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자연/문화 구분에서 상호구성으로
- 오트너는 자연을 여성의 자연적 기능인 모성과 연관시키고, 문화를 자연의 변형으로서 남성으로 연관시키는 구도 자체가 문화의 구성물이라며 자연 초월에 여성들이 참여를 촉구하지만 그의 한계는 자연을 생명이 없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즉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특권화하고 파괴적인 생태적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의 그의 사고방식에서는 성별은 자연적이고 젠더는 인간 성취라는 문화적 영역으로 간주된 것이다.
- 게일루빈과 버틀러 자신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과 여성이 되는 것은 다른 것이며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여자가 되는 것도 아니며, 자연과 문화 구분은 자연을 무사유, 무생명으로 간주하고 수동화시키는 문제가 있고 오히려 인간의 생명과정에서의 개입이 파괴적이게 될 수도 있다. 도나해러웨이 역시 몸 자체가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주장한 바 있다. '몸의 경계는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구체화된다'.
- 제2페미니즘 초기의 성별과 젠더의 불일치 주장의 자연과 문화의 구분을 통해 가능했다. 이를 상호작용으로 설명하려면 기존의 유전자결정론처럼 발달에서 역할을 하는 요인들을 별개로 보지 않고, 상호작용을 통해 인과적 관련성을 가질 수 있으며, 유전자가 유기체 발달에 필요한 여러 조건 중 하나이지만 발달과정에서 인과관계를 작동시키는 DNA의 힘은 다른 요인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발휘된다는 점, 본성과 양육의 이분법 구도를 벗어날 것, 상호구성을 제안한다.
-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스트는 생물학적 사실이나 유전적 요인들이 다양한 사회적 세계와 상호작용해가며 활성화되는 과정을 모르면서 과학이 본성과 양육의 구분을 고수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생물학적 인 것을 따로 분리 접근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원초적으로 의존적이고 사회적이므로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처럼 지속적으로 상호의존적이다. 노예제와 식민권력의 유산이 성별 물질성에 영향을 어떻게 미치는지 보자.
9장 젠더이형론의 인종주의적, 식민주의적 유산
- 우파와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즘이 성별을 자연에 존재하는 이분법적인 것으로 존재하며 이는젠더위험성이라는 심리사회적 환상으로 연결된다.
- 젠더는 언제부터 강제로 부과되었는가? 젠더이형론의 식민지 권력은 젠더규범을 흑인, 유색인종 봄에 덧씌워, 백인, 유럽이성애중심주의 규범을 자연화하고 이상화했다.
- 바티칸은 젠더가 식민주의적으로 부과되고 두 성별 구체 특성을 부정한다고 주장하며 퀴어 페미니즘이 식민주의적 사상의 강요라 생각한다. 탈 식민주의 페미니스트와 퀴어이론가들은 교회 등 서구가 부과한 이성애결혼 규범을 반대하고 다양한 가부장제적 풍습들이 여성을 어떻게 종속시키는지를 분석하고자 문화에 대해 구조주의적으로 접근했다.
- 캐서린 클룬테일러는 생물학에서 암수 구별은 실제 생식세포의 크기에 따라 정해질 뿐이기에 성별은 다수 사회규범이나 관행, 지식, 관료주의 절치와 제도, 기능들이 의해 작동한다고 말한다. 이 두 일반화를 벗어나면 다양성이 시작된다. 그리고 일부 종은 동일한 크기의 생식세포를 모든 구성원이 생산한다는 점에서 이런 구분도 왜곡된 관심이기도 하다. 즉 일부 종은둘 이상의 여러 교배형(암수구분 없이 교배를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 80년대 이후 페미니즘 연구들은 특히 자연화된 성별 신체 크기 차이도 여성의 젠더 성별에 대한 문화적 평가 절하로 인해 여성이 식량과 자원을 덜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젠더화된 환경적 요인의 개입으로 인해 미치는 근육, 뼈,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기도 했다. 이를 인종에 적용하기도 했다.
- 해러웨이는 이를 자연에 대한 지식이 해방의 과학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며 사회적 통제 기술로 재통합되었다고 말한다.
- 게일루빈의 성별/젠더체계 개념은 남녀 이분법적 대립으로 전제하지 않는다. 남자, 여자다운 유럽 남성 여성이 종점인 인종적 토드화된 성별/젠더 차이의 척도에 따라, 사회적인 것이 생물학적인 것을 생산한다. (밀접하게 얽힌 식민주의 노예제 과학적 인종주의 임상의학의 역사에서 성별화, 젠더화되고 인종화된 차이들이 역사적으로 출현했다. 클룬케일러)
- 스노턴, 미국 젠더 역사, 트랜스 정체성 역사는 노예제와 연결되고, 노예 상태의 사람들에게 잔혹한 시술이 과학적 지식을 낳았다. (부인과 시술의 잔혹한 역사) 흑인 여성들은 어떤 버전의 젠더에도 포함되지 않았다...(흑인성 내 젠더의 트랜스적 표현성 : 젠더화되지 않은 흑인성은 자유를 위한 트랜스 수행의 토대를 제공한다)
- 스필러스, ‘몸 이전에 살이 있다’(살은 사회적 개념화 없는 상태. 식민지 여성의 몸, 몸들 탈취... 인간적 사회적 회복불가능한 행위를 살에 대한 중대 범죄) (살은 담론으로 풀어내지도 않는 민족성의 응축)... 노예제에 예속된 사람은 문화적으로 탈 구성되어 해체되어 있는 존재. 문화적 해독 가능한 형태로 구성되지 않은 존재. 남녀 모두 수량으로 계산되는 존재
‘젠더화되지 않은 살’, 젠더 이형론의 규범을 위해 흑은 몸은 오장육부까지 비실재화되었다, 관계를 생산하는 존재로서 살은 성별과 젠더를 횡단지향(성별과 젠더가 서로를 지향한다는 의미)시킨다. 흑인여성들 덕분에 여성의학 분야가 출현했으나 흑인 여성은 여성이 아닌 살덩이였고, 의료 혜택도 부재. 탈젠더화된 살. 잠재적 재산인 살덩이. 경매장에서 교환되는 살...흑인여성의 재생산은 미국 노예제 지탱의 주요 토대. 재생산만 중요, 생부는 누구인지 중요치 않거나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흑인 여성의 젠더는 삭제, 흑인 아버지는 부재. 가족 기반 심리, 정서적 유대 형성 부재... )
스필러스의 이름짓기 실험. 여성 사회적 주체로서 흑인 여성의 관념,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특정방식으로 결합하는 실험. 이원론적 젠더 바탕의 문화적, 상징적 틀로의 환원을 거부한다. 스노턴의 견해에 따르면 권력 위계질서가 고갈되면서몸의 교환가능성, 새로운 힘이 등장한다. (탈젠더화)
- 서구 이데올로기 , 식민주의적 인종주의적 권력과 그 권력 식민 대표자들이 젠더 이분법을 부과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교황은 젠더가 빈곤 지역 공동체에 강요된 식민지화의 사례라고 주장한다... 지역 문화에 퀴어, 게이, 트랜스 등이 전혀 없다고 상상하는 문제가 있다. 인터섹스아동 등 젠더 비순응적 사람들을 위한 관계와 체계를 젠더이분법이 교란했다는 점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식민주의는 시장 확대를 통해 가능했다.
- 루고네스, 생물학적 가정에 기반한 젠더이형론은 이성애 가부장제와 함께 작동하며 식민지 근대성 내 젠더조직화의 밝은 측면에 의해 강제된다. 반젠더이데올로기운동, 신흥권위주의와 연관성을 고려하면 식민주의 영향력이 더 심각해진다는 것.
- 키하노, 신체를 자연으로 대상화하는 과정을 추적. 유럽 문명 관념에서 정신에 가까운 몸과 자연에 가까운 몸으로 나뉘고 자연 가까운 몸, 인종은 착취 대상이 된다. 이원론으로 착취를 합리화한다. 결국 페미니즘에서 당연시하던 이원론을 통해 권력의 식민성이 강하게 작동한다.
- 루고네스는 키하노 입장이 성적 이형론 등을 전제해 과하게 생물학에 의존하는 틀에서 젠더를 파악한다고, 키하노의 근대적 식민주의적 젠더체계의 조건들을 가정한 물질성을 비판하고오예우미의 연구를 지지한다.
- 우예우미, 여성의 발명, 아프리카 젠더연구 등. 이분법적 젠더가 식민주의, 생물학적 결정론에 의해 강제되었다. 젠더를 여성과 동일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아내, 남편, 가모장 등의 사회적 의미는 생물학과 결부되지 않는다.
- 마테베니, 식민시대 이전의 젠더, 성적 관계를 낭만화하지 말자. 낭만화는 식민 권력이 아프리카 공동체를 변형시킨 역사, 사회 역학 외부에서 아프리카공동체들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본질주의가 될 수 있다... 서구 젠더개념, 이성애 규범적 가족 방법론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이 사회적 형식이 다양한 문화와 역사릴 가진 규범을 가진 다른 사회 조직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 아마디움, 20세기전 나이지리아 젠더배치. 부 분배, 경제활동 참여능력, 확장된 친족 네트워크 내 돌봄관계에서의 역할에 따른 젠더관계와 젠더지정의 변화를 설명... 지정받거나 맡은 역할 따라 젠더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은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가진 맥락을 상정해야 가능. 삶에서 실행되는 맥락에 따라 어휘와 의미가 달라지는 사회적 복잡성을 기독교적 경직된 이분법으로 대체하는 식민적 권력은 아프리카적 친밀성과 젠더를 비난하고병리화하기도 했다.
- 마네테비는 남아공 응구니어에서 우농가이인도다 표현이 단순 묘사에서 경멸적인 의미로 변하는 것을 설명 (남자처럼 보이는 여자, 남자가 할것같은 일을 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옷 입은 여자 묘사)/ 최근에는 다른 다양한 의미로 재사용하며새로운 상상계를 만든다. 우농가이인도다는 젠더 자체를 넘어서 존재한다. 비규범적 젠더, 섹슈얼리티를 의미하는 표현들
- 언어의 중요성(마테베니),‘고고gogo’는 할머니, 예언자, 치유자 등 의미. 식민주의 버전, 동성애 규범적 혼란스러운 여러 의미를 열어준다. 젠더를 넘어서는 말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연결하는 토착적 지식 집합체를 지칭...
- 결국 가부장적, 이성애 규범적 방식으로 젠더를 질서화하는 것이 식민적 권력이라는 주장은 식민ㅈ화에 대한 저항이 퀴어, 트랜스, 인터섹스 삶의 긍정하는 일과 연합해야 함을 의미한다. 인종주의, 자본주의 착취에 맞서는 투쟁이기도 하다. 문열적 전략의 실체를 보고 연합하자.
동성애 혐오는 전근대적 문제가 아니다. 유럽, 미국에서도 가속화되고 있다. 우파의 만젠더 이데올로기는 젠더 자체 규제, 이성애규범적 이분법을 강화하고자 하고 토착적 지역적 관습에 백인성 규범을 덧씌운다. 인종주의적 판타즘을 통해 직조된 젠더 이상주의는 강제로 부과되고, 인종주의, 식민주의적 포력 역사가 남긴 잔여물이다.
10장. 외래용어 혹은 번역이 초래하는 동요
- 젠더를 외래용어의 침입, 제국주의적 침략, 국가를 위협하는 것으로 주장하면 저항 대상은 젠더과 제국주의 역사 자체다. 문화제국주의와 외국인혐오를 거부하며 외래 용어에 저항하는 것은 두려움 혹은 미지의 대상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다. 정당한 저항일 수도 있다.
- 우파의 반제국주의 정서를 겨냥한 호소는 민족주의적 외국인혐오와 인종주의를 자극하며 결집하지만, 젠더를 적으로 해석하지만, 책임감 없이 묶음으로만 작동하는 가짜 합이다.
- 다언어적 인식론인 번역으로영어가오랜기간 식민화와 함께 들어오지만, 젠더가 신조어로 들어오면서 다양한 의미와 개념화를 다듬는 과정이 필요했다, 고고, 우농가이인도다, 히즈라 등... 히즈라는 트랜스젠더는 아니며, 이분법적 젠더로 대체하기 어렵다. 단어 사용은사회계층, 교육배경, 문화 관습의 영향을 받고 대화 상대와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사회적으로 체현된 존재와의 수많으 ㄴ관계들이 살만하도록, 두려움과 혐오 없이 젠더를 수행하고 살아내는 방식들에 사람들 마음이 열리는 세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어떤 의미이건 최소한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 모두 정당한 입장이다. 각 입장들이 살만한 삶의 궤적들을 열어주면 어떤 것들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한가지 삶의 방식으로 일반화하지 않는다면. 트랜스혐오적 페미니즘은 성립할 수 없다.
- 젠더는 정치적, 철학적 쟁점이기도 하다. 경합하는 의미들의 문제이기에 안정된 통제나 일관성의 경계를 넘어선다. 투쟁해야 할 대상이 된다(바바라 존슨). 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때 번역불가능한 언어 혹은 외래적 언어로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고 자신을 알리며 번역의 가치와 살만한 세상을 향한 가능성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유아가 어른 세계에서 수수께끼 같은 욕망을 부여받은 상황을 젠더지정이라 부른다면 그들이 나를 무엇으로 부르는지, 젠더는 내게 무얼 원하는지, 젠더 욕망이 내 욕망 안으로 어떻게 진입하는지... 라플랑슈는 젠더 지정이 처음부터 수수께끼같고 외래적으로 등장하여 번역으 과업을 주지만 완수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의 언어도 우리 고유의 것이면서 아니기도 하다. 결국 번역불가능성은 어휘로 포착하고 규범으로 통제하려는 모든 시도를 넘는 욕망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 스피박에 따르면 번역은 여러 언어학습을 첫 책무로 여기는틀 안에서 행동주의이고, 번역을 멈추지 않는 인식론적 준비이다. 번역 불가능한 것에서 전능함을 기대하는 ㅌㄱ정한 앎의 방식에 대한 통찰을 얻을수 있다. 언어적 겸허함은 단일언어주의를 추동하는 언어 문화적 제국주의와 상반된다. 번역은 젠더의 번역불가능한 차원이 글로벌해지는 페미니즘과 젠더 관련 대화에서 생산적 교란을 느끼며 다르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 젠더는 단일언어주의, 민족주의, 식민주으 ㅣ열강에 대한 비판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걸 고려하지 않으면 젠더는 공모자가 된다. 번역은 반식민주의 연합의 중요 현장이 된다. 젠더를 다시 유망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임무다. 연합, 번역, 대항적 상상계를 통해 가능하다.
- 젠더 번역의 반대 목소리가 보수 반동 만이 아니라, 식민주의 이분법적 비판이 될 수도 있다. 바티칸 같은 종교당국이 자연법이라고 하는 식민화 효과와 단일언어의 완고함과 제국주의적 오만함이 만드는 식민화 교화를 번역이 구분해내야 한다. 그들에게 우리가 함께 사는 삶의 급진정 긍정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과업이다.
결론. 파괴에 대한 두려움, 상상을 위한 분투
- 미래에 대한 상상은 꼭 예측가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감각적 매체를 통한 표현, 잠재력의 방출이 필요하다. 지금의 삶을 당연시하기 보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삶의 방식의 파괴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소모 가능한 것이 되는 삶의 현실, 상호의존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조건을 보장해줄 안정된 일자리를 기대하지 못하는 이들... 이 속에서 젠더와 비판적 인종이론은 파괴의 원인으로 가공되고표적이 된다.. 그리고 젠더 자체가 파괴되어야 하고 검열과 여성학 폐지, 의료복지권 박탈, 병리화 경향 확산, 공공집회 제한, 차별금지법 철회, 거부, 삶의 분리와 침묵화 등으로 이어진다. 결국 젠더는반대자들이 가부장제 질서로 돌려놓고 권위주의로 회귀하려는 시도 속에서의 정치 투쟁으로 표상한다. 우리는 동맹, 불확실한 집단적 삶과 긍정을 삶의 파괴와 구별할 강한 재생적 상상력으로 판타즘에 대항해야 한다.
- 권위주의자는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등장한다. 성별 자기 지정은 살만한 삶을 영위할 자유, 투쟁으로 이룩한집단 자유의 하나인데 권리 박탈로 왜곡해 트랜스 사람들의 권리 박탈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튀어는 이성애를 부정하지 않고 그 필연과 우월성에 이의제기할 뿐이다.
- 반젠더이데올로기 운동에서는 도덕적 의로움을 내세운 사디즘이 우위를 점하며 파괴를 통해 파괴가 끝난다는 신념을 강화하고 사디즘을 조장한다. 반젠더운동은 문화전쟁만이 아니다. 젠더정치는 정체성 정치가 아니다. 자본주의 비판과 결합된 동맹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