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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과 권력 엘리아스 카네티 / 화니짱 / 21.09.29

군중과 권력 에필로그(21.09.29).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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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15 : 우리는 네 유형의 상이한 무리 가운데서 어느 것이 우리의 시대를 지배하는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위대한 애도 종교의 권력은 쇠퇴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는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증식에 의해 질식당했다. (616) 현재 하나의 신앙이 있다면 그것은 생산에 대한 신앙, 즉 증식에 대한 근대의 열광이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국민은 잇달아 그것에 굴복하고 있다.

기업은 모든 영혼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세계종교들과 비슷하다. 기업은 자발적이고도 지불 능력이 있는 구매자의 평등을 기대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잠재적 고객이 구매하도록 유도된 후에도, 생산은 여전히 증가하려는 추세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산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인간이다. (617) 오늘날 여러 국가에서는 국민보다는 생산성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한다. 그 어떤 것도 생산성 이상으로 정당화되지 않으며 그 이상 확실하게 일반적인 승인을 받을 수도 없다. 금세기에조차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재화가 생산되려 하고 있다. 전쟁은 서로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는 이중 군중으로 대치될 수 있다. 우리는 이중 군중의 활동으로부터 죽음을 모면할 수 있으며, 여러 국가 사이에서 평화적이고도 정규적인 권력의 유사한 순환이 확립될 수 있다는 것을 각국의 의회에서 익히 보아왔다.

 

p618 : 파괴와 생산이라는 맹목적인 양극 현상 속에서 애도의 종교는 거의 무기력함으로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유산은 생각보다 크다. 거의 2,000년 동안이나 기독교인들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온 사람(예수)의 이미지는 모든 인류의 의식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죽어야만 하는 인간인 동시에 죽어서는 안 되는 인간이다. 세계의 세속화가 확대됨에 따라 그의 신성은 중요한 의미를 점점 상실해 갔으나 그는 고통을 받다가 죽어간 개인으로서 계속 남아 있다.

개개 인간은 자기가 가치 있는 애도의 대상이라고 느끼며 자기는 죽으(619)면 안 된다는 완강한 확신을 갖는다. 이 때문에 기독교의 유산은 소진될 수 없을 정도이며, 불교의 유산도 그렇다.

살아남는 자는 인류의 가장 나쁜 악이고 재난이며 아마도 인류의 숙명인 것 같다. 지금 이 최후의 순간에나마 우리가 그를 피하는 일이 가능할까? (오징어 게임)

 

p622 : 명령 체계는 어디에서나 인정되어 있다. 그것은 아마도 군대에서 가장 명료할 것이다. 명령이 이르지 않는 문명 생활의 영역은 거의 없으며 우리 중에 명령의 주목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령에 따라 오는 죽음의 위협은 권력의 화폐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화폐에 화폐를 더해 거부를 축적하기는 너무나 쉽다. 만약 우리가 권력을 지배하려면 우리는 공공연하고 대담하게 명령을 직시해야 하며 명령으로부터 가시를 제거하는 수단을 찾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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