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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전북CBS 용정동책방 김환희 21.04.01.

인무연 2021. 4. 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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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그램명 : 전북CBS <생방송 사람과 사람> (FM 103.7Mhz)

2. 방송 일시 : 202141일 목요일 오후 530-50

3. 담당 : 전북CBS 소민정 PD (010 4633 4531, 063 256 1007)

송규호 PD (010 2129 1040, 063 256 1008)

박민 소장 (MC, 참여미디어연구소)

질의안_용정동책방_210401(김환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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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철학책 한 권 들고 오셨죠?

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고전 철학책으로 통하는데

책의 첫머리만 보면 연애소설 같은 느낌이 나요?

네. 책의 시작을 '부인 해리엇 테일러'에게 바치는 헌정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번 낭독해보겠습니다.

"진리와 정의에 대한 높은 식견과 고매한 감정으로 나를 한없이 감화했던 사람, 칭찬 한마디로 나를 무척이나 기쁘게 해주었던 사람, 내가 쓴 글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녀의 영감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런 글을 나와 함께 쓴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 함께했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그 비통했던 순간을 그리며 나의 친구이자 아내였던 바로 그 사람에게 이 책을 바친다."

 

밀과 테일러의 관계는 연인관계를 넘어서죠?

네. 앞서 읽어드린 부분에서 밀이 고백하듯이 밀의 중요한 저술들은 모두 부인 테일러의 손을 거쳐 출판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유론>은 약간 다릅니다. 테일러가 갑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테일러의 검토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유론>은 미완성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밀은 미완성 상태 그대로 출판합니다. 그녀의 영전에 바치고 싶어서죠. 그래서인지 제가 볼때 <자유론>은 논리전개가 다소 엄밀하지 못합니다. 1,2장에 비해서 3,4,5장의 밀도가 떨어지고 전혀 다른 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론서라기보다 에세이의 형태입니다. 

 다시 테일러와의 관계로 돌아가서, 사실 밀이 테일러를 처음만났을때 테일러는 유부녀였습니다. 1830년 여름, 테일러의 집에서 있었던 저녁 식사자리에서 였는데요, 이때 밀은 24세 테일러는 22세로 결혼 생활 4년차에다 두 아이를 둔 유부녀였습니다. 테일러와 밀은 즉시 서로에게 지적적으로, 감적으로 매료되었습니다. 20년동안 친밀하지만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시끄러운 스캔들로 오랫동안 도마에 올랐습니다. 테일러의 남편인 존 테일러가 세상을 떠나고 2년후 밀과 테일러는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테일러가 프랑스 여행중 폐충혈에 걸려 결혼후 7년 반만에 사별하게 됩니다. 

장례를 끝낸 밀은 테일러의 무덤이 보이는 곳에 오두막을 짓고, 마지막으로 그녀와 함께했던 호텔방의 가구를 그곳에 옮겨놓았습니다. 그곳에 한동안 머물며 <자유론>을 집필하게 됩니다. 

 

최초의 남성 페미니스트는 밀이라는 이야기도 있던데?

존 스튜어트 밀의 삶에서 두 여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부인 해리엇이 첫번째이고,

그의 어머니가 두번째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는 공리주의 철학자로 당대에 유명했던 제임스 밀입니다. 

제임스 밀은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으로 가르쳤는데, 세 살때 그리스어를 여덟 살때는 라틴어, 열세 살 부터는 경제학을 가르쳤습니다. 열일곱살때는 동인도회사의 통신 심사부장인 자신의 조수로 아들인 밀을 임명하였고, 존 스튜어트 밀은 이곳을 자신의 평생직장으로 삼았습니다.

어쨋든 아들에게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비롯한 각종 학문을 혼자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박학다식했던 제임스 밀과 다르게 그의 아내인 헤리엇 밀은 교육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제임스 밀은 지적 대화가 통하지 않는 자신의 아내를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이런 수평적이지 않은 관계는 아들인 존 스튜어트 밀에게도 영향을 미친것 같습니다. 자서전 초고에서 아버지가 잘못된 결혼으로 불행했다고 기술하거나 어머니에 대한 여러 비판적 언급을 하는데 나중에 모두 삭제합니다. 

사실상 실직 상태인 남편과 자녀 아홉을 키워야 했던 그의 어머니에 대한 밀의 냉담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어머니는 '잊힌 여인'입니다. 반면에 헤리엇과 다른 생각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로 부인 헤리엇에게는 존경을 바칩니다. 어머니에게서 여성의 현실을 보았고 자기 부인을 통해 여성의 미래를 투사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초기 페미니스트 고전으로 쏜 꼽히는 밀의 <여성의 종속> 은 상반된 두 여인의 간극을 매꾸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밀은 하원위원으로서 여성 참정권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하기도 하고, 1867년 선거법 개정안에서는 man이라는 단어를 person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밀은 자신이 여성 참정권 문제에 대해 세계 최초로 의회 단상에서 연설한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영국은 1928년이 돼서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부여받았는데, 그 권리가 확정되던 날, 영국의 여권 운동가들이 런던 템스 강변에 있는 존 스튜어트 밀 동상을 찾아가 꽃을 바칠 정도로 그 공헌을 인정받았습니다.  

 

다시 자유론으로 돌아와서요.

, 민주주의 등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책인 거 같은데.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해주시겠어요?

"사람은 각자 최대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단 한가지 예외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게 될때이다. 이때는 개인의 자유가 구속되는 것을 피할 도리가 없다." 이 경우를 빼면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밀의 주장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사상의 자유입니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사람이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밀은 여론과 관습과 같은 다수의 횡포에 대해서 알레르기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개인의 개별성을 항시 보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용 정리를 간략히 해주셨는데,

사실 밀만큼 오해받는 철학자도 없는 듯해요.

자유론을 둘러싸고 이념에 따라 해석이 극명하게 갈리거든요.

밀이 말한 진짜 자유는 뭔가요?

자유의 여신상

freedom(쇼생크 탈출, 자연적 자유, 소극적 자유)과 리버티(정치적 자유, 정치적 자유)의 차이.

liberal libertarian 차이 설명

"freedom은 주로 누군가가 의지한 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며, 누군가가 행위 할 수 있는 힘을 가짐을 말한다. 반면 liberty는 원칙 혹은 법이 아닌 자의적인 의지로 행해지는 억압을 봉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며 연루된 모든 이의 권리를 고려한다. 따라서 liberty로서의 자유는 자유를 행할 수 있는 능력(capability)을 조건으로 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권리(rights of others)에 따라 일부 제약을 받는다. 철학적 맥락의 자유는 결정론과 대조되는 자유의지와 관계된다."

이사야 벌린은 밀의 자유론(On liberty)을 소극적 자유(negative freedom)으로 비하하기도 함. 

libertarian 자유지상주의 =신자유주의

개별성 존중. 다수에 의해 짓밟히지 않는 소수의 개성 보호

내 생각이 절대 옳다고 강변하고, 자기 확신의 과잉이 인종차별, 혐오범죄, 전쟁과 같은 비극을 부릅니다. 이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독단과 편견을 넘어서기 위한 토론과 이성, 공론장을 강조합니다. 이런 점에서 합리적 의사소통론을 논하는 하버마스는 밀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리주의자로서의 밀의 면모를 볼 수 있고.

생전에 사회주의론이란 책도 썼더라고요?

앞서 밀이 개별성을 강조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렇다고 밀이 사회성을 등한시한것은 아닙니다. 

그는 개별성의 보존과 더불어 인간이 사회 속에서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당위성을 함께 강조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감정을 타고나기 때문입니다. 사회협력과 공동의 이익을 강조하고 있고요. 이런 점에서는 공리주의의와 개인주의를 접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자유 사회주의'를 주창한 사람이기도 하며, 푸리에의 생산자협동조합 등 사회주의적 실천을 적극 받아들이려고 했던 점진적 사회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 이념 지도를 그려본다면 진보적 자유주의자 정도로 보면 될지?

그런데 코로나 이후 자유론이 다시 주목받고 있어요.

특히 유시민과 진중권의 논쟁이 뜨거웠는데,

선생님도 기억하시죠?

*당시 논쟁 내용 소개

문재인 정부가 태극기부대의 작년 8.15 집회를 불허했는데요. 코로나 사태로 광화문 집회를 허용하면, 방역상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관해서 유시민은 자유론을 인용(관련 구절 자유론 p123-124)하며 광화문 차벽을 통해서 집회의 자유를 제한했다는 것이 정당했다고 주장하고요. 진중권은 유시민이 자유론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는 비판입니다. 감염의 위험성에 비해서 과도하게 집회의 자유를 제한했다는 해석입니다. 법원결정에서 "감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의 집회의 자유 제한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둘의 해석 차이는 왜 발생한 건지?

누구 말이 좀 더 맞다고 보세요?

 

자유론 해석은 유시민씨가 맞다고 봅니다만,

저는 그렇다고 해서 존 스튜어트 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리버럴로서 밀의 <자유론>을 경전처럼 생각하고 정답을 찾고자 한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집회의 자유를 제한한 밀의 한계성을 보고 있습니다.  데모크라시(민중의 힘)에 대한 반감과 공포가 밀 안에 있다는 것이지요. 그의 자유론은 그런 점에서 계몽주의, 엘리트주의로서의 성격이 강합니다. 

사회는 계몽되고 잘 교육된 개인들에 의해서 변화하고 잘 통치되는 못해서 작금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밀의 생각이 잘 받아들여져서 탄생한게 오늘날 신자유주의이고,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능력주의라는 정서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밀이 두려워하고 제한하려고 했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연성과 공통감각으로서의 사회, 민중의 힘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체주의 =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아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를 얼마나 제한할 것인지 등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던 기회가 아니었나 싶고요.

밀의 자유론은 여러 번역서가 나와 있잖아요.

그 중 어떤 버전을 추천해주고 싶으세요?

어떤 번역이든 괜찮습니다. 밀의 영어가 오늘날에도 영미권에서 작문 교본으로 쓸만큼 간명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한 문장

 

이 원리가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굳이 부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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