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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란 무엇인가,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 행위이다. 우리네 사회에서 범죄자란 무엇인가, 법에 의해 처벌을 받을 행위를 한 자이다.

인간의 행위의 범위는 셀 수 있을까? 아무리 천편일률적인 사회일 지라도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다 동일할 순 없을 것이다. 행위의 경우의 수가 무한대이므로 법이라는 틀이 규정해놓은 범법적 행위엔 반드시 하나 이상의 인간의 행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즉, 범죄가 없는 세상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회가 의도적으로 범죄 행위를 제거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법률이라는 체계가 이를 방해하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지금의 사회의 윤리의 기준은 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과거엔 법률이 아닌 각 사회 구성단위별로 윤리의 기준이 달랐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윤리적 기준에 따라 소속된 구성원 각각의 윤리성이 평가되었다. 이러한 윤리의 개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구성원이 변하고, 외부 문화의 유입 등을 통해 매 순간 유동적이었으며, 구성원 각각이 가진 윤리적 개념도 서로 달랐기 때문에 유동적이었다. 즉, 특정한 형태가 없고 형태가 주어지는 시점은 구성원들이 모여 논의가 이루어질 때만 그 순간에 잠시 형태를 갖추었다.

현재는 법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판결 기준을 벗어날 수 없다. 법을 지키는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부도덕한 사람 또는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오죽하면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법 없이 살아도 범죄를 저지를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최고로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의미는 다르게 해석하면, 대부분의 사람을 법이 없으면 범죄자가 될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항상 불안에 떨게 만든다. 내 주변의 어떤 사람도 나를 가해할 수 있는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뉴스에서 나오는 온갖 범죄 소식들로 인해 사람들에게 더욱 불안을 가중시킨다. 특히 뉴스 속 가해자들의 평범성에 대한 부각은 타인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범죄자의 평범성은 내 주변의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준다. 처벌의 경미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사회적 안전망보다는 개인의 안전망을 더욱 추구하게 만든다. 사회가 지켜줄 수 없으니 내가 내 신체의 안전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는 나를 지켜줄 수 없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전략인지도 모른다.

이에 반해 세월호 참사의 범죄자들에 대한 괴물화는 다르다. 그들에 대한 윤리적 평가의 잣대는 법률적인 것에 있지 않다. 법률에는 구할 수 있었음에도 구하지 않은 행위에 대한 처벌의 기준이 없다.  구할 수 있었음에도 구하지 않은 것은 따지고 보면 가해의 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면, 구할 수 있었음에도 구하지 않은 것에 명분이 없는 이상 그것은 범죄가 된다. 명분이 있으나 그 명분이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 또는 개인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였다면, 존엄한 생명을 지키지 않은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른 괴물이 된다. 이러한 괴물화는 다른 누구도 아닌 피해자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이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가해자는 괴물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사회적 틀은 깨진다. 윤리적 기준이었던 법률에 잠식 당했던 인식의 틀이 그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올 틈이 생긴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균열은 성범죄나 살인 사건 등에 대해서도 생길 순 있으나, 희생된 이들의 규모의 차원에서 피해자와 그 외 사회 구성원들에게 대규모로 확산되기가 어렵다. 극소수가 틀을 깨는 것이 아닌 소수라 부를 수 없는 구성원이 사회적 인식의 틀을 깨고 연대하였을 때, 우리는 기존의 사회를 뒤집을 수 있다. 세월호 참사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유다.

생각해보니 다른 많은 사건도 있었는데, 왜 굳이 세월호 사건인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좋은 화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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