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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3분 칼럼 (230825 방송)
김환희 (인간무늬연마소 대표)
서이초 사건 이후 제 카톡은 두 개의 세계로 쪼개져 버렸습니다. 예전과 같은 평화로운 일상을 담고 있는 프로필들과 검은 리본을 달고 있는 프로필로 말입니다. 검은 리본의 프로필은 대부분 교사들의 계정입니다. 요컨대 검은 리본은 세월호의 노란 리본처럼 전국민에게 전파되고 있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이 칼럼을 쓰며 관련 뉴스들과 그 댓글을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사건의 원인으로 특정인을 지목하고, 괴물화하고, 그 괴물을 향한 대중적 공분이 폭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웹툰작가 주호민, 카이스트 막말 학부모, 왕의 DNA 교육부 사무관 등 비슷한 사건이 연쇄적으로 폭로되고 있으나, 그들의 사악한 언행에 집중할 뿐 이러한 사건이 반복되는 구조를 들여다보는 노력은 적었습니다.
추모의 ‘검은 리본’을 단 교사에게, “그런 프로필은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며 학교에 민원을 넣었다는 한 학부모의 사례는 서이초 사건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이 특정한 빌런이 아니라 사건 후에도 바뀌지 않는 구조의 문제로부터 연유한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구조는 복합적인 층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한국 사회의 고질병 ‘소비자주의’가 놓여있습니다. 소비자가 왕이며, 내가 돈 주고 서비스를 샀으니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영혼마저도 마음대로 사용하고 짓밟을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감히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던 권위적 시대의 학교를 떠올리는 분께는 교실이 상품화되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고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악성 민원인을 응대하다 실신하고 24일 만에 사망한 세무서 민원팀장의 사례처럼, 소비자주의는 기업의 영역을 넘어서서 한국 사회 모든 곳에 만연해있는 가장 공고한 이데올로기입니다.
둘째, ‘피해자주의’입니다. 대인관계에서 소비자라는 주체성이 주인으로서의 우위성을 확보해주는 만능키라면, 그만큼 강력한 주체성으로 떠오른 것이 ‘피해자주체’입니다. 자폐적 성향, 발달장애, 학교폭력의 피해자 등 자신이 다른 학부모에 비해 과도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존재적 조건이 자신의 ‘피해자성’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피해자성’은 ‘피해자주의’의 상품화인 사법상품을 통해 그 가치를 가장 강력하게 현실화시킬 수 있습니다. 교육현장에서 형사민사 고발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런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홀로 악성민원을 감당해야 하는 교사들은 때론 죽음을 택하는 게 나을 만큼 그 악랄함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오늘날 철저히 자본주의화된 사회에서, 그리고 교실에서 학부모에게 주어진 버튼은 소비자로서의 민원버튼 하나 밖에 없습니다. ‘매우 불만족’의 버튼을 눌렀을 때 그 버튼 너머의 교사가 괴로워할 것을 알면서도 반복해서 그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다수는 아닙니다만, 어디든 반드시 있습니다. 그리고 100명 중 한 두명인 그 학부모들을 괴물화시킨다고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민원 버튼으로 교사를, 노동자를 손쉽게 괴롭힐 수 있게 만든 그 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됩니다. 그래서 구조적 해결을 위한 교실 현장에 적용 가능한 구체적 방법은 무엇일까요? 한 달 뒤 다음 칼럼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청취자분들께서도 저와 함께 고민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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