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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구절2
"푸코의 권력은 생물권력이지 생명권력은 아니다. 생물권력이 '살게 만드는 것'은 생물, 즉 물질로서의 생명의 존속이다. 그것은 생물권력의 장치적 지각활동 혹은 인지적 장치활동에 의해 규정된다. 생물권력은 생물을 하나의 물질로서 간주하며 물질을 다루는 기법들을 생물을 다루는 데 적용한다. 출생, 성장, 질병, 노화는 생명의 물질적 측면이지 생명 고유의 지속의 측면이 아니다. 인구는 양으로 파악된 생명이지 질로서 파악된 생명이 아니다. 의료, 보험 역시 생명의 물질적 지속에 관한 것이지 생명으로서의 지속에 관한 것이 아니다. 물질로서의 생물은 죽은 것처럼 다루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푸코가 분석한 규율권력과 생물권력 사이에는, 보기와는 달리,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크다. 둘 다가 공통적으로 생명을 물질로서 간주하고 또 취급하기 때문이다. 규율권력이 다루는 노동력처럼 생물권력이 다루는 국력[시민의 힘]도 생명력이 물질적 힘으로 계산되고 취급되면서 생명자체로부터 분리될 때 나타나는 형식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물권력은 진정한 의미에서 '살게 만드는 권력'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죽게 만드는 권력'에 아주 가까이에서 움직이는 권력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인종주의는 생물권력의 본편성을 쪼개며 틈입하는 것이라기보다 생물권력 그 자체의 발현형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88)
인지자본주의의 적극적 측면은 바로 이 인지적 흐름의 장치를 창조함으로써 생명활동의 조건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생명은 프로그램, 다이어그램, 알고리즘, 매트릭스의 망들을 따라 움직이게 되며 이를 통해 자본은 생명활동 전체를 통째로 포획한다. 생명체나 생물종을 규율하거나 조절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것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살게 만들"면서 그것의 삶 활동인 인지과정을 그 과정 속에서 포획하는 인지장치가 권력으로 기능하고 자본으로 기능하는 체제가 바로 인지자본주의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지자본주의는 삶권력의 장치이다. 생물권력과 삶권력은 삶의 과정 속에서 생명력을 삶으로부터 분리하는 방식으로 생명체들이 권력 속에서 '살게 만든다'. 그러나 이 권력을 생명권력으로 부르지는 않도록 하자. 생명은 물질에 적응된 생물이나 물질과의 교류과정인 생명활동과는 달리, 그 자체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만약 생명권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생명의 약동 자체, 생명의 자기활동, 자기배려, 자기의 테크놀로지, 자기의 노모스를 지칭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지와 자본, 조정환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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