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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역사2 / 서론/ 푸코 / 2016.07.17.() /닥홍

 

160717 서론 1장 전반부 성의역사2 푸코 닥홍.hwp

변형

 

나는 우선 성이라는 대단히 일상적이고 극히 새로운 이 개념 앞에 멈추어 서 보고자 했다. , 그것에 대해 거리를 두고 물러서서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이 자명한 성이란 것에서 비껴나 그것과 관계된 이론적 실천적 배경을 분석하고자 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서구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스스로를 성의 주체로 인식하게 되는 이러한 경험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경험이 어떤 문화에서 지식영역간의 규범성의 유형과 주관성의 형태들간의 상관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때, 내가 계획하는 바는 경험으로서의 성의 역사이다.

성을 모든 억압의 결과로 가정하는 것은 욕망과 욕망의 주체를 역사의 영역 밖에 밀어내는 것이다. 욕망과 욕망하는 주체에 관한 역사적, 비평적 작업 없이 18세기 이래 성의 경험이 어떻게 형성, 발전되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어렵다. 욕망, 정욕 혹은 리비도의 실천을 분석하려고 한다. 개인들이 자신들 사이에 작동시키는 관계는 이들이 욕망에서 그들 존재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개인은 자기와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주체로 세우고 주체로 인식하데 되는데, 이 같은 자기와의 관계가 어떤 형태와 양태들을 취하는지를 탐구해야 한다. 고대에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자기해석학을 중심으로 진살의 작용들을 분석하고자 했다. 인간이 스스로를 광인이라고 인지할 때, 병자라고, 죄인이라고 인식할 때 어떤 진실의 작용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사고하는데 몰두하는 것일까?

앎에 대한 열정이 지식의 획득만을 보장할 뿐 어떤 식으로든 그리고 되도록 아는 자의 일탈을 확실히 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시도-이것은 의사소통의 목적에 맞게 타인을 단순화시키는 것으로가 아니라 진실의 작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변형시키려는 시험으로 이해되어야만 하는데-는 철학의 살아있는 본체이다. 철학적 훈련의 관건은 그 자신의 역사를 사고하는 작업을 통해 사고가 어느 정도나 무언중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얼마만큼이나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어떻게 무슨 이유로 어떤 형태하에 성행위가 도덕적 영역으로 정립되었는가? 도덕적 배려가 지속적으로 문제화 되는 이유는 무슨 이유인가? 과제는 인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문제화 하게 되는 상황을 정의하는 것이다.

존재의 기술이 중요하다. 그것이 기독교와 근대 교육, 의학, 심리학에 통합되며 자율성을 상실했지만 말이다. 존재의 미학과 자아의 기법의 오랜 역사가 씌어지고 계승되어야 하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인간 존재가 어떤 식의 문제설정을 통해 스스로를 사유될 수 있고 사유되어야만 하는 대상으로 내주게 되는지를 그리고 그 같은 문제설정의 출발점이 되는 출발점이 되는 실천들을 분석한 것이다.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고대에 성적 활동과 쾌락이 존재의 미학의 기준을 작동시키면서 자기의 실천을 통해 어떻게 문제화되었는지 하는 것이다.

 

2. 문제설정의 형태들

 

(1) 공포

먼저 정액을 유출시킨 젊은이들에 대한 묘사(자위행위)에서 수태능력도 파트너도 없는 단순한 성적 소모에 대해 품어왔던 강박관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자기의 성을 남용하는 자에게 한결같이 예고되어 왔던 것은 인체의 점차적 쇠약, 개인의 죽음, 그 종족의 파멸과 종국에는 전 인류에 미치게 될 손실이었다. 자기 자신을 해치고자 할 때에만 쾌락에 탐닉하라 이 공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2) 행동도식

 

2년에 한번씩 5일 동안만 그리고 6일째 몸을 깨끗이 씻고 무리로 돌아가는 코끼리에 대한 찬양. 일부일처 관계에 대한 칭송. 합법적 배우자에 대한 남편의 성적 충실성은 법에 의해서도 관습에 의해서도 요구된 바 없지만 사람들은 그 문제를 제기했고 몇몇 도덕주의자들이 중요성을 부여하는 엄격함의 한 형태였다.

 

(3) 영상

 

19세기 문헌들 속에는 동성연애자나 성도착자의 전형적 초상화가 있다. 이 가치폄하적 묘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은 그의 행동, 태도, 야하게 치장하는 방식, 교태뿐만 아니라 그의 얼굴형태와 표정, 해부학적 구조, 몸 전체의 여성적 형태 등이다. 이처럼 가치폄하적인 묘사는 성적 역할의 전도라는 테마와 동시에 자연에 대한 죄의 당연한 상흔이란 원칙과 관계된 것이다.

 

(4) 금욕의 모델

금욕은 그들을 인간 본성보다 우월한 어떤 요소와 직접 접할 수 있게 해주고, 그들을 진리의 존재 자체에 이르게 해주는 어떤 형태의 지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이 가까이 하고자 하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그 지혜를 얻고자했던 소크라테스가 그러했다. 성적 금욕과 진리에의 접근 사이의 관계라는 테마는 뚜렷이 나타나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유혹과 싸우는 예수가 아니고 니코클레스가 기독교인 남편은 아니다. 기독교의 성도덕이 고대에 이미 형성되었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한편 고대의 성적 염격함의 테마들이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금지의 표현이나 해설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어떤 활동이 그 권력을 행사하고 자유를 실천함에 있어 완성되고 양식화되는 것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성적 엄격함의 위대한 형상들 각각이 어떤 경험의 축 구체적 관계들의 망과 관련이 있다. 육체화의 관계는 건강의 문제와 삶과 죽음 전체, 다른 성과의 관계는 가족제도와 그것이 만들어 내는 상호작용, 동성과의 관계는 선택할 수 있는 파트너의 문제, 진리와의 관계는 지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정신적 조건의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는 성적 엄격함의 요구 안에 감춰져 있거나 아니면 거기서 드러나는 기본적 금기들을 찾기보다는 어떤 경험적 영역으로부터 그리고 어떤 형태하에서 성적 행동이 염려의 대상, 숙고해야 할 요소, 양식화의 제재가 되면서 문제로 설정되었는지를 탐구해야 한다. 정확히는 고대사회에서 자유인인 남자가 불가항력적 금지에 부닥치치 않고 그의 활동을 펼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네 개의 큰 관계영역들이 어찌해서 바로 성적 행동이 강력히 문제로 제기되는 영역이 되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어떻게 성적해동이 여러 다른 유형의 관계들을 함축하는 한에서, 도덕적 경험의 영역으로 판단되었는가?

 

3. 도덕과 자기의 실천

 

도덕은 가족, 교육기관, 교회 등과 같은 다양한 규제체제를 통해 개인이나 그룹들에 제시되는 행동규칙과 가치들의 총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규칙과 가치들은 논리적 교리나 명시적 교훈으로 정식화되기도 하고 체계적 전체를 형성하기보다는 상보적이고 중화되며 어떤 점에서 상쇄되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이루기도 한다. 이러한 규칙의 총체가 도덕적 규약이다. 도덕규칙 속에서 개인들의 실제적 행동이 나타나는 측면을 행동의 도덕성이라 하자.

하나의 행동이 도덕적이라 일컬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규칙, 법률, 혹은 가치에 따르는 하나의 행위, 혹은 일련의 행위들로 귀착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도덕적 행동은 현실 속에서 규약에 의거하여 실행되며, 사실 그 같은 현실, 규약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다. 그것은 자기와의 어떤 관계 또한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자기인식이 아니라 자신을 도덕적 주체로 세우는 일인데, 여기서 개인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이 도덕적 실천의 대상이 되는지를 한정하고, 자신이 따르는 계율에 대한 스스로의 입장을 정의하며, 자신의 도덕적 완성에 값할 만한 어떤 존재방식을 스스로 정한다.

도덕의 역사를 쓰고자 하는 자는 이 단어에 내포된 다음과 같은 여러 다른 현실을 고려해야만 한다. 도덕성의 역사, (즉 어떠어떠한 개인이나 그룹들의 행동이 여러 다른 심급에 의해 제안된 규칙과 가치에 어느 정도나 부합되는지 아닌지를 연구하는 역사. 규약들의 역사, 즉 어떤 사회나 그룹에서 문제되고 있는 규칙과 가치들의 여러 다른 체계, 그 체계들을 활용하는 심급이나 구속, 작치들, 체계들의 다양성, 마지막으로 개인들이 스스로를 도덕적 행동의 주체로 세우게 되는 방식의 역사, 자기 성찰, 자기 인식의 모델들의 역사이다.) 이것이 윤리와 금욕주의의 역사 도덕적 주체화의 형태들, 자기를 확고히 하기 위한 자기실천의 역사라 불릴 수 있는 역사인 것이다.

첫째 권에서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 성적 행동이 도덕적 평가와 선택의 영역으로 생각되었던 방식, 그 방식을 특징짓는 몇 가지 일반적 특성들이다. 쾌락의 활용에서 출발해 그것과 관계된 주체화 양식, 윤리적 실체, 복종의 유형, 자기완성과 도덕적 목적론의 형태 같은 것들을 도출해 내도록 하겠다. 다음으로 그리스 문화에서 각기 그 존재와 위상과 규칙을 지니고 있던 하나의 실천(건강관리법, 동거, 가족, 구애술)으로부터 출발하여 의학, 철학에서 쾌락의 활용이 구상된 방식과 몇 가지 엄격함의 테마들이 정식화된 방식을 연구할 것이다. 이 엄격함의 테마들은 육체에 대한 관계, 아내에 대한 관계, 소년들에 대한 관계, 진리에 대한 관계라는 경험의 네 가지 큰 축 위로 회귀될 것이다.

 

 

 

 

 

 

 

 

 

성의역사2 / 1쾌락의 도덕적 문제설정 / 푸코 / 2016.07.17.() /닥홍

 

그리스인들은 우리가 성적이라 부르는 여러 몸짓 행위를 지칭하는 단어를 사용한다. 명사화된 형용사를 주로 사용하는데 라틴인들이 베네레아로 번역하는 타 아프로디지아이다. 성행위, 사랑의 쾌락으로 번역하려 하지만 정확히는 어렵다. 이 장에서는 육체에 대한 양생술, 결혼에 관한 가정관리술, 소년들에 관한 연애술, 진리에 관한 철학 이 네 가지로 발달된 성적 행동의 주요한 양식화 유형에 관한 연구의 서언으로 뼈대가 되는 일반적 특성을 도출하려 한다.

그리스인들은 성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이런 유의 쾌락을 거론하는 방식에서 도덕적 문제를 인식했다. 그들이 아프로다지아에 대해 제기했던 도덕적 질문의 일반형태에 관심을 가진다. 공통적 문제설정의 장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아프로디지아 개념을 통한 윤리적 실체, 크레시스 즉 활용의 개념, 제어 엔크라테이아의 개념, 절제 소프로쉬아네의 개념을 통해 존재론, 의무론, 금욕주의, 목적론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아프로디지아(Aphrodisia)

 

아프로디지아란 활동 아프로디테의 행위, 에르가 아프로디테스 이다. 그리스인들에게 풍속상의 자유가 있었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작품 속에서 심지어 에로틱한 문학에서까지도 성행위를 암시하는 표현을 할 때는 상당히 조심스러워 보인다. 돌이켜 생각할 때 이것이 조심성으로 인지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이들이 아프로디지아 그리고 그것에 대해 제기되는 질문의 종류를 고찰하는 방식이 아프로디지아의 심오한 본성, 그것의 규범에 맞는 형태, 혹은 그 숨은 힘의 탐구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 아프로디지아는 어떤 형태의 쾌락을 제공해 주는 행위, 몸짓, 접촉이다. 육체와 성에 대한 기독교적 경험의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주체의 각성을 촉구한다는 점이 될 것이다. , 유연하고 위험스러우며 소리없는 어떤 힘의 발현을 자주 의심해보고 저 멀리서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심이 아프로디지아의 경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 절제의 교육과 훈련에서는 소리와 영상과 향기를 경계하도록 권고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런 것에 기울이는 애착이, 그 본질은 성적인 그런 욕망의 가장된 형태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이 그 리듬으로 영혼을 나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고 연극이 독처럼 영혼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며, 어떠한 향기, 어떠한 영상이 욕망하는 것의 추억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하기를, 교미는 모든 동물에게서 동일하지 않으며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성적인 행동, 교미 행위들에 대해 질문을 던질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들이 취하게 되는 형태가 아니라 그것들이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들의 형태보다는 그것들의 역동성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동성을 결정짓는 것은 아프로디지아 및 그것과 관련된 쾌락,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욕망 사이를 연결 짓는 움직임이다. 기독교 사목에서는 육체적 쾌락을 성적 행동의 목표로서 추구하지 말라는 명령에 의해 쾌락은 도덕적으로 평가절하된다. 반면 아프로디지아의 경험에서 행위, 욕망, 쾌락은 그 요소들이 분명 구분될 수는 있으나 서로가 단단하게 연결된 하나의 총체를 요소를 이루는 기밀한 관계이다. 자연은 행위의 수행이 쾌락과 결부되기를 원했다. 쾌락이 에피튀미아 즉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욕망은 언제나 기분 좋은 것에 대한 욕망이라는 원칙에 의거해 볼 때 욕망은 본래 쾌락을 주는 것을 향해 가는 움직임인 것이다. 성적행동의 차원에서 그리스인들의 도덕적 성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행위, 욕망, 쾌락, 이 셋을 순환적으로 결합시키는 역동성이다. 결핍의 존재론이 아니라 힘의 존재론이다.

이러한 역동성을 분석하는 데는 두 가지 중요한 변수가 있다. 하나는 양적인 것이다. 인간을 구분 짓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행동의 강도이다. 절제 아니면 무절제이다. 동성 관계는 과도함의 결과로 쾌락에서의 무절제이다. 성적 쾌락에서 부도덕이란 항시 과도, 과잉의 차원이다.

쾌락의 실천은 또한 역할이나 극성이라 말할 수 있을 또 다른 변수와 관계되어 있다. 아프로디지아란 단어에서 아프로디지아제인이란 동사가 대응된다. 일반적인 성적인 활동을 뜻한다. 이 동사는 성관계에서 능동적, 남성적 의미이다. 반대로 수동적인 의미는 아프로디지아스테나이이다. 성적 쾌락의 실천에서는 생식기능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개의 역할과 두 개의 극점이 분명히 구분된다는 점을 지적해야만 한다. 이것은 주체와 객체, 능동자와 수동자라는 두 가지 지위 치이다. 성이 남성의 성과 여성의 성 간의 커다란 간극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프로디지아는 각각의 역할과 기능을 지는 두 행위자-행동을 행하는자와 그 행동이 가해지는 자-가 포함된 하나의 활동으로 생각된 것이다. 과도함과 수동성은 남자가 아프로디지아를 실천할 때 저지를 수 있는 부도덕성의 두 가지 주요한 형태이다.

 

(2) 성적활동이 이와 같이 도덕적 평가와 구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생행위가 그 자체로 하나의 악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이 원죄의 표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성적 활동은 생물의 번식 종족의 유지를 위한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된다. 플라톤은 우리를 아프로디지아로 이끌어 가는 것들을 가장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욕망들 속에 분류한다. 자연스럽긴한데 도덕적 배려의 대상이다. 성적 쾌락은 악은 아니지만 존재론적으로 하등하다고 특징지어진다. 왜냐하면 그 쾌락이 동물과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체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쾌락은 생명력이 있는 쾌락이다.

자연이 아프로디지아의 쾌락을 하등하고 종속적이며 피제약적인 쾌락으로 만들었는데도 성적 활동이 자연에 의해 정해진 한계들을 넘어서게 되는 것은 쾌락의 이 자연스런 생명력 때문이며 그것이 욕망을 매혹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생명력 때문에 욕망과 욕망의 충족이 최우선적인 것이 되고 그것에 영혼에 대한 절대권이 부여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는 이런 힘들 본래 잠재적으로 과도한 것으로 보는데 여기서는 이 힘에 어떻게 맞서느냐, 어떻게 그것을 제어하며 그것에 알맞은 관리술을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 도덕적 문제가 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상에서 먹을 것, 마실 것, 성적 활동이 도덕적 문제로 설정된 것은 유사한 방식에서 였다. 음식, , 여자 및 소년들과의 관계는 유사한 윤리적제재가 된다. 그것들이 작동시키는 것은 자연의 힘인데 그것은 항시 과도해지는 경향이 있다. 쾌락과 욕망과 행위들의 이 같은 역동성을 어떻게 활용 할 수 있으며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하는 올바른 활용법의 문제가 제기된다.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는 음식과 술과 사랑에서 쾌락을 얻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적절하게 쾌락을 얻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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