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이르는 병 - 키에르 케고르 / 3장 1편 A. a / 노그래
Ⅲ. 절망의 모든 형태
절망의 형태들은 종합으로서의 자기(자아)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반성함으로써 추상적으로 도달될 수 있다. 자기(자아)는 무한성과 유한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종합은 하나의 관계이다. 그리고 이것은 파생적이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이고 자유이다. 자기는 자유이다. 그런데 자유는 가능성과 필연성의 범주들의 변증법적 양상이다.
그렇지만 절망은 의식의 범주 안에서 고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절망이 의식되어 있는가 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절망과 절망 사이의 질적 차이를 나타낸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절망은 개념적으로 본다면 의식되고 있다.
A. 절망을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않거나를 문제 삼지 않고 고찰되는 경우의 절망, 따라서 여기서는 종합의 모든 계기(유한성과 무한성/가능성과 필연성)만이 문제가 된다.
a. 유한성과 무한성의 규정하에 볼 수 있는 절망
자아는 무한성과 유한성의 의식적인 종합이고 자기 자신에 관계하는 것의 종합이다. 자아의 과제는 자기 자신이 되는 데 있다.
자아를 무한화함으로써 자아를 무한히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함과 동시에 자아를 유한화함으로써 자아를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것. 자아가 그런 방법으로 자기 자신이 되지 않는 한 자아는 절망 상태에 있다(p.69).
α. 무한성의 절망은 유한성의 결핍에 존재한다.
자아가 서로 지양하는 두 계기의 종합이고 그 때문에 한쪽은 언제나 동시에 그 반대라고 하는 변증법적인 것 안에 존재한다(p.70).
무한성의 절망은 공상적인 것, 무한계적이다. 공상적인 것은 상상력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다. 상상력은 무한화로 향한 반성이다. 자아란 반성이다. 즉 상상력이란 자아의 재현이며 자아의 가능성이다(p.72)
그러나 공상은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환귀하는 것을 방해한다(감정/인식/의지).
자아는 추상적인 무한성 내지는 추상적인 고립성 안에서 공상적인 생존을 영위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언제나 자신의 자아를 상실하고 있는 것으로 마침내 자아는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게 될 뿐이다(p.74).
자아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문제되지 않는 것이고 또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되면 그만큼 위험한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p.75).
β. 유한성의 절망은 무한성의 결핍에 존재한다.
무한성의 결핍은 절망적인 고루성, 편협성이다.
고루성과 편협성이 바로 자기 상실 상태 – 무한자로의 도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유한적인 것이 되어 자신으로 있는 대신 하나의 수, 하나의 인간이라는 천편일률적인 것들 안에 있어서 하나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됨에 따른 자기 상실(p.76)
인간은 절망의 한 방법으로 무한자 안에 미혹되어 들어가 자기 자신을 상실하는 수가 있고(α) 또 절망의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자아를 ‘타인’에게 편취당하게 하는 것이다(β).
자기 자신이려고 하는 따위는 너무 엄청난 일이며 타인처럼 지내는 쪽이 훨씬 편하고 안전하다는 생각을 한다(p.77).
그(자아)는 자갈처럼 매끄럽게 마멸되어 있어 현재 유통되고 있는 화폐와 같이 잘 통한다. 세상은 그를 절망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인간은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p.78).
세상의 눈으로 보면 모험은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험을 하면 쉽게 잃지 않는 것을 오히려 모험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무서울 정도로 쉽게 잃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p.79).
유한성의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은 세상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사람들에게서 칭찬받고 그들 사이에서 중요시되고 명예로운 위치에 있게 되며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일에 종사할 수 있는 것이다(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