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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지 않기 혹은 사라짐의 기술 / 피에르 자위 / 이세진 옮김 / 위고 / 2017

p124 : “자기 자신으로 족하기 때문에 동의를 구하지도 않는사람 고유의 자신을 감추기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한다. 더는 그 누구도 아닌, 어느 한 사람이 아닌, 거대한 군종 속으로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이름 없는 일개 전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p125 : 드러내지 않기는 시대의 모순적인 명령들로 농간을 부릴 줄 아는 것이다. 누군가가 되기를 요구 받는 자리에서는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고, 오로지 누군가로서만 존재하기를 요구받는 자리에서는 역사라는 위대한 서정비가의 모든 이름들이 되는 것이다.

p151 : 오늘날 철학을 한다는 것은 수준과 포부가 어떻든 간에 애초에 나타남을 체념하는 것이다. 나타남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날의 시대정신이 사라짐, 드러내지 않기에 있기 때문에 나타남은 결국 시대정신에 대한 사유를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여전히 미디어 혹은 사회의 서커스에 편입되는 이들을 지나치게 기분 나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들은 죽은 정신의 진영에 있을 뿐 잘(152)못한 게 없다. 사유를 살아 있는 것에 집중시키는 것만이 중요하다. (...) 뜷고 나오는 것보다는 사라져가는 것을 포착할 것.

p159 : 우리는 곧잘 모든 것에서 벗어나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증명할 것도, 보여줄 것도 없다고 느낄 때에 행복을 맛본다. 따라서 우리는 세 번째 유형의 행복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외적 재화에 대한 소유와 만족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에 대한 소유와 만족, 지혜롭게 되거나 자기 본연의 존재가 되는 것에도 근거를 두지 않으며 자기와 사물들로부터 동시에 벗어나는 것을 바탕으로 삼는 행복을.

우리는 그 같은 행복을 빠져나옴으로써 얻는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자기이미지와 개인적 야욕의 허망한 놀음에서 빠져나오기. (160) 그런데 초탈하기 위해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뭔가에 매여 있든가 잡혀 있어야 한다. 초탈하려면 끝없이 매이기를 받아들여야 한다. (161) ‘행복의 추구에 전념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행복에 도달하지 못할 뿐 아니라 속까지 병으로 곪은 사회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빠져나옴의 행복에 붙일 수 있는 또 다른 이름은 유연성이다.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심오한 내면생활을 위해서 세계와 타자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둘러싸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 좋고 나쁜 일에 유여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p163 : 사랑은 아마도 드러내지 않기의 유일한 질료일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의 사랑에 적절한 모습을 부여하기 위해서 드러나지 않게 처신한다.

사랑의 유일한 방식은 들뢰즈가 말한 대로 타자를 그의 미지의 공간과 더불어사랑하는 것, 다시 말해 침범이나 집착 없이, 드러나지 않게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카프카가심판에서 여자들의 매력을 두고 말하듯 다가오면 취하고 떠나가도 말리지 않는것밖에 없지 않을까?

p165 : 드러내지 않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를 보이지 않게 하면서 남을 보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볼 수 있는데도 보지 않고, 때로는 보기는 보되 타자의 자유를 조금이라도 침해하거나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앗아가는 일이 없게끔 바라보는 것이다.

p166 : 끈끈한 사랑을 권태로 누그러뜨리거나 개인적 원한을 살가운 군중의 이름 없는 사랑으로 누그러뜨리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드러내지 않기이다. (167)

진실은 유유상종보다는 군중의 힘과 아름다움 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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