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안전 , 영토, 인구 - 푸코 / 4월 7일 / 229~ 233 / 서연:림]
1. 성서의 목자를 플라톤의 직조공과 히브리인들의 목자를 그리스의 행정관과 대조해봤습니다.
2. 그리스도교의 사목은 우리가 파악했던 사목에 관한 주제와는 절대적-근본적-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주제가 그리스도교의 사유에 의해 풍부해지고 변행되고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엄청난 제도망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3. 히브리인들의 신은 목자로서의 신입니다만 히브리인들의 정치, 사회 체계에서는 목자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목이 밀도 있고 복잡하며 조밀한 제도망을 탄생시킨 것은 그리스도교 안에서이고, 이 제도망이 그리스도교 공동체 전체와 동일한 외연을 갖는다고 주장된 것입니다.
4. 그리스도교의 사목은 집단적, 개별적으로 인간의 일생에 걸친 매 단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기술입니다.
-> 통치성(관리) - 연관 :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5. 이런 사목권력은 인간을 통치하는 기술이고 바로 이 측면에서 통치성의 기원, 통치성이 형성되는 지점, 통치성이 결정화되는 지점, 통치성이 발아되는 지점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6. 통치성이 계산되고 숙고된 정치적 실천이 됐을 때에야 근대 국가가 탄생하는 듯 한데, 그리스도교의 사목은 이 절차의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7. 저는 그저 이미 사목실천과 더불어 존재했고, 결코 소거된 적 없다고 생각되는 고찰과 실천에서 처음부터 묘사되던 몇몇 특징을 지적하고 싶을 뿐입니다.
□ 다지원 기획세미나 <<생명과 혁명>> ∥2013년 4월 7일∥발제자: 박윤희
미셸 푸코,『안전, 영토, 인구』, 난장, 2011, 7강. 1978년 2월 22일, 233~238쪽
1. 요약
1.1. 추상적, 일반적, 이론적으로 정의할 경우 사목은 구원과의 관계, 법과의 관계, 진실과의 관계와 관련이 있다.
1.1.1. 개인을 이끌거나 개인이 구원의 길을 향해 진보하고 발전해가도록 해주는 것을 근본적․본 질적 목표로 설정하기 때문에 사목은 구원과 관련이 있다. -> '신학정치론' 예언자와 유사한 내용. 사목 예언자.
1.1.2. 개인과 공동체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들이 명령․계율․신의 의지 등을 실제로 따르는 지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사목은 법과 관련이 있다.
1.1.3. 성서에 바탕을 둔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그리스도교에서는 특정한 진실을 수용하고 믿고 공언한다는 조건에서만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 법에 스스로 복종하기 때문에 사목은 진실과 관련이 있다.
1.1.4. 그러나 이렇게 사목을 정의한다면 플라톤이 정의한 도시국가 기능이나 도시국가 행정관의 기능과 똑같은 것이 될 뿐이므로, 그리스도교 사목의 특수성과 독창성은 이 세 가지 근본 요소와는 다른 수준에서 드러난다.
1.2. 3-4세기 그리스도교 사목의 주요 특징 : (1) 구원과의 관계
1.2.1. 구원의 문제는 일반적으로 백성과 그 우두머리․인도자를 포괄하는 일정한 운명 공동체의 문제로서 그리스 도시국가나 무리에 관한 히브리적 주제에 공통되는 특성이다.
1.2.2. 그리스인들에게서나 히브리인들에게서 공동체에 불행이 닥쳐온 근본 원인은 도시국가나 공동체의 죄악의 결과 등장한 나쁜 왕이나 나쁜 목자로서, 공동체와 그 책임자 사이에는 일 종의 포괄적 관계, 공동의 운명, 상호책임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1.2.3. 그리스도교 사목에서는 목자와 양들이 상호성 이상으로 극도로 미세하고 복잡한 책임관계 로 연결되어 있다.
1.2.4. 그리스도교 사목에서 목자와 양들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첫 번째 특징은 전적이라는 점이다.(목자의 책임이) 목자는 만인, 즉 전체 공동체, 총체로서의 공동체, 일체로서의 공동체 모두의 구원을 보증해야 하며, 이는 만인의 구원이자 동시에 개인 각각의 구원을 의미한다.
고대 유형의 사목 - 히브리 시대 : 목자
- 그리스 시대 : 행정관
vs
그리스도교적 사목 - 구원 -> 종교의 기본적 테마 ; 윤리 -> '에티카'의 마지막 부분, 윤리학의 최종적 단계, 내재론적 윤리론, 자기자신의 코나투스를 높임으로써 스스로 구원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 스피노자 : 종교 => 윤리
- 법 -> 정치
- 진실 -> 철학, 과학의 테마, 진리 , (예술)
-> 세 영역은 광역의 인간영역을 모두 포괄한듯 보인다.
직조공의 모델 : 융화와 화합에 기초한 공동체를 결합시키는 기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 : 교황, 목사, 1:1양육 방식의 사목관계(제자와 스승) - 예수와 사도바울 등 사목 시스템 구축.
민족과 사목 시스템은 유사하다.
- 사목 : 보호자 = 감시자
- 민족 : 보호 = 억압
ex) 우파적인 정당형태는 물론 스탈린 공산주의 하에서 당원들을 교육하고 지도하는 방식은 당활동을 통한 사회역사적 해방을 의도했지만, 사실상 당에 대한 충성심을 강요하며 억압의 구조가 되었다.
1. 모두를 구원하는 것은 전체를 구원하고 각자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사목의 역설적으로 분배적인 면모를 보게 됩니다. 왜 역설적으로 분배적이냐면, 전체를 구원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경우에 따라서는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지 모를 한마리의 양을 희생시킬 수도 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목자가 희생을 하므로, 전체의 희생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전체의 희생을 강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예수가 십자가를 짐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목자의 희생=> 전체의 희생으로 전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비슷한 예로서 구소련의 '스탄호프운동'이 있다.
2. 그런데 사목권력의 전적이고 역설적인 배분성의 원칙에 대해 그리스도교는 네 개의 원칙을 추가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분석적 책임이라고 지칭될 수 있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러니깐 그리스도교의 목자는 하루가 끝날 때, 세계의 종말이 왔을 때 양에 대해 보고해야 합니다. 매 순간 양이 할 수 있었던 좋은 일이나 나쁜 일에 대해서도 보고해야 합니다. 이것은 더 이상 간단히 수적이고 개별적인 분배가 아니라 질적이고 사실적인 배분에 의해 정의되는 책임입니다.
2-1. 두 번째 원칙을 저는 철저하고 즉각적인 전이의 원칙이라 부르겠습니다.
목자는 자기 양의 선을 자신의 개인적인 기쁨으로 기뻐해야 하고, 자기 양으로부터 비롯되는 악은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참회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양의 공덕과 과오가 목자에게 즉각적으로 철저하게 전이되는 원칙입니다. (개인과 전체가 목자를 매개로 해서 완벽하게 전이되며 하나가 된다. )
2-2. 세 번째 원칙은 희생의 반전입니다. 실제로 목자가 양과 함께 길을 잃는다면 목자는 양을 위해서, 양을 대신해서 길을 잃어야 합니다. 목자는 스스로 그 유혹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양으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드는 온갖 위험을 대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은 양심지도에 관한 문제가 제기될 경우 매우 실재성을 띠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겠습니다.) 양심지도에서 전체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부분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타인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죽음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가치의 반전, 희생적 반전의 역설이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13세기부터 이미 광범위하게 논의되어온 대상이었습니다. 목자는 타인을 위해 자신이 죽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구원되는 것입니다.
-> 정치철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가 만인과 개인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만인을 강조하면 전체주의로 가기쉽고, 개인을 강조하면 개인주의가 되기 쉽다. 이에 대해 맑스는 코뮤니즘선언에서 개인의 발전이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전체의 발전이 개인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뫼비우스 띠의 선구조를 이야기 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한 바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사목구조를 보면 목자가 만인과 개인을 매개함으로써 둘 사이의 화해를 도모한다.
기획세미나 생명과 혁명 <푸코-안전, 영토, 인구7장> 243P~248P 2013년4월7일 이재수
1.교대적 대응의 원칙-목자의 약함이 무리의 구원에 기여할 수 있고, 또한 무리의 약함이 목자의 구원에 기여할 수 있다. 양들의 약함이 공덕을 만들어 목자의 구원을 확보해주듯이, 목자의 잘못과 약함이 양들을 교화하는 요소이자 목자 스스로 양떼를 구원으로 이끄는 운동과 절차의 요소가 된다.
2.이와 같은 목자와 양떼의 관계에서 핵심은 내부로부터 이 포괄적인 관계를 공들여 다듬으면서, 목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인데, 목자는 신이 그 안에서 만인의 공덕과 죄과를 판결하는 세밀한 경제(economy, 오이코노스, 미시적->지구적 단위)전체 안에서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구원의 생산자체는 전적으로 신의 수중에 놓인다. 그 수완, 공덕, 성스러움이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목자가 양떼와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목자는 최종적인 확신을 갖지 못한 채 공덕과 죄과의 도정, 순환, 역전을 관리해야 한다. 구원은 무리를 약속의 땅으로 이끄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목기술이다.
(-> 신과 인간 사이의 공백공간안에서 예외주권으로서 움직이는 목자. 구원이 관리의 도구로서 사용됨.)
- 목자의 경제행위는 사실상 통치와 구분이 불가능하다.
- 신의 구원을 대행하는 활동 : 자기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 교사, 목사가 모든 자신의 세부적 행위에 확신을 가지고 행위하는가?
- 한나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나는 부분으로서 작동할 뿐이다." -> 파시즘의 체제 -> 현대사회의 체제 -> 교사, 목사... 노동자 : 현재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전적으로 보상의 매커니즘에 묶여있다. 보상없는 순전한 노동의 즐거움 때문에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한 구조는 양들의 공덕(자기만족과 반대되는 개념. 보상의 매커니즘.)을 관리하는 목자(관리자, 시스템)의 역할과 교묘히 겹쳐진다.
- 금융자본을 보면, 이제 더이상 자본가가 이 시스템을 전적으로 유지하는 주체가 아니다. 예금, 보험, 연금등을 유지시키는 주체는 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화폐소유자가 노동자인 경우가 일반화되었다. (그럼에도 금융자본의 수입 증가는 대부분 금융기능인과 그 주변에게로 귀속된다.)
-> 여기서 신과 메시아(예수)와 사도바울의 차이가 생겨난다.
스피노자 '윤리학' 에는 인식의 종류중 제1종인식을 상상과 계시로 본다. 이것은 자기의식적 활동이 아니다. 특히 계시는 외부적 기준에 인식이 종속되어 있다. '계시'라는 인식을 두고 주체성은 신에게 전적으로 주어져 있고, 사도바울보다는 메시아에게 가깝게 주어져 있다.
따라서 사도바울(목자)는 자신이 알지못하는(수동적으로 인식하는) 사항이 발생하는 문제를 시스템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것은 종교의 교회화를 초래했다. 교회체제. 제도화.
여기에서부터 문제점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첫째는 원칙과 실체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두번째는 경직된 제도화가 발생한다. 본래적 생산의 과정을 정반대로 뒤집으며 애초에 존재했던 생명성이 거세당하고 시스템만 남게 된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이 존재할 것인가?
신과 인간의 공백 사이에서 불확신하면서도 자율권을 행사하는 목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만인의 결정으로 해결하자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네그리, 하트가 '선언'에서 이야기한 '제도화'와 같다.
그것은 조삼모계의 제도화이다. 유동적 제도화로서 놀이로서의 제도이지 법으로서의 제도와는 거리가 존재한다.
따라서 이는 하버마스의 제도화보다 훨씬 flexible한 제도화라고 말할 수 있다.
3.법과 복종: 그리스의 시민은 법과 설득(웅변술)에 의해서만 지휘를 받아들이며, 그들에게 복종이라는 일반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그리스도교의 사목은 순수한 복종의 심급을 조직했다. 즉 목자와 양떼의 관계가 전면적 의존관계라는 것이 그리스도교 사목의 특징이다. 그리스도교의 사목은 단 하나의 일반적 척도만을 적용해 민사재판에서처럼 유죄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목자의 행위는 늘 임기응변식이고 개별적이다. 그리스도교는 신의 의지, 개별자 각각에 대한 신의 의지의 종교이지, 법의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
2.1 그리스도교의 겸손 - 자신의 모든 의지가 나쁜 의지임을 알고 각자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 아담과 이브 시대의 원죄론을 윤리화시키는 것. (욕망=의지=나쁜 것)
이에 반하는 시도들
- 푸코 : '자기에의 배려' : 푸코가 자기테크놀로지에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교'보다는 '그리스주의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니체 : 힘에의 의지(마흐트), 생산력, 역능, 생동력. <-> 게발트(권력)과는 다르다.
- 고대의 양심지도 : 생산력,힘의 강조, 그리스도교보다 보다 자율적임.
- 베르그송 : 생의 도약에 대한 의지.
- 스피노자.
기획세미나 생명과 혁명 20130407 돌민 푸코,『안전, 영토, 인구』, 254~258쪽, 발제문
1. 그리스도교에서 육신의 쾌락이 비난받는 이유는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주의가 주제로 다뤘던 것 같이 쾌락이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 안에서 개별적이고 개인적이고 이기주의적인 활동이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자신이라고 하는 것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갖고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것, 자신을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최고의 가치로 간주하고 긍정하는 것 등이 그런 활동입니다. 요컨대 복종의 실천을 통해 제거되어야 하는 파토스는 정념이 아니라 의지, 곧 자기로 향하는 의지이고 정념의 부재, 아파테이아는 자기 자신을 포기해버린 의지, 부단히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의지가 됩니다.
2. 더 나아가 이렇게 덧붙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간단히 끝내보죠. 경우에 따라서는 수도원장이나 주교 등 그리스도교적 복종의 이론과 실천에서 명령하는 자는 자신 스스로가 명령하고 싶어서 명령하는 따위의 일을 해서는 안 되고, 다른 이로부터 명령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명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이것[그리스도교 사목]은 각각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지극히 개인화되고 늘 순간적이며 제한적인 일반화된 복종의 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지배가 존재하는 지점에서일지라도 거기에는 여전히 복종의 효과가 존재합니다.
<-> 파티스타의 복종과 명령 : 복종하며 명령하며, 명령하며 복종한다. (명령과 복종의 순환관계, 복종자와 명령자가 별개로 존재하지 않음. 마르코스 부사령관 sub-commander에서 sub는 복종이라는 뜻으로 그의 명칭은 '복종하는 명령자'로 번역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복종의 단성성 문제를 해결한다.)
4. 그래서 이 모든 예속-봉사의 관계를 그리스와 로마의 개념인 임무[역무]officium와 비교하고 대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다른 근본적인 문제, 요컨대 자기라는 문제 역시 볼 수 있습니다.
5. 마지막 세 번째로 [전면적 의존관계에는] 진실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방식으로 말한 적이 있으니 간략히 말씀드리죠. 역시 지극히 도식적으로 정식화한다면, 세부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사목과 진실의 관계는 그리스의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목자에게는 자신의 공동체를 교육할 임무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모두 전통적인 교육의 구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에 비해 그리스도교 사목의 더욱 두드러진, 근본적으로 새로운 특징이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다지원 생명과 혁명 세미나 ∥2013년 4월 7일∥발제자: 김정연
텍스트: 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2, 258~264.
1. 그리스도교 사목의 근본적으로 새로운 특징 두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가르침은 일반 원칙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일상생활이 실제적으로 돌봐지고 감시되어야 합니다.
2) 둘째, 목자는 단순히 진실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양심을 지도해야 합니다.
가) 고대의 양심지도는 본인의 의지를 전제로 했고, 돈을 받고 이루어졌습니다. 고대의 양심지도는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적이었습니다. 지도받는 자가 양심점검을 요구당하는 경우에 목표는 자기점검을 하는 자의 자기제어, 자기통제였습니다.
나) 이와 달리 그리스도교의 양심지도는 항상 의지적이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수도사의 양심지도는 완전히 의무적입니다. 둘째, 양심지도는 상황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항구적입니다. 셋째, 양심 점검의 목표는 타자에의 의존관계를 더욱 심화시키고 부각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양심의 점검을 통해 자신과 지배자를 연결하는 진실을 계속 생산합니다.
2. 그리스도교의 핵심, 독창성, 특수성은 구원, 법, 진실이 아니라 공덕과 죄과의 새로운 관계, 절대적 복종, 숨겨진 진실의 생산입니다.
3. 그리스도교 사목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권력형태와 완전히 특수한 개인화의 양태가 탄생합니다. 특히 이 개인화는 세 가지 방식으로 정의됩니다. 첫째, 분석적 판별 : 공덕과 죄과의 균형, 작동, 순환을 규정하는 어떤 해체의 움직임에 의해서입니다. 둘째, 종속화 :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반적인 예속과 자기, 자아, 이기주의의 배제와 관련된 네트워크에 의해 작동하는 개인화입니다. 셋째, 주체화 : 이 개인화는 명백한 진실과의 관계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내밀하고 은밀하고 숨겨진 진실의 생산에 의해 획득됩니다. (=예속화)
4. 사목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16세기부터 전개될 통치성의 단초를 보여줍니다.
1) 첫째, 사목 고유의 절차를 통해서입니다. 법, 구원, 진실 아래 다른 유형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일체의 대각(diagonales)을 통해서입니다.
2) 둘째, 사목은 지금까지 설명한 분석적 판별, 종속화, 주체화의 과정을 통해 특징지어지는 주체를 구성함으로써 통치성의 단초가 됩니다.
5. 다음 시간에는 통치성이라는 주제를 다시 다루겠습니다.
숨겨진 진실의 생산(복종의 효과를 가져옴.)
<- >
푸코가 '진실에의 용기'에서 이야기한 자기통치와 다른 점 : 자기통치는 정해진 진실없이, 끊임없는 용기로서 맞이하는 진실. 매순간 변하기 때문에 주어진 진실은 없다.
'세미나 발제문 > 미셸 푸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아찌 발제문] 사회를보호해야한다 3,4장 (0) | 2015.10.21 |
---|---|
사회를 보호해야한다 1~4강 화니짱버전 발제문. (0) | 2015.10.20 |
10/13사회를보호해야한다 강의정황 (1) | 2015.10.13 |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첫모임 발제 (강의요약) (0) | 2015.10.12 |
[작성중] 푸코의 ‘안전,영토,인구’를 통해 살펴본 기독교와 전체주의 (0) | 2013.04.09 |
- Total
- Today
- Yesterday
- 한국전쟁의기원
- virtù
- 레비스트로스
- 공화국
- 알튀세르
- 신학정치론
- 안토니오그람시
- 계급투쟁
- 로마사논고
- 검은 소
- 생산양식
- 의식과사회
- 헤게모니
- 루이 알튀세르
- 프롤레타리아 독재
- 이탈리아공산당
- 개인심리
- 마키아벨리
- 생산관계
- 딘애치슨
- 야생의사고
- 브루스커밍스
- 이데올로기
- 루이알튀세르
- 무엇을할것인가
- 옥중수고이전
- 스피노자
- 집단심리
- 옥중수고
- 그람시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