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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근친애 금기의 난제

근친애 문제는 기억, 사건, 욕망과 관련 있다. 근친애는 기억에 선행하는 사건인가, 사후에 사건으로 상정된 기억인가? 아니면 기억의 형식을 취하는 소망인가? (245) 어떤 사람들은 근친애가 치료 과정에서 유도된 기억이라고 주장하거나, 거짓 기억으로 변환된 소망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또 이와 달리, 외상으로서 근친애는 기억되거나 이야기될 만한 사건의 형태를 취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근친애적 외상은 어린아이의 몸에 대한 야만적 강제 행위, 아이의 욕망을 이용한 선정적 자극, 아이의 경험이나 문제가 되는 유년기를 겪은 성인의 기억에서 근본적으로 재현이 불가능한 것 등으로 다양하게 형상화된다. (246)

이 지점에서 논쟁은 분분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근친애 행위의 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통의 심리적 기록을 없애려 하지 말고, 또 경험적 증거나 이야기할 만한 내력이 없다고 해서 이런 외상이 순전히 환상 층위에 있는 다른 신호라고 읽어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생략, 간극, 부재를 읽어내는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 (247)

사건과 소망은 때로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부모-자식 간 근친애를 반드시 자식이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침해라고 간주할 필요는 없다. (폭행이 아닌 근친애 사례가 있다고 할 때) 아이의 몸은 외부로부터 강제 행위가 가해지는 표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아이의 몸을 수동적 표면으로 물화하게 되면, 그것은 이론적 층위에서 더 심한 정신적 박탈을 야기할 수도 있다. 외상적 근친애 관계에서 아이의 사랑과 욕망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숙고하지 않는다면, 그 외상의 심층과 심리적 결과를 설명할 수 없다. (248)

근친애적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나 재현은 ‘사건 아닌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것은 지칭되지만 말할 수 없는 것, 말해진 것 안에서는 말할 수 없는 것으로 읽혀야 한다. 이런 ‘미발생’이 진실의 문제에 어떤 일을 했는지 묻는 게 중요하다. (249~250)

근친애가 ‘위반’이 아닌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반드시 외상적이지는 않은 근친애 형식, 또는 사회적 수치심을 바탕으로 외상적 성격을 띠는 근친애 형식이 있을 것이다. (250) 그럼에도 구조주의 정식분석학은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상징적 위치가 근친애 금지를 통해서 안정되게 보장되며, 이것이 영원하고 필연적인 것인 양 다룬다. 이는 친족이 우연적인 사회적 실천이라는 사실, 부모와 가족 구조가 사회적으로 다양할 가능성을 놓친다. (251)

근친애 금기를 상징적 가족 구조의 근원으로 보는 관점은 근친애 금기를 보편적인 것이라 주장한다. 그 결과, 부모 역할을 하는 게이와 레즈비언 형태, 싱글맘 가족,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한 명 이상인 복합 가족의 배치가 탈실재화한다. (252) 여기서 게이 양육이나 바이섹슈얼리티가 완전히 인식 가능한 문화 형태로 인정받을 방법은 없으며, 그에 따라 그런 자리가 일탈이 되는 것을 피할 방법이 없다. (253)

자신의 사랑을 공언할 수 없다는 것은 우울증을 낳는다. (254) 정신분석학이 그 이론과 실천에서 이성애적 친족 규범을 이론화의 기반으로 삼는다면, 또 이런 규범이 문화적 인식 가능성을 이룬다고 본다면, 정신분석학은 우울증을 생산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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