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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권력 101973125/ 푸코 / 2016.03.01.() /닥홍

 

정신의학의 권력과 진실의 문제

 

정신의학은 치료의 실천을 진실 내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정신과 의사의 권력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의학적 지식은 규율장치가 광기 주위에 현실의 초권력을 조직할 때 이용하는 요소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몇몇 요소들 때문에 규율장치가 포괄적인 방식으로 기능했는데도 불구하고 진실의 문제가 제기 됩니다. 새로운 질서(병원과 의학의 정비)가 성립되기 전까지 진실의 문제는 세 요소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심문과 고백의 강요라는 실천 내지 의례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요법과 최면입니다. 세 번째는 마약의 사용입니다. 세 요소는 규율의 수준과 진술의 수준 양의적으로 작동합니다.

 

진실의 역사를 위한 요소들: 사건으로서의 진실과 그 형식들

 

질실 일반의 역사에 대해 말해 봅시다. 진실의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진실은 모든 것 안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자격을 독점하는 자는 없습니다. 애초부터 진실을 말하는 자격을 박탈당한 자도 없습니다. 누구나 진실에 가까이 갈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편적 권리로서의 진실의 구축 내지 인증을 위한 어떤 종류의 테크놀로지, 즉 논증의 테크놀로지와 연관된 진실을 지정하기 위한 철학적이며 과학적인 일정한 방식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진실의 테크놀로지는 사장되었습니다. 다른 입장에 의해 이것이 사장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입장이라는 것은 분산되고 불연속적이고 어느 일정한 장소에서만 산출되는 진실입니다. 특권적 중재자나 담당자(의사)를 기다리는 자리를 갖는 진실 말입니다.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중세 의학에는 병의 진실의 시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고비의 의학이 있었습니다. 특정 시기에만 병의 진실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카이로스를 포착해라! 그것은 자신의 진실과 이력을 갖는 하나의 사건으로 산출되는 진실입니다. 보편적으로 현전하고 있는 하늘같은 진실과 대비해 벼락으로서의 진실로 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서구의 진실의 역사의 두 계열입니다. 발견되는, 항상적인, 구성되는, 논증적인 진실 계열/존재하는 것의 차원이 아닌 발생하는 것의 차원에 속한 진실 계열. 의례를 통해 발생하고 책략과 기회를 통해 포착되기 때문에 전략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지배와 승리의 관계이며 인식의 관계가 아니라 권력의 관계입니다.

과학적 논증이 실제로는 하나의 의례에 불과하고 보편적이라고 상정된 인식 주체(과학자)가 실제로는 상당수의 양식에 따라 역사적으로 자격을 부여받은 개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히고 인식하는 개인에 대한 자격부여의 토대를 환원하고 사건으로서의 진실체계로 환원하는 것 이것이 제가 지식의 고고학이라고 부르는 것의 역할입니다.

인식의 계보학은 지식의 고고학에 불가결한 역사적 이면이며, 저는 몇몇 관계 자료로부터 출발해 매우 도식적으로 그런 계보학이 애초에 어떤 것일 수 있는 지를 보여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대략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지 보여드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제가 지금 정신의학과 관련해서 보여드리려는 것은 사건 유형의 진실이 어떻게 해서 19세기 동안 또 다른 진실의 테크놀로지에 의해 점차적으로 사장되어버렸는가 이고 광기와 관련해 사건으로서의 테크놀로지를 논증적 진실 내지 확증적 진실의 일정한 테크놀로지가 사장시켜버리기 위한 시도가 어떻게 이뤄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건으로서의 진실의 역사로서의 사법절차와 연금술

 

그런데 시련이나 사건으로서의 진실의 계열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할 겁니다. 벼락으로서의 진실은 오랫동안 존속되었고, 역사적으로 매우 큰 중요성을 가집니다.

첫 번째는 사법의 형태입니다. 한 개인이 유죄라는 것을 결정하기 위해 행해지는 절차, 신명재판은 결코 일어난 일을 실제로 발견하기 위한 방법이 아닙니다. 두 인물의 대결에서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을 정하기 위한 절차입니다(말 잘하는 변호사, 대형 로펌). 자백은 재판관과 용의자 내지 혐의자간의 신체적 싸움입니다. 혐의자가 자백한다는 것은 대결에 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이차적 의미작용은 혐의자가 신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입니다.

연금술에 또한 같은데 연금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으로서의 진실 내지 시련으로서의 진실의 테크놀로지에 상응했던 것입니다. 연금술적 탐구의 함의는 우선 한 개인에게 있어서 통과의례, 즉 개인에 대한 도덕적 자격부여 혹은 금욕주의적 자격부여입니다. 연금술적 지식은 과학적인 유형의 지식과 달리 축적의 규칙을 갖지 않습니다. 언제나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각자가 통과의례의 모든 주기를 다시 거쳐야 합니다. 연금술적 지식에서는 선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탈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술서는 누군가에게 우연히 들어가지만 그 실현은 또 다릅니다(무협지). 연금술은 과학에 편입되지 않습니다만 18세기 과학의 탄생을 가져왔던 지식의 내부에서 시련으로서의 진실 내지 사건으로서의 진실의 테크놀로지는 오랫동안 의학적 실천의 핵심에 있어왔습니다. 의사가 병과 설정한 관계 안에는 논증적 진실(과학)에 결코 속하지 않고 시련이라는 진실의 테크놀로지에 22세기 동안 속해온 고비라는 개념, 이 개념을 중심으로 조직된 의학적 실천의 총체가 있습니다.

 

사건의 진실로서의 고비의 의학

병에는 그 병의 특정 자연적 리듬이 있습니다. 몇 째날 열이 난다든지 등. 히포크라테스 의학은 고비가 일어나는 날짜를 징후학적으로 기술합니다. 고비는 병에 내재하는 특징입니다. 고비는 병에 내재하는 특징임과 동시에 포착해야 할 기회, 거기로 사건이 미끄러져 들어가야 할 의례적 리듬입니다. 고비는 병의 진실입니다. 의사는 거기에 개입합니다. 자연이 병을 제압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고 자연의 활력을 강화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입니다. 고비의 테크놀로지에서 의사는 치료적 개입을 행하는 자라기보단 고비의 관리인, 중재자로 나타납니다. 대결하는 것은 자연입니다. 의사는 고비를 예견하고 눈앞의 힘을 측정하고 힘의 작용 혹은 힘의 관계를 약간 수정하려고 시도해 그것을 통해 자연이 성공한다면 자신도 성공하게 됩니다. 고비를 심판합니다. 의학의 아버지인 갈레누스가 병을 앓는 젊은이를 보며 당신은 조만간 오른쪽 콧구멍에서 피가 흐를 것이라고 하였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자 다른 의사들은 그 자리에서 사라집니다. 병을 둘러싼 승부는 의사들 사이의 승부이기도 합니다.

의학은 연금술과 달리 자신과 인접하고 교차하며 뒤얽혀 있던 과학적 지식의 발달과 전혀 관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실천 내에서는 여전히 오랫동안 시련으로서의 진실, 사건으로서의 진실의 테크놀로지가 발견됩니다.

사건으로서의 진실의 테크닉이 논증으로서의 진실로 이행한 것은 조사의 정치적 절차의 확장과 연관이 있습니다. 조사, 보고, 여러 사람들의 증언, 정보의 대조, 권력의 중심에서 말단으로 향하고 다시 중심으로 오는 지식의 순환, 대조에 의한 검증 이 모든 것이 서서히 일대 역사를 통해 산업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도구를 구성해왔습니다. 조사의 기술들이 일상적으로 적용되던 요소들 자체 내부에서 세련화되고 조밀하게 격자화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행동양식, 생활방식, 사고방식, 성생활 방식 등과 관련된 경찰적 유형의 조사가 길밀화 됩니다. 그리고 이런 조사는 세계 전체로 확장됩니다. 개인의 몸짓, 신체, 사유에 까지 침투해 기생하게 되는 심층적 예속지배와 영토와 표면 수준에서 일어나는 예속지배의 이중적 예속지배가 일어납니다. 진실이란 어디에나 있지만 언제나 깊이 묻혀 있고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이런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사유의 형식과 기술을 획득해야 합니다. 철학자, 과학자, 지식인, 대학교수, 의사 등 몇몇 희귀한 지식 획득의 개인이 자격을 가집니다.

 

논증적 진실테크놀로지로의 이행과 그 요소들: 조사의 절차, 인식 주체의 제도화

 

한편 의학에서 고비가 사라진 것은 조사 중심의 공간과 격자화가 조직됐기 때문입니다. 인구집단에 대한 일반화된 감시가 확보되고, 원칙적으로 모든 개인에 대한 건강조사를 실시할 수 있게 된 것은 18세기 유럽에서 병원과 의학이 정비됐기 때문입니다. 병원은 살아있는 개인의 신체와 특히 그 시체를 병에 통합하는 것도 가능케 합니다. 병리해부학의 탄생과 동시에 통계학적 의학,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학의 출현을 통해, 즉 병을 시체에 투사함으로써 명확한 인과 관계가 지적됨과 동시에 인구 집단의 총체를 감시할 가능성이 획득됨으로써 19세기 의학의 두 거대한 인식론적 도구가 획득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고비의 기술은 불필요 합니다.

 

의학과 정신의학에서 고비의 배제와 그 토대 : 정신요양원의 규율적 공간, 병리해부학에의 의지, 광기와 범죄의 관계

 

정신의학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고비를 없애버립니다. 정신병원은 애초에 진실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공간이 됩니다. 세 가지 이유에서 고비가 배제 됩니다.

첫째, 병원 자체가 규율체계 이기 때문에 스스로 맹위를 떨치는 광기의 고비는 배제 됩니다. 두 번째, 병리해부학의 지속적 의존이 고비를 이론적으로 거절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범죄와의 관계 때문입니다. 아무런 존재 이유도 없고 자신의 이해관계 수준에서 결코 정당화 불가능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범죄라는 단 하나의 징후가 개인의 일생에 단 한번 나타나는 병이 아닐까? 모든 범죄자가 광인일 수 있다고 증명함으로써 모든 광인이 범죄자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정신의학의 권력 입장에서는 중요합니다. 모든 범죄에 광기를 결부시키는 것은 정신의학의 권력에 토대를 부여하기 위한 수단 이었습니다. 우리(정신의학)(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여기 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의사는 징후나 환자의 고통스런 목소리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나 특징화 작업을 통해 대응하는 것을 자신의 본질적 임무로 삼지만 정신과 의사는 병이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지점에서 필요하며 관건은 한 개인이 미쳤는지 아닌지 물음에 대답하는 역할을 합니다. 현실인가 비현실인가를 결정하는 지점입니다. 정신병원은 광기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광기에 현실화의 공간을 여는 것을 그 기능으로 합니다. 물론 이 지점에서 정신병원 제도에 대한 비판, 광인을 치유 해보겠다고 주장하며 광인을 만들어 낸다는 비난에 직면합니다. 사실 제가 보기에는 이 비판은 불충분한데 정신병원이 광기의 현실화 장소가 된 것은 제도상의 우발적인 제도가 아니라 정신의학 권력의 기능 그 자체입니다. 정신요양원 자체는 광기를 제거하는 것을 기능과 효과로 가지지 않습니다. 광기의 징후의 소거를 그 기능으로 합니다. 치매환자가 정신요양원 제도와 기능에 전형적인 사람입니다.

 

정신의학의 권력, 히스테리의 저항

 

반면 히스테리 환자에 대해 말해보자면 정신의학의 권력과 정신요양원의 규율이라는 이중의 작용에 대한 저항의 전선입니다. 기질적 병들이 그에게 제시하는 징후의 존재에 의해 그의 마음이 너무 강하게 현혹된 나머지 그것을 자신이 반복하며 자신의 신체를 조형적으로 구성합니다. 19세기 병원에서 치매환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히스테리 환자가 되는 것, 요컨대 징후를 소멸시키고 소거하던 압력에 대항해 징후의 한 형식을 구성하고, 그것을 가시적으로 조형적인 방식으로 건립하며, 광기를 현실로 지목하는 것에 대한 위장을 통해 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히스테리 환자는 훌륭한 징후를 갖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병의 현실을 교묘하게 피해간다는 것, 히스테리 환자는 정신요양원의 작동에 거역한다는 것, 이런 의미에서 히스테리 환자를 반정신의학의 진정한 투사로 칭하도록 합시다.

 

1600301 정신의학의권력 10강 발제 닥홍.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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