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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성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반젠더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비난
- 젠더이론가는 성별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 성별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생물학적 차이를 없애버린다.
- 젠더가 성별을 대신할 경우 성별에 근거한 주장들이 불가능해진다.
- 재생산권을 지키려면 성별 차이에 의존할 수 있어야 한다.

▶반론
- 젠더 이론가들은 성별에 근거한 결정론을 차별적이라고 주장해왔다. 
- ‘재생산 능력’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 >> 모든 여성이 재생산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며, 재생산 능력으로 성별을 구분하면 그 자체로 재생산을 이상화하게 된다.(아마 이는 재생산을 않/못하는 존재들을 열등하게 여기게 만든다?)
- 그리고 트랜스 남성이나 논바이너리 일부도 임신 능력이 있을 수 있어 - 재생산 능력을 기준으로 젠더를 규정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생산 능력이 물리적인 사실이 아닌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미, 재생산 능력을 가지고 사실을 구분하는 그 시각 자체에 사회적 규범이 작동하고 있다.(관점 자체가 성별이분법적이다?)
- 재생산체계가 가부장제적 억압을 야기하는 게 아니라, 가부장적 체계가 재생산을 억압하고 있다.(ex - 국가의 임신 통제 정책) 억압적 체계 존재를 생물학의 탓으로 돌려선 안된다.


▶ 재생산의 자유는 젠더 자기결정의 자유와 관련있을까?
- 임신 당사자가 임신부터 출산까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페미니스트의 주장은- 포궁에 대한 국가 통제에 맞서게 한다. >> 그렇다면 국가가 성별을 지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왜 정당하다고 여기는가? 
- 따라서, 국가의 자유 침해에 저항하는 것에서 페미니즘과 트랜스/논바이너리 투쟁의 연대의 근거가 마련될 수 있다. 

▶ 젠더가 몸의 물질성을 부정하거나 언어나 문화를 생물학보다 우위에 둔다?
- 젠더는 생물학적 실재와 사회적 실재가 상호작용하는 터전이다. 일부 페미니즘의 주장은 그동안 제2물결 페미니즘 이후 다양한 역동적 상호구성주의적 입장들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 지정된 성별 또는 추정된 젠더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건 물질성이 입증된 과학이다?
- 이런 상식이 자신의 본 모습에 폭력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 상식을 기준으로 하면 예전에 인종차별이 상식이었다. 

▶ 그렇다면 젠더 비판적 페미니즘은 얼마나 상식적인가?
- 페미니스트 들은 페니스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페니스가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강간범으로 판타즘을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해서는 페니스를 없는 셈 치면서 비일관적인 모습도 보인다. 

▶ 젠더 이론이 과학을 부정하는가?
- 결정론이라는 관점을 상호작용 모델로 전환하면, 생물학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사회적/환경적 힘들과 상호작용하고 있고, 상호작용을 벗어나서는 생물학적 사실은 실제로 사유할 수 없다. 
- 예를 들어 재생산 능력이 이루어지려면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재생산 능력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환경과 욕망이 모두 능력의 생성과 쇠락에 관여한다. 사실 어떤 재생산 능력은 기술적 개입을 통해서만 활성화 된다. 즉 인간과 기술적 힘의 상호작용인 것이다. 
환경을 생물학적 자아와 분리된 외적 현실로 이해하면, 생물학적 자아의 발달이라 형성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실제로 가능하지 않다. 
- 생물학적 몸은 다른 생명체들과 일련의 사회 체계 및 권력들과 연결되어 있는 한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 이 연결들이 살아있지 않다면, 몸은 몸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이는 몸의 생명이 지속적으로 다른 생명체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 생명의 지속을 위해서는 외부를 끊임없이 내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 몸과 성별을 둘 다 관계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면, 사회적인 것은 우리가 사회적인 것과 의도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기 훨씬 이전에 이미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내부로 들어온 것이다. 
- 우리는 몸과 세계의 원초적이고 존재론적인 분리라는 관념이 어떻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 질문해야 한다. 
- 환경은 동떨어져 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를 받아들이는 환경을 받아들이고, 환경은 인간의 개입과 추출로 인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 다시, 젠더는 성별의 물질적을 부정하는가?
- 사회적-물질적 구성은 상호작용으로 이는 과학적 틀에 의해 뒷받침된다. 
- 성별을 자연으로 젠더를 문화로 가정하는 구분은 그 틀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이미 자연과 문화의 관계가 그 구분을 거부하기 때문에.
- 성별 지정에서 우리는 이형론적 이상과 사회적 기대를 참고해, 사회적 힘들이 몸에 작용하여 성별을 정립한다는 사실을 매우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ex - 어깨 굽은 키큰 여성?)

▶ 국가가 정한 분류체계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 성별을 둘러싼 상상계 속에서 살아간다
- '성별지정과 범주로서의 성별은 모두 일종의 분류체계이다.
- 성별이라는 범주가 어떤 하나의 상상계와 명령과 복합적 틀과 일련의 암묵적 기준들과 함께 우리 삶에 주어진다는 데 동의하는 한, - 성별이라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의 경계를 설정함으로써 현실화되는 판타즘적 조건은 처음부터 존재하고 이는 젠더가 이미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젠더 정체성’은 젠더화된 사물들의 도식에, 세상에서 자기만의 몸이라는 체험된 현실에 적응하는 방식에 대해 깊이 감각된 느낌이다. 
-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젠더화되어있다는 말은 세상이 어떻게 젠더에 따라 질서가 잡혀 있는지에 대한 여러 전제를 우리가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7장 당신의 젠더는 무엇인가


▶ 우리는 젠더를 생물학적 성별의 문화적/사회적 버전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젠더가 구체적인 분류의 도식 안에서 성별을 결정하는 틀로 작동하는지 여부를 질문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젠더는 성별 지정의 바탕이 되는 권력의 도식으로 이미 작동중이다.
- 성별 표시는 젠더의 첫 번째 작동이다. 국가기관 담당자는 ‘무슨’젠더인가에 답하지 않고, ‘어느 쪽’젠더인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 젠더/성별 구분에 대한 이론들의 몇 가지 수정이 이루어졌다.
- 첫째, 젠더와 문화의 관계는 성별과 자연의 관계와 같지 않고, 성별이라는 문제는 ‘상호구성’이 사회적인것과 생물학적인 것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이해하는 더 나은 방법이다.  
- 둘째, 젠더는 성별을 정립하는 장치 중 하나일 수 있지만, 잇아화된 이형론의 출현 조건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성별/젠더 구분의 인종주의적/식민주의적 유산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젠더/성별 주체성을 설명하려면, ‘역동적 체계의 틀’이 필요하다.
- 사람이 특정 호르몬 구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하면, 그 호르몬들이 활성화하여 이해할 수 있게 해준 모든 상호작용을 설명하진 못한다.(?!? ex - 소파에서 뛰어내린 우리 조카?) 
- 성인의 운동 능력과 자기 이해를 이전 발달 단계로 환원하는 설명에 만족할 수 없는 한 가지 이유는 그 사이 시간에 호르몬 상황에 어떤 상호작용이 발생했는지 우리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 성별은 생물학적으로도 더 복잡하다.
- 스포츠 종목 프로선수들 700명 중 16.5% 남성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았고, 13.7% 여성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았고, 두 집단 사이에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겹치는 영역이 상당했다. 
- 트랜스 여성이 호르몬 구성으로 더 유리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기존 남녀의 내인성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고려하지 않는다.(이정도면 테스토스테론 남성호르몬이라고 부르는게 문제가 되는거 아님?

▶ 트랜스 여성의 스포츠 참여에 대한 논쟁은 여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 자체를 개방한다.
- 호르몬 스펙트럼은 넓고 테스토스테론 수치만으로는 누가 여성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 존스홉킨스대학교 존 머니 박사는 젠더 정체성이 반드시 성별 지정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생물학적 결정론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인터섹스 상태의 사람들을 찾아내 교정하려고 하면서, 사회적 정상화라는 과업에 의학적 지식을 복무하게 했다. >> 그럼에도 머니는 어떤 이론적 틀을 열어주었는데, 이는 젠더는 몸과 범주 사이의 잠재적 통약 불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인터넷그를 규범에 끼워맞춘 머니를 비난하되, 그의 작업이 제시해준 성별 지정 및 재지정을 다시 상상해야 한다. 

- 성별 지정은 몸의 분류 방식과 몸이 잘 맞아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은폐힌다.


8장 자연/문화 구분에서 상호구성으로

▶ 1974년 셰리 오트너는 ‘여자와 남자의 관계는 자연과 문화의 관계와 같은가?’의 제목으로 핵심 질문을 던졌다.
- 여성과 남성이 자연과 문화로 연결하는 것을 보면 삶의 영역은 이처럼 다르게 젠더화되어있다.

▶ 게일루빈은 ‘성별’이 다양한 문화적/사회적 수단에 의해 확립된다는 점을 파악했고, 오늘날 우리는 ‘자연적인 성별’보다 “출생시 지정된” 성별을 더 일반적으로 언급한다.

▶ 도나 헤러웨이는 ‘몸 자체’가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몸과 같은 ‘대상들’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제2물결 페미니즘 이론 초기 자연과 문화의 구분은 지정성별과 이후 젠더를 구분하고, 성별과 젠더가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했다. 

▶ 발달에서 역할을 하는 유전적 요인은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인과적으로 관련성을 갖게 된다. 
- 면역학이나 암과 같은 다른 분야에서는 이러한 사고틀이 중요한데, DNA에만 근거를 둔 엄격한 남녀 이분법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은 이를 무시한다.

▶ 성별을 ‘사회적 구성물’로 보면 물질적 실재를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은 캐서린 클룬테일러가 ‘물질적 구성’이라고 칭한 내용을 간과한다. 
-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형성 및 생명 과정에는 여러 영역 간의 복잡하고 역사적인 상호작용 관계가 작동하는데, 여기에는 생리학, 해부학, 사회적이고도 내밀한 형성의 과정, 심리적 형성 및 지구력, 사회적-정치적 형태의 인정 및 지지 등이 포함된다. 

▶ 인간 유아는 태어날 때부터 의존적 상태이기 때문에 그 삶의 과정이 애초부터 사회적이다. 
- 원초적 의존성은 사회적이고 생물학적인 동시에 심리적인 현실이다. 
- 기본적인 돌봄 조직의 작동 혹은 실패는 유아기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 인간의 내부에 합체된 물질성으로 남아 있으며, 이는 사회적 구조와 심리적 구조 모두에게 생명이 지닌 시간의 유기체적 차원을 암시한다. 

>>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젠더가 어떻게 몸의 물질성에, 심지어 성별 자체의 물질성에 거 접근할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한 훨씬 더 강력한 설명의 단초를 제공할 뿐이다.

▶ 우리는 ‘물질적 구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노예제와 식민 권력의 유산 - 또한 그것들이 만들어낸 유해한 환상 - 이 어떻게 성별의 물질성이라고 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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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 요즘 교육활동하면서 느끼는 점
- 학생들을 보면 그냥 남성성이 자연(날것?)처럼 보이고, 여성성이 문화(발전? 문명?)처럼 느껴짐. 소위 여성성을 발달시키지 못한 남성들이 물리력 외에 사용할 자원이 없어서 폭주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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