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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1강~4강 발제 15.10.20.hwp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1강, 2강 / 푸코 / 2015.10.20.(화) / 화니짱 자체 발제 (난장버전)
1강. 1976년 1월 7일
이론이 총체성의 용어로 재파악됐을 때에는 반드시 억제 효과로 귀결되었습니다. 따라서 지난 15년 동안 일어났던 일의 첫 번째 특징은 비판의 국지적 성격입니다. 여기서 국지적 성격이란, 비판의 유효성을 정립하기 위해 이른바 그 어떤 공통 체계의 허락도 필요로 하지 않는, 중심화되지 않은, 일종의 자율적인 이론적 생산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국지적 비판은 (예속된) 앎의 회귀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기능적 일관성이나 형식적 체계화 속에 파묻히거나 은폐된 역사적 내용들을 가리킵니다. (23) 계보학은 이와 같은 앎들의 봉기와 관련됩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우리 사회 같은 사회 내부에서 조직된 과학적 담론의 제도와 기능에 관련되어 있는 것인 중심화하려는 권력의 효과에 맞서는 봉기입니다.(26)
당신이 과학이다라고 말한 바로 그 순간에, 당신은 어떤 유형의 앎을 자격 박탈하는가? 당신이 이 담론을 말하는 나는 과학적 담론을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학자이다‘라고 말하는 바로 그 순간에, 당신은 어떤 이론적 - 정치적 전위를 왕좌에 앉혀 이것을 앎의 대규모적이며 유통적이며 불연속적인 모든 형태로부터 분리시키려고 하는가? (27)
이에 맞서는 계보학에서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의 분석이 경제로부터 연역가능한가? (31) 저는 그 공통점을 권력 이론에서의 ‘경제주의’라 부르려 합니다. 정치권력의 구성은 일련의 계약적 교환으로 분류되는 사법적 작동 모델 위에서 이뤄집니다. 결국 권력과 재산, 권력과 부 사이에는 명백한 유비관계가 존재하며, 이것이 이론들 전체에 관통하고 있습니다.
맑스주의의 경우에는 정치권력이 경제적 기능성에 종속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연구에서 쟁점이 되는 문제는 이렇게 나뉩니다. 첫째. 권력은 늘 경제에 의해 목적이 정해지고 기능하는가? 둘째. 권력은 상품을 모델로 삼고 있는가? (33) 아니면 권력을 분석하기 위해 완전히 상이한 도구를 사용해야만 하는가?
이에 대해 저는 권력은 주어지거나 교환되거나 되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행사되는 것이며, 행위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권력은 일차적으로 경제적 관계들의 유지와 갱신이 아니라 그 자체에 있어서 힘 관계일 뿐이라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만일 권력이 행사되는 것이라면, 그 행사란 무엇일까요? 헤겔, 프로이드, 라이히 등이 답한 것은 권력이란 본질적으로 억압하는 것이라는 대답입니다. (이 정의를 보노라면, 현대의 담론은 결국 아무것도 새롭게 고안해내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가설에 맞서는 두 번째의 가설은 권력이란 전쟁이다, 다른 수단에 의해 계속되는 전쟁이라는 가설입니다. (34) 이것은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째. 권력관계는 전쟁에 의해 확립된 일정한 힘관계에 정박되어 있다. 둘째. 정치권력의 역할은 이 힘 관계를 일종의 조용한 전쟁을 통해 제도들, 경제적 불평등들, 언어, 심지어 각자의 신체에 계속 기입해 넣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셋째. 평화상황의 내부에서 정치투쟁이나 권력에 관련된 항쟁과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전쟁의 계속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반대로, 최종 결정은 전쟁에서, 즉 무기가 최후의 판관이 되는 힘겨루기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최후의 전투가 정치를 종식시킵니다.
권력을 분석할 때 경제주의적 도식에서 벗어나려 하자마자 우리는 두 개의 가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첫째는 권력메커니즘이 억압이라는 것(라이히의 가설). 둘째는 권력관계의 토대가 힘들 사이의 전쟁이라는 것(니체의 가설). 두 가지 가설은 양립하기 힘들지 않으며 오히려 거꾸로 서로 결합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억압은 전쟁의 정치적 결과가 아닐까요?(36)
따라서 권력분석에 관한 다음의 두 가지 커다란 체계를 대립시켜 볼 수도 있습니다.
첫째는 18세기 철학자들의 체계인데, 사람들이 원초적 권리를 양도함으로써 주권을 구성하는 것이 권력이라 파악하고 계약이 정치권력의 모태라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성된 권력이 스스로 벗어날 때, 즉 계약의 조항 자체를 벗어날 때는 압제라고 간주합니다.
둘째는 정치권력을 계약-압제가 아니라 거꾸로 전쟁-억압이라는 도식에 입각해 분석하려고 합니다. 이 지점에서 억압은 계약과 관련된 압제, 즉 남용이 아니고 지배관계의 단순한 효과이자 연속입니다.
요컨대 권력분석에는 두 개의 두식이 있습니다. 계약-압제의 도식은 사법적 도식인 반면에, 전쟁-억압 또는 지배-억압의 도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앞의 도식처럼 합법과 비합법의 대립이 아니라 투쟁과 복종의 대립입니다. 제가 최근 몇 년간 강의했던 모든 것은 투쟁-억압의 도식 안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억압과 전쟁이라는 두 개념에 대해서 다시금 상세히 검토하고 그 의미를 대폭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올해 강의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시민사회에서의 전쟁에 대한 이론가로 간주되는 사상가들, 제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 사상가들인 니콜로 마키아밸리와 토머스 홉스를 제외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전쟁을 권력 작용의 원리로 간주하는 전쟁이론을 인종 문제라는 맥락에서 다시 살펴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구에서 정치권력을 전쟁으로서 분석할 가능성이 처음으로 보여졌던 것은 인종의 이항 대립에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종의 투쟁과 계급의 투쟁이 정치사회 내부에서의 전쟁 현상과 힘관계를 가늠하는 데 곧잘 사용되는 두 개의 거대한 도식이 됐던 19세기 말까지로 거슬러 갈 것입니다. (38)
2강. 1976년 1월 14일
5년 전부터 지금까지는 대체로 규율을 연구했습니다. 앞으로 5년간은 전쟁, 투쟁, 군대를 연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의 강의에서 제가 말하려 했던 것에 관해 요점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1970년-71년 이후 제가 두루 살피려고 했던 것은 권력의 ‘어떻게’였습니다. ‘권력의 어떻게’를 연구한다는 것은, 요컨대 두 개의 좌표나 두 개의 극한 사이에서 권력의 메커니즘을 알기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한편에는 권력의 범위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법의 규칙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이 권력이 산출하고 이끄는 진실의 효과들이 있는데, 이런 진실의 효과들은 자기 차례가 되면 이 권력을 연장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권력, 법, 진실로 이뤄진 삼각형이 있습니다. (40)
철학, 그리고 권력의 한계
진실담론은 어떻게, 혹은 진실의 대표적 담론이라고 이해된 철학은 어떻게 권력의 법적 한계를 정할 수 있는가? 달리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 이토록 강력한 효과를 띤 진실담론을 생산 할 수 있는 이런 권력 유형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40)
권력은 진실의 연구를 제도화하고, 진실의 연구를 직업화하며, 이것에 보수를 지불합니다. 결국 우리는 부를 생산하기 위해 진실을 생산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진실이 법률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마찬가지로 진실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권력의 특정한 효과들을 실어나르는 진실담론들에 따라서 재판받고, 선고받으며, 분류되고, 임무들을 강요받으며, 일정한 삶의 방식이나 일정한 죽음의 방식까지도 정해집니다. (41)
법과 왕권
법과 권력 사이의 관계와 관계해서는 하나의 일반적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사법적 구조물이 수립됐던 것은 왕권의 요청으로, 왕권의 이익을 위해, 왕권의 정당화를 위해서였다는 겁니다. 반대로 이후 몇 세기 동안 이 사법적 구조물이 왕의 통제를 벗어나 왕권에 반기를 들었을 때 문제가 된 것은 늘 ‘왕의’ 권력의 한계이며, 그 ‘왕의’ 특권의 문제입니다. 법 사상과 앎의 이러한 거대한 구조물에서 문제가 된 것은 여하튼 늘 왕권이었습니다.
법률, 지배, 예속화
그리고 왕권에 관해 다음 두 가지 방식으로 문제가 제기됩니다.
첫 번째는 어떻게 군주의 권력은 절대적일 때조차도 기본법에 완전히 적합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두 번째는 그와 반대로 자기 권력의 정당성을 보존하려면 구주는 이 권력을 어떤 한계 안에서 행사해야만 하는 가를 보여주기 위해. 중세 이래로 법 이론은 본질적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확립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즉 주요 문제이자 중심문제는 군주가 어떻게 실제로 주권의 살아 있는 신체였는가 하는 문제로, 이 주권문제를 둘러싸고 법이론 전체가 조직됐습니다. 최종적으로 법체제는 지배의 사실과 그 귀결들을 축소하거나 감추어 예속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주권 이 주권에 종속된 개인의 복종이라는, 법에 중심적인 이 문제를 단락시키거나 피하는 것이며, 주권과 복종 대신에 지배와 예속화의 문제를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43)
권력분석: 방법의 문제
사법적 분석의 일반적 노선을 단락시키거나 우회하려는 듯한 이 노선을 따르려면 방법상 몇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첫 번째 수칙. 권력의 행사가 점점 사법적이지 않게 되는 끄트머리에서 권력을 파악하기.
두 번째 수칙. 권력을 의도나 결정의 수준에서 분석하지 않기. 바꿔 말하면 권력을 내부에서부터 파악하려고 하지 않기. 오히려 신체-힘-에너지-물질-욕망-사유의 다양체에서 출발해 조금씩, 점진적으로, 실제로, 물질적으로 주체들이 어떻게 구성됐는가를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요컨대 권력이 뿌리내리고 그 실제적 효과를 생산하는 곳에서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학자들에게 문제는 개인들과 의지들의 다양체에서 출발해 단 하나의 의지와 신체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홉스는 국가를 구성하는 리바이어던의 혼으로서 주권이라는 것에 집중한다면, 저는 오히려 주변부에 있고 다양한 신체들을, 권력의 효과들에 의해 주체로서 구성된 이 신체들을 탐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수칙. 권력을 대규모적이고 동질적인 지배의 현상으로 파악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권력을 다른 사람들에 대한 한 개인의 지배, 다른 계급에 대한 한 계급의 지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권력은 부나 재산처럼 결코 전유되지 않습니다. 권력은 기능합니다. 권력은 그물망을 통해 행사되며, 이 그물망 안에서 개인들은 단순히 유통하는 게 아니라 늘 권력에 복종하고 또한 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장에 늘 놓여 있습니다. 개인들은 늘 권력의 중계항입니다. 바꿔 말하면, 권력은 개인들을 경유합니다만, 권력은 개인들에게 들러붙는 것이 아닙니다. (47) 개인을 일종의 기본원자, 권력이 들러붙거나 타격하기도 하는 재료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개인이란 권력의 일차적인 효과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의 효과라는 의미에서 권력의 중계항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권력은 자신이 구성해 놓은 개인을 경유하는 것입니다. (48)
네 번째 수칙. 정치적 이윤, 경제적 효용이 체제를 견고하게 만들었고, 이 체제를 기능시킵니다. 부르주아지는 경제적으로 그다지 이익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처벌이나 갱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범죄자를 통제하고 추적하고 처벌하며 교정시키는 메커니즘 전체로부터 일반적인 경제적-정치적 체계 내부에서 기능하는 이익을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로 유의해야 할 것: 권력에 관한 연구를 주권의 사법적 구조물 쪽으로, 국가의 기구 쪽으로, 또는 권력에 수반되는 이데올로기 쪽으로 향하게 해서는 안 된다. - 저는 권력의 분석을 주권이 아니라 지배 쪽으로, 물질적 작동자 쪽으로, 예속의 형태 쪽으로, 이 예속의 국지적 체계가 어떻게 접속되고 이용되는가 하는 쪽으로, 마지막으로 앎의 장치들 쪽으로 향하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을 리바이어던 모델의 바깥에서, 법적 주권과 국가제도에 의해 획정되는 장의 바깥에서 연구해야만 합니다. 권력을 지배의 기술과 지배의 전술에서 출발해 분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권이론
이와같은 우리가 벗어나야만 하는 ‘주권에 관한 법적-정치적 이론’은 중세에서 시작됐습니다. 로마법의 부활로부터 시작됐고, 군주제와 군주의 문제를 둘러싸고 구성됐습니다. 이 주권 이론은 4가지 역할을 했습니다.
첫째. 주권 이론은 봉건 군주제의 권력메커니즘이라는 실제의 권력메커니즘을 참조했다.
둘째. 주권 이론은 대규모 행정 군주제의 구성을 위한 도구인 동시에 그것의 정당화에도 도움이 되었다.
셋째. 16세기부터, 특히 17세기부터, 종교전쟁의 시대에 주권이론은 두 진영에 유포된 무기로, 왕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이용됐다.
넷째. 18세기. 장-자크 루소와 동시대인들. 절대 군주제에 대항해 의회민주주의의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주권이론 이용. 프랑스 혁명 당시에도 주권이론 중요.
규율권력
17-18세기에 권력의 새로운 기제가 발명됨. 새로운 도구와 상이한 기구들, 제 생각에 이것은 주권관계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이 새로운 권력의 기제는 토지와 그 생산물보다는 신체와 신체가 행하는 것(시간, 노동)을 추출하는 것을 가능케 한 권력 메커니즘입니다. 산업자본주의와 이것과 상관적인 사회의 유형이 성립되기 위한 이 권력이 바로 ‘규율 권력’입니다. (56) 교율권력과 충돌함에도 불구하고 주권이론은 이데올로기로서, 그리고 대규모 법전들의 조직원리로서 존속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18-19세기에도 주권이론은 군주제에 맞서고 규율사회의 진전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물에 맞서는 항구적인 비판도구였습니다.
둘째. 규율적 구속이 지배의 메커니즘으로서 행사되는 동시에 권력의 효과적인 행사로서는 감춰져야만 했던 때부터, 주권이론은 사법적 기구 속에서 주어지고, 법전들에 의해 부활-보완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근대 사회에서 권력은 주권의 공법[공적인 법권리]과 규율의 다형적 기제 사이의 이런 이질성의 놀이 속에서 행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규율은 법률의 코드가 아니라 규범화[자연적 규칙의 담론]의 코드를 정의합니다. 그러고 사법 체계가 아니라 인간과학의 장이 될 이론적 지평을 필연적으로 참조합니다. 그리고 이런 규율의 법해석은 임상적 앎의 판례일 것입니다.
법과 규범
인문학의 담론을 근본적으로 가능케 했던 과정은 완전히 이질적인 두 개의 메커니즘, 두 유형의 담론이 병치되고 대결하는 과정이었다. 주권의 주위에 법의 조직이 있으며 다른 한편에는 규율이 행사하는 강제의 기제가 있습니다. 규범화의 과정이 점점 법률의 과정을 식민화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규범화 사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규율에 의한 규범화가 주권의 사법체계와 점점 더 부딪치고 있다. 따라서 일종의 중재적 권력과 앎이 점점 필요해진다.)
따라서 규율권력에 대항해, 우리가 향해야 할 방향은 반규율적이지만 동시에 주권의 원리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법의 방향으로 향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저는 억압개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억압개념을 아무리 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싶다 하더라도, 이 개념은 여전히 법적-규율적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한에서 이 개념이 내포하는 주권에 대한 사법적 참조와 규범화에 대한 규율적 참조라는 이중의 참조에 의해 출발부터 오염되고 망가지고 썩은 것이었습니다. (60)
3강
주권이론과 지배의 작동자
주권이론은 주체를 전제합니다. 즉, 주권이론은 권력의 본질적 통일의 정초를 목표로 삼으며, 늘 법률의 선결요소 속에서 전개됩니다. 따라서 세 개의 원초성이 있는 것입니다. 예속화되어야 할 주체라는 원초성, 정초되어야 할 권력의 통일이라는 원초성, 존중되어야 할 정당성이라는 원초성.
첫째. 주체들에게 어떻게, 왜, 어떤 권리의 이름으로 스스로 예속화되도록 내버려뒀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예속화의 관계가 어떻게 주체들을 제조하는가를 보여줘야만 합니다.
둘째. 권력의 원천인 일종의 주권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지배의 상이한 작동자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의존하고, 서로를 참조하고, 어떤 경우에는 서로를 보강하고 서로에게 수렴되며 또 다른 경우에는 서로를 부정하거나 서로를 말살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셋째. 주권의 원천보다 오히려 지배관계를 부각시킨다는 것은 지배관계[의 근거]를 그 근본적인 정당성을 구성하는 것 속에서 추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지배관계를 확고하게 해줄 수 있는 기술적 도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요컨대 법률, 통일, 주체라는 세 가지 전제, 주권을 권력의 원천이자 제도의 기반으로 만드는 이 세 가지 전제보다는 오히려 기술, 기술의 이질성, 기술의 예속화 효과라는 세 가지 관점을 취해야만 합니다. (64)
권력관계의 분석틀로서의 전쟁
정치란 다른 수단에 의해 계속되는 전쟁입니다. 이 테제에는, 클라우제비츠에 선행한 이 테제의 존재 자체 속에는 일종의 역사적 역설이 있습니다. 중세 시대를 벗어나면서부터 비로소 군사제도를 갖춘 국가의 출현을 볼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은 전쟁의 일상적이고 전반적인 실천을, 전쟁관계가 부단히 가로지르던 사회를 대체했습니다. 역설은 이 변형의 직후에 생겨납니다. 그것은 그때까지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었던 법학적-철학적 담론과는 아주 상이한 역사적-정치적 담론으로서, 전쟁을 항구적인 사회적 관계이자 모든 권력관계와 권력제도의 근간으로 이해한 담론이었습니다. 이 담론은 16세기의 내전과 종교전쟁이 종결된 뒤에 등장했고, 17세기 잉글랜드 부르주아 혁명의 순간에 이미 명확하게 정식화됐습니다. 곧이어 17세기 말 프랑스에서 루이14세의 절대행정 군주제의 수립에 맞서는 프랑스 귀족의 뒤떨어진 전쟁 속에서 등장합니다. 이 담론의 수호자들은 대개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들인 동시에 서로 이질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이 담론을 19세기 말의 인종주의적 생물학자들과 우생학자들에게 볼 수 있습니다.(70)
우선 분명히 전쟁은 국가의 탄생을 주재했습니다. 법률은 실제의 날짜와 무시무시한 영울을 지닌 실제의 전투, 학살, 정복에서 태어났습니다. 법률은 평화회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법률 안에서 전쟁은 모든 권력메커니즘의 내부에서 계속 맹위를 떨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러서로 전쟁 상태에 있고, 전선이 사회 전체를 연속적이고 영구적으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바로 이 전선이 우리들 각자를 한 진영이나 다른 진영에 위치시킵니다. 중립적 주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가피하게 누군가의 적인 것입니다. (71)
사회의 이항 구조
하나의 이항 구조가 사회를 가로지릅니다. 이는 토마스 홉스가 사회체를 유기체라는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로 서술한 것과 대립됩니다. 즉 사회체는 자연의 필요에 의해서든 기능적 요구에 의해서든 지배된다고 우리더러 믿게 만들려고 하는 이 거짓말 아래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을 다시 발견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오래 전부터 전쟁이 하나의 영구적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전투의 전문가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결정적인 전투는 여전히 준비되고 있으며, 우리는 이 결정적인 전투에서 승리해야만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눈앞에 있는 적들이 우리를 계속해서 위협 중이고, 우리는 화해나 평화 회복 같은 것에 의해서는 전쟁의 종식에 이를 수 없으며, 우리가 실제로 승리자가 되는 한에서만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담론에서는 한편으로 어느 한 진영에 속함으로써 진실을 더 잘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진영으로의 귀속이야말로, 즉 편향된 위치야말로 진실에 대한 판독을 가능케 하며,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세계 속에 있다고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 즉 적이 그렇게 믿도록 만드는 환상과 오류를 고발할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궁극적으로 이런 한에서만 진실이 추구될 것입니다. 아니 진실은 궁극적인 승리를 위한 균형파괴의 힘을 부여합니다. 즉 진실은 힘의 추가이며, 힘 관계에서 출발해서만 펼쳐집니다. 평화로서의 보편성은 그리스 철학 이래로 늘 철학적-법학적 담론을 전제했습니다만, 이제 이런 보편성은 근본적으로 의문에 부쳐지거나 아니면 그저 단순히 냉소적으로 무시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비대칭이 박혀 있는 법을 세우고, 힘관계와 연결된 진실을 정초하고, 무기로서의 진실, [보편적이 아닌] 특이한 법을 정초하는 것이 말하는 주체의 관심사입니다. 말하는 주체는 전쟁을 하는 주체입니다.
역사적-정치적 담론, 영구적 전쟁의 담론
중요한 것은 창설된 것으로서의 정의나 부과된 것으로서의 질서, 안정된 것으로서의 제도 등의 형태들 아래에서 은폐되어 있으나 여전히 깊이 새겨진 채 남아있는 현실의 투쟁, 실제의 승리와 패배의 잊혀진 과거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모든 것을 힘, 권력, 전쟁이라는 메커니즘과 사건으로 영원히 해소하는 역사의 무한한 비상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담론은 곧 거대한 신화와 접합됩니다. 즉 여전히 비밀리에 계속되는 전쟁의 테마, 이 전쟁을 되살리고 침략자나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부활시켜야만 하는 음모의 테마, 그리고 마침내 힘관계를 역전시켜 몇 백년된 패자는 마침내 용서하지 않는 승자가 된다는 내일의 저 유명한 전투의 테마 말입니다. (묵시록의 짐승, 구세주, 독일의 제3제국, 프랑스의 제3제정)
이 담론은 우왕좌왕하던 귀족들이 지녔던 앎에 거대한 신화적 충동이나 민중적 보복의 열망을 연결시키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 담론은 철학적-법학적 담론에 대립하는, 어쩌면 서구에서 최초의 오롯이 역사적-정치적인 담론입니다. 이 담론에서는 진실이 오롯이 당파적 승리를 위한 무기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변증법과 그 코드화
철학자나 법학자의 담론에 의해 근본적으로, 구조적으로 주변부로 쫓겨났던 이 담론은 16세기말~17세기 중반의 매우 구체적인 상황에서 왕권에 대한 민중과 귀족의 이중의 도전과 관련해 새로운 행로를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이 담론은 엄청나게 증식했고, 19세기 말과 20세기까지 그 범위가 급속도로 확장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헤겔의 변증법은 사회적 전쟁의 확인서인 동시에 선언이자 실천이기도 했던 이 역사적-정치적 담론에 대한, 철학과 법학에 의한 식민지화와 권위주의적 평정을 이룹니다. 즉 투쟁, 전쟁, 대결을 모순의 논리로 코드화했습니다.
인종투쟁의 담론과 그 기록
절서와 평화 아래에서 전개되는 이 전쟁, 우리 사회를 동요시켜 이항의 양태로 쪼갠 이 전쟁은 근본적으로 인종전쟁입니다. 사회체는 근본적으로 두 인종 위에서 접합됩니다. 17세기부터 이 관념은 사람들이 모든 형식 아래에서 사회적 전쟁의 얼굴과 메커니즘을 탐구할 때의 모체가 됐습니다.
이 이론은 유럽의 민족운동, 주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거대한 국가기구들에 맞선 민족들의 투쟁과 접합됩니다. 그리고 유럽의 식민지 정책과도 접합됩니다. 바로 여기에 이 영구적 투쟁과 인종투쟁 이론의 생물학적인 첫 번째 전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두 번째 전사를 발견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전쟁이라는 거대한 테마와 이론에서 출발해 작동되어 19세기 초반부터 확장되며, 스스로를 계급투쟁으로 정의하기 위해 모든 인종 갈등의 흔적들을 지워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 흔적을 복원하려고 노력할 텐데, 그것은 이 투쟁들의 분석을 변증법이라는 형태로 되찾으려는 것, 인종 간 대결이라는 이 테마를 진화론과 생존투쟁 이론 속에서 되찾으려는 시도들을 넘어서서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 속에서 양극성으로 이항 균열로 간주하는 것은 서로 외적인 두 인종의 대결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인종이 상위인종과 하위인종으로 둘로 쪼개진 것입니다. 즉 이 인종주의는 권력을 장악하고 규범[정상]을 정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인종이 이 규범과의 관계에서 일탈한 인종, 생물학적 [유전] 형질에 있어서 위험하다고 간주된 인종에 대해 행하는 전투의 담론입니다.
이제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의 담론은 폐기되고) “우리는 사회에 맞서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뜻에 반해 우리 자신이 구성하고 있는 중인 이 다른 인종, 이 하위-인종, 이 대항-인종의 모든 생물학적인 위협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라고 주장됩니다. 바로 이 순간에 인종주의적 테마군은 한 사회 집단이 다른 사회 집단에 맞서는 투쟁의 도구로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보수주의의 전반적 전략에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에 최초의 그 형태에 비교해보면 역설적이게도 국가인종주의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한 사회가 자기 자신에 대해, 사회의 고유한 구성요소에 대해, 그 고유한 산물에 대해 행사하는 인종주의, 영구적인 정화라는 내적 인종주의, 이것이 사회적 규범화의 근본 차원 중 하나입니다.
4강.
역사적 담론과 그 옹호자들
역사의 전통적 기능은 로마 초기의 연대기부터 중세 후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어쩌면 17세기와 그 뒤에까지도, 권력의 권리를 말하는 것, 그리고 권력의 광채를 강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중의 역할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역사를 말함으로써 법률의 연속성에 의해 사람들과 권력의 기능에서 법률의 연속성을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권력의 영과을 통해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입니다. 법률의 멍에와 영광의 광채, 이 두 가지 면에 의해 역사의 담론은 권력의 강화의 일정한 효과를 겨냥하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에는 역사적 담론의 이런 이중적 기능을 이 담론의 전통적인 3가지 축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계보학적 축은 왕국의 유구함을 말하고, 위대한 선조를 되살리며, 제국이나 왕조를 창설한 영웅들의 위엄을 재발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계보학은 왕과 왕족의 이름을 그들 이전의 모든 명성을 갖고 드높여야 합니다. 그 영광은 왜소한 후계자들에게도 전파됩니다.
또한 기억화의 기능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권력의 의례의 일종입니다. 이런 기록은 왕이 행하는 모든 것이 말해질 수 있고 말해질 값어치가 있으며 영속적으로 기억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역사는 기억을 가능케 하며, 기억을 가능케 함으로써 몸짓을 담론에 기입합니다.
세 번째 기능이란 예(법식 례)를 유통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법률, 또는 되살아난 법률입니다. 예는 이른바 법률이 된 영광이며, 한 이름의 광채 속에서 기능하는 법률입니다. 법률과 광채를 하나의 이름에 일치시킴으로써, 예는 권력이 이것에 의해 강화될 수 있게 되는 일종의 구두점이나 요소로서 힘을 발휘하고 기능합니다.
인도-유럽적 권력 표상의 체계 안에는 영속적으로 서로 결합되어 있는 두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 사법적 측면. 여기서 권력은 의무에 의해, 법률에 의해 속박합니다.
둘째. 마술적 기능, 역할, 효능을 갖습니다. 여기서 권력은 눈부시게 하며, 망연자실하게 만듭니다.
역사란 권력의 담론이며, 권력이 사람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의무의 담론입니다. 역사는 또한 광채의 담론이기도 한데, 이것에 의해 권력은 매혹하고 공포에 떨게 하고 꼼짝 못하게 만듭니다. 요컨대 속박하고 꼼짝 못하게 만들면서 권력은 질서를 창설하고 보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이르기까지도 여전히 역사는 주권의 역사, 주권의 차원과 기능 속에서 전개되는 역사입니다. 주피터(속박의 신, 벼락의 신)적인 역사였던 것이죠.
인종투쟁의 대항역사
중세의 말기. 정확하게는 16-17세기 초에 등장한 이 역사적 담론은 더 이상 주권의 담론이 아니고, 인종의 담론조차 아니며, 인종들에 관한 담론, 인종들 간의 대결 담론, 민족들과 법률들을 통한 인종투쟁의 담론입니다. 이런 한에서 저는 이것이 그때까지 구성됐던 주권의 역사에 절대적으로 안티테제인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반로마적인 대항역사입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벌률 아래에서, 법률을 통해 이 인종들의 역사, 인종들 간의 영속적인 대결의 역사 속에서 주권의 역사가 보여준 인민과 그 군주 사이의, 민족과 주권자 사이의 암묵적인 동일화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주권은 하나의 특별한 기능을 갖게 됩니다. 주권은 결속하는 것이 아니라 예속시키는 것이 됩니다. 한쪽의 역사는 다른 쪽의 역사가 아니게 되는 겁니다. 결국 역사가 군주의 영광을 찬양함으로써 그 힘을 강화시켰던 일반적 의무의 거대한 형식은 파탄나고, 그와 반대로 법률은 한쪽의 승리와 다른 족의 복종이라는 두 얼굴을 지닌 현실로 나타나게 됐습니다.
이 대항역사는 의무를 부과하는 주권자의 법률의 통일성을 해체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영광의 연속성을 산산조각 냅니다. 인종들의 투쟁 서사와 더불어 생겨난 이 대항역사는 찬란한 눈부심의 맞은편 그늘에서 출발해 말할 것입니다. “우리 뒤에는 연속성이 없다. 우리 뒤에는 법과 권력이 자신의 힘과 광채 속에서 스스로를 보여주는 곳인 위대하고 영광스런 계보가 없다. 우리는 그늘에서 나왔다. 우리는 권리를 갖지 못했으며, 영광도 갖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입을 열고 우리의 역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 담론은 승리보다는 패를 열거할 것입니다. 이 패배 아래에서 사람들은 바로 조상들의 권리와 잃어버린 영광을 회복히켜줄 옛 약속의 실현과 약속된 땅을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머리를 조아립니다.
로마적 역사와 성서적 역사
이 인종전쟁의 새로운 담론과 함께, 우리는 로마인의 정치적-전설적 역사보다는 유대인들의 신화적-종교적 역사에 훨씬 더 가까운 어떤 것이 점점 뚜렷해짐을 보게 됩니다. 적어도 중세 후반 이후 성서는 왕의 권력과 교회의 전횡에 대한 종교적-도덕적-정치적 반대를 분절했을 때의 거대한 형식이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중세 시대에 예루살렘은 늘 모든 소생된 바빌론(로마 황제)에 반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서는 법률과 영광에 맞서 봉기하게 만드는, 즉 왕들의 부당한 법률과 교회의 화려한 영광에 맞서 봉기하게 만드는 말이었습니다.(95)
이 역사적 담론은 로마사에 대립된 대항역사입니다. 그 이유는 기억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기 때문입니다. 로마 유형의 역사에서 기억은 非망각, 즉 권력의 광채를 영속적으로 과대포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새로 나타난 역사는 고의로 왜곡되고 은폐됐기 때문에 감춰졌던 어떤 것을 발굴하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가 보여주려는 것은 권력자, 법률들이 우연 속에서, 전투의 불의 속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왕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승리를 말하기를 원했지만, 자신들의 승리가 바로 “우리의 패배”였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역할은 법률이 기만한다는 것, 왕들이 가면을 쓴다는 것, 권력과 환상을 씌우고 역사가는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봉인된 진실의 판독입니다. 16세기 말에 전개되고 성서적 유형의 역사적 담론이 라고 부를 수도 있는 담론은 사회를 분열시키며, 법률들에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만 정의로운 권리를 말하는 담론입니다. 인종투쟁의 역사에 관한 거대 담론이 탄생했을 때 고전기는 끝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유럽의 모든 민족이 각자가 트로이의 함락에서 생겨났다는 믿음- 즉, 고대 로마와 친조계보를 맺고 있다.] (96)
인종전쟁 담론의 출현과 관련해서 주목할 점은
첫째. 이 담론은 상이한 반대 집단들의 담론으로서, 민중소설 혹은 우주-생물학적 사변의 형태를 띠었다. 이 담론은 중세 시대 말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17세기의 혁명기의 급진사상, 루이14에 맞선 프랑스 귀족의 반동, 19세기 초반의 혁명 이후의 기획으로서 민중 주체의 역사관 출현과 연결될 만큼 극히 유동적이고 다면적입니다. (101)
둘째. 인종이라는 말이 하나의 안정된 생물학적 의미로 고정되지 않았다. 결국 두 집단이 있을 때 두 인종이 있는 것입니다만, 서로 동거함에도 불구하고, 특권, 관습, 권리들, 부의 분배에서 기인하는 차이, 장벽 때문에 서로 뒤섞이지 못하는 집단이 있을 때, 두 인종이 존재한다고 말해지는 것입니다. (102)
셋째. 주권의 역사와 인종투쟁의 역사 사이의 충돌에서 출발해 앎의 장과 내용의 영속적인 간섭과 생산이 일어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간섭을 통해, 또는 이런 간섭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담론이 제가 성서적이라고 부를 역사의 편에, 봉기로서의 역사의 편에 분명히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103)
혁명적 담론
한마디로 사람들은 중세 말기에, 16-17세기에, 역사의식이 여전히 로마 유형이었던 사회, 즉 여전히 주권의 의례와 주권의 신화를 중심으로 했던 사회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이를테면 ‘근대적’ 유형의 사회 속으로 진입했던 것입니다. 주권과 그 창설의 문제가 아니라 혁명, 미래의 해방에 대한 혁명의 약속과 예언을 중심에 둔 역사의식을 가진 사회 속으로 말입니다.
인종주의의 탄생과 변형
인종투쟁이라는 이 담론이 계급투쟁이라는 혁명적 담론으로 대체 되던 19세기 전반에, 계급투쟁이 아니라 생물학적-의학적 의미에서의 인종들 간의 투쟁이라는 용어로 이 오래된 대항역사인 인종투쟁을 재코드화하려던 시도가 벌어진 것은 당연했습니다. 이 새로운 대항역사는 이 담론 속에 늘 현존했던 역사적 차원을 생물학적-의학적 관점 속에서 말살하는 대항역사입니다. 이로써 바로 인종주의가 될 어떤 것이 등장합니다.
이 인종주의는 역사적 전쟁의 테마를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생물학적이고 포스트-진화론적인 테마로 대체한다는 특징을 띠게 됩니다. 전쟁의 의미에서의 전투가 더 이상 아니라,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생존경쟁 말입니다. 언어나 법 등에 의해 두 인종으로 분할된 이항적 사회라는 테마는 정반대로 생물학적으로 일원적인 사회라는 테마로 대체됩니다. 이런 사회는 사회체를 두 부분으로 분할하지도 않으며, 일종의 우연적인 것인 일정한 수의 요소들에 의해 위협받는 사회, 낯선 것이 사회 속으로 침입해 들어온다는 관념, 일탈자는 이 사회의 쓰레기라는 테마입니다. (106)
인종의 순수성과 국가인종주의: 나치적 변형과 소비에트적 변형
‘국가는 필연적으로 정의롭지 않다’는 인종들의 대항역사에서 테마는 결국 정반대의 테마로 변형됩니다. 즉 이제 국가는 한 인종이 다른 인종에 맞서 사용하는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 인종의 순수성의 보호자이며, 또한 그래야만 합니다. 인종의 순수성이라는 관념은 그것이 수반하는 일원적, 생물학적 성격과 더불어, 인종투쟁의 관념을 대체할 것이었습니다.
법률에서 규범으로, 법적인 것에서 생물학적인 것으로의 전이를 대가로, 인종들[로마적 주권의 역사적-정치적 담론에 맞선 여러 인종들]이라는 복수형에서 인종이라는 단수형으로의 이행을 통해, 해방의 기획에서 순수성에 대한 관심으로의 변형을 통해, 국가의 주권은 인종투쟁의 담론을 자신의 고유한 전략 속에 투여해 인수하고 재활용했던 것입니다. (107)
이렇게 혁명적 담론에 대한 대안으로서, 오래된 인종투쟁 담론의 변형으로서 구성됐던 이 인종주의는 20세기에 또 다시 두 차례 변형됐습니다. 그러니까 19세기 말에 국가인종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출현합니다. 우리는 주요하게 두 개의 변형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첫째. 나치식 변형 : 이 테마는 일종의 퇴행적 방식으로, 즉 옛날에 인종투쟁이라는 테마가 출현했던 바로 그 예언적 담론의 내부에서 기능하는 방식으로 채택되고 전환됐습니다. 민중투쟁들의 광경과 유사한 이데올로기적-신화적 풍경 속에서 민중적이고 거의 중세적인 모든 신화를 재활용했습니다. 즉 영웅들(프리드리히)의 회귀라는 테마. 조상들이 치른 전쟁의 재개라는 테마. 새로운 제국의 도래, 인종의 천년승리를 보장해주지만 필연적으로 닥쳐올 묵시록, 최후의 날의 임박이기도 한 최후의 날들의 제국의 도래라는 테마, 이렇게 나치는 국가인종주의를 전쟁 중인 인종들이라는 전설로 재전환하거나 이식시키며 재기입했습니다.
이런 나치식 변형의 맞은편에는 소비에트 유형의 변형이 있었습니다. 즉 이것은 전설적인 극화없는 변형, 그러나 장황하게 ‘과학주의적인’ 변형입니다. 소비에트적인 변형은 사회투쟁의 혁명적 담론을 다시 취해, 질서정연한 사회의 조용한 위생을 보장하는 경찰의 관리에 이첩시켰습니다. 계급의 적, 이제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병자, 일탈자, 광인입니다. 변증법과 확신이라는 전쟁의 무기는 이제 계급의 적을 인종의 적처럼 제거하는 의학적 경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편에는 전쟁 중인 인종들이라는 오래된 전설 속에 국가인종주의를 재기입하는 나치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국가인종주의의 무언의 메커니즘 속에 계급투쟁을 재기입하는 소비에트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법률과 왕들의 거짓말을 매개로 대결하는 인종들의 노래, 결국 혁명적 담론의 최초 형태를 가져왔던 이 노래는 순수하게 지켜져야 할 사회적 자산이라는 미명 아래 스스로를 보호하는 국가의 행정적 산문이 됐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문합니다. “역사에 혁명의 호소나 공포가 아닌 것이 있는가?” 그리고 다음의 질문을 덧붙입시다. “그리고 만일 로마가, 새롭게, 혁명을 정복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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