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정동책방에서 철학책 읽기 / 칸트 / CBS라디오 / 20.10.27 / 김환희
1. 프로그램명 : 전북CBS 라디오 <생방송 사람과 사람> (FM 103.7Mhz)
2. 방송 일시 : 2020년 10월 22일 목요일 오후 5시 30분-50분
3. 담당 : 전북CBS 소민정 PD 송규호 PD
4. 진행 : 박민 소장 (MC, 참여미디어연구소)
5. 출연 : 김환희(인간무늬연마소)
용정동책방에서 철학책 읽기. 오늘 소개할 철학자는 칸트던데.
칸트만큼 대중적 인지도를 지닌 철학자는 없는 듯해요?
칸트는 1724년 쾨르히스베르크 (프로이센 왕국의 발산지, 대관식을 치렀던 곳, 폴란드와 라투아니아 사이 발트해와 접한 곳. 현재는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마구 제작자인 요한 게오르크 칸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인 임마누엘은 ‘신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로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밑에서 자유와 애정이 가득한 성장기를 가졌습니다.
<순수이성비판>을 기점으로 <순수이성비판>, <판단력비판>까지 3대비판서가 주저로 손꼽히고 있으며, <영구평화론>도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책입니다.
널리 알려졌지만, 수험생들에게는 애증의 철학자로 불린다는 거예요.
칸트 문제만 나오면 정답률이 떨어진다는 게 이유인데.
칸트 사상의 핵심은 뭐라고 볼 수 있을까요?
방대한 사상을 남긴 칸트를 몇 글자로 요약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만,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저는 “비판정신”이라는 4글자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칸트는 자유를 추구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유롭기 위해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푸코가 칸트의 이 주제를 본따서 ‘비판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기도 했는데요. 소장님은 비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답 듣고나서) 비판이란, 자신의 능력과 그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묻는 것, 그리고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쓸데 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 칸트의 비판정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내 한계를 제대로 알 때, 비로서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죠.
칸트가 대단한 게 근현대 철학의 기준점이
칸트 이전과 칸트 이후로 나뉜다고요.
네. 칸트는 비판정신으로 무장하고, 당대의 난제들에 답하기 위해서 나선 것이 <순수이성비판>이었습니다. 은둔 학자 생활을 끝내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 그의 나이는 57세였습니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내놓기 이전에 당시의 사상계에서는 라이프니치로 대표되는 관념론자와 흄으로 대표되는 경험론자 간의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 전쟁을 끝내버리러 왔던 것이 칸트였습니다. 관념론의 전통은 데카르트부터 시작합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우리는 경험으로 아는 지식은 단편적이고 우연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언제나 진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추구했고, 그것은 철저한 의심을 통한 합리적 사유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반면에 로크, 흄과 같은 경험론자들은 데카르트가 말한 의심을 밀고 나가면 사유라는 것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본유관념과 같이 진리를 인식하고 판가름할 수 있는 잣대가 인간 안에 탑재되어 있다고 말했는데, 흄에 의하면 그런 것을 포함해 모든 관념은 그저 경험이 반복되서 쌓인 하나의 사유 습관일 뿐이라고 것입니다. 블랙스완을 예로 들면 좋겠습니다. 관념론자들은 항상 하얀 백조만 보았기 때문에, 백조는 당연히 하얗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름도 백조라고 짓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확실한 관념이란 것이, 검은 백조가 출연하는 순간 산산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죠. 아직 기존의 관성을 깨는 경험을 못했을 뿐이지, 고정불변의 진리를 담보해줄 관념은 없다는 게 경험론자의 입장입니다.
합리론에 의하면 우리는 진리를 관념을 통해서 알 수 있고, 절대적 진리를 담보하고 그 진리를 우리에게 보내주는 신과 같은 존재를 전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합리론자의 세계에서는 인간에게 자유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인과관계 안에서 결정되어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경험론자의 세계 속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회의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칸트는 이 transzendental(초월론적)라는 매개체를 통해 경험론과 합리론을 화해시키고 연결합니다.
매일 3시 30분이 되면 정확히 산책에 나섰던 걸로도 유명하잖아요.
네. 칸트는 스스로 자립하고 나서 얼마 안되는 월급을 거의 시종의 월급으로 사용했는데, 시종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는 모닝콜이었습니다. 칸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강의 준비를 하고, 오전 중에 강의 준비와 집필작업을 모두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후 1시부터 4시까지는 하루 단 한번뿐인 식사시간으로 항상 친구들을 초대해서 포도주와 유머를 곁들인 유쾌한 사교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4시 이후에는 항상 똑같은 코스로 산책을 하여, 동네 사람들이 칸트가 어느 코스에 있는지를 보며 시간을 추측할 정도였습니다.
딱 한 번 산책을 빼먹은 적이 있다던데?
네 38세 때 루소의 <에밀>을 읽고 충격을 받아서 며칠 동안 산책을 나서지 않았습니다.
루소는 이후 칸트의 사상적 변화에도 영향을 주었죠.
칸트가 어렸을 때부터 워낙 천재적으로 탁월한 면이 있어서, 무식한 사람들을 무시했었습니다. 특히 무지한 천민들을 멸시했는데, 루소를 읽고 나서 인간을 멸시하는 거만함을 반성하게 됩니다. 이론적으로 세상을 단정짓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방랑하며 많은 일을 겪은 루소처럼 인간 삶의 다면적인 면모를 실천적 차원으로 관찰하고 인식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칸트가 루소를 워낙 존경해서, 방안에 커다란 루소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평생을 바라보며 살았다고 합니다.
일상생활에선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고?
/ 당구도 꽤나 쳤다고 들었습니다?
네. 칸트는 평생 자유를 추구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장학금과 같이 무료로 제공되는 지원을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꽤나 늦은 나이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었는데도, 상황이 어려운 제자를 위해 생활비를 보태주고 일자리를 구해줄 정도로 주변을 돌볼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당구도 학생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내기당기로 돈을 벌어 학비와 용돈을 충당했습니다.
칸트의 삶을 통해 그의 학문적 기반, 사상을 엿보고 있는데요.
용정동책방에 들고 온 순수이성비판.
여기에 좀 더 칸트 철학의 핵심이 담겨 있을 듯해요.
앞서 transzendental(초월론적)라는 매개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칸트는 물자체를 알 수 없고, 우리는 현상만 지각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의자가 진짜 실체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고, 다만 그것이 우리의 경험을 통해 어떤 과정을 거쳐 하나의 관념으로 머릿속에 자리잡는지 그 메커니즘만 알 수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메커니즘을 일으키는 선험적(a priori) 조건만 명확히 규정해주면 모든 사람이 공통감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경험과 관념 등의 과정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초월론적 사고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와 같습니다. 지금 소장님이 보고 계신 의자는 실재로 존재한다, 혹은 제가 보고 있는 의자와 정확히 같은 것이라고 확신하시나요? 실재로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이 회의론자라면, 신이라는 통해서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관념론자입니다. 그런데 칸트는 그 실체를 알 수 없으니까 더 이상 따지지 말자고 하고, 다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것을 보며서 똑같이 느끼는 메커니즘만 정의내리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철학계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일컬어집니다. 그 전에는 진리를 담보하고 있는 것이 대상이고 우리의 마음은 그 진리를 거울처럼 비친 허상만 가지고 있었다면, 칸트는 우리 마음을 통해 대상이 정의 내려지고, 의미를 획득한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오늘날에 칸트가 끌리는 이유랄까요. 어디에 있을지.
아무래도, “신은 죽었다” 외친 니체 이후에 우리는 포스트 모던한 시대에 살고 있자나요.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어떤 기준도 없는 것 같은 세상 속에서 확고한 기준을 제시해주는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포스트 모던 시대에는 각자 자신이 믿는 바를 추구하기 때문에 대화나 설득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 교사 참수사건이나 차별금지법 반대에서 보는 것처럼 종교적 광신이 더 극심해지는 것이죠. 이런 혼란한 시기에 계몽주의의 거두였던 칸트같은 영웅을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격언을 남기기도 했는데.
자신의 사상과 어울리지 않게 인종차별주의적인 발언들도 남겼더라고요?
네. 흑인을 비하하는 언급 등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앞서 루소 이야기를 말씀드렸는데, 칸트가 루소를 보면서 반성했지만, 엘리트주의적인 면모를 평생 버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칸트야말로 엘리트주의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인종차별주의도 엘리트주의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대 일반적인 인식을 따라간 칸트의 한계라고 봐야할지.
이 때문에 현대에 와서 비판도 많이 받더라고요?
네. 오늘날도 인종차별 반대집회에서 칸트동상을 훼손하는 일이 빈발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한국사회도 사실 이러한 강력한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양>이라는 말부터가 그런데요. 교양은 “서양을 가르치고 배운다”는 뜻에서 시작했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의 <교양주의>가 대표적인데요. 교양을 갖춰서 빠르게 서양을 따로잡아야 한다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미국을 흉내내고 모든 것을 배우려고 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엘리트들과 유럽중심주의에 빠져있는 진보적 엘리트들 모두 이런 교양주의 속에서 못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선 순수이성비판을 두고 번역 논쟁이 벌어졌어요?
네. 비판론 3부작을 번역한 백종현의 버전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전집을 발간하고 있는 한국칸트학회를 백종현씨가 지적사기라고 고소고발한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 개인적으로 어느 버전이 좀 더 맞다고 보는지?
transzendental을 백종현씨는 ‘초월적’이라고 번역했고, 한국칸트학회는 ‘선험론적’이라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각각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저는 이정우 선생님의 주장대로 ‘초월론적’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칸트의 본 뜻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칸트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죠.
그 가운데 오늘의 한 문장을 꼽아준다면?
“갓 태어난 아기의 자유로운 첫울음은 교육을 통해 지루한 방해로 바뀐다. 교육의 영향이나 효과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자유롭게 놓아두었을 때의 충동을 고려하는 일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