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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연 170314() / 가라타니 고진 세미나 / 세계사의 구조 / 서설, 1부 발제 / 화니짱

세계사의 구조 1장 발제(17.03.15 교정본).hwp


서설 교환양식론

 

1. 마르크스의 헤겔비판

사적유물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네이션을 예술이나 철학과 마찬가지로 관념적인 상부구조로 보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국가가 능동적인 주체라고 생각한 헤겔을 비판하고, 국가를 그저 시민사회에 의해 규정된 관념적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여기서 먼저 다음과 같은 사고가 나왔다. 그것은 경제적 구조를 바꾸면, 국가나 네이션은 자동적으로 소멸한다는 견해이다. 하지만 국가나 네이션의 능동적 주체성을 무시한 이런 견해는 마르크스주의운동에 다양한 실패를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마르크스주의자 사이에서 국가사회주의(스탈린주의)를 가져왔고,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항하는 내셔널사회주의(파시즘)의 승리를 가져왔다. 바꿔 말해, 자본주의를 초극하는 운동은 국가와 네이션을 해소하기는커녕 그것들을 유례없이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33)

이에 프랑크푸르트학파로 대표되는 마르크스주의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도입했다. 그것을 통해 경제적 하부구조를 음미하지 않고 그저 보류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텍스트 해석의 결정불가능성이라는 주장과 연결되어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립성을 말하는 것은 국가나 네이션이 어떤 종류의 하부구조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능동적 주체성을 가진다는 것을 보지 않는 것이다.

경제적 하부구조와 정치적 상부구조라는 마르크스의 견해는 근대자본주의사회에 근거한 것이다. (34) 그러나 경제적 하부구조=생산양식이라는 전제에 서면, 자본제 이전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자본제경제조차도 설명할 수 없다. 자본제 경제는 그 자체가 관념적 상부구조즉 화폐와 신용에 근거한 거대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지본론에서는 생산양식이 아니라 상품교환의 차원에서 고찰을 시작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즉 자본과 노동자의 관계는 화폐와 상품의 관계(교환양식)를 통해 조직된 것이다. 그런데도 사적 유물론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자는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을 되풀이했을 뿐이다. (35)

 

2. 교환양식의 타입

교환이라면, 상품교환이 바로 연상된다. 자본주의사회에 있는 한, 그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타입의 교환이 존재한다. 첫째는 증여-답례라는 호수이다. 이런 교환양식A는 공동체의 내부원리가 아니다. 호수는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생겨난 것이다. (36) 이런 의미에서 호수는 세대 안에서의 공동기탁(재분배)과 구별되어야 한다. 이런 재분배는 세대 내지 수 세대로 이루어진 밴드 내부에만 존재하는 원리이다. 그에 반해 호수는 세대나 밴드가 그 밖의 세대나 밴드 사이에 항상적인 우호관계를 형성했을 때에 행해지는 것이다. 즉 호수를 통해 세대를 넘어서는 상위집단이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호수는 공동체의 원리라기보다 오히려 커다란 공동체를 성층적으로 형성하는 원리이다.

이어서 교환양식B또한 공동체 사이에서 생겨난다. 그것은 하나의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를 침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계속적으로 약탈하려면, 지배공동체는 단순히 약탈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도 무언가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지배공동체는 복종하는 피지배공동체를 다른 침략자로부터 보호하고 관개 등의 공공사업을 통해 육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의 원형이다. 국가는 국가 이외의 폭력을 금지함으로써 복종하는 자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한다. 즉 국가가 성립하는 것은 피지배자가 복종을 통해 안녕과 안전을 부여받는 일종의 교환을 의미할 때이다. 이것이 교환양식B이다.(37) 국가(왕권)는 부족사회 수장제의 연장으로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원래 약탈-재분배라는 교환양식B에 근거한 것이다.

다음으로 제3의 교환양식C, 즉 상품교환은 상호합의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환양식AB, 즉 증여를 통해 구속하거나 폭력을 통해 강탈하거나 하는 일이 없을 때 성립하는 것이다. 상품교환은 서로가 타인을 자유로운 존재로서 승인할 때만 성립한다. 그러므로 상품교환이 발달할 때, 그것은 각 개인을 증여원리에 근거하는 일차적 공동체의 구속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 된다. 도시는 그와 같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만든 어소시에이션에 의해 형성된다. 물론 도시도 그 자체로 이차적 공동체로서 그 성원을 구속하게 되지만 역시 일차적 공동체와는 이질적이다.

상품교환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상호의 자유를 전제함에도 불구하고 상호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38) 화폐를 가진 자는 상품교환을 통해 화폐를 축적하려고 한다. 그것은 화폐의 자기증식 운동으로서의 자본의 활동이다. 물론 그것은 필연적으로 빈부의 차이를 초래한다. 이처럼 상품교환의 양식C는 교환양식B에 의해 초래되는 신분관계와는 다른 종류의 계급관계를 초래한다. (39)

교환양식D 교환양식B가 초래하는 국가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교환양식C에서 생기는 계급분열을 넘어서, 말하자면 교환양식A를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로운 상호적인 교환양식이다. 이것은 앞의 세 가지처럼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교환양식BC에 의해 억압된 호수성의 계기를 상상적으로 회복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처음에는 종교적 운동으로서 나타난다. (39)

마르크스주의자는 국가나 네이션을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간주해왔다. 하지만 국가나 네이션이 자본주의적 경제적 구조로 환원되지 않는 자립성을 갖는 것은 그것들이 상대적인 자립성을 가진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들이 각기 다른 경제적 하부구조, 즉 다른 교환양식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시도하고 싶은 것은 다른 교환양식이 각각 형성하는 세계를 고찰함과 더불어 그것들의 복잡한 결합으로서 존재하는 사회구성체의 역사적 변천을 보는 것, 그리고 이것들을 지양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지켜보는 것이다. (43)

 

3. 권력의 타입

공동규범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로 공동체의 법. 이것은 명문화되는 일이 거의 없으며 벌칙도 없다. 하지만 이 오키테를 파괴하면 집단 따돌림을 당하거나 추방되기 때문에 파괴하는 일은 거의 없다. 둘째로 국가의 법. 공동체 사이, 또는 다수의 공동체를 포함하는 사회의 법이라고 해도 좋다. 공동체의 오키테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공간에서 국가의 법이 공동규범으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셋째로 국제법. 국가 간의 법이다. 즉 국법이 통용되지 않는 공간의 공동규범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공동규범은 일정한 권력없이는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키테가 작용하는 공동체 내부에서는 공동규범을 작동시키기 위해 폭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폭력과는 이질적인 강제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증여에 의한 권력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44) 모스가 관찰한 포틀래치와 같이 증여하는 사람은 증여받은 쪽을 지배한다. 되돌려주지 않으면, 종속적인 지위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선의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폭력적 강제 이상으로 타인을 강하게 지배한다. 호수교환에는 일종이 권력이 따르는 것이다. 포틀래치는 전쟁이 아니다. 그러나 상대를 제압한다는 동기에서 전쟁과 닮아있다.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은 이미 태어나면서 공동체로부터 증여받은 것이라고 해도 좋다. 각 구성원이 그것을 갚을 의무를 진다. 공동체가 개개인을 구속하는 힘은 그와 같은 호수성의 힘이다.

둘째로 공동체의 오키테는 공동체의 바깥, 또는 다수의 공동체가 존재하는 상태에서는 기능하지 않는다. (45) 따라서 공동체를 넘어선 공동규범()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힘이 필요하다. 바로 폭력이다. 하지만 단순한 폭력으로는 공동규범을 강제하는 힘이 될 수 없다. 지배를 항상적인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지배자나 지배공동체 자신도 따르는 공동규범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는 그 때에 존재한다. 즉 국가권력은 폭력에 의해 뒷받침되지만, 항상 법을 매개로 하여 나타난다.

공동체의 오키테를 강요하는 힘이 호수교환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처럼 국가의 법을 강요하는 힘도 일종의 교환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것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홉스이다. 그것에 의해 한편은 생명을 얻고, 다른 한편은 돈이나 노동을 얻는 계약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권력이란 일종의 교환양식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로 국가간의 법은 어떻게 존재할까? 국가간의 교역 현실로부터 생겨난 법, 그것이 말하자면 자연법이다. 자연법을 뒷받침하는 것은 상품교환에서 생겨난 힘, 화폐의 힘이다. (46) 우리는 이를 상품 사이의 사회계약이라고 말해도 좋다. 국가는 이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 화폐는 국가에 의해 주조되지만, 그것이 통용되는 것은 국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다.

상품교환은 자유로운 합의에 의한 교환이지만 여기서 새로운 지배가 생겨난다. 화폐는 언제 어디서든 다른 어떤 상품과도 교환할 수 있는 질권을 갖는다. 그러므로 상품과 달리 화폐는 축적이 가능하다. 부의 축적은 생산물의 축적이 아니라 화폐의 축적으로서 시작되었다. 화폐의 힘은 증여나 폭력에 근거하는 힘과는 다르다. 그것은 타자를 물리적·심리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에 근거하는 교환을 통해 부릴 수 있다. 상품은 교환될지 어떨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화폐를 가진 자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선다. (47) 이 화폐의 힘은 폭력에 근거하는 신분지배와는 다른 종류의 계급지배를 초래한다.

이로써 명확한 것은 모든 교환양식에서 그것만의 고유한 권력이 생긴다는 점, 그리고 교환양식의 차이에 따라 권력타입도 각기 다르다는 점이다. 이상 세 가지 타입의 권력은 어떤 사회공동체에서든 결합의 형태로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이상의 세 가지 힘 외에 교환양식D에 대해서 부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최초로 출현한 것은 보편종교에서이고, 말하자면 신의 힘으로서이다. 교환양식A,B,C와 거기서 파생되는 힘을 넘어서는 교환양식D는 지상명령으로서 나타난다. (48)

 

4. 교통개념

교통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창한 사람은 모제스 헤스(Moses Hess)이다. 그는 마르크스보다 조금 연장의 청년헤겔파 철학자로 교통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파악하려고 했다. 첫째로 헤스는 생명은 생산적인 생명활동의 교환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헤스가 생각하기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교통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물질대사(metabolism)이다. (50) 인간관계 역시 교통형태로서 약탈과 노예제 그리고 상품거래가 있다. 상품거래라는 형태가 확대되면 약탈과 노예제를 대신하게 된다. 화폐를 가짐으로써 인간은 타인을 강제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를 통해 각자의 능력은 화폐라는 형태에서 소외되고 만다. 또 인간들의 분업과 협업은 그들의 의지에 반해 자본 하에서 조직되게 된다. 헤스는 바람직한 교통형태는 자기소외로서의 자본을 폐기하고 공동생산을 자신들의 의지로 관리하는 유기적 공동사회라고 보고 있다. 이것은 프루동에 의해 제창된 어소시에시션또는 협동조합적 생산의 다른 표현이다. 어떤 의미에서 마르크스도 이와 같은 사고를 평생 유지했다. (51)

마르크스는 상품교환이라는 기초적인 교환양식에서 시작하여 복잡한 자본주의적 경제시스템의 총체를 해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적 하부구조이기는커녕 신용에 의해 존재하는 종교적 세계와 같다. 같은 것을 국가나 네이션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그것들은 겉으로는 이데올로기적 또는 관념론적으로 보이지만 자본제시스템과 마찬가지로 기초적인 교환양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즉 국가는 교환양식B, 네이션은 교환양식A에서 비롯되고 있다.

 

5. 인간과 자연의 교환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은 어떤 소재(material)를 변형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불필요한 폐기물과 폐열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물질대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와 같은 폐기물은 재처리되어야 한다.(52) 예를 들어, 땅속의 미생물이 폐기물을 처리하고 재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자연계의 에코시스템이다. 이 순환이 방해받으면, 폐기물 또는 엔트로피가 축적되어버린다.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는 지구 전체 물질대사의 일환으로서 존재한다. 인간의 생활은 이와 같은 자연의 순환에서 자원을 얻고, 폐기물을 자연의 순환 속에서 되돌림으로써 유지가 가능하다. 이것이 인간과 자연의 물질적 교환(대사)이다.

그런데 생산은 일반적으로 폐기물을 무시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창조성만이 평가된다. 그런데 그와 같은 헤겔의 사고를 관념론이라고 공격한 마르크스주의자도 실은 생산을 유물론적으로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생산을 긍정적으로만 파악해왔다. 그리고 나쁜 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또는 계급지배라고 말한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맑스주의자는 생산력이나 과학기술의 진보에 대해 나이브하게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그렇지 않았다. (53) 우선 마르크스는 농업경영이 소생산자들의 어소시에이션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54) 마르크스는 노동의 우위에 대해 역설한 고타강령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자연 또한 노동과 같은 정도로 사용가치의 원천이다. 그리고 그 노동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자연력 즉 인간적 노동력의 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노동을 최고로 삼는 것은 산업자본주의의 발상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마르크스는 생산자협동조합을 국가에 의해 육성하려고 한 라살레파의 프로그램을 부정한다. 마르크스가 생각하기에 국가를 통해 어소시에이션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어소시에이션의 발전을 통해 국가를 해소하는 것이 과제였다. 현실적으로 권력을 잡은 맑스주의자는 국가를 통해 생산자협동조합을 조직했다. (55)

물질대사의 순환이 방해받으면 최종적으로 지구환경은 엔트로피가 누적되어 열적죽음 상태에 이른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보는 것은 기만적이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교환관계 배후에 존재하는 인간과 인간의 교환관계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사에서 최초의 환경위기는 메소포타미아의 관개농업에서 생겨났고, 그것은 사막화로 귀결되었다. 똑같은 것이 인더스문명에서도, 황하문명에서도 생겨났다. 이것은 인간을 수탁하는 조직(국가)이 동시에 자연(토양)을 수탈하는 조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최초의 예이다. 요컨대 인간과 인간의 교환관계, 그리고 그것이 초래하는 자본=네이션=국가라는 문제를 보지 않는 한, 환경문제에 본질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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