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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 4부         C.레비-스트로스                                                      2022.11.16. 바다사자

 

 

4부 대지와 인간

 

12. 도시와 농촌

상파울루에서는 일요일마다 인류학에 빠져들 수 있었다. 민족학적 호기심의 대상은 약 50km 떨어진 원시 촌락에 있었다. 누더기를 걸치고 사는 그곳 주민들은 금발머리의 푸른 눈으로서, 가까운 조상이 독일계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1820년경에 독일 이주민 집단은 덜 열대성인 지역에 자리잡으러 왔고 비참한 농민생활에 섞여 녹아들어갔던 것이다(243). 일본인들도 많았다. 이민회사에서 모집하여 이주와 도착 즉시 임시숙소의 보장을 약속했고 내륙지방의 농장에다가 그들을 배치시켰다. 농장들의 위치는 전략적인 저의가 있었고 이민들의 자급자족을 돕고 있는 곳은 들어가는 것이 힘들게 되어 있었다(244). 농경의 중심지에도 접근하기 어려웠다. 중심지에는 서민지대의 몇몇 시장이 흑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온갖 종류의 혼혈-메스티소, 카보클루(백인과 인디언), 카푸주(인디언과 흑인) 들을 분간해내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팔려고 내놓은 상품들은 보다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고 있었다(245). 특히 피가가 눈길을 끄는데 무화과하고 불리는 고대 지중해인들의 부적으로서 꽉 쥔 주먹이 달린 팔뚝 모양으로 생긴 것이며, 주먹 모습을 보면 엄지손가락이 가운데 두 손가락이 첫째 마디 틈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것이 성교의 상징적인 표시였음이 틀림없다. 은이나 흑단의 장신구나 꾸밈없는 조각이 되어 강한 빛깔로 요란하게 채색이 된 이정표만큼이나 큰 물건이기도 하였다(246).

상파울루 교외에서는 시골이 민속을 관찰하고 채집할 수가 있었다. 5월절 축제, 포르투갈의 전통이 충실히 지켜지는 모루(무어인 회교도)와 크리스탕(그리스도교도) 간의 기념 경연, 나병환자 보호구역으로의 순례 등이다. 매우 흥미로운 신앙과 미신들이 있다. 내륙지방에서는 지중해적 전통의 잔재보다는 잉태 중에 있는 한 사회가 조장하고 있는 형태가 훨씬 흥(247)미진진하다. 유럽 진화의 극히 초기적인 단계를 복구시키는 듯 보이는 것이 바로 현재였다. 농촌에서 공동의 도시 생활이 태어나려 함을 볼 수 있었다.

태동하고 있는 부락은 오늘날의 도시와 다르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개척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되어갔다. 그러나 개척된 도시의 성장에서 한 가지 증가의 붕괴가 또 다른 한 가지의 쇠퇴를 반세기는 앞질렀으며, 인구통계학상의(248) 하락이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또한 먼저 개발된 곳들의 메말라버린 땅들은 폐기되었다. 도시확장이 역진하는 곳은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뿐이었다. 1세기 전부터 브라질은 발전한 것보다는 오히려 변모를 더 많이 해왔다(249).

브라질 내륙은 연대책임에 의해 지속적인 삶을 지탱해 나가고 있었다. 중부 브라질은 방치된 상태로 있었다. 상파울루 주의 내륙 및 그 부근 지방에서는 이러한 변동이 소규모로 이루어졌다(250). 동쪽과 북쪽으로는 버림받은 몇몇 광산도시가 있었다(251).

변덕과 야망이 빚어냈던 도시는 쇠퇴하여 사라져가고 오막살이 몇 채만이 남게 된다. 때로는 도시가 번창하여 집합의식을 획득하고 한때 한 개인의 수단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자 한다. 새로이 이주해온 사람들은 토착명의 자료들을 찾아(253) 콜롬버스 이전의 명성을 찾고자 한다.

1935년에 활기차게 전통적인 면모를 보존하고 있는 두 종류의 도시들이 있었다. 포주(정착지) 갈림길에 있는 부락과 수풀의 입구라는 도로 끝에 자리잡고 있는 부락이다. 도로들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254). 노새와 소가 다니는 길에서는 소음이 심했는데 달구지의 차축이 마찰을 일으키면서 내는 소리였다. 도로는 짐승이나 달구지 또는 화물자동차가 함께 달렸다(255). 우기에는 도로들마저 질척질적한 진흙덩이 운하로 변하기 때문에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256).

장날이 되면 굉장히 활기가 넘친다. 외따로 떨어져 살던 농부들 수백 명이 당분간 그들의 오막살이를 떠나온 가족을 이끌고 며칠 간의 여행을 시작한다. 연례적인 행사로서 송아지, 노새, 퓨마의 가죽과 쌀, 옥수수, 커피 몇 부대를 내다 팔고 대신 무명 한 필, 소금, 석유, 총알 얼마를 바꿔 오려고 나서는 길이었다. 시장이 서는 곳은 작은 관목과 가시덤불이 뒤덮인 채 펼쳐져 있는 고원이었다(257). 장날에 대비해서 장을 세우는 이들은 사탕수수 또는 잡초로 이은 끄나풀이나 나뭇가지로 단을 묶은 어린 종려나무 잎으로 만든 건초들을 비축해두도록 한다. 고객들은 장이 서는 동안에 건초 더미 틈에서 야영을 한다. 지붕이 피난처 역할을 해주었으며 한데 앉은 채로 쌀과 검은 콩, 말린 고기를 요리했고 벌거숭이 어린아이들은 소(258)들의 다리 틈으로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259).

 

13. 개척지대

이런 유의 풍경은 일단 해안을 떠나서 북쪽이나 서쪽으로 나가면 브라질 내륙에서 끝없이 되풀이된다. 드문드문 있는 마을 사이는 탁 트인 곳인 캄푸 림푸, 깨끗한사바나(대초원)와 캄푸 수주, ‘더러운사바나가 있었다. 처음으로 탐험 나갔던 노르테 파라나(북부 파라나)지역은 아직도 미개한 상태로 남아 있는 토착민 사회의 잔재가 남아 있고 가장 현대화한 형태의 내륙 식민지 건설을 볼 수 있다(260).

내가 브라질에 도착했을 때 이곳은 거대한 침엽수림이 빽빽하게 들어찬 곳으로 막 개방되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영국계 회사는 150만 헥타르의 조차권을 얻어 이민들에게 다시 팔 계획을 세웠고 철도를 건설했다. 1936년에는 250km를 깔았고 15km 정도마다 역을 하나씩 세웠고 그 주위 1를 개간하여 도시가 들어서게 하였다(261). 기다랗게 몫을 지어놓은 땅들은 한 면은 도로에 닿아 있고 다른 면은 골짜기의 시냇물에 이어 있었다. 개간은 그 밑에서부터 경사지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골짜기 아래쪽에서는 수확물들이 쏟아진다. 겨울비는 사라져버린 숲을 오랫동안 비옥하게 해주었으나 부식토를 산비탈을 따라 씻겨 내려가면 황폐한 황무지가 예견된다. 그러나 지금은 정착자 가족들은(262) 풍요를 누리고 있다. 열대와 온대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지역이기 때문에 고향 식물과 아메리카의 특산물이 함께 자라 밀과 사탕수수, 아마와 커피 식으로 함께 붙여 심었다.

새 도시들은 완전히 북유럽식이었다. 집들은 중부와 동부 유럽을 연상시켰다. 수레들이 이베리아식 달구지를 대신했다(263). 중심지나 변두리 간의 대립, 평행과 수직 간의 대립의 결합에 의해 네 가지 상이한 도시 생활양식이 결정지어지며, 이 요인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특혜를 주고, 다른 이들에게는 실망을 주어가며 성공과 실패를 낳게 함으로써 미래의 주민들을 형성시키게 된다. 주민들도 두 유형이 생겨나게 된다. 동료를 필요로 하여 도시화가 깊이 진전됨에 따라 더욱 이끌려갈 유형이며 다른 하나는 자유를 갈구하는 은둔자 유형이다(264). 도시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발전해가고 부와 빈곤이라는 양극으로의 집중현상을 일으킨다.

도시는 자연과 인공의 합류점에 위치한다. 자연의 대상인 동시에 문화적 주제이니 개인임과 동시에 단체, 체험된 것임과 동시에 꿈꾸어지는 것이며, 인간의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다. 브라질 남부의 종합적인 도시들 주택의 배열, 도로의 전문화, 각 구역에서 싹트고 있는 양식에서 드러나고 있다(261). 파라나주의 수도인 쿠리티바는 정부가 그곳을 도시로 만들기로 결정한 바로 그날에 지도상에 나타나게 된 곳이다.

남쪽 해안에서 아마존강까지 직선거리의 가량에 걸쳐 고원이 펼쳐져 있다. 고이아스의 작은 수도인 그곳은 연안과 1km 떨어진 곳에 버려져 있어서 연안과 두절된 상태로 지내고 있다. 이 도시는 종려나무 푸른 경치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268). 황폐화된 도시와 열대 자연이 병존해 있는 곳은 모든 것이 너무도 작고 너무도 낡아 있었다. 이곳을 개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동쪽으로 100km 떨어진 곳, 어떤 철도나 제대로 된 도로가 없는 100의 지역이 미래의 수도가 되었다. 도시는 계획되어 건설되었다(269).

리우데그란데두술 대학의 설립과 프랑스 교수에 대한 우대의 이유는 프랑스 문학과 프랑스적 자유에 대한 기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미래 독재자가 젊은 시절 파리에서 한 바람둥이 아가씨를 통해 익힌 취미에 기인한다. 나는 1937년 고이아니아를 방문했을 때 100여 채의 새집들이 벌판에 흩어져 있었다(263). 우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축 붐이 고이아스와는 반대였고 어떤 역사도 시간의 흐름도 습관도 공허함을 채우지 못했고 부드럽게 만들 수 없었다. 마치 정거장이나 병원처럼 스쳐 지나갈 곳,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곳으로 느껴졌다(271).

 

14. 마법 융단

카라치는 1947년 수도로 승격되었다. 대로변에는(272) 난민들이 떼지어 잠을 잤고 불쌍하게 살아갔다. 다른 한편에서는 백만장자들이 궁전과 같은 호텔들을 짓고 있었다(273).

노무자 주거지역과 저소득층 집단주택으로 특징지어지는 아시아가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었다. 어떠한 형태의 이국정서도 벗어 던져버리고 5천 년의 공백기를 지낸 끝에 다시 음울하지만, 효율적인 생활양식을 복원하려 하고 있는 내일의 아시아이다. 이 생활양식이 그 후 지표를 이동하여 근대에 와서 신세계에서 잠시 지체하게 되자, 사람들은 그것을 아메리카 고유의 문화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 후 이 문화는 1850(277)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여 일본에 도달하고 세계 일주를 마친 후에 지금은 그 기원지로 되돌아온 것이다.

모헨조다로와 하라파는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현대 대도시의 장점과 결점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미국이 유럽에 대해서까지 그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서양문명의 한층 더 진보된 형태를 예시해주고도 있다. 인더스강의 도시로 시작한 도시문명, 산업문명, 부르주아문명이, 유럽이라는 번데기 안에서의 오랜 퇴화 과정을 거친 끝에 대서양의 대안에 가서 성숙하게끔 운명지워진 문명과 그 기본 정신에서 그다지 차이가 없다고들 생각한다. 제일 오래된 구세계는 나이 어렸을 때 이미 신세계의 밑그림 얼굴을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표면적이 대조나 외면상의 특이성을 경계한다(278).

지중해를 건너 비행기가 이집트에 들어서면 녹색이 들어오고 베이지색 모래, 보랏빛 충적토가 어우러져 있다. 마을들은 복잡한 무질서를 보여주고 있다. 이집트를 지나고 아라비아 상공의 비행은 사막이라는 단 한 가지 테마의 갖가지 변주를 제공한다. 큰 바위, 와디(279)가 있고 해가 질 무렵이면 모래는 서서히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사막은 제 스스로와의 관계에서도 쓸쓸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카라치에 착륙하자 타르 사막에 해가 떠오른다. 넓고 긴 황야마다 여러 밭들이 작은 그룹들을 이루면서 여기저기 나타난다. 밭의 구획은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형태나 색채는 무질서하지 않다(280). 촌락, , 수풀의 삼위일체 주체의 되풀이는 극도로 희귀하고 조화롭고 자의적인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다. 델리에 기착하면 사원들을 저공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다음 대홍수의 장면이 들어온다. 강물은 진하고 진흙투성이인데다 흐름이 정체되어서 무슨 기름같이 보였다. 바위 구릉과 숲이 있는 비하를 상공을 지나면 델타 지대에 접어든다. 토지는 한치도 남기지 않고 경작되어 있고 논은 빈틈없이 둘러쳐진 울타리 안에서 물 때문에 새파랗게 반짝이는 금록색의 보배처럼 보인다. 캘커타로 다가가면 부락의 수가 점점 늘어난다. 캘커타를 지나 브라마푸트라 강의 델타를 가로지르면 강이 굴곡이 하도 심해서 한 마리의 짐승같이 보입니다. 주변은 들판이 물로 덮여 있다(281)

인간 없는 사막의 세계도 아니고 토지 없이 헤매는 인간의 세계도 아닌, 두 가지의 중간적 위치에 처해 있는, 그러면서도 엄연히 인간의 땅인 인도는 정말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인도의 토지구획 방식은 작은 단위로 무수히 분할돼 있고 구석구석이 경작돼 있으며 논과 밭이 끊임없이 새로이 그어지는 불규칙적인 윤곽선이며 다시 고친 듯이 보이는 희미한 논두렁 등이 융단 그림일 것이지만 명쾌하지 않고 융단의 이면을 비추어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는 유럽과 아시아 각각의 위치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최소한 물질적인 측면에서(282) 한쪽은 항상 이득을 보고 다른 쪽은 항상 손해를 보아왔다. 한쪽의 경우, 규칙적인 인구의 증가가 농업과 공업의 발전을 가능케 함으로써 자원이 소비자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대하였다. 같은 혁명이 다른 쪽에 대해서는 18세기 이래로 정체한 채 머물렀던 부의 총체에 대한 개인의 몫을 착실히 저하시켜왔다. 빈곤한 열대지방이지만 인구가 적은 아마존 지대의 아메리카는 역시 열대로서 가난하고 인구과잉인 남아시아와 대조를 이루고 있고 온대 국가들의 범주에서, 막대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교적 인구가 제한돼 있는 북아메리카가 자원은 비교적 제한돼 있지만, 인구가 많은 유럽과 짝을 이루고 있는 것과 비교할 만하다. 하지만 언제나 남아시아는 희생당하는 대륙이다(283).

 

15. 군중

인도의 대도시들은 일종의 빈민굴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모든 것들이 인도에서는 한없이 널려 있다. 도리어 도시가 번영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연환경이 되고 있다. 도로는 각 개인에게 (284)기 집구실을 한다. 거기서 앉기도 하고 자기도 하고, 심지어 쓰레기 속에서 먹을 것을 줍기도 한다. 제 마음대로 배설하고 더럽히고 짓밟고 주무르는 바람에 자기 집의 일부로 느껴지는 곳이다(285). 허기가 그들로 하여금 그런 절망적 행동을 하게끔 만든다. 수많은 사람들을 시골에서 몰아내어 캘커타의 인구를 불과 수년 만에 200만에서 500만으로 끌어올린 것이고 이향자들을 철도역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세운다.

열대 아메리카에 사는 유럽인도 많은 문제에 봉착한다. 인간과 자연환경 사이에서 새롭고 이상한 여러 가지 관계를 관찰하게 된다. 인간의 생활형태마저도 고찰의 주제를 제공한다(286). 남아시아에서는 인간에 대해서 요구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하회하거나 상회한다. 어디를 가나 걸인 천지는 심각한 문젯거리다(287). ‘적선행위는 필연적이지 않다. 그들은 평등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살 권리따위는 요구하지 않는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강자들에 대한 경의의 표시에 의해서만 겨우 얻을 수 있는 분에 넘치는 은혜이다(288). 그들은 자기들을 평등하게 만들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들의 잔꾀들은 참을 수 없다. 모든 짓은 결국 애원의 여러 가지 형태이다. 인간관계의 악화는 유럽인의 정신으로서는 우선 이해할 수 없다. 계급 간의 대립을 투쟁이나 긴장이라는 형태로 이해하려 든다. 하지만 여기서 긴장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단절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고 좋은 시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289). 그들이 존경을 통해서 우리를 타락시키기 때문에 그들을 내쫓아야 한다. 자기들의 운명의 어떤 조그마한 개선도 당신의 운명이 백 배로 개선될 때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당신이 더욱 영광스럽고 더욱 강력해지기를 바람으로써 우리를 타락시킨다.

이런 사실들은 아시아의 것이라는 잔인성의 원천을 밝혀준다. 지나친 사치와 지나친 비참 사이의 간격이 인간다움의 차원을 파괴하고 있다. 남아 있는 유일한 사회는 모든 것을 요구하면서도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290).

어떤 면에서 비극적 인간들은 우리에게 어린애같이 보인다. 복장과 장소에 대한 놀라운 무관심도 그렇다. ‘어떤 조건이라도 오케이라는 공통된 생각도 그렇다(291). 예속 상태의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독립과는 전혀 다른 무엇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294). 인도에서 인간 생활을 성립시키는 데는 놀라우리만큼 아주 조금만으로 충분하다. 살아가는 데는 아주 조금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영혼만은 부족함이 없다. 부산한 거리에서도, 생생한 눈빛에서도, 토론의 격렬함에서도 느낄 수 있다(297).

이들이 우주 속에 자리잡을 때의 그 마음의 편함을 달리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기도용 융단이 세계를 표상하는 문명이요, 땅바닥에 그어진 네모가 예배 장소를 설정하는 문명이다. 삶의 고달픔을 견뎌낼 수 있기 위해서는 초자연과의 매우 강인하고도 매우 개인적인 유대가 필요할 것이다. 이 지역의 이슬람교나 그 외 종교의 비밀의 하나도 아마도 각자가 자기 신의 앞에 있다는 것을 항상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 속에 있을 것이다(298).

 

16. 장터

아메리카에서는 자연이나 도시의 경관이 각각의 형식··독자적 구조를 통해서 정의되는 그곳에 있는 인간과는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객체가 관찰대상이었다. 인도에서는 이것들은 역사에 의해 멸망당하고 소실되어 물체와 인간의 먼지로 환원되어서 하나의 유일한 실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곳에서는 인간밖에 보이지 않는다(299). 하나의 사회학적 질서가 무너지고 인간의 다양한 상호관계가 들어서고 만 것이다. 인간의 격증이 관찰자와 지금 해체되어가고 있는 객체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해체작용이 그 구조를 파괴해버렸다. 그 결과 인간은 역사가 생성한 허공 속에 버려져서 공포, 고통, 굶주림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동기에 의해서 좌충우돌 내몰리고 있다.

열대 아메리카에서는 인간은 희소하기 때문에 잘 은폐돼 있다. 좀 더 밀집해 있는 곳에서도 초기 단계의 생활양식에 갇혀 살고 있다. 도시는 몇몇 특정 지역에서만 개발이 시작된터라 살아가는 데 많은 것이 요구되지 않는 곳이다. 인도에서는 생활의 기반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다. 삼림은 소멸했다. 토지는 빗물에 씻겨 바다로 흘러가 유실된다(300).

두 지역의 장터나 저자를 비교해보는 것만큼 텅 빈 열대와 초만원의 열대 간의 대조를 잘 설명해주는 것은 없다. 브라질에서의 이 큰 행사는 아직도 개인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생산방식을 잘 보여준다. 하나하나가 소박한 예술작품인 이들 소형 진열대는 다양한 기호와 기교를 보여주는 동시에 독특한 조화도 보여주는데 자유가 이들 모두에 의해 잘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301).

인도 시골에서도 시장 풍경은 감동적일 때가 있다. ‘해트라는 시골 장은 수많은 거룻배와 샘팬들이 진흙탕 속에 진을 친 많은 사람들로 우글대는 일일 도시가 형성돼 있었다. 하나하나가 특정 상거래에 쓰일 수 있게 구획지어진 시장이었다. 야릇한 감미로움에 싸여 있으나(304) 어딘지 불안감을 감추고 있다. 해마다 겪는 홍수가 비정상적인 생존조건을 만들어낸다. 물이 불어나는 계절은 굶주림의 계절이다. 미개하면서도 백화점 못지 않은 복잡한 구조의 시장을 조직할 줄 아는 이곳 주민들의 비극은 베틀로 베를 짜면서 개설하기 위해서 전래의 가업을 행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굶주림과 죽음으로 몰렸다. 오늘날 경작이 가능한 토지는 구석구석이 황마 재배에 활용되고 있다. 이 황마는 캘커타의 공장이나 유럽, 아메리카로 직송되고 있다(305). 문맹인데다 반라로 살아가는 이들 농민들은 그 생계가 세계 시장의 경지변동에 좌우되게끔 돼버렸다. 식량원인 쌀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306).

벵골에서는 중세의 주민이 세계 시장의 먹이가 된 셈이다. 여기 주민은 출발점부터 도달점까지 소외의 체제 하에서 살아왔다. 원료는 외국산이고 제품은 벵골 어디를 가든지 외국의 규격에(307) 의거해서그 형식이 결정된다. 역사와 경제의 진화가 가장 비극적인 과정들, 즉 중세의 빈곤과 전염병들, 산업 시대 초기의 광폭한 착취, 현대 자본주의가 몰고 온 실업과 투기 따위가 이들을 짓누르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열대 아메리카가 누리고 있는 특권은 인구가 아주 없거나 상대적으로 적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라는 것은 법률이 만들어낸 발명품도, 철학이 낳은 보배도 아니며 다만 다른 문명보다 더 우수한 문명만이 가질 수 있는 귀중한 재산일 뿐이다. 우수한 문명만이 자유를 낳을 수 있고 또 그것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308).

정치 조직이 사회의 생존 형태를 결정하기는커녕 생존 형태가 그 자체의 표현인 이데올로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현재의 서양과 동양 간의 오해는 의미론적인 것에서 비롯된다. 서양인이 선전하는 개념의 형식은 그곳에서는 의미가 존재하지 않거나 다른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기는커녕 도리어 강제 노동이나 식량 배급이나 주입된 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해방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일을 얻고, 식량을 획득하고 정신적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역사의 진화 과정이 주는 당연한 수단으로 여길 것이다.

아시아와 열대 아메리카의 비교는(309)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제한된 구간에서의 인구의 증가 문제이다. 인도는 약 3천 년 전에 카스트 제도로 양을 질로 변환시키는, 즉 인간집단 간을 차별지어 서로 병행해서 살아가도록 분화시키는 방법을 찾았다. 이것을 모든 형태의 생명에까지 적용할 생각을 했다. 사회집단과 동물의 종이 서로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고 서로 적대적인 자유의 행사를 포기함으로써 각 집단 고유의 자유를 지켜나가기 위한 배려에서 나왔다. 카스트가 다르기 때문에 카스트 상호 간이 서로 평등해지는 상태에 한 번도 도달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 카스트 내에 동질성이라는 비교를 가능케 함으로써 계급화를 가능케 만드는 독적 요소를 잠입시켰기 때문이기도 한다. 인간은 또 상대방이 동등한 인간적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거부해가면서도 또 그렇게 함으로써 종속관계를 만들어가면서도 공존해갈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대 실책은 하나의 교훈을 준다. 사회는 인구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예속을 분비해가면서가 아니면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310). 인간이라는 종의 일부에 대해서 인간의 자격을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것이다.

유럽이 20년 전부터 일련의 사건은 한 민족, 한 정책, 한 집단만의 착오의 결과가 아니다. 확정된 미래의 세계로 가는 진화의 징조로 보인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조직적인 가치 박탈은 만연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아시아가 미리 보여주는 우리의 미래상이다.

인디오의 아메리카는 나에게 자유의 행사와 자유의 표상 사이에 적절한 관계가 존재하던 시대의 소중한 영상이다(311).

 

슬픈열대4부(레지-스트로스 22.11.16).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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