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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과 영광-2 조르조 아감벤 2021.9.26. 바다사자

 

경계 영역

슈미트와 페테르존은 삼위일체 교리가 그리스도교적 정치가 존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으로 여긴다. 정치를 그리스도교 신앙 위에 정초하고자 한다. 슈미트는 정치신학이란 정치를 세속적 의미로 근거 짓는 데 반해 페테르존은 문제가 되는 정치적 행동이란 전례, 공적 실천이라는 어원적 의미로 되돌아온 전례이다.

슈미트의 정치신학이란 정치를 고유한 의미로 근거 지을 뿐만 아니라 카테콘(구원이 지연되는 동안 지상의 관리를 일임 받은자)’으로 작동하는 그리스도교 제국의 세속적 힘으로 근거 짓는 것이다. 반면 페테르존의 전례적 행동으로서의 정치란(62) 지상의 나라와의 어떤 동일시도 배제하는 것이다. 전례적 행동으로서의 정치란 종말론적 영광의 예배적 선구다. ‘카테콘으로 작동하는 것은 어떤 정치권력이 아니라 오로지 회심에 대한 유대인의 거부인 것이다. 유대인 집단학살을 겪은 페테르존이 교회의 존립뿐만 아니라 완성까지도 유대인의 생존이나 소멸과 결부시키는 신학적 입론의 끔찍한 양의성을 깨닫게 되었을지 자문해볼 수 있지만 양의성은 카테콘’-역사의 종말을 지연시킴으로써 세속 정치의 공간을 펼치는 힘-이 하느님의 오이코노미아와 그것의 영광과의 본래적 관계로 되돌(63)려질 때라야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64)

 

2. ‘오이코노미아의 신비

2.1.

오이코노미아’(65)란 이질적 관계들이 서로 얽혀 이루어진 복잡한 유기적 조직이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주종관계, ‘부자관계, ‘배우자관계로 범주화한다. 오이코노미아적 관계들은 경영적패러다임에 의해 서로 연결된다. 규범 체계에 의해 묶여있지 않은 활동이며 특정한 문제들에 대처하는 결정과 일의 배치를 함축하며 오이코스의 각기 다른 부분의 기능적 질서에 관계한다. 그것들은 질서 정연한 배치와 관련있다(66).

오이코노미아는 단순한 배치 이상인데 이는 주제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에 더해 논제에 대한 분별과 분석을 함축하기 때문이다(70).

‘’오이코노미아라는 말이 그리스도교 시대에 이르러 신학의 장으로 이식되는 것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이다. 신학의 장에서 이 말은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이라는 의미를 얻게 된다.

오이코노미아라는 말은 참뜻에서의 변화가 아니라 점차적 유추에 의한 지시의의 확장이다(72). 이 말의 신학적 사용을 언급하면서 학자들이 그리스도교의 언어 안에서 신학적 장으로 지시의가 확장된 것에 불과한 것을 참뜻의 수준에 투사하고 있다. 실제로 이 말의 신학적 참뜻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지시의가 신학적 장 위로 치환된 것일 뿐 오해를 거듭하며 새로운 의미로 인식된 것이다. 앞으로 오이코노미아라는 말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가설은 전제될 수 없으며, 그때 그때마다 검증되어야만 한다는 원칙을 지킬 것이다(73).

플라톤에게서는 오이코스폴리스의 차이가 대립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이 나라의 단일적 본성을 너무 멀리까지(73) 밀어붙여 나라가 집안이 되어버렸다고 비난했다(74).

 

2.2.

오이코노미아라는 말에 처음으로 신학적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다고 흔히들 믿지만 그 가설은 맞는다고 볼 수 없다(74). 이는 하느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직무이며 바울은 아포스톨로스[사도]‘오이코노모스[관리인]‘로서의 신뢰의 계약에 따라 일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맡기는 어떤 일이며, 하느님의 마음이나 의지와 관계되는 구원 계획같은 것은 아니다(75). 하느님의 의지 속에 감추어져 있다가 바야흐로 완성에 이른 구원의 신비를 선포하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문제인 것이다(79).

 

2.3.

바울의 어휘는 오이코노미아적인 말이지 정치적인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인이란 최초의 온전한 오이코노미아적인간인 셈이다. 정치적인 어휘와 오이코노미아적어휘의 상호 오염 관계는 헬레니즘 시대에 시작되어 제정 시대에 보다 분명해진다(80). 메시아적 공동체가 처음부터 오이코노미아의 술어로 표상되고 있다는 사실이 서양 정치사에 대해 지니는 함의들은 아직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오이코노미아라는 말의 출현에 대한 텍스트 분석(82)은 본질적으로 기원후 23세기, 곧 이 개념에 원래의 형태가 주어지는 시기에 한정될 것이다(83).

 

2.4.

이그나티우스의 에페소인들에 보낸 편지(83)에서 보이는 어휘는 신비의 오이코노미아(동정녀 마리아,부활)‘가 있는 것이지 오이코노미아의 신비(계시의 원리)‘가 있는 게 아니다(84).

2.5.

2세기 중반 로마에서 활동한 유스티누스가 사용한 용례도(85) 하느님께서 맡기신 임무와 명령의 완수를 의미하며 신학적 함의는 전혀 없다(87).

 

2.6.

기원후 170년경 안티오키아의 주교였던 테오필루스가 사용한 용례에도 직접적인 신학적 의미가 전혀 들어 있지 않다(88).

2.7.

로마에서 활동한 순교사 유스티누스의 제자였고 절제파를 설립한 타티아누스는 그리스인들에게 고함에 사용한 오이코노미아도 실제 수사학적 어휘에서 나온 전문용어를 신학의 장으로 옮겨놓았을 뿐이다(90). 물질의 질서정연한 조직화를 가리킨 텍스트에서는(92) 엄밀한 의미에서 신학적 의미로 쓰이고 있지는 않지만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로고스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수사학적 맥락에서 이미 쓰이던 말의 용법을 은유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어떤 담론의 소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그것의 통일성을 해하거나 힘을 감소시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의 로고스 역시 오이코노미아의 분별을 받는다. 삼위일체론적 성령 발출설의 최초 표명은 오이코노미아적‘·수사학적 패러다임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 발출이란 처음에는 성부로부터 성령의 유출을, 나중에 성자로부터 성령의 유출을 표현하는 말로 성자의 출생 및 성부의 자존과는 구별된다. 삼위일체 교리를 요약하면, 한 하느님이 세 위격으로 존재하는데 하나는 하느님의 본성, 하나의 하느님 본질, 하나의 하느님 실체이다. 세 위격은 동일하고, 동일하게 영원하고 전능하다. 성부는 다른 원천을 갖지 않고, 성자는 성부의 실체로부터 출생했다. 성령은 출산되지 않고 하나의 유일 원리로서의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된다(93).

타티아누스 구절의 주제가 사실상 로(93)고스 곧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서 어떤 수사학적 이미지가 현전해 있다(94).

 

2.8

신성의 삼위일체적 분절화를 표현하기 위해 수사학적 은유가 사용된 예는 아테나고라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언급하며 오이코노미아라는 말을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일사불란한 활동이라는 통상적 의미로 쓰고 있다(95). 또한 천사 무리로까지 확대한다(96).

 

2.9.

이레나이우스의 모든 이단에 반대해는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반박으로 제시된 것으로 이들과의 논쟁 과정을 통해 교부들의 언어와 사유 속에 오이코노미아라는 말은 전문용어가 되어갔다(96). 그러나 오이코노미아라는 용어는 하느님의 활동과 통치 일반을 가리킨다(97). 이레나이우스는 오이코노미아가 영지주의자들이 신적 형상을 지닌 위격들을 마구 증가시키는 것과 구성적 연관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았고, 그에게서 중요한 것은 결국 오이코노미아를 그러한 연관으로(100)부터 빼내오는 것이었다. 그는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우주적·자연적 과정이었던 것을 역사적 섭리로 바꾸어놓았다. 그가 실제로 하려고 한 것은 불분명한 바울의 구문을 (’충만의 오이코노미아를 위격들의 무한 발출의 원리로 이해하는) 영지주의적 해석으로부터 되찾아와 바울이 말하는 오이코노미아가 예수에 의해 단번에 모두 완수되었음을 강력히 천명하려는 것이었다(101). 이레나이우스의 조치는 이단자들과 가톨릭에 공통된 주제들에 대한 전략적 개입이었다. 그는 그러한 주제들을 스스로가 사도전승의 정통이라고 믿었던 것으로 되돌려 선명한 신앙고백 안에서 재규정하려고 했던 것이다(102).

오이코노미아라는 말은 영지주의자들의 어휘에도 속하고 가톨릭의 어휘에도 속한다(103). 이레나이우스가 이의 동의어로 ’pragmateia’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오이코노미아실천, 경영적·집행적 활동이라는 포괄적 의미를 유지하고 있음이 입증된다(104).

 

2.10.

오이코노미아의 전문용어화는 나중에 삼위일체 교리로 정립되어 갈 문제의 핵심을 둘러싼 초기 논쟁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삼위일체 문제는 최초에 오이코노미아적인 술어로 표명된 것이지 형이상학적·신학적 술어로 표명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교의신학이 최종 형태를 얻게 되자 오이코노미아는 삼위일체론의 어휘 속에서는 점차 사라지고 구속사(救贖史)의 어휘 속에서만 보존되게 된 것이다(104).

오이코노미아라는 말에 대한 논쟁은 이 말에 서로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다른 의미가 있다는 가정에 의해 절충된다. (106) 중 하나는 시간 속에서 하느님이 육화되고 계시됨을 이르며, 다른 하나는 신성 내부에서의 위격들의 발출과 관련된다. 이는 후에 신학적 정교화 과정을 거쳐 다듬어진 내용이 2세기에는 그저 하느님의 경영 및 통치 활동을 의미한데 불과했던 말의 의미론에 투사된 결과인 것이다. 사실 한 가지 단일한 활동이 지닌 두 가지 양상일 뿐이다. 즉 하늘의 집에서 시작해 지상에 발현되는 데까지 미치는 신적 삶의 오이코노미아적경영 활동이라는 단일한 활동의 두 양상인 것이다(107).

오이코노미아는 존재 양식에 관한 스토아학파의 학설과 일치하며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일종의 실천론이다(109).

히폴리투스가 오이코노미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때 신비의 오이코노미아이라는 바울의 구문을 오이코노미아의 신비라는 형태로 뒤집었다(109). 이제는 아들-말씀이라는 형상으로 인격화된 바로 이 활동이 신비가 된다. 신비의 오이코노미아, 곧 하느님의 신비를 완수하고 계시하기 위한 활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비로운 것은 바로 하느님의 활동 그 자체인 것이다. 하느님의 삼중의 활동이 하나(110)의 화음으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 일을 의미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질서정연한 배치라는 의미가 추가됨으로써 오이코노미아는 이제 신의 존재를 삼위로 분절하는 동시에 일체로 조화시키는활동이 된다(111).

 

2.11.

오이코노미아를 신성에서 위격들의 발출을 지칭하는 말로 처음 쓴 사람으로 테르툴리아누스를 꼽지만 그의 저술에서는 그의 논증이나 정확성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프락세아스와 논쟁하면서 자신의 변증으로 삼위적 분절화의 철학적 정식화 불가능성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한 장치로서 오이코노미아를 그리스어 형태 그대로 남겨 보다 전문적인 술어로 만들기 시작한다(112). 또한 그는 바울의 구문을 오이코노미아의 신비로 바꿨다. 이러한 변용으로 인해 오이코노미아에는 모든 의미상의 풍부함과 맹세, 성사(113), 신비를 동시에 모두 의미하는 모호성이 부여되었다. 테르툴리아누스에게서 오이코노미아란 실체적 이종성이 아니라 단일한 실재의 분절화로 이해된다. 이종성은 존재 및 존재론이 아니라 행동 및 실천과 관계된다(115). 이 패러다임에 따르면 삼위일체란 하느님의 존재의 분절화가 아니라 실천의 분절화이다.

 

2.12.

반철학자 테르툴리아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오이코노미아와 모나르키아의 동일성을 주장한 것을 차용하여 이를 발전시키고 또 뒤집는다. 하느님의 모나르키아는 오이코노미아, 곧 통치 장치를 본질적인 요소로 수반하며 그것의 신비를 분절화하는 동시에 계시하는 것이 된다(119). 성령이 유일한 모나르키아의 전도자인 동시에 오이코노미아의 통역자”,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신비에 따라 ..... 모든 진리를 선포하는 자로 정의했다(120).

 

2.13.

그리스도교는 역사적 인물 예수와 역사적 실제 사건에 성립 근거를 두고 있지만 한편 시간에 구원론적 가치와 의미를 두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원래 자체 내에 역사철학 또는 역사 신학을 품고 있었다. 또한 그리스도교적 역사관은 오이코노미아적 패러다임 아래 전개되었다. 그리스도교 역사 신학을 이해하려면 오이코노미아의 신비가 지금까지도 우리 삶을 크게 좌우하는 역사 경험을 내용과 형식에서 철저히 규정해온 구체적 양상을 분석해야만 한다.

오이코노미아와 역사 사이의 본질적 연관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저자가 오리게네스이다(121). 그에 이르러 오이코노미아는 지대한 발전을 이룬다. 역사가 어떤 목적과 운명이 문제가 되는 무엇이라면 이 역사 개념은 신비의 계시라는 신학적 패러다임에 따라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신비는 동시에 오이코노미아‘, 곧 신의 삶과 인간의 삶의 조직화, ’배치이기도 하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신비를 해독하는 일이 되며 피조물들과 사건들을 자유자재로 배치하는 오이코노미아‘(123)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교 역사는 이교도들의 운명에 맞서 자신의 역사는 자유로운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하느님의 구상과 일치하고 또 이를 실현한 것으로서 자유는 그 자체가 신비이다. 자유의 신비‘, 이는 오이코노미아의 신비의 다른 얼굴에 불과하다(124).

헤겔에서 셸링, 포이어바흐에 이르기까지 독일 관념론의 역사 개념은 하느님의 계시 과정과 역사 사이의 오이코노미아적연관을 사유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헤겔 좌파는 이러한 신학적 개념과 절연했는데 근대적 의미에서의 오이코노미아‘, 곧 인간의 역사적 자기생산으로서의 경제를 역사 과정의 중심에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 좌파는 하느님의 오이코노미아가 놓인 자리에 순수한 인간의 오이코노미아를 대신 들여놓은 셈이다(125).

 

2.14.

오이코노미아개념을 섭리와 연결시키자 중세 및 근대 문화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이의 장본인이다(125). 그는 구세주의 오이코노미아라는 관점에서 오이코노미아와 섭리를 서로 긴밀히 결합시킨다(126). 신화나 우화로만 보일 뿐인 이야기에 현실성과 일관성을 부여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섭리하는 관념뿐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신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오이코노미아이고 섭리, 곧 세상이 자기를 드러내고 통치하고 감독하는 활동이다. 신은 삼위로 분절화되지만 삼위란 오이코노미아’, 곧 신의 삶의 분절화이고 경영이고 또 피조물의 통치이고 동시에 이 모두이다. 이로부터 그리스도교의 섭리 개념의 특이점이 나온다. 당시 섭리라는 개념은 스토아 철학 덕분에 이교 세계에(127)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스토아적이고 유대적인 섭리라는 주제가 신의 삶의 오이코노미아와 직결되는 한 섭리는 위격적이고 의지적인 성격을 새로이 얻게 된다.

오이코노미아와 섭리를 연결함으로써 클레멘스는 현세에서의 구원의 오이코노미(128)아를 영원 속에 깊숙이 새겨 넣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차츰 차츰 신학과 오이코노미아의 이원성, 신의 본성과 역사적 행위의 이원성의 구성을 개시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이러한 파열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버지 신과 행동하는 데미우르고스라는 영지주의적 이원론에 상응하는 것으로 섭리가 뜻하는 파열은 그렇게만 보일 뿐 실제로는 파열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이코노미아적·경영적 패러다임과 섭리적 패러다임의 본질적 공속 관계가 여기서 명백히 드러난다.

오이코노미아하느님의 계획이라는 두 말의 의미가 서로 구별할 수 없게 된 것은 히폴리투스와 테르툴리아누스가 신비의 오이코노미아라는 바울의 표현을 뒤집고 클레멘스가 오이코노미아섭리를 같이 연결한 순간 이후일 뿐이다. 100년 뒤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모스에 이르러 오이코노미아(129)와 섭리 사이의 결합이 확고하게 정착되어 오이코노미아는 이제 말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되고 그것과 섭리의 심연의 연결은 경탄의 대상이 된다(130).

2.15.

67세기쯤, 특히 비잔틴 교회의 교회법 영역에서 오이코노미아예외라는 의미를 얻게 된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수행되는 하느님의 신비한 실천이라는 신학적 의미는 로마법에서 유래하는 형평개념과 융합되며, 교회법의 지나치게 엄격한 적용을 완화시켜주는 특별 면제를 의미하게 된다(130).

세상을 통치하는 구제 활동을 가리키는 낱말이 예외라는 의미를 획득한다는 사실은 오이코노미아와 법이 대단히 복잡한 관계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말의 두 가지 의미는 언뜻 서로 동떨어진 듯 보이지만 완벽히 서로 양립한다. 통치 패러다임과 예외 상태 패러다임은 오이코노미아’, 곧 일의 흐름에 대응해야만 하는 구체적 상황의 본성에 맞게 그때그때 융통성을 발휘해 조절하고 관리하는 경영적 실천이라는 관념에서 서로 일치한다(131).

오이코노미아예외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된 것은 카파도키아의 신학자 바실리우스가 암필로키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래한다. 교회분리론자들이 행하는 세례에도 가치가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 그는 다수의 오이코노미아를 고려해처음에는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답하고 있다(132).

왕국과 영광-2(조르조 아감벤 21.9.26지도포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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