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월 만 얼마를 지불하면 개봉관에서 상영된 지 석달쯤 지난 영화를 무한정 볼 수 있다. 이 고마운 영화 상품 덕분에 작년 2월 퇴임 후 수백편의 영화를 보았다. 같은 영화를 두 번 본 경우도 많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한참 보다보면 이미 본 영화였던 것이다. 어제는 '인 디 에어'라는 영화를 보았다. 1년 322일 여행하며 고용주를 대신해서 직원을 해고하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남자가 주인공이다. 이 영화도 작년에 보고 어제 또 본 것이다.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망각이 진행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 한 장면이다. 급작한 해고 통보를 받은 한 남자가 이렇게 격분하며 항변한다. "내 나이가 57살인데 어디 가서 다시 직장을 구한단 말이요?" 붉고 늙스레한 얼굴에 머리가 하얗게 센 그는 나에게 아버지뻘쯤 되는 사람으로 보였다. 잠시후 내 머리 속으로 64라는 숫자가 스쳐 지나갔다. 내 나이다. 그는 나보다 7살이나 연하였던 것이다. 나는 좀 놀랐다. 나는 잠깐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십 년 뒤의 내 나이를 말이다.
이런 별로 즐겁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조금 미안해서다. 봄이 오니 너무 좋다. 연두빛 봄 말이다. 불과 몇 주전만 해도 이 세상에 없던 빛깔이다. 오늘만 봄빛이 아니고 내일도 모레도 봄이 난무할 것이다. 올해만 봄이 아니고 내년에도 내내년에도 봄이 올 것이다. 그리고 십 년 뒤의 그 다음해도 봄이 올 것이고 그 다음날도 봄일 터이다. 지금은 눈부신 사월이고 아직 계절의 여왕인 오월은 오지도 않았다.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가 지나도 사월은 남아 있다. 봄이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 십 년 뒤의 봄은 어떤 모습일까?
연두와 분홍과 연애한다고 너무 욕하지 마시라.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십 년 뒤의 내 나이를 감안해주시라. 지금 행복해야할 나이라고 부디 이해해주시라. 어제와 오늘 봄 산책길에서 만난 풍경들이다.
'자유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까이 존재하는 것들 (1) | 2017.05.11 |
---|---|
타자의 자유로부터 온 상처 (0) | 2017.04.20 |
금산사 왕벚꽃나무의 품격 (1) | 2017.04.14 |
시와 사진/개불알풀 (1) | 2017.04.14 |
내 직업은 산책가/낭만쌤 (1) | 2017.04.14 |
- Total
- Today
- Yesterday
- 무엇을할것인가
- 옥중수고
- 레비스트로스
- 스피노자
- 알튀세르
- 헤게모니
- 의식과사회
- 야생의사고
- 이탈리아공산당
- 개인심리
- 계급투쟁
- 브루스커밍스
- 마키아벨리
- 안토니오그람시
- 딘애치슨
- 그람시
- 한국전쟁의기원
- 검은 소
- 프롤레타리아 독재
- 공화국
- 로마사논고
- 신학정치론
- 루이 알튀세르
- 생산양식
- 집단심리
- 이데올로기
- 생산관계
- 옥중수고이전
- 루이알튀세르
- virtù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