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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야스퍼스와 거트루트 부부>

 

4장 카를 야스퍼스: 찬사

 

 

평화상 수상과 찬사

 

 

평화상은 한 개인에게 수여되기도 하지만, 역사를 통해 항상 모험적인 불확실한 과정을 내딛는 데 헌신하는 사람으로부터 아직 분리되지 않은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작품에 수여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평화상을 시상할 때는 찬사가 따라야 합니다. 찬사의 과제는 작품보다는 그 저자를 칭송하는 것입니다.(157)

 

키케로는 찬사에서는 다만 관련 개개인(인물)의 위대성과 품위를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한 사람이 행하거나 창조한 어느 것보다도 그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경우 찬사는 그에게 속한 품위와 연관됩니다.(158)

 

우리는 여기에서 타당하게 논의하기 위해서 주관성과 객관성을 구별하는 게 아니라 개인과 인물을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개별 주체가 객관적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공중에 맡기는 것은 사실입니다. 주관적 요소, 이를테면 작품으로 이어지는 창작과정은 공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학문적일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감내하는 삶의 결실이라면 생생한 행위와 말은 작품에 나타납니다.(159)

 

인격적 요소는 주체의 통제 영역 밖에 있으며, 한낱 주관성과는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주관성 자체는 객관적으로파악하기 훨씬 쉬우며, 주체의 의도에 따라 훨씬 더 완전히 좌우됩니다.(160)

 

 

후마니타스와 공공영역

 

 

인격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인격은 파악하기 매우 어려우며, 아마도 그리스어의 다이몬과 가장 비슷할 것입니다. 악마적인 것을 지니지 않은 이 다이몬, 그리고 한 인간에 내재된 이 인격적 요소는 공적 공간이 존재할 때 나타납니다. 이러한 주장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정치적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확장되는 공공영역의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160)

 

이 공적 공간이 또한 정신 영역이며, 로마인들이 말하는 후마니타스(인간애)는 그것에 명백히 존재합니다. 후마니타스란 객관적이지 않은 채 정당한 것이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그것을 인간다움의 극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칸트와 야스퍼스는 이것을 후마니테트라고(인간성) 생각했습니다. 신체와 정신의 다른 모든 재능이 시간의 파괴성에 소멸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획득하면 사람을 결코 떠나지 않는 정당한 인격이 바로 후마니타스입니다. 사람들은 후마니타스를 결코 고독 속에서 획득하는 것도 아니고 작품을 공중에게 제공함으로써 획득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인격을 공공영역으로의 모험에 바침으로써 후마니타스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161)

 

공공영역에 대한 야스퍼스의 주장은 독특합니다. 한 철학자가 그 주장을 했고, 그 주장은 철학자로서 그의 모든 활동의 기저를 이루는 확신, 철학과 정치가 모든 사람과 연관된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철학과 정치는 이러한 것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철학과 정치가 공공영역에 속해 있는 이유입니다.(162)

 

철학자는 과ᅟᅡᆨ자와 달리 자신의 의견에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정치인과 유사한 위치에 있습니다. 정치인은 자기 민족에게만 책임지는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반면에 야스퍼스는 적어도 1933년 이후 집필한 자신의 모든 저작에서 언제나 모든 인류 앞에서 자신에 대해 책임지고 있는 듯이 글을 써왔습니다.

 

 

야스퍼스의 경우 책임은 짐이 아니며 도덕적 명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책임은 증명을 하고 애매한 것을 명확시 하며 어둠을 밝히는 것을 천성적으로 즐거워하는 데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공공영역에 대한 그의 주장은 궁극적으로 그가 빛과 명확함을 사랑하고 있는 결과일 뿐입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빛을 사랑해 왔기 때문에 그 빛은 그의 인격 전체를 드러나게 합니다.(163)

 

 

야스퍼스의 불굴의 정신: 독립성과 인간애

 

 

야스퍼스는 1933년 훨씬 이전부터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유명 인사였지만, 히틀러 시대와 특히 그 후 몇 년 동안만 글자 그대로 완전히 공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상상하듯이 야스퍼스는 시대상황 때문에 공적 인물이 된 것만은 아닙니다.(164)

 

당시 야스퍼스는 완전히 홀로 있었지만, 그가 대표하고 있던 것은 독일이 아니라 독일 속에 남아있던 후마니타스였습니다. 마치 불굴의 정신을 지닌 야스퍼스만이 이성이 인간들 사이에서 창조하고 확보하는 공간을 밝힐 수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이 공간의 빛과 폭은 다만 한 사람만이 그 속에 남아 있다 할지라도 존속될 수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야스퍼스가 종종 말한 바와 같이 개인은 혼자 힘으로 이성적일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결코 고립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러한 고독을 존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보증했던 후마니타스는 그의 사상의 근원이 된 영역에서 생겨난 것이었지만, 이 영역은 결코 전인미답의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야스퍼스가 유명하게 된 이유란 그가 이성과 자유의 영역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차마 영구적으로 살 수 없었던 어느 누구보다도 이 영역에서 안락함을 더 많이 누렸으며 이 영역에 대해 훨씬 더 확실하게 정통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존재는 빛 자체를 향한 정열로 지배되었기 때문에 그 숨겨진 빛의 근원에서 어둠을 비추는 빛과 같은 존재일수가 있었습니다.(165)

 

 

 

공공영역으로의 모험

 

야스퍼스는 자신이 편안하게 느꼈던 후마니타스의 공간을 탐구하기 위해서 위대한 철학자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는 이 철학자들과 함께 정신영역을 확립함으로써 이들의 고움에 대해 훌륭하게 보상했습니다.

 

야스퍼스는 이러한 난관 속에서 현대인이 자신에게 중대한 과거와 전반적인 관계를 유지한채 시간의 계기를 공간적 대체 기념으로 전환시켰습니다.(170)

 

그 결과 멀고 가까움의 관계는 우리와 철학자들 사이에 놓여 있는 세기의 길이에 달려 있지 않게 되며, 오히려 우리가 이 정도의 영역에 들어가 자유스럽게 선택하는 지점에 달려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정신영역은 이 땅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확대되고 지속될 것입니다.(171)

 

한때 야스퍼스가 후마니타스 영역으로 인도했던 사람들을 대신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스티프터는 당시 그들의 마음속에 있던 것을 저보다도 더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사람에 대한 놀라움이 터져 나왔으며 그 사람에 대한 위대한 찬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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