹으면 그들은 길조를 안고 전투했으며, 만약 닭이 모이를 먹지 않으면 전투를 삼갔다. 하지만 꼭 전투를 해야할 이유가 있으면 점괘가 반대로 나오더라도 전투를 수행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그들은 편의와 의도에 따라 점의 결과를 교묘히 바꾸어, 그들이 종교를 무시하면서 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조처했다.(144)
점의 신중한 위한
그런데 제 1차 포에니 전쟁 때 아피우스 풀케르는 이와 정반대의 조치를 취했다. 카르타고군과 전투하기 위해 그는 풀라리에게 새점을 치게 했다. 그런데 그들이 닭이 모이를 쪼아먹지 않는다고 보고하자 그는 “우리는 닭이 물을 마시는지를 보겠다”고 말하면서 닭들을 바다에 던졌다. 그러고 나서 전투에 임했는데 그는 그날의 전투에서 패했다.
이처럼 새점을 치는 관행은 병사들을 확신을 품고 전투에 임하게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으로 거의 항상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행은 단진 로마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도 실천했다.(146)
15장 삼니움인들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최후의 수간으로 종교에 의지했다
전투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병사들의 마음에 단호한 결의를 심어주어야 하고 종교가 그것을 심는 데 최선의 수단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제인 오비우스 파키우스의 주재하에 예로부터 전해온 희생 의식을 거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희생물을 바친 다음에 죽은 희생물과 제단의 타오르는 불 사이에서 군대의 모든 지도자들은 전투에서 결코 후퇴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병사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칼을 뽑아든 백인대로 둘러싸인 제단 앞에 세워놓고, 먼저 그들이 보고 들은 바를 결코 누설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아냈다.
도망가는 자는 누구든지 살해된다고 신에게 맹세라도록 했다. 나아가 맹세를 준수하지 않으면, 그들의 가족과 종족의 우두머리들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고 했다. 그들 중 일부가 겁을 먹고 맹세를 주저하자, 즉석에서 백인대 병사가 그들을 살해했다. 그런즉 다음에 제단 앞에 서게 된 자는 끔찍한 광경에 기겁하여 모두 맹세하였다.(148)
종교에 대한 호소가 실패하다
막상 전투가 벌어지자 삼니움인들은 패퇴하고 말았다. 로마군의 용맹한 과거의 패배에서 유래한 두려움이 종교와 맹세를 통해 그들이 형성한 결의를 꺾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상실된 용맹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밖에 다른 방도가 없으며, 그 밖의 다른 수단을 강구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자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잘 사용된 종교라는 수단으로 얼마나 많은 확신을 얻을 수 있는지를 충분히 입증해준다.(149)
『논고』의 구조
이 장에서 내가 든 실례는 아마 로마의 대외정책을 논할 때 포함되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그 실례가 로마 공화국의 가장 중여한 제도와 관련되기 때문에 나는 역사적 자료를 분산시켜 나중에 거듭 논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 대목에서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149)
16장 군주정에 익숙한 인민은 우연한 사태로 자유를 회복하더라도 자유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인민들은 타인의 명령하에 사는 데 익숙해서 국가로서 어떻게 방어하고 공격해야 하는지 생각 할 줄 모르고 군주를 이해하지도 못하며 군주에게 이해받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바로 조금 전에 벗어던진 멍에보다 통상 훨씬 더 가혹한 멍에에 순식간에 걸려들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곤경도 아직 완전히 부패하지 않은 인민에게만 일어난다. 왜냐하면 완전히 부패한 인민은 , 이하에서 곧 설명하듯이, 잠시라도, 아니 실상 전혀, 자유롭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150)
새롭게 자유를 얻은 국가는 열렬한 동맹은 없지만 열렬한 적은 있다
군주의 재부에서 양분을 빨아먹음으로써 혜택을 누리던 모든 이들은 열렬한 적이 된다. 자유로운 공동체에서 얻는 공통의 이익은 모두가 누리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감사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즉 아무런 걱정 없이 자기 소유물을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권능, 자기 부인이나 자녀의 명예가 유린되지 않으리라는 믿음, 자신의 명예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등에 대해서는 정부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정부에 대해 의무감을 느끼는 일이란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것처럼 최근에 자유를 획득한 국가는 열렬한 적은 두게 되지만, 열렬한 동맹은 얻지 못하게 된다.(151)
권좌를 안전하게 하고자 하는 군주에 대한 조언
인민들은 두 가지를 원한다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첫째, 그들은 자신들을 노예로 만든 장본인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둘째, 그들은 다시 자유를 찾고자 갈구한다. 첫 번째 소망은 군주가 쉽게 만족시킬 수 있고, 두 번째 소망은 부분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을 뿐이다.
군주는 법률에 다라 다스려야 한다
인민의 두 번째 소망, 곧 자유를 되찾으려는 소망과 관련하여 말하자면, 군주는 그것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인민들이 자유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야 한다. 인민들 중 소수는 통치에 참여하고 싶어 자유를 원하지만, 그 밖의 인민 대다수는 삶의 안전을 위해 자유를 원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시 안전하게 사는 것으로 충분한 나머지 사람들은 일반적인 안전과 군주의 권한을 동시에 확보하는 명령과 법률에 쉽게 만족할 것이다.(153)
17장 부패한 인민은 자유를 얻더라도 자유를 유지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타락한 군주국은 자유로워지기가 대단히 어렵다
로마에서 왕 제도가 폐지되거나 아니면 로마가 순식간에 허약해지고 무기력해지거나 둘 중 어느 하나는 필연적이었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왕들이 초래한 커다란 부패를 고려할 때, 만약 연이어 두 명 또는 세 명의 군주가 같은 방식으로 집권하여 그들의 부패가 구성원들에게까지 확산되었더라면, 구성원들이 부패한 로마를 개혁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몸체가 아직 건강할 때 머리를 잃었기 때문에 쉽게 자유롭고 질서 정연한 삶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군주 밑에 살고 있는 부패한 도시가 그 군주와 함께 그 혈통까지 단절시킨다고 해도 결코 자유를 되찾을 수 없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로 인정되어야 한다.(155)
개혁은 한 명의 유능한 인간에 의존한다
아주 오래도록 장수하는 한 인간 또는 연이은 두 명의 훌륭한 통치자가 나라를 철저히 개혁하지 못한다면, 개혁가 자신이 죽기 전에 많은 위험과 유혈사태를 통해 그 나라를 소생시키지 못하는 한, 그 나라를 파멸에 빠뜨린다. 그러한 부패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자질의 결여는 도시에 존재하는 불평등에서 유래한다. 그러므로 그 나라에 평등을 되살리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전적으로 초법적인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다른 곳에서 좀더 상세히 논할 것처럼,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런 수단을 사용할 수 있거나 사용할 것이다.(159)
18장 부패한 도시에 자유로운 정부가 이미 존재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약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립할 수 있는가
기본적 제도의 부패
부패한 도시에 본래의 통치 기반이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은 두 가지 주요한 사태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하나는 행정관을 선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로마 인민은 도시의 집정관 및 다른 고위직에 오직 그 직책을 지원한 사람만을 임명했다. 이러한 제도는 초기에는 좋았다. 왜냐하면 스스로 그러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한 시민들만이 그 직책에 지원했고, 거부당하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러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처신을 잘했다. 그러나 부패한 도시에서 이러한 방법은 후일 유해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왜냐하면 가장 비범한 역량(virtu)을 갖춘 자가 아니라 가장 권세 있는 자가 행정관직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세가 없는 자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거부당하는 것이 두려워 지원하는 것을 삼가게 되었다.
이러한 자신감과 적의 허약함으로 로마 인민들은 집정관직을 임명할 때 더 이상 지원자들의 역량(virtu)을 고려하지 않고 그들의 인기를 따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인기를 가장 많이 얻은 자들을 임명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가장 권세가 있는 자를 임명할 정도로 타락하게되었고, 그리하여 선량한 사람들은 관직에서 전적으로 배제되었다.(161)
어려운 개혁은 한 사람의 군주를 요구한다
법질서가 잡힌 좋은 정부하에서 살 수 있도록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고결한 인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폭력으로 국가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악한 인물이어야 한다. 하지만 고결한 인물은 비록 그의 목적이 좋다고 할지라도 좀처럼 사악한 방법을 통해 지배자가 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 사악한 인간은 그가 마침내 지배자가 되었을 때, 올바른 일을 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사악한 방법으로 획득한 권한을 올바르게 사용하려는 생각이 결코 그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163)
19장 유약한 군주라도 강력한 군주의 뒤를 이은 경우에는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유약한 군주가 연달아 즉위하게 되면 그 왕국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강력한 왕이 연달아 집권하면 위대한 업적을 성취할 수 있다
로마 건국 이후 연달아 즉위한 최초의 국왕 3인, 곧 로물루스, 누마, 툴루스의 출중한 능력(virtu)과 수완으을 고찰하면, 로마가 커다란 행운을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왕 로물루스는 매우 거칠고 호전적인 인물이었고, 제2대 왕 누마는 냉정하고 종교적인 인물이었으며, 제3대 왕 툴루스는 로물루스처럼 거친 왕으로서 평화보다는 전쟁을 선호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로물루스에 비견되는 역량(virtu)을 지닌 다른 왕들의 출현이 필수적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도시는 유약해져 이웃 나라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165)
군사적 능력이 왕국을 유지한다
로물루스의 출중한 역량(virtu)은 누마 폼필리우스가 단시 평화적인 수단만으로도 오랫동안 로마를 다스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만큼 충분했다. 누마의 뒤를 이은 툴루스는 용맹에 의해 로물루스와 같은 명성을 얻었다. 그의 뒤를 이은 안쿠스는 타고난 재능이 출중하여 평화를 누리면서도 전쟁을 잘 수행할 수 있었다. 처음에 그는 평화적인 수단을 개척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웃 나라들이 그를 유약하다고 판단하면서 그를 경시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 결과 그는 로마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해야 하며 누마가 아니라 로물루스의 방식을 본떠야 한다고 결심했던 것이다.(167)
20장 두 명의 유능한 군주가 연이어 즉위하면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다; 잘 조직된 공화국은 필연적으로 유능한 지배자가 잇따라 출현하게 되며 그 결과 국력이 크게 신장된다
두명의 유능한 군주가 연이어 즉위하면 세계를 얻기에 충분하다는 점을 납득할 수 있다. 그 점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공화국의 경우에는 선거라는 방법이 단순히 연이은 두 명의 지도자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유능한 지도자가 잇따라 집권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이는 훨씬 더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능한 지배자의 승계는 잘 정비된 모든 공화국에서 항상 가능하다.(168)
21장 자신의 군대를 갖지 못한 군주나 공화국은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람이 있는 곳에 군인이 있다
현존하는 군주나 오늘날의 공화국이 방어와 공격을 위해 자국민으로 구성된 군대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이를 크게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리고 툴루스의 실례가 보여준 것처럼 이러한 결함은 전쟁에 적합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국의 백성을 군인답게 만드는 데 실패한 데서 연유한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169)
24장 잘 조직된 공화국은 시민에 대한 상벌제도가 분명하며, 공을 세웠다 하여 잘못을 묵인하지 않는다
호리타우스의 공적은 대단히 큰 것이었지만 그가 자신의 누이 동생을 살해한 행위는 로마인이 보기에는 끔찍한 행위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의 공적이 대단한 것이었고 근래의 일이었는데도 그를 사형에 처하기 위해 재판에 회부했다.
잘 정비된 공화국은 어떤 시민이 공을 세웠다고 해서 그의 잘못을 묵인하는 일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훌륭한 일을 저지르면 그의 공적과 상관없이 벌을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관행이 잘 준수될 때, 도시는 오랫동안 자유를 누리면서 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도시는 으레 곧 멸망할 것이다. 도시의 이익을 위해 그가 한 훌륭한 행위가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주는 데 그치지 않고, 만약 그 시민이 대담하고자 자신에 넘쳐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나쁜 짓을 마음껏 저지를 수 있게 된다면, 그는 곧 너무 오만해져 모든 자유로운 정부의 기강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176)
25장 자유로운 국가에서 오래 유지된 정부를 개혁하고자 하는 자는 적어도 구제도의 외양만은 남겨두어야 한다
군주제의 흔적
도시의 정부를 개혁하되 그 개혁된 정부가 잘 유지되고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의도하거나 소망하는 자는 적어도 구제도의 외양을 존속시킬 필요가 있다. 인민들에게는 정부가 그 형태를 바꾸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실재에 못지않게 외양에서도 영향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경우에 그들은 실제보다도 외양에 더욱 좌우된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인들은 1인의 군주제를 폐지하고 2인의 집정관제를 신설했을 때 집정관 밑에 12명 이하의 수행원을 두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왕을 수행하던 관리의 수를 넘지 않기 위함이었다.(178)
26장 신생 군주는 그가 정복한 도시나 지역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조직해야 한다
참주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에게 의존하게 한다
국가의 모든 것을 새롭게 개편하는 것을 도시들에 새로운 명칭, 권한, 진용을 갖춘 새로운 행정관을 임명하고, 부자를 가난하게 하고, 가난한 자들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다.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그렇게 했다. “그는 빈자들을 좋은 것들로 채워주고 부자들을 빈털터리로 만들었다.”
이 밖에도 군주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이미 세워진 도시들은 헐어야 하며, 주민들을 한 곳에서 다른곳으로 이주시켜야 한다. 또한 등급이나 지위, 관직 역시 나에게서 유래하도록 해야 한다.(179)
선량한 사람은 그토록 잔혹한 조치를 거부한다
이러한 조치는 매우 잔혹한 것으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관점에서도 모두 정부를 구성하는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합법적인 정부라는 처음의 좋은 방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는 이처럼 사악한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들을 어중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실로 사람들은 전적으로 선하지도 못하고, 전적으로 악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