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29 에세이 발표

카네티와 보낸 뿌듯한 여름 (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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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군중을 읽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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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_Sept_2021_Essay_인무연_문학과_정신분석학의_연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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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티와 보낸 뿌듯한 여름

 

열음 李 賢 先 2021, 9, 26

 

 

 

세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여름도 가버렸어요.

도서관에 갔다가 인문세미나에 대한 안내장를 보았는데 이미 날짜가 지나버렸더라구요. 그래도 하는 마음으로 평생학습관에 전화를 했었지요. 지금이라도 합류할 수 있냐고.

 

개설된 여러 세미나 중 <군중과 권력>을 텍스트로 하는 세미나를 선택한 것은 권력이라는 단어에 이끌렸기 때문이에요. 어떤 부당함이 있을 때 아주 작은 힘 앞에서도 사람들이 저항을 하지 못하고 따라가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어요. 저 또한 크고 작은 일에서 권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의 여러 양태를 겪었지요. 가끔 돌아보며 내가 왜 그 때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못 했는지 자책하는 일도 여럿 있습니다. 이 책을 공부하다 보면 막연하게나마 권력의 본질 같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군중과 권력>의 저자는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입니다. 1905년생인 카네티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에서 사회적 혼란과 대규모 군중 사건을 체험했고, 20대 초반에 방화사건에 연루된 시위 군중을 보며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그로 말미암아 군중 현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약 20여 년에 걸친 연구 끝에 이 책을 썼습니다. 카네티는 군중에 끌렸던 거지요.

 

198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네티가 이 책을 썼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독일어 원어민이 아닌 저로서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연구서이지만 문학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아름답고 함축적인 문장이 가득했을 텐데 번역을 거치면서 우리말인데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군데군데 역자가 원문의 뜻을 파악하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기조차 한, 번역 투의 문장이 가득한 책이 되어버렸어요. 독해력이 달린 저의 탓도 있겠지만 너무나 거슬렸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와닿았지요.

 

카네티의 선조는 스페인계 유태인으로서 1492년 이베리아 반도에서 레콩키스타를 완성한 이사벨 여왕의 유태인, 아랍인 박해를 피해 스페인을 떠날 수밖에 없는 디아스포라를 겪었다고 합니다. 아마 카네티라는 성(姓)도 선조가 거주했던, 그 당시 유럽에서의 위상이 상당했던 스페인의 카네테(Canete) 마을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지 잠깐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그리고 카네티 자신이 양차 세계대전의 참혹함과 그 이후의 혼란을 경험했습니다. 그로부터 인간성에 대한 회의 같은 것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요. 책을 읽어 나가면서 카네티가 인간에 대해 일종의 성악설을 믿게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정말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요.

 

군중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권력, 그리고 살아남는다는 것, 명령, 종교 등에 관한 카네티의 분석에 대해 세미나에서 함께 생각하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카네티의 독창성, 천재성이 빛났지만, 저로서는 공감하기 어렵고 카네티의 생각, 해석, 분석일 뿐이라서, 가설에 불과한 것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부분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 같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는 한 느끼기 어려운 마음의 움직임을, 아무리 살아남는 것이 권력의 원천임을 말하고자 했더라도 시체더미 앞에서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미치도록 기뻐한다고 분석한 것은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도저히 공감하며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카네티는 인간의 공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로 명령을 들며, 사람은 명령과 대결하고 명령의 횡포를 뿌리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부분을 공부할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도 언급되었는데 이는 악이라는 것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일반적이라는 말입니다. 명령이나 자신의 신념, 가치를 비판적 기준에 따라 충분히 생각해 보며 일상을 영위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고 많은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릇된 것인지에 대한 인식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것임에도 따라야 할 때 머뭇거림이나 최소한 양심의 가책을 가지는 것이 어떤 잘못된 관행, 제도 같은 것을 바꾸게 하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바뀔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바뀐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예제도가 그랬고 여성의 지위가 그랬습니다. 근래에 들어서는 동물의 지위가 변화의 물결 위에 있어요. 인식에서 출발해서 행동, 실천으로 이어지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언젠가는 변화가 이루어지고 말 것입니다.

 

끝으로, ‘희망 없이 고립되어 있는 개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동정심’을 말하는 카네티의 문장을 읽으며 저는 인간이라는 단어 자리에 사람들이 사육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동물을 대입했습니다. 지구라는 행성의 절대 권력자인 인간이 다른 생명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었을 때부터, 사람으로 태어나면서 당연하게 누렸던 많은 것들을 되짚으며 지구와 지구의 성원들에게 지속가능하면서도 인간적인 행동을 하려 조심조심 살고 있습니다.

 

노련하게 세미나를 이끌면서, 가지고 계신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려는 열의와 성의를 보여주신 김환희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이러한 인문세미나를 기획한 평생학습관 관계자에게도 찬사를 보냅니다. 요즘 사람들의 교육수준에 비춰 공공기관의 프로그램이 많이 뒤처진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는데 현재 시점에서 제가 경험한 공공 프로그램 중에서는 최고라는 칭찬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연과 벗 삼은 느린 삶을 지향하면서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했는데 이 세미나를 통해 인간무늬연마소라는 인문학 공동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공부 좋아하시는 여러 학우들 만나게 되어 그지없이 반갑습니다.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실은, 나도 어떻게 휩쓸릴지 알 수 없다. 그러니, 군중과 권력을 읽고

 

풀

 

한 인간이 자신의 생애에서 40여 년을 쏟아 한 권의 책을 낸다는 게 가능할까?

군중과 권력이라는 주제로 오랜 연구와 숙고 끝에 이리 긴 책을 쓸 수 있다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그저 막연하게 느꼈던 군중과 권력에 관해 이 책을 읽고 단번에 군중과 권력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권력과 군중이 이런 거구나, 장님이 코끼리 만져보고 한 부분이 전체인 줄 알듯 그렇게 조금씩 알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는 권력과 군중 중에 무엇이 먼저인가부터 궁금했다. 권력이 먼저란다. 하긴 사람 둘만 모여도 바로 힘겨루기가 시작되니 그 말이 맞을 것 같다. 그리고 모성 부성도 권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류의 보편적 정서, 부모의 사랑에 대해 의심이 없었는데 활자로 확인하면서 내 삶과 투영해보니 그게 권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이해했다.

책을 거의 읽어가는 삼 주 전쯤 아들에게 이 말을 들었다.

"엄마가 여자여서 정말 다행이에요."

"왜?"라는 나의 물음에, 일단 아들의 대답 전에 나의 몹쓸 행태에 대해 미리 말해 둘 게 있다.

나는 모친 부친의 가정폭력 속에서 자라났고 종류별로도 다 맞아봤다. 호스가 가장 짜릿하다는 게 나의 진심이다. 고등학교 때 엄마는 나에게 절대 군주였고 그게 권력인 줄은 몰랐다. 나는 힘이 없었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 가정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또 부모가 무서워 반항은 꿈도 못 꾸고 사리분별 대신 몸이 저절로 환경에 순응돼 그저 납죽 엎드려 살았다. 그래서 내가 어떤 처지인 줄, 그러고 저러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결혼을 해서 내 자식들에게 부모가 했던 권력 질을 여과없이 그대로 했다. '그대로'라는 것에 조금의 변명은 하고도 싶다. 나는 엄마 아버지처럼 그렇게는 자주, 다양한 방법으로는 아니었다고 애써 말하고 싶지만 뺨 한 대가 일평생의 상처일 수 있는 것처럼 내가 때리는 강도가 암만 약했다 해도 빈도가 적었다 해도 그게 처음인 나의 아이들에게는 내가 받은 그대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결국, 폭력의 대물림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러니 사실은 변명도 참 무색하긴 하다. 나는 내 부모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무참히 권력 질을 했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반성과 아이들에게 거듭되는 여러 번의 사과가 위로라면 위로이다.

하여튼 엄마가 남자 아닌 것이 다행이라는 뜬금없는 말과 더불어 아들의 부연설명은 이랬다.

"엄마가 남자였으면 힘이 좋으니까 때리는 강도가 훨씬 강했을 거고 더 자주 때렸겠지요. 그나마 여자니까 신체적으로 남자만큼 완력을 사용하지 못하니까 그만큼에서 끝난 거예요."

자식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두고두고 나의 폭력에 반성할 일이다. 결국, 그것은 권력 질이었다. 나의 폭력성에 반성하고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으로 어느 순간 지형이 바뀌어 가듯 찬찬히 폭력은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몸에서 권력 질도 자연스레 많이 빠져나간 것 같은데도 가끔 부모로서 유세를, 또 잘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에 나도 모르게 또 권력 질을 하는 자신을 문득 본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자식한테 혼이 난다. 자식이 논리적으로 말을 하면 나는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옳게 말하니까 사과를 한다. 자식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나도 깜냥에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거다.

이 책을 읽으며 나에 대해 또 새롭게 느낀 게 있다. 나는 스스로 늘 잔 다르크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으면 독립운동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국민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류애로 봤을 때 유대인 학살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만약 그때 독일국민이었다면 어땠을까? <자유로부터 도피>와 이번 책을 읽어보니 나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 끝나고 독일에 너무 부당하게 조약이 맺어지고 국가적인 수모를 겪고 경제적으로 힘이 들 때 나치당 히틀러가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내걸고 민족주의로 하나 됨을 외칠 때 안 넘어갈 수 있을까? 정말 알 수 없다.

시대를 읽는 눈과 생명의 소중함과 철학이 없다면 어떨지 모른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결국 인류역사에 큰 가시를 남겼다. 그 가시를 뽑기 위해 독일 수상의 사과, 홀로코스트, 학살자 전범 처벌들이 수행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 시대인들, 어떤 나라인들 가시가 없을까? 나는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 가시 하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나마 뺄 가능성이 눈곱만큼은 있는 가시다. 5.18을 놓고. 전두환 씨가 사과하지 않은 것은 국민적인 가시라고 생각한다. 그는 먼 곳으로 떠나기 전에 꼭 사과해야 한다.

나는, 광주는, 우리는 그에게 사과를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사과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우리는 계속 촉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정부나 통치자들, 기업들이 국민적 상처에 사과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개인의 삿된 이익이나 분풀이가 아닌 공공의 상처 회복을 위한 요구는 달걀에 바위 치기가 되더라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권력자가 피 권력자에게 심은 가시를 뽑는 일일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피 권력자는 끈덕지게 멈추지 않고 소리를 내야 한다. 옛말에 무는 개를 돌아본다고 했다.

피 권력자의 끝없는 외침, 사과 요구로 인한 권력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 그것이 바로 피 권력자에게 상처인 가시를 뽑는 것이다.

가시를 심은 권력자에게 다시는 권력을 주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일 것이다. 이미 유토피아는 없다. 그 누구도 권력에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정당한 권력이 사용될 수 있도록 정신 차려야 한다. 일대일의 사이건, 국가, 사회 또는 자본의 관계이든. 정신 바짝 붙들어 매고 지켜봐야한다.

 

27 Sept 2021 Essay 인무연 - 문학과 정신분석학의 사이에서 - 콩빠

어렸을 때 ‘초여름’이란 글로 장려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군 단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는 백일장대회인데, 시골 면에 소재해 있는 우리 초등학교에서 상을 받은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시골 교장 선생님은 아침 조회시간에 학생들을 모아두고 상을 전달하면서 저를 칭찬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문학 소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그 후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문학과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오랫동안 외국에 체류하였습니다.

 

2년 전부터 전주에 있는 인간무늬연마소(인무연)에서 주관하는 정신분석학 및 심리학 연구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 모이는데 (요즈음은 비대면으로), 부담도 되나 한편으로는 배울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자아심리학에 관심이 있었고 정신분석학에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었습니다. 치료자는 환자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청취하고 여기에 대한 조언을 주는 것이 정신분석학적 치료의 초점입니다. 이 언어 중심의 개입방법이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었습니다. 상담자는 자신의 이야기는 말하지 않습니다.

인무연을 통하여 프로이트의 저서 그리고 정신분석학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엘리아스 카테티의 “권력과 군중”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198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책의 내용은 사회과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문학적인 면에서 접근을 시도한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의 내용 중 두 부분을 2회에 걸쳐 요약 발표하고, 학우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내용이 이해가 잘 안 되어 독일어 원본을 참고하기도 하였습니다.

과제물을 공부하는 동안 엘리아스 카네티의 문학과 인류학적인 세계에 빠져들게 되고, 이전에 저도 문학 소년의 꿈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무연과 그곳에서 공부한 책들은 저의 가슴에 꽁꽁 얼어있는 얼음을 깨는 것과 같은 도끼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카프카 – 변신).

 

책을 함께 읽으면서 학우들과 대화를 통해 이해의 틀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쁜 마음 가득합니다.

 

모임을 지도하시는 화니짱님의 학문적인 깊이와 뜨거운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학우들 사랑합니다! (모든 지식의 근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