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라디오 20.12.03 / 용정동책방 / 사도바울 - 바디우 / 김환희
1. 프로그램명 : 전북CBS 라디오 <생방송 사람과 사람> (FM 103.7Mhz)
2. 방송 일시 : 2020년 12월 3일 목요일 오후 5시 30분-50분
3. 담당 : 전북CBS 소민정 PD 송규호 PD
4. 진행 : 박민 소장 (MC, 참여미디어연구소)
5. 출연 : 김환희(인간무늬연마소)
용정동책방에서 만난 예수의 첫 문을 열어주셨는데.
김환희 대표에게 성탄절이란?
빼빼로데이나 블랙프라이데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정신은 잃고 상품이라는 껍데기만 남은 날.
오늘 들고 온 책은 예수가 아니라 사도 바울이네요?
오늘날 성탄절이 본래의 의미를 잃었는데, 예수에 대한 오해만큼 사도 바울에 대한 오독이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는데, 사도 바울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 그 진짜 의미를 살려낸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
출판사에선 이 둘을 기이한 만남으로 소개하더라고요.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민족종교인 유대교의 한계를 넘어서 현재의 기독교의 체계를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데요. 오늘날 기독교의 정치적 보수성을 볼 때, 맑스주의자이며 혁명적 사상가인 바디우의 조합은 얼핏 기이한 조합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조합이 풀어 놓는 이야기.
매우 흥미진진한데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사도 바울이란 누구인지.
기독교에서 바울이 차지하는 비중이랄까요. 이 부분부터 짚고 가야 할 거 같아요.
신약성경 27권 중 14권이 사도바울의 저서일 정도로 성경에서 사도바울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약이 유대교의 경전이라고 볼 때, 사실상 사도 바울은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설계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예수의 죽음 이후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의 교파들을 살펴보면 더욱 입체적으로 그의 위치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당시 3개의 교파가 가장 큰 패밀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먼저 그리고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마리아와 신의 아들이지만, 마리아의 남편이 요셉, 진골이나 로얄 패밀리라 부를 수 있겠네요.)를 따르는 자들은 유대교의 민족종교적 성격을 지키려는 율법주의자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방인들 교회를 담당했던 사도 바울.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중립을 지켰던 타협주의자였던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이자 1대 교황이 됩니다.
그런데 바디우에게 사도 바울은 기독교에 국한된 인물이 아니에요.
바울이 21세기 오늘날 우리와 너무나 밀접한 동시대성을 보여준다?
어떤 맥락에서?
사도 바울이 오늘날 현대적 사상가, 시인, 그리고 투사에게 요구되는 모범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쓴 신약 성경의 구절들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해 내요.
예를 들어 바울의 회심으로 유명한 다마스쿠스 사건을 오늘날 이야기로 극화해서 이야기합니다. 먼저 청취자분께서 기독교인이 아닐 수 있으니 성경 이야기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다마스쿠스는 지명이고, 성경 버전에 따라 다매섹으로 기재되어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바울이 다매색으로 가는데 갑자기 길가에 빛을 비추며 신이 나타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이 꿇어 앉아 『누구십니까?』하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고 답하는 신비현상을 경험한 것입니다. 원래 바울은 유대교 내에서 이단이자 사이비로 취급받는 기독교인을 잡아죽이는 율법학자이며 사형집행관이었는데, 이 일 이후로 회심해서 기독교인이 됩니다.
이 사건을 빗대 바디우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를 들어 바울의 회심으로 유명한 다마스쿠스 사건을 오늘날 이야기로 극화해서 이야기합니다. 로마는 미 제국주의의 수도 뉴욕입니다. 이제 막 태어난 소규모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좌파적 혁명가들인 레지스탕스입니다. 바울은 안락한 부르주아 가문 출신의 프랑스인으로 바리새인들과 함께 레지스탕스를 잡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파시스트 바울은 계시를 받고 반파시스트로 회심하고 레지스탕스 진영에 가담합니다. 마침내 뉴욕으로 간 바울은 예수처럼 결국 배반당하고 체포되어 야비한 상황 속에서 처형당합니다.
이와 함께 주체성, 보편적 윤리 같은 개념을 강조하던데?
네. 바디우에게 있어 사도 바울은 혁명적 주체, 보편적 진리를 상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사건이 안디옥 사건입니다. 바울이 안디옥에 체류할 동안 율법을 엄수하는 유대인-그리스도인들이 도착합니다. 이들은 바울과 충돌해 분란을 일으켰으며, 모든 신자들의 할례를 요구했습니다. 율법의 엄수를 주장하는 유대인-그리스도인 진영에서는 예수라는 사건이 구질서를 폐지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예 바울은 예수라는 사건은 율법과 기존의 유대교 관습을 폐지하는 혁명적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 이후로 새로운 보편성은 유대인 공동체와 어떠한 특권적 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바울에 의해 선민의식에 빛나는 편협한 민족종교에서,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보편적 세계종교로 변모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사도 바울의 부제가
제국주의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네요.
네. 기독교를 핍박했던 로마, 그리고 율법을 따지며 외부자를 배척하는 교회가 바로 제국주의입니다. 오늘날에도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여러 가지 기독교적 질서를 사회에 강요하는 그 경향이 바로 제국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르주아적 안락함에 빠져 기존질서의 안정화를 꾀하며, 권력에 순응하는 자만을 만들어 내는 오늘날 우리 교회가 바로 예수를 죽인 제국주의자들과 율법주의자인 것입니다. 바울교회라는 이름의 교회도 있는데, 이름이 아니라 바울의 정신을 계승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상대성, 특수성이 강조되는 시대인데
보편적 진리라는 개념.
꼭 알랭 바디우뿐만 아니라 여러 학자에게 다시 각광 받고 있죠?
네. 이슬람 등 타종교에 대한 혐오, 이주노동자 등 외국인에 대한 혐오, 성 소수자 및 여성혐오 등 상대성이 강조되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오히려 혐오가 더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중세적 윤리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윤리가 들어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보편적 진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계몽도 설득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혐오마저도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진리로서 긍정하게 된 것입니다. 슬라보예 지젝이나 알랭 바디우와 같은 철학자들은 옳고 그름의 잣대가 되는 ‘보편적 진리’를 다시 확립하려고 합니다.
종교인 바울이 아닌 제국에 맞선 사회운동가라 해야 하나요.
사도 바울의 새로운 면을 조명해보았는데요.
어떠세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일말의 희망을 보았는지?
오늘날 교회에서 사도바울은 질서를 수호하는 보수적 율법주의자처럼 소환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세상의 권세에 복종하라는 로마서 13장에 대한 강조가 대표적입니다. 국가권력이든 자본권력이든 나보다 위에 위치한 사람의 권위는 하나님이 축복한 것이기에 하나님에게 순종하듯 순종하라고 설교합니다. 사실 이는 예수를 죽인 국가권력과 율법주의라는 종교권력에 맞선 저항의 매뉴얼인 로마서의 성격을 완전히 반대로 해석한 오독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권위에 복종하라고 한 게 아니라 권위를 무력화시키는 새로운 방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권력자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사랑을 보이는 방식으로 권위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 불평등한 세상에 맞서 보편지향적인 평등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의 강력한 힘을 우리는 사도바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도그마 되어 안락함만 추구하는 100개의 대형교회보다 사도 바울 한 사람이 훨씬 강력합니다.
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 어떤 분들에게 권하고 싶으세요?
신앙생활에 의문을 품고 있는 기독교인들과, 삶으로 증거하지 못하는 비교기독교인들에게 실망한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오늘의 한 문장
계속 사유하라! 순응하려는 심원한 욕망, 바로 그것이 죽음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