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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에 대하여 / 해리G프랭크퍼트 /2017.03.16 / 화니짱

p66 : 오늘날 개소리의 확산은 또한 다양한 형태의 회의주의 속에 보다 깊은 원천을 두고 있다. 회의주의는 우리가 객관적 실재에 접근할 수 있는 어떤 신뢰할 만한 방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따라서 그것은 사태의 진상이 어떠한지를 인식할 가능성을 부인한다. 이러한 '반실재론적' 신조는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사심없이 노력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무너뜨리고, 심지어 객관적 탐구라는 개념이 이해 가능한 개념이라는 믿음을 약화시킨다. 이러한 믿음의 상실에 대한 하나의 반응은 정확성이라는 이념에 대한 헌신이 요구하는 규율에서 전혀 다른 규율로 후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진정성이라는 대안적 이념을 추구할 때 요구되는 규율이다. 

p67 : 개인들은 주로 공동 세계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 성공하기를 추구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전달해보겠다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실재에는 사물에 대한 진리로 간주할 만한 본래적 속성이 없다는 확신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려는 데 전념했다. 이것은 마치 사실에 충실하려는 것이 무의미하므로, 그대신 개인들은 자신에 대해 충실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결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에 확정성을 부여하는 것은 오류로 드러났다고 가정면서도, 우리 자신만은 확정적이며, 따라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옳은 기술과 틀린 기술이 모두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의식적 존재로서 우리는 오직 다른 것들에 반응하면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들을 알지 못한다면 자신을 결코 알 수 없다. 게다가 이론상뿐만 아니라 분명히 경험상으로도 우리가 자신에 대해 진리를 더 쉽게 알 수 있다는 특이한 판단을 지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자신에 대한 사실들은 특별히 단단한 것도, 회의주의적 해체에 저항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본성은 사실 붙잡기 어려울 정도로 실체가 없다. 다른 사물들에 비해 악명 높을 정도로 덜 안정적이고 덜 본래적이다. 그리고 사실이 이런 한, 진정성 그 자체가 개소리다

-> 허위 뉴스의 만연, 전문가의 말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편 전문가만 찾는 분위기, 진실도 우리편 진실이 있는 것마냥 모든 언론의 내용도 믿지 않는 태극기집회 참여자들. 이런 현상은 민중들이 우매한 중세시대에 머물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정말로 무지와 우매함이 문제였다면, 진리에 대한 계몽이 문제의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 현상이 오히려 새로운 시대인 포스트모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진리에 대한 회의주의 속에서 반지성주의에 빠져 결국 자기 자신의 믿음, 주관적 착각에 맞추어 세상의 모든 fact들을 선별해서 받아들이거나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진리의 자리를 차지했던 종교와 과학 그 이후에는 무엇이 와야할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비판적 사고의 방법론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론을 통해 종교든 과학이든 나 자신이든 특정한 대타자를 신봉해 왔던 역사를 극복하고, 모든 것을 비판적 사고의 틀에 맞춰 신뢰할지 의심할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리에 대한 감별력일 것이다. 진리에 대한 감별력이 있는 없는 대중들은 자기 나름의 비판을 시도하며, 모든 것을 믿지못하는 회의주의 속에서 자기 자신의 헛된 느낌만을 좇아 정보들을 끼워맞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주관적 객관성 자체를 의심함으로써 간주관성, 간객관성의 지평으로 나아가느냐 여부일 것이다. 즉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좀 더 넓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다수가 택하는 것이 진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소수의 의견일지라도 어떤 사람이 전문가인지 감별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와 연결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의 가짜뉴스의 만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교육적 방향성이 필요한 것이다. 첫째. 비판적 합리성에 대한 리터러시. 둘째.인간들,사물들,생물권,더 나아가 우주로 연결될 수 있는 생태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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