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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A.그람시,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정치편_정당.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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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의 옥중수고1 정치편 2021.7.30. 모모

1장 현대의 군주

개요(p.127~129)

자코뱅주의라는 개념은 그람시의 옥중 저술의 모든 고리를 연결해주는 가장 분명하고도 간결한 끈이다. 마키아벨리는 조숙한 자코뱅이었다. 현대의 군주-곧 공산주의 정당-는 국민적, 민중적 집단의지를 조직하고 표현해야 한다. 이것은 곧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하에 농민을 묶고 모든 형태의 경제주의, 조합주의, 자생성론을 거부하는 자코뱅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도시 프롤레타리아가 공업생산분야에서 적정한 선까지 성장하였는지의 여부, 그리고 그들이 일정 수준의 역사, 정치적 훈련을 받았는지의 여부가 문제가 된다.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과제는 오직 거대한 농민대중이 동시에 정치적 삶으로 뛰어들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장에 있는 공산주의 정당에 대한 글들은 어떠한 형태의 당이라야 현대의 군주역할을 제대로 그리고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5<정치정당>은 원래 <마르크스와 마키아벨리>라는 표제였다. 그람시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투쟁적인 정치와 행동 이론가로서의 두 사람 사이의 진정한 관계에 대한 연구

마르크스주의의 교의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현대적인 군주론형 정치학의 명료한 체계를 서술하는 것

이때 서술의 주체는 계급과 국가의 관계 속에서의 정치 정당(국가를 창건하고자 하는 정당)이다

그람시는 마키아벨리에게 큰 뜻을 부여한다. 그가 국민적 국가 구축을 강조한 점, 사상적으로 인민에 더욱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는 정치적, 국민적, 필요성을 호소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이탈리아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실질적인 강령을 제시한 점은 조숙한 자코뱅주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민군 제도를 통해 거대한 농민대중을 정치적 삶으로 끌어들이고자 한 것은 단지 사실적인 자코뱅의 선구가 아니라 노동자, 농민과 동맹을 맺어야 할 현대적 자코뱅-곧 공산주의자-의 선구였다.

이 장에서는 현대의 군주라는 문제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 자체로서의 정치정당을 분석하기도 하고, 당과 계급과 국가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기도 하며, 당이 물리쳐야 할 경제주의와 자생성론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함정을 분석하기도 하고, 당이 효율적이기 위해 요구되는 비관료적 형태의 당 내 제도를 연구하기도 한다. 그람시의 혁명정당 개념을 잘 요약한 부분은 <예측과 전망> 절의 처음 몇 문장이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켄타우로스(半人半馬)가 혁명정당(과 국가)이 갖추어야 할 이중적 전망의 상징임을 지적한다. 당은 두 가지 수준, 강제와 동의, 권한과 헤게모니, 폭력과 교화, 선동과 선전, 전술과 전략이라는 두 수준을 변증법적으로 통일시켜야 한다. 한편으로 이것은 그람시가 PCI 내에서 보르디가와 타스카와 벌였던 자신의 투쟁을 이론화한 것으로 느낄 수도 있다. 강제와 지배들의 계기를 비변증법적으로 고립시키는 쪽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보르디가와 그에 대응하여 동의와 헤게모니의 계기를 고립시키는 쪽이라 할 수 있는 타스카 모두 단기적, 장기적 전망이 기계적이고 부정확하게 분리되어 있다. 그람시는 두 가지 전망의 통일을 이론화했다.

 

1. 마키아벨리 정치학에 대한 간단한 주석(p.131~144)

<<군주론>>은 정치이념과 정치과학이 극적인 형태의 신화속에 혼합된 생동적인작품이다. 마키아벨리 이전에는 정치과학이 유토피아의 형식을 빌려 표현되거나 현학적인 논술형식으로 표현되었다. 마키아벨리는 양자를 결합하여 교의적, 합리적 요소를 대장(condottiere)이라는 인격체 속에 육화시킴으로써 자신의 개념에 상상적, 예술적인 형식을 부여하였다. 이때의 대장은 집단의지의 상징을 가공적이고도 신인동형동성설(神人同形同性說)적으로보여주는 것이다. 특정한 정치적 목표를 지향하는 하나의 집단의지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에서 현학적인 분류 들에 의존하지 않고 한 구체적 개인의 자질, 성격, 의무, 자격 들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러한 방식은 사람들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정치적 열정을 더욱더 구체적으로 느끼게끔 해준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소렐적인 신화의 사실적 본보기로서 연구될 수 있다. 구체적인 환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분산되고 흩어진 사람들에게 작용하여 그들의 집단의지를 일깨우고 조직하는 정치이념의 본보기로 연구될 수 있다. <<군주론>>의 유토피아적인 성격은, 군주는 자기 자신을 이탈리아 민중에게 직접적, 객관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 아니라 순수히 이론적인 추상이었다는-지도자와 이상적인 대장의 상징-사실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극적인 효과를 내는 구성을 통해, 책 전체에 퍼져있던 정열과 신화의 요소들이 결론부분, 실제로 존재하는군주에게 호소하는 부분에서 함께 뭉쳐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난다. 마키아벨리는 책 전체를 통해, 민중을 지도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면 군주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객관성에 입각하여 전개하는데, 결론 부분에서 마키아벨리는 민중과 함께 섞이고 민중이 된다. 이때의 민중은 마키아벨리 자신이 그들의 의식으로 된 민중이며, 자신이 그들의 표현인 것처럼 느끼는 민중이며, 그들과 똑같다고 느끼는 민중이다. 모든 논리적주장은 바로 민중 자신의 자기성찰이곧 대중적 의식 속에서 진행된 내적인 추론이며 결론은 절실한 긴급성의 외침이다-된다. 이제 정열은 정서’, 열기, 행동을 향한 열광적인 갈망으로 변하여 간다. 이것이 <<군주론>> 전체의 필연적인 요소-진정 그 전체에 진정한 빛깔을 부여하고 그것을 정치적 선언으로 만드는-로서 이해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소렐이 자신의 신화로서의 이데올로기 개념에서 정치적 당에 대한 이해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노동조합의 구상에서 멈춰 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소렐의 신화가 충분히 표현되는 것은 노동조합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실천적인 행동이고 그 실천적 행동의 최고형태는 총파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동적 활동즉 부정적, 초보적 활동이며 자신의 적극적, 건설적인 국면을 제시하지 못하는 활동이다. 그래서 소렐에게서는 신화에 대한 요구와 신화의 비판에 대한 요구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이다. 그 결과 모든 것이 비합리적인 것의 개입, 우연 또는 자생성에 맡겨졌다.

어떤 도구가 소렐의 사물관에서처럼, 집단의지를 차별화-이것이 폭력적이고 기존의 도덕적, 법적 관계들을 파괴하는 것일 때-시킴으로써 단지 집단의지의 단순한 형성이라는 원시적, 초보적 단계에만 머물러 있다면 이것은 효과적일 수 없다. 파괴와 부정은 잠재적인 건설(실천 속에서의 건설과 긍정, 곧 정치적인, 당 강령으로서의 건설과 긍정)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소렐의 경우 자생성 뒤에는 철저히 기계론적인 가정이 깔려 있고, 그 자유 뒤에는 극도의 결정론이 놓여 있으며, 관념론 뒤에는 절대적 유물론이 놓여 있다.

현대의 군주, 곧 신화·군주는 실제의 한 인격, 하나의 구체적인 개인일 수 없고 하나의 집단의지가, 그 속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는 유기체 또는 복합적 사회요소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정치정당-보편적, 전체적으로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효소들이 함께 모인 최초의 세포-이다.

현대의 군주론은 그 일부를 자코뱅주의를 위해 할애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코뱅주의는 집단의지가 독자적이며 전적으로 새롭게 형성되고 작동되었던 예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의지는 역사적 필연성에 대한 능동적 자각으로서의 의지, 역사의 드라마에서의 사실적이고 유능한 주인공으로서의 의지여야 할 것이다.

반드시 집단의지에 대해, 국민적, 민중적 집단의지를 각성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은 언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주어진 나라의 사회구조에 대한 역사적(경제적) 분석을 제시함과 아울러, 수세기 간 이 의지를 일깨우기 위해 일으켰던 여러 시도 그리고 그 시도들이 계속해서 실패한 이유에 대한 극적인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현대의 군주론의 중요한 부분이 지적, 도덕적 개혁의 문제, 즉 종교 또는 세계관의 문제에 할애되어야 한다. 현대의 군주는 지적, 도덕적 개혁의 선포자이자 조직가여야 하며 또 그렇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은 또한 국민적, 민중적 집단 의지가 현대문명의 보다 우월하고 전체적인 형태를 실현하는 쪽으로 계속해서 발전해 나아갈 수 있는 지형의 창출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상의 기본적인 두 가지 요점-현대의 군주가 그것의 조직가인 동시에 그것의 적극적, 능동적인 표현인 국민적, 민중적 집단의지의 형성, 그리고 지적, 도덕적 개혁-이 현대의 군주론 전체의 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드시 구체적인 강령적인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 다시 말해 그 요소는 일련의 논의의 결과 극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지적, 도덕적 개혁은 경제적 개혁의 강령과 연결되어야 한다. 진정, 경제적 개혁의 강령이야말로 바로 모든 지적, 도덕적 개혁이 표현되는 구체적 형태이다. 현대의 군주는 자신이 발전함에 따라 지적, 도덕적 관계의 모든 체계를 혁명화한다. 곧 어떤 행위가 현대의 군주를 강화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이냐 아니면 현대의 군주에 대립하는 것이냐에 따라 그 행위의 이로움과 해로움,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의식에서 현대의 군주는 신성, 또는 지상명령의 위치를 차지하며 삶의 모든 측면과 관습적인 관계를 세속화하는, 현대의 세속주의의 기초가 된다.

 

2. 마키아벨리와 마르크스(p.144~148)

정치학과 역사학에 실천철학을 도입함으로써 이룩된 기본적인 혁신은 고정적이며 불변한 추상적인 인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인간성은 역사적으로 규정된 사회관계들의 총체성이라는 것, 따라서 인간성이란 어느 한계 안에서는 문헌학과 비판이라는 방법을 통해 확인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 들을 증명한 점이다. 결국 정치학은 구체적인 내용과 논리적인 형식 모두에서 발전해 나가는 유기체이다.

시대적 상황에서의 마키아벨리의 뜻, 그리고 <<군주론>>을 썼을 때 설정했던 목적은 무엇인가. 마키아벨리의 스타일은 행동하는 사람의 스타일이었으며 행동을 촉구하는 사람의 스타일이었고 정당 선언의 스타일이었다. 마키아벨리가 잘 알지 못한 사람들을 염두에 두었으며 그들을 정치적으로 교육시키고자 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잘 알지 못한 자는 이탈리아 민중또는 민족’, 곧 당대의 혁명적 계급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세력들에게 자신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아는 지도자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지도자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설득하고자 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처지는 오늘날 실천철학에서도 되풀이되는데 이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얻어지는 성과는 정통적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통일이 깨어진다는 점이다. 마키아벨리즘은 현재의 실천철학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보수적 지배집단들의 전통적인 정치 기술을 개선하는 데에도 일조해왔다.

 

3.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정치학(p.148~157)

마키아벨리에 대한 연구에서 제기되고 또 해결해야 할 문제는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정치학의 문제, 세계에 대한 체계적 개념에서 정치학이 차지하는 위치, 실천철학에서의 그 위치 들에 관한 문제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크로체가 이룩한 진보는, 주로 일련의 허위의, 존재하지 않는, 잘못 제기된 문제들을 해체시킨다는 점이다. 크로체는 정신의 여러 계기들의 구별과 실천의 계기, 실천적 정신의 제기에 대한 긍정 위에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했다. 이러한 계기들은 차이물의 변증법으로 인해 순환적으로 전실재에 연결되면서도 각각이 자율적, 독립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실천철학에서는 그 구별이 정신의 여러 계기들 사이의 구별이 아니라 상부구조의 여러 수준들 사이의 구별이 된다. 그러므로 문제는 상부구조 중의 한 특수한 수준으로서, 정치적 활동의 변증법적 위치를 수립하는 것이 된다.

정열의 개념

 

4. 정치의 요소(p.158~162)

첫 번째 요소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지도자와 피지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하고,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가, 또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가 어떤 식으로 준비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그리고 다른 한편 피지도자 또는 피지배자의 복종을 확보하고자 할 때 취해야 할, 저항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노선, 또는 가장 합리적인 노선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생각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기본적인 전제는 인류의 영구적인 분할인가, 아니면 이러한 분할은 특정 조건들에 따른 하나의 역사적 사실일 뿐이라는 신념인가? 그러나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분할이-비록 궁극적으로 사회집단들 사이의 분할에 그 기원이 있는 것이지만-현재로서는 사실상 한 집단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그 집단이 사회적으로 똑같은 집단일 때에도 그러하다는 것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분할이 똑같은 집단 내에서도 존재하기 때문에 일정한 원칙을 확정하여 엄격하게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똑같은 집단에서의 문제라면 복종은 자동적인 것이고, 필요성이나 합리성에 대한 설명 없이도 생기는 것이며, 무조건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집단적인(정치적) 재난은 대부분 불필요한 희생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행해지지 않은 데에서, 또는 분명히 다른 사람의 희생을 고려하지 않고 그들의 생명으로 도박을 한 데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원리는 희생을 요구하는 모든 행동에로 확대된다. 따라서 재난이 있는 후에는 언제나 무엇보다도 먼저 지도자들의 책임을 가장 엄격하게 추궁하여야 한다.

지도자와 피지도자,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존재한다는 원칙이 주어진 이상, 정당은 지도자와 지도력을 발전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국가정신은 과거와의, 또는 전통과의, 아니면 미래와의 연속성을 전제한다. 그것은 모든 행동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복합적인 과정의 한 계기일 것을 전제한다. 이러한 과정에 대한 책임, 이러한 과정에 한 역할을 맡는다는 책임, 스스로 적극적이며 언제나 준비되었다고 느끼는 세력들과 연대하였다는 책임, 이러한 책임이야말로 국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지속에 대한 자각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곧 그러한 지속에 대한 자각은 어떠한 뜻에서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 ‘국가정신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자주 그것의 왜곡과 그것으로부터의 일탈에 대해 싸운다.

행동을 위한 행동, 투쟁을 위한 투쟁, 그리고 특히 소박하고 소아적인 개인주의, 이러한 것들은 일시적인 기분에 의한 자의적인 충족일 뿐이다. 개인주의는 국가정신의 기본요소인 정당정신이 부족한 개인추종의 한 형태이다. 정당정신이 국가정신의 기본적 요소라는 표명은, 우리가 견지해야 할 결정적으로 중요한 주장들 중의 하나인 반면 개인주의는 야만적인 요소이다.

 

5. 정치정당(p.162~174)

현대세계에서의 새로운 군주론의 주인공은 오직 정치정당 곧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 시대나 그 나라의 내부관계에 바탕을 둔 구체적인 정당일 수밖에 없다.

전체주의적 제도하에서는 왕권 제도의 기능을 사실상 문제의 특정한 정당이 흡수하였으며, 그 정당은 바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적이다. ‘국가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찬양하고 국가가 공평무사한 강제로서 적극적이고도 효율적으로 작동하였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강구하는 기능 자체는 당 속에 흡수된다.

정치정당에 정치적 행동은 꼭 필요한 것인가? 현대세계에서는 여러 나라에서 유기적이고 기본적인 정당들이 투쟁의 절박한 사정이나 아니면 다른 까닭으로 인해 조각조각 깨어져 나갔다는 것을 본다. 유기적 정당의 지적인 참모본부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마치 정당들 위에 독자적으로 선 지도세력인 양 작용하며, 때로는 공공연하게 그런 식으로 믿어지기도 한다. 오직 하나의 정치정당만이 있는 나라에서 정당의 기능은 더 이상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기능이 아니며 단지 선전과 공중적인 치안, 그리고 도덕적, 문화적 영향 들의 기술적인 기능일 뿐이다. 정치적 기능은 우회적으로 나타난다. 정치적 문제들은 문화적 문제인 것처럼 은폐되며 따라서 자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간접적인 성격을 지닌 전통적인 정당, 즉 무정부주의 운동도 있다. 무정부주의는 모든 유기적 정당에 고유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으로서의 정당이라는 관념을 부정하는 정당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다. 먼저 엘리트 문화인들로 이루어진 정당이 있는데, 이들은 서로 연관된 정당들의 거대한 운동에 대해 문화적이고 일반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의 지도를 제공하는 기능을 지닌다. 다음으로, 대중으로 구성된 정당 유형이 있다. 이때의 대중은 자체로서는 가시적 또는 불가시적인 정치적 중심에 대한 군대적 성격의 막연한 충성심 이외의 다른 정치적 기능을 지니지 않는다.

정당사에 대한 연구는 폭넓고 포괄적인 틀을 지녀야 한다. 당의 창설자들을 따라왔고 그들을 신뢰와 충성과 기강으로 지지했거나, 아니면 흩어진다거나 일을 앞에 두고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거나 함으로써 그들을 실제적으로비판했거나 하는 특정한 일군의 사람들에 대한 역사가 쓰여져야 할 것이다. 한 정당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전문분야적 관점에서 한 나라의 일반사를 쓰고 거기에서 그 일반사의 특수한 한 측면을 부각시키기고자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 정당의 의미와 비중은 그 정당의 개별적인 활동이 한 나라의 역사를 규정하는 데에서 얼마나 결정적인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 정당이 존재하기 위한 세 가지 기본적인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 평균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대중적 요소. 이들의 참여는 충성과 규율이라는 형태를 취한다.

중요한 응집적인 요소. 이것은 별 것 아닌 세력들의 복합체를 집중시켜 효율적이고 강력하게 만든다.

중간적인 요소. 이것은 첫 번째 요소와 두 번째 요소를 연결시키고 두 가지 사이의 접촉을 외형적, 도덕적, 지적으로 유지시킨다.

이 세 요소 사이에는 고정된 비율이 있으며 고정된 비율이 실현되었을 때 정당의 효율성은 가장 커진다.

정당의 자만심은 민족의 자만심보다 더 나쁜 것이다. 민족이란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그 민족의 존재가 숙명과 의미로 가득 찬 것임을 발견한다는 것은 언제나 가능한 일인 반면에, 정당이란 자신의 힘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 간의 투쟁에서 어느 한 쪽이 내부투쟁으로 인해 약화되는 것은 다른 한 쪽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정당이 자신의 힘으로 인해 자신의 요구에 따라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자들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언제나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정당의 자만심을 경멸받아야 하며 구체적인 사실들로 대체되어야 한다. 자만심을 강화하거나 구체적 사실보다 자만심을 더 좋아하는 자는 분명 진지하게 대할 가치가 없는 자이다. 정당들은 다른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그것이 설사 정당화된외양을 지녔더라도 기피해야 하며, 다른 누구라는 것이 외국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모든 정치정당들이 치안유지적인 기능-특정한 정치적, 법적 질서를 지키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것이 증명된다면, 그때는 그러한 기능이 어떠한 방법과 절차로 인해 수행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지위를 박탈당한 반동적 세력들을 법의 울타리 속에 가둬두고자 할 때, 그리고 뒤처진 대중을 새로운 법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할 때 그 기능은 진보적이다. 역사의 생명력을 억제하고, 이미 지양된 반역사적인, 그리고 비본질적인 것이 된 법을 계속 유지하고자 할 때 그 기능은 반동적인 것이다. 정당이 진보적인 때에는 그 정당은 민주적으로기능하며, 반동적일 때에는 관료주의적으로 기능한다. 후자의 정당은 단지 생각하지 않는 집행관과 같고 기술적인 치안유지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

대기업가들이 자신들의 영속적인 정치정당을 지닌 것은 아니다. 대기업가들은 기존의 모든 정당들을 번갈아 활용하며 자신의 정당은 갖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세력들 간의 확실한 균형에 있다. 그들은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힘을 사용하여 이 정당, 저 정당 하는 식으로 번갈아 어느 하나를 강화시킴으로써 이러한 균형을 얻는다. 다만, 긴급하고 중요한 때(전쟁의 기간이라든가)에는 대기업가들의 정당은 지주들의 정당이다. 그 예는 영국에서 볼 수 있는 바, 보수당이 전통적으로 기업가들의 정당이라 여긴 자유당을 흡수하였다.

정당들의 역사에서, 그들이 변모해 가는 원인들의 근거를 찾는 데에는 서로 다른 나라들 사이의 비교가 매우 유용하며 실제로 결정적이기도 하다. 이것은 전통주의적인 나라들에서 정당들 간의 논쟁의 근거를 찾는 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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