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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시옹 / 보드리야르 / 18.10.24 모임용 발제

 

역사 : 복고 시나리오

p92 : 수 많은 세대들, 특히 가장 최근 세대는 역사의 거대한 발자국 속에서, 혁명에 대한 유열적이거나 파국적인 관점 속에서 살아 온 반면에, 오늘날에는 역사가 자기 뒤에 무심한, 물결이 쓸고 간, 그러나 지칭없는 일종의 성운만을 남기고 물러가 버렸다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공허 속으로, 지나간 역사의 환상, 사건들의 갑옷, 이데올로기, 복고적 유행이 다시 밀려온다.

 

p96(각주65) : 영화가 영화 외적인 역사적 사건을 취급하여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여기서는 영화에 의한 영화 자신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자신의 복사는 영화가 다른 것을, 실제로 존재하였던 것을 완벽하게 재생한다는 환각을 주고 아울러 그 재생 대상이 자기자신의 과거이기에 같은 것이면서도 다른 것이라는 전형적인 시뮬라크르를 생산한다. 그리하여 다른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으면서도 오직 실재를 똑같이 복원하는 데에서 오는 시뮬라시옹의 즐거움을 주게 된다. 영화는 완전히 자신이 재현하는 실재가 된다. (97) 이리하여 우리는 더 이상 말 그대로 의미가 없는 영화의 시대, 다양한 기하학을 가진 거대한 종합기계와도 같은 영화의 시대로 들어간다. (99) 테러주의는 항상 실재의 테러주의이다. 실재와의 이러한 절대적인 일치의 시도와 동시에, 영화는 또 자신과의 절대적 일치에 접근하는데, 이는 모순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파생실재의 정의이다. (100) 영화 자신이 역사의 사라짐에 공헌하였고, 옛 자료 보관소의 도래에 공헌하였다. 사진과 영화는 역사를 세속화하는데, 역사를 주파하였던 신화의 희생 아래서 역사를 눈에 보이고 객관적인 형태로 고착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오늘날 영화는 자신의 모든 재능과 기술을 그 자신이 사라지게 하는 데 공헌하였던 것을 다시 살리는 데 사용한다. 영화는 환영들만을 부활시킬 따름이고, 거기서 영화 자신이 상실된다.

 

홀로코스트

p101 (각주72) : 인위적 기억에 의하여 기억이 영구히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망각과 함께 기억도 사라진다. 결국 TV에 의한 생생한 역사 부활은 사건에 역사성을 끝내고 현재로 만듦으로 하여 과거 없는 표면적인 현재로 만든다. TV에서는 역사가 없고 오직 현재만이 있다.

 

차이나 신드롬

p110 : 오게 될 것은 결코 폭발이 아니라 함열일 것이다. (112) 만약 오늘날의 전략이 대재난의 정지와 영원한 시뮬라시옹에 연결된 저지와 정신적인 공포라면, 이러한 시나리오에 일시적으로나마 대처할 유일한 수단은 대재난이 오도록 하는 것, 실제의 대재난을 생산하거나 재생산하는 것이다. 이것은 때때로 대자연이 봉사하는 것이다. 영감이 고취된 순간에, 신은 대이변을 통해서, 그 속에 인간들이 스스로 갇힌 공포의 균형 매듭을 풀어준다.

 

Apocalypse now(세계의 종말 지금-> 영화제목, ‘지옥의 묵시록’)

p114 : 필리핀의 숲과 마을을 네이팜 탄으로 쓸어버리는 천재적인 아이디어는 계산할 것도 없고, 영화에 의해 모든 것을 다시 취해서 모든 것을 다시 한다. (115) 비록 미국인들이 (외면상으로는) 실제 전쟁에서 졌지만, 그들은 확실히 이 전쟁을 이겼다. <지옥의 묵시록>은 전세계적 승리이다. 산업적, 군사적 기계들의 힘과 동등하거나 더 우월한, 펜타곤과 정부들의 힘과 동등하거나 더 우월한 힘 때문에.

 

보부르 효과 : 함열과 저지

p122 : 국제 전시회나 박람회건물 같은 모습을 한, 전통적인 모든 정신상태나 기념물의 성격을 저지하는 연약성을 가진 이 외관은, 우리 시대가 더 이상 지속의 시대가 아님을, 우리의 유일한 시간성은 가속된 순환과 재순환의 시간성임을, 유동체회로와 그 통과의 시간성임을 터놓고 선언한다. (128) 줄서기, 기다리기, 막히기, 집중, 캠프. 이게 바로 대중덩이리 생산이다. 대량생산이나 대량의 사용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대중덩어리를 생산한다는 의미에서이다. 모든 사회성의 최종 생산물로서, 그리고는 단숨에 이 사회성이라는 것에 종말을 가해 버리는 대중덩어리,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것이 바로 사회적인 것이라고 믿게 하려고 하는 이 대중덩어리는 반대로 사회적인 것이 함열하는 장소이다.

 

p130 : 그들은 보부르를 오로지 휘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 건물을 향해 달려들고, 이 건물의 연약함은 벌써 대재난을 들이마신다.

몰려듦이 대중으로서 대중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이다. (131) 사람들은 만지러 온다. (132) 사람들은 직접 어떤 진행에 연루된다. (133) 오늘날 시뮬라크르는 더 이상 본뜨기나 복제라는 단계를 거치지도 않고 곧장 발생학적인 극소화된 단계를 거친다.

극소로 존재조차 하지 않는 어떤 기억 속으로 모든 공간이 함열한다. (135) 아마도 거대한 도시들이 자본과 혁명이라는 이중의 개념을 누린 그 황금기가 틀림없이 지나가 버린 사회적인 것(136)그 자체의 흡수와 제거의 중심이라는 의미로, 함열의 중심이 되었다. 사회적인 것은 천천히 혹은 급격히 이미 정치를 감싸버린 무감각의 영역으로 함몰한다.

 

거대시장과 파생상품

p138 : 사람들은 그들이 제기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대상-대답을 거기서 발견하고 선택하기 위하여 온다. (142) 이 새로운 대상들은 시뮬라시옹의 극점들로서 그 주의에서는 옛날의 역이나 공장 혹은 전통적 교통망과는 달리, 현대성과는 다른 것이 세공된다. 모든 기능들이 과거도 미래도 없는 동시성, 파생실재성, 모든 방향으로 향한 작동성으로 된다.

 

매체 속에서 의미의 함열

p143 : 정보는 더욱 많고 의미는 더욱 적은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147) 매체들은 사회화의 수행자들이 아니라, 정반대로 대중들 속에서 사회적인 것을 함열시키는 자이다. (149) 우리 모두는 의미와, 의사소통과, 의미에 관한 의사소통의 이상주의라는 일종의 광적인 이상주의를 가지고 산다. 그래서 이러한 관점에서는,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의미의 대재난이다. (150) 의미 너머에는 의미의 중화와 함열로부터 유래하는 미혹이 있다. 사회적인 것의 지평 너머에는 사회적인 것의 중화와 함열로부터 기인한 대중덩어리들이 있다. (151) 매체들은 대중들의 조작에 있어서 권력 편인가, 혹은 의미의 제거에 있어서, 의미에 가해진 폭력 속에서 그리고 미혹 속에서 대중들의 편인가? (153) 전략적 저항은 의미의 거부와 말의 거부이다.

말 등의 자유, 해방, 부활 위에서만 게임을 하는 모든 운동들은 체계가 바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체계의 명령은 정확하게 의미와 말의 재생산과 과잉생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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