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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학 이론은 정치권력에 관해 대립되면서도 상보적인 두 가지 관점 사이를 유동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원시사회가 어떤 정치조직도 지니지 못했다고 보고, 아나키적 역사 단계에 머물렀다고 판단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거꾸로 소수의 원시사회들이 진정 인간 집단에게만 유일한 존재 양태인 정치제도를 만들어냈다고 본다. 즉 원시사회들은 제도의 결핍과 아나키 상태 아니면 제도의 과잉과 전제라는 양자택일의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36)

<아나키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배자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민족학 이론은 원시사회를 아나키즘 아니면 제도의 과잉과 전제라는 양자택일의 상황으로 바라본다. 민족학 이론 자체가 원시사회와 반대편에서 시작되어서일까? 많은 사회가 자신의 사회를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들은 민주적 감각과 평등성을 선호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37) 아메리카 추장제의 독특한 방식은 역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지 못한 권력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즉 이러한 “실체”없는 제도를 존속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1948년의 논문에서 로위는 앞에서 언급한 형태의 추장을 명목상의 추장이라 명명하고 그 본질적인 특징 세 가지를 정리하고 있다. 1) 추장은 “평화의 중재자”이다.  2) 추장은 자기의 재화에 대해 집착해서는 안 된다.  3) 말을 잘하는 자만이 추장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 (38-39)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는 민주적 감각과 평등성을 선호한다. 추장제는 권력없는 권력이고 추장은 명목상의 추장이다.

 

이처럼 민족지는 추장제의 세 가지 기본적인 특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남아메리카에서는 로위가 정리한 세 가지 특징에 덧붙여 보조적인 또 하나의 특징이 발견된다. 인디언들의 일부다처제는 매우 제한된 사람, 즉 거의 추장들에게만 엄격하게 허용된다. (42-45) 단 이러한 전혀 평등하지 않은 일부다처제는 여전히 집단의 실절적인 추장에 대한 특혜였다는 것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48)

추장의 행위는 다른 세 가지 기준과 동일한 위상의 현상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이 세 기준을 사회의 본질과 구조적으로 연결된 통일체로서 존속하게 한다. 실제로 지도자로서의 인간에게 부여된 말솜씨, 관대함, 일부다처라는 세 가지 특성은 교환과 순환을 통해 사회를 사회로서 구성하고 자연에서 문화로의 이행을 결정짓는 동일한 요소들과 관계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는 무엇보다도 재화, 여성, 말이라는 세 가지의 기본적 차원에 의해 규정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그 구조적 함의를 파악하기 위해서 이러한 관련성을 해명하고 자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50)

 

확실히 권력은 사회를 만들고 통제하는 교환의 법칙을 충실하게 따른다. 그렇지만 호혜성의 원리가 권력과 사회 간의 관계를 결정한다는 인상에 바탕을 둔 그러한 설명은 불충분하다는 것이 곧 드러난다. (50) 권력과 집단 사이의 관계를 교환이라는 틀에서 분석하려는 시도는 한층 더 이 관계의 패러독스에 대해 예리하게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해준다. 여성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그들의 순환이 “일방통행”으로, 즉 집단으로부터 추장에게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은 명백하다. (52) 교환의 경제적 차원에 관심을 돌려보면 재화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언어기호의 위상은 한층 명백하다. 이들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추장의 특권이자 그 이상으로 의무이다. (53-54)

아메리카 인디언의 사회에서는 권력이 호혜성의 원리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 여성, 재화, 언어기호 모두 마찬가지다. 단지 일방통행이다.

 

우리는 집단의 여성이 추장의 재화 및 메시지와 교환된다는 견해를 거부하고 자신의 고유한 회로를 따라 움직이는 각각의 “기호”의 움직임을 검토함으로써 이들 세 가지 움직임에는 세 종류의 “기호들”을 동일한 결과로 이끄는 공통적인 부정적 차원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즉 이 세 가지의 기호들은 교환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며 그들의 순환은 호혜성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고, 각각은 소통의 영역 바깥에 존재한다. 이 관계는 집단 수준에서 이 요소들의 교환가치를 부인함으로써 정치적 영역이 집단의 구조 바깥에 위치하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그 구조를 부정하도록 만든다. 권력은 집단에 반하는 것이고, 사회의 존재론적 차원으로서의 호혜성의 거부는 곧 사회 그 자체에 대한 거부이다. 사회의 외부로 정치적 기능을 추방하는 것은 그것을 무력한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수단이다. (55)

여성, 재화, 메시지 이 세 종류의 기호들은 공통적인 부정적 차원이 내재하고 있다. 각 기호들의 교환가치를 부인한다. 사회의 외부로 정치적 기능을 추방할 수 있게 되었다. 

 

인디언 문화의 “결정”을 설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거부의 바로 그 철저함, 그것의 지속성과 확장성 속에 아마도 그 거부를 위치시켜야 할 전망이 암시되어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러한 권력에 대한 거부에 자신의 전부를 거는 것은 자연에 대한 주요한 차이로서의 문화 그 자체이다. (57)

(인디언 사회는) 오히려 정치권력의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데 놀랍도록 능숙했던 것이다. 그들은 권력의 초월성이 집단에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외재적이고 스스로 정당성을 창출하는 권위라는 원리가 문화 자체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것이다.(58)

인디언 문화는 권력에 대한 거부를 “결정”했다. 인디언 문화를 아나키적 상태라고 볼 수 있을까? 인디언의 추장제를 살펴보면서 인디언 사회는 정치 권력의 정당성을 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라고 느껴졌다.

 

그렇다면 교환 요소들의 탈기호화, 즉 탈의미작용과 가치화라는 이중의 과정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인디언 문화는 자신들을 현혹시키는 권력을 거부하기 위해 고뇌하는 문화이다. 그리고 역설적인 성격을 띤 권력이 그 무력함으로 인해 숭배된다는 것은 문화의 스스로에 대한 고뇌와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꿈을 표현하는 것이다. 신화의 이마고이자 부족에 대한 은유, 이것이 인디언 추장이다.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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