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발제문/철학

목적없는 수단 / 조르조 아감벤 / 6장 언어와 인민 / 2020. 6. 21.

에피_메테우스 2020. 6. 21. 09:50

6장 언어와 인민

코르키야르(집시들을 가리킴)

아르고(코르키야르의 은어)

인민

인민의 언어

 

코르키야르들은 자신들끼리 은어를 사용했다. 코르키야르들은 이 언어를 통해 앞서 말한 코키유의 구성원을 알아본다.(p. 74)

 

사실 우리는 인민이란 무엇인가 또는 언어란 무엇인가 등에 관해 아주 사소한 관념마저도 갖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의 모든 정치 문화는 이 두 개념[인민과 언어] 사이의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p. 77)

 

모든 인민은 패거리이자 코키유이며, 모든 언어는 은어이자 아르고이다(p. 77).

 

이 테제의 해방적 역량에 시선을 고정할 줄 알았던 자에게, 우리의 정치적 상상계를 지배하고 있는 도착적이고 집요한 기계들은 갑작스레 그 권력을 상실할 것이다.

인민이라는 관념이 오랫동안 그 어떤 실체적인 현실성마저도 상실해버린 오늘날, 결국 우리가 하나의 상상계에 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명확할 것이다.

 

인민의 운명은 국가의 정체성일 수 밖에 없으며 인민이라는 개념은 시민권 개념 안에서 재코드화될 때에만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그 어떤 국가적 위엄도 갖고 있지 않은 언어들(카탈로니아어, 바스크어, 게일어 등)의 특이한 지위, 즉 언어학자들이 자연스럽게 언어로 다루고는 있지만 사실상 은어나 방언으로 작동하며 거의 항상 직접적으로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되는 이 언어들의 특이한 지위도 마찬가지이다(p. 78).

 

단테 알리기에리(p. 79-80):

국어와 문법을 대책으로 제안하지 않음.

빛나는 속어(말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의 변형)를 제안

말한다는 사실로 향하는 은어 자체의 일종의 해방(문법적 해방이 아닌 시적, 정치적 해방)을 제안

 

은어가 말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경험의 장소와 대상으로 표시되는 언어활동의 또 다른 모습(p. 80)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언어활동의 순수한 실존(말한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것이 윤리에 해당함.

벤야민: 구원받은 인류의 모습을 문법이나 특수어로 환원될 수 없는 순수언어에 맡긴다는 것

 

언어활동의 존재-문법(언어)-인민-국가라는 사슬을 어떤 임의의 지점에서 끊을 때에만 사유와 실천은 시대에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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