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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서문: 아감벤 사유의 전환과 우리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벌거벗은 임금님에 대한 긴 주해 또는 계보학

 

정치철학적 계보학

- 기독교의 탄생 이전의 그리스 정치철학에서 현대 정치학과 경제학의 탄생에 이르는 장구한 시공간에 걸쳐 있음(p. 11).

임금님이 어떻게 옷을 입을 자격을 갖추게 되었는가(p. 12)

벌거벗음 개입 가장 멋진 옷

재단사[천사와 관료제]

 

통치성의 계보학

위의 논리가 척 하는 것을 가리는 찬가와 찬송위에 기반하고 있음을 폭로

 

인식론적 계보학

아이만 진리를 말함. 푸코 말대로 우리는 진리를 말하기 위해 무수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아이는 유일하게 대가를 치르지 않기 때문.

 

이 책은 임금님’ - ‘재봉사’ - ‘아이로 구성되는 원형적 계보학이 서구 정치와 신학에서는 성령’ - ‘성부’ - ‘성자로 이루어진 삼각형 속에서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모습을 추적. 21세기 현대 정치의 삼권부립에까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p. 13)

 

이 책은 아감벤의 전체 사유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자 이정표. ‘벤야민 하이데거 푸코가 어떻게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이루는지를 보여줌(p. 14).

 

호모 사케르1권의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삶이라는 존재론적 정치철학이 왕국과 영광이라는 통치성의 정치철학으로 이동한 것.

옮긴이는 이것을 푸코의 말과 사물에서 앎에의 의지자아에의 배려로 사유의 궤적에 유비.

 

아감벤의 전환

- ‘~로의 전환인 동시에 ‘~로부터의 전환

- ~로부터의 전환은 슈미트의 정치철학으로부터의 전환 혹은 전복

슈미트에 따르면 근대 정치는 신학의 세속화 / 아감벤에게는 역으로 신학이 실제로는 (신성화된) 정치학(p. 15)

현대 정치는 신학을 벗어나 근대화된 것이 아니라 미디어와 정치 스펙터클을 통해 여전히 신학적 패러다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오이코노미아

고대 그리스 가정의 경영, 어떤 것을 유지하고 운영하기 위한 배치, 질서, 운영, 관리
기독교 신학 아들예수에 의한 역사적 구원과 관련한 실천론과 연관됨
아들에 의한 실천이나 행동’, ‘유위’(‘아들의 성육신, 수난 부활)
배치’, ‘처분’, ‘의향
오늘날 경제학 (효용의 극대화로서의 절약’)

 

기독교 신학은 처음부터 정치나 국가가 아니라 오이코노미아의 속성을 띠고 있었음. 즉 근대라는 패러다임은 고대의 신학적 패러다임을 벗어나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의 정치와 경제는 고대의 오이코노미아패러다임에 기반(p. 18).

 

서구에서 권력은 왜 오이코노미아 형태를 띠게 되었는가?

왜 현대의 민주주의 정치는 고대의 신학적 통치 장치의 가장 강력한 도구였던 영광의 스펙터클과 미디어[매개]를 여전히 힉심적으로 요구할까?

 

서문

이 연구는 서양에서 권력이 어떤 경로를 거쳐 왜 오이코노미아형태, 다시 말해 인간들에 대한 통치라는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따라서 통치성의 계보학에 대한 푸코의 연구와 궤를 같이하는 동시에 그의 연구가 완수되지 못한 내적 이유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p. 25).

 

권력은 왜 영광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p. 27)?

권력이 본질적으로 행위와 통치를 위한 힘과 능력이라면 그것은 왜 엄격하고 거추장스러운 의식 환호송, 의전이라는 영광의 형식을 띠는 것일까?

오이코노미아와 영광 사이의 관계란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들을 신학적 차원에 회부함으로써 우리는 서양의 통치 기계의 궁극적 구조 같은 것을 오이코노미아와 영광의 관계 속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볼 수 있을 것이다.

 

환호송과 영광의 기능이 여론과 총의라는 현대적 형태로 지금도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 장치의 중심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p. 28).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에게서 미디어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미디어들이 여론에 대한 통제와 통치를 가능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것들이 영광, 다시 말해 현대에서는 사라져버린 듯 보였던 권력의 환호송적이고 영광송적인 측면을 운용하고 집행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스펙터클의 사회 우리가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을 이러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면 오이코노미아와 통치에서 영광의 양상을 띠는 권력을 따로 식벼해낼 수 없게 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p. 29).

 

현대가 인간의 가장 고유한 차원인 정치에 접근하는 것을 오랫동안 가로막아온 것은 생산성과 노동에 대한 순진한 강조였다. 이에 반해 여기서 정치는 그것의 중심에 있는 무위(無爲, inoperativity), 다시 말해 인간과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무위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작위(作爲, operation)로 되돌려진다. 우리는 비어있는 옥좌, 영광이라는 상징을, 그것을 넘어 지금으로서는 다만 조에 아이노스’, 곧 영원한 생명 영생- 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뿐인 무언가를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세속화할 필요가 있다(p.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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