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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테일러가 헤겔의 변증법과 플라톤의 변증법을 비교하면서 들고 있는 예시의 원전입니다. (찰스 테일러, 『헤겔』, 그린비, 2014, 249-250 참조.)


원문출처: http://www.nowar.net/bbs/board.php?bo_table=b_book_5&wr_id=2



소크라테스와 케팔로스의 대화: 정의란 무엇인가?

케팔로스 소크라테스 선생, 마침 잘 와주었소. 그간 뜸했구려. 나이 들어 늙다보니 바깥출입하기가 예전 같지 않소. 그러니 한 살이라도 젊은 소크라테스 선생께서 자주 좀 찾아주시오. 친척집 드나들 듯 말이오.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나 같은 늙은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게요.

 

소크라테스 물론입니다, 케팔로스 님. 저 역시 나이 드신 분들과의 대화를 즐기는 편입니다. 어르신들이야말로 우리보다 앞서 많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니까요. 저는 늘 노년의 삶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나이 든다는 게 무엇인지, 인생에서 노년의 삶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케팔로스 좋습니다. 소크라테스 선생! 그 점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려드리지요. 사실 우리 노인들은 모였다 하면 젊었을 때의 쾌락을 잊지 못해 과거를 회상하고 아쉬워하지요. 마치 아끼던 물건을 잃고 비탄에 잠기듯 말이오. 하지만 소크라테스 선생, 그러한 탄식은 불행의 원인을 잘못 짚어낸 탓이오. 늙음이 원인이라면 노인들은 누구나 비탄에 빠져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답니다. 가령 소포클레스2)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언젠가 소포클레스와 함께 있는데 누군가가 물었어요. “소포클레스, 요즘 재미가 어떠신가. 아직도 여자를 즐기시나?” 그러자 소포클레스가 말했지요. “그런 말 말게. 애욕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온 지 오래 되었네. 난 지금 더할 나위 없이 기쁘네. 마치 광폭하고 사나운 폭군의 손아귀에서 벗어 난 느낌이네.” 나는 그때 소포클레스의 이러한 답변이 명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지요.

소크라테스 선생,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좋은 것이오. 욕망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평안 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오. 그러니 어떤 사람이 불행하다면, 그 원인을 나이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될 듯하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성격과 생활 방식이지요. 절제의 미덕을 발휘해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안다면 늙음이 그리 괴롭지는 않습니다. 절제하지 못하면 늙으나 젊으나 괴롭기는 마찬가지니까요.

 

소크라테스 하지만 케팔로스 님, 노년의 평안을 성격이나 생활방식에서 찾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원인을 재산의 많고 적음에 돌리기도 하지요. 부유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위안거리가 많을 테니까요.

 

케팔로스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훌륭한 인품을 지닌 사람도 가난하다면 마음이 편할 리 없지요. 그러나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성품이 그릇되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노릇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런데 케팔로스 님, 어르신은 재산을 모으기도 했지만 상속받으신 것도 많을 겁니다. 어느 쪽이 더 많으신가요?

 

케팔로스 아, 내 재산이 궁금하시다 이거군요. 내 재산은 할아버님 대와 아버님 대의 중간쯤 될 거요. 그러니까 나와 이름이 같은 할아버님께선 지금의 내 재산 만큼을 물려받아 몇 갑절 늘렸는데, 반대로 내 아버님께선 지금의 내 재산 이하로 까먹었지요. 두 양반의 재산을 합해서 반으로 나누면 현재의 내 재산쯤 될 거요.

 

소크라테스 그러시군요. 케팔로스 님께선 돈에 대한 집착이 그리 크지 않을 것 같아서 여쭤봤습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어르신처럼 돈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취하지요. 반면 스스로 돈을 모은 사람들은 남다르게 돈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것은 시인이 자기 작품에 대해 애착을 느끼고 부모가 자식에 대해 애정을 갖는 것과 같지요. 같은 재산이라도 본인이 애써 모았다는 생각이 들면 더 집착하게 되고, 그래서 곧잘 사람들로부터 야박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재산을 지키는 데 몰두한 나머지 인심을 잃게 되는 경우지요.

그런데,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 재산이 많아 덕 본 것 중, 어르신께서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입니까?

 

케팔로스 소크라테스 선생,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말이오, 전에 없던 걱정과 두려움이 생기는 법이오. 그러니까 사후 세계에 대해 관심이 생겨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고는 한다오. 그래서 자신이 살아오는 동안 뭐 잘못한 것은 없는지, 있다면 그것 때문에 벌을 받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지요. 하지만 일생 동안 떳떳이 살아온 사람은 좀 달라요. 그런 사람이라면 아무 거리낌도 없이 미래에 대해 밝은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지요. 핀다로스3)의 말대로, 밝은 희망이 늙음을 달래주는 것이오. ‘희망이 정의와 성스러움 속에 사는 사람의 영혼을 달래준다’는 말은 참으로 멋진 말이오.

재산은 이럴 때 아주 유용하다오. 훌륭하고 선한 사람에게 돈의 가치는 최고조로 발휘되는 법이 오. 삶이 풍족하므로 남을 속이거나 해칠 일도 없지요. 신께 제물을 바치지 못해 안절부절할 이유도 없거니와 남의 돈을 갚지 못해 불안감에 싸여 죽을 일도 없으니 그런 복이 또 어디 있겠소.

 

소크라테스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케팔로스 님! 방금도 핀다로스의 말을 빌어 말씀하셨지만, 정의(定義)란 무엇입니까? 빌린 것을 갚거나 거짓말하지 않는 것을 정의라고 봐도 될까요?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가 좀 말랑말랑해서, 장소와 시간에 따라 이럴 땐 이렇고 저럴 땐 저런 게 정의일까요?

가령, 어떤 친구가 내게 무기를 맡겼다고 가정해보죠. 당시 그 친구는 멀쩡했어요. 그런데 무기를 돌려받기 위해 찾아왔을 때 그 친구의 정신 상태가 이상해져서 미친 사람이 됐을 경우, 무기를 돌려 줘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아마 사람들은 미친 사람에게 정직하게 대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일은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케팔로스 맞는 말이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문제가 좀 복잡해지는군요. 진실을 말하는 것이나 빚을 갚는 일 따위가 정의의 의미 규정이 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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