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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그람시의 옥중수고 이전』 개요, 1부 2021.10.1. 바다사자
개요
그람시의 사상들은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현존 사횢의’국가들의 전제적 당 관료주의에 대한 근본적 대안을 제시한다(10).
그람시 수고 이전의 저작들의 장점은 그의 사상의 본래 의도와 체계를 놓치지 않게 해줄 수 있다. 맑스주의와 가장 변별적인 ‘헤게모니’ 또는 이데올로기적 권력의 강조는 당시 이탈리아 국가에 대한 그의 분석과 갓 태어난 이탈리아 공산당 조직에 대한 시각 전체를 암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적 맥락에서 보면 경제투쟁으로부터 정치투쟁의 자율성, 혁명적 의식 형성에 있어서의 의지와 교육의 역할은 다른 중요성을 갖는다. 현대 국민국가 발전의 좀 더 이른 단계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람시의 저작 전체에는 그의 고향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 지역 거주자들 대다수의 생활을 특징짓는 부패와 대를 잇는 가난에 대한 분노가 혼합되어 드러나고 있다. 처음에 그는 때때로 민속문화를 특징짓는 편협함에 민감했다(11).
그람시 사상의 편력
초기 | 피렌체의 저널 <라 보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라 보체의 주장은 이탈리아 통일은 북부의 필요에 따라 남부의 상대적 후진성을 심화시키고 차별성을 억압할 뿐인 방식으로, 남부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종속을 가져왔으며, 새로운 국가의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가 지방 엘리트들과 피후견자들 사이에 후원과 타협에 기반한 ‘변형주의’ 정치를 낳았다는 것이다(남부문제). 지역적 역량과 대중적 에너지에 기반하여 이탈리아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라 보체파의 주요한 목표였다. 그들의 시각은 매우 다양했기 때문에(12) 절충적 집합이었다. 절충주의의 많은 부분이 그람시의 맑스주의에 스며들었다. 프레졸리니로부터 문화의 정치적·교육적 역할에 대한 이해, 크로체로부터 역사 창조에의 인간 의지, 파피니로부터 반교권주의, 살베미니로부터 경험적 분석, 개량주의적 정치체제 및 지주와 산업의 이해를 보호하는 수입관세와 남부의 몰락 관계를 깊이있게 이해했다. |
토리노 대학 시기 | 그람시는 여전히 사르디니아 민족주의자였다. 1913년 사르디니아 선거전을 치르면서 사회주의 정치가 북부 노동자와 남부 농민을 연계시킬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13). |
1914년 | 전쟁 발발 상황에서 그들에게 부여될지도 모르는 혁명적 가능성들을 기꺼이 이용해야만 했기 때문에 무솔리니와 마찬가지로 참전으로부터 유발될 수 있는 자유주의 국가의 약화와 대중 동원의 기회를 포착했다. 첫째, ‘참전주의’는 좌파들에게서 대표적인 이단이었고 무솔리니는 결국 이 이유로 출당되었다. 비대중적 위치를 견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은 그람시에게 특징적인 것이었다. 둘째, 사상과 인간 의지의 역할에 대한 강조도 이단적이었다. 이로 1917년 PSI 피렌체 대회에서 ‘주의주의’로 비난받는다. 역사유물론에 대한 필연적 붕괴를 강조하는 정통적 맑스주의 해석은 지배적인 경제적, 정치적 체제에 굴복(14)하는 자세이며 개량주의 역시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셋째, 대중의 집합적 의지를 교육하고 지직할 필요성 강조, 다가오는 혁명을 준비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넷째, 당이 운영하는 기관들이 적혈구가 증식하듯 퍼져나가는 것을 통해 시민사회의 구조 내에 대항국가를 건설함으로써 권력의 혁명적 장악을 준비하는 전략을 정식화하기 시작했다. 다섯째, 당시 PSI는 ‘자주적’으로 남아야 함을 주장했다. 당은 특수한 상황들에 집중해야만 한다는 주장은 이탈리아의 특수성을 이해하게 만든다. |
1915년 이후 | -러시아 혁명을 반결정론적 맑스주의 해석을 확증하는 것으로 간주(15) 혁명이란 사회적 발전의 자연적 과정의 일부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닥쳤을 때 혁명적 기회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는 민중의 의지와 사회적 의식의 조직으로부터 출현한다고 주장했다. 혁명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의 사회적, 정치적 변혁 조건들의 잠재성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교육과 문화적 준비의 중요성, 민중대학과 같은 치유 노동운동보다 보다 높은 수준의 자각의 획득을 포함해야 한다고 봄. 교육을 대중이 그들의 생활을 구성하는 힘들을 의식적으로 통제하고 현존하는 물질적 조건들의 해방적 잠재성을 최대한 이용하게 하는 것이며 이는 맑스주의 재해석과 맞닿아있다. 개인의 해방은 프롤레타리아트와 인류 전체의 해방과 함께할 때만 성취될 수 있는 조건부적인 성격이 함축되어 있다. 결국 혁명은 대중운동의(16) 집합적 의지에 참여할 때만 성취될 수 있다는 것과 규율 강조, 당 노선을 도덕적 정언명령으로 간주했다.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크로체의 역사주의적 관념론과 젠틸레의 ‘행동주의’적 교리가 큰 영향을 끼쳤다. -고전과 문법 등 전통주의적인 것을 중요시하여 19세기 말엽의 인문 역사가, 철학자를 계승한 크로체와 젠틸레 등의 작가들의 당대 비판을 공유했고 그들의 분석을 급진화시켰다(17). |
전쟁 이후 <누오보>시기 | -이탈리아 국가는 자본주의와 유사-중세주의 혼합물이며 북부에 대한 남부의 경제적 종속, 남부 피후견인들에 대한 북부 엘리트들의 정치적 종속으로 생각,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통해 이탈리아아를 재부흥시키고 이 기획을 노동계급의 이해와 열망을 촉진시키는 데까지 확장시키려 했는데 사회주의만이 이러한 새로운 문화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는 임무는 사회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부과되는 것이었다. 누오보는 처음부터 이러한 정책과 문화정치의 계승이었다. 누오보는 혁명적 운동에서의 지식인의 목소리였다(18). -소비에트와 태생적 배우자인 공장평의회는 이탈리아 국가 재건설의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노조는 평의회가 반자율적 기관으로 발전하는 것을 불안해했지만 그람시는 노동자 측에서 개량주의에 확고하게 결별하고 혁명적 행동으로 넘어감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고무하고자 했다. 교육과 문화의 역할은 노동계급의 자기 표현이자 내적 해방의 계기로서 노동자들을 결합시키고 자신들의 느낌과 열정, 욕망 위에서 일어서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함을 주장했다(19). -그람시는 평의회를 산업에 대한 노동자 통제의 수단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와 활동을 반영하는 민주적 국가의 완전한 새로운 형태의 기본 단위이며 궁극적으로 전 인류를 통합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았다. 일국적·국제적 수준에서 세계 경제와 전 인류 공동체를 재조직화하는 것으로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20)을 낳을 역사 과정의 첫걸음을 이루는 것이었다. 당과 노조의 역할을 혁명 과정이 최대의 속도로 진행될 수 있도록 경제적 조건들을 조직하는 임무를 할당한 부차적 위치에 두었다. 이것은 그를 생디칼리즘으로 비난받게 하였다. -새로운 질서 즉 급진적인 기층민주주의 모델은 위계적으로 조직되었으며 상이한 수준 간의 관계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국가에 대한 ‘유기적’ 이론들에 깔려있는 전체론적 존재론이다. 중점은 공장 조직의 새로운 형태였다. ‘테일러리즘’을 지지, 전체적으로 자기조절적으로 만들고 산업에 대한 노동자 통제를 가능케 하는 방식으로 산업생산을 극대화하고 단순화하며 노동력을 규율하는 것으로 보았다. 근대 기술의 소외와 물신화에 상대적으로 둔감했다. -그의 유기주의는 개념상 ‘진보적’이었는데 당과 지식인들은 그 출현을 촉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자유의 증진을 보다 큰 생산효율성과 연계시킴으로써 노동분할에 기반한 협동생산이 인간의 성취를 삭감하게 될 공산이 큰 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평의회 이론은 국가에 대한 유기적 개념들이 전통적으로 겪어 온 전체주의적 사회공학을 요구하는 위험을 갖는다. -그람시는 실행의 기회를 갖지 못하여 이론적 한계들과 부딪치는 곤란을 피할 수 있었다. |
1919〜 1922 |
-파시즘을 이탈리아의 계급구조, 경제·정치적 체제의 변별적인 특성과 연계시킴. 파시즘은 이탈리아 같이 자본주의 주변부에 속하는 국가는 상대적으로 저발전되어 경제가 취약하며 전간기 불황의 영향을 훨씬 많이 받고 있었고 적은 정치적 자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경제적 위기는 국가의 위기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으며 취약성을 화이트칼라 노동자와 소상인들, 소지주 등으로 구성되고 프롤레타리아트와 자본주의 사이에 위치하며 산업발전의 낮은 수준의 결과인 “광범위한 중간계급 층위”의 존재와 연관지었다. -기득권을 가진 공업, 농업을 위한 협상과 경제적 보호주의 정치는 쁘띠부르주아지에게 주변화되고 있다고 느끼게 했고 피시즘에 쉽게 동화되었다(24). 이들은 거대 그룹에 대해서도 압박을 동시에 느꼈는데 결국 파시즘은 부르주아 국가를 안정시키기는커녕 기존의 지배계급을 추방하려했다. 그래서 대자본가의 파시즘과 토지소유자의 파시즘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람시는 공산당의 가장 큰 임무는 비프롤레타리아아 대중을 혁명으로 전취하기 위하여 둘 사이의 긴장을 이용해야 함을 생각했다. -공산당의 구성과 역할에 대한 그람시의 관점은 파시즘에 대한 이해를 따라 전개되었다. 이탈리아 공산당과 PSI의 분리는 결정적인 시기에 이탈리아 노동 운동을 양분시켰으며 파시즘의 흥기에 대응할 능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코민테른은 1921년 ‘통일전선’을 형성하도록 압력을 넣었으나 어떠한 협력도 있지 않았다. |
1924 | -당의 지도력을 장학함. 당이 농민 및 쁘띠부르주아지를 가톨릭 계열의 인민당 및 파시스트들로부터 각각 분리해 내는 것이 결정적이라고 주장했다. ‘농민문제’에 대한 소비에트의 논의와, 세포를 건설함으로써 공산당을 ‘볼셰비키화’하라는 코민테른의 요청을 수용하여, 미래에 평의회 네트워크의 기반을 형성할 ‘노동자 농민 위원회’를 건설하는 것을 계기로 이탈리아 공산당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당 학교의 건설을 옹호하며 ‘민주적 지식인들’의 필요성을 주장함. 중앙집권화된 당 구조를 고수하지만 대중적인 민주적 기관들을 통해 당원들의 능동적 동의를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함. -두 개의 파시즘과 정당에 관한 논의의 핵심을 경제적 구조에 대한 국가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인 상대적 자율성에 대한 인식. 이미 발전한 서구 나라들의 혁명전략과 주변국가들의 덜 복잡한 국가에 적합한 것을 분별하기 시작함(26). |
헤게모니
플레하노프 |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 자신의 협소한 조합적 이해를 넘어서는 혁명적 자각과 정치적 의지를 형성할 필요성 언급, 그람시가 선진 정치체제에서의 이데올로기적 동의 메커니즘을 묘사하면서 부여한 추가적인 의미는 갖지 않음 |
레닌 |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로부터 빌려옴. 제3인터내셔널의 대외 문서에 사용, 그람시는 여기서 원천을 얻음. |
빈첸조 지오베르티 |
19세기 철학자, 피에몬테에 의한 이탈리아의 통일과 관련된 테제. 국가적 총체에서 한 지방이 다른 지방에 대하여 행사하는 ‘도덕적 우월성’을 의미하는 풍유적 방식으로 사용. 핵심적 특징은 사회주의적 의식의 조직화에 있어 교육과 문화의 역할에 대한 그람시 초기 저작들에 나타남. |
그람시 | 러시아-코민테른적 용법을 이탈리아에 독특하게 토착화시킨 것. 이탈리아 부르주아지가 문화적, 헤게모니적 우월성을 갖출 때만 얻을 수 있는 민중의 지지 없이도 이탈리아를 지배함을 묘사하기 위해 ‘수동혁명’ 개념 채용함. 진정으로 혁명적인 리소르지멘토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공산당이 나라 안의 모든 반대 세력을 모으는 것이 필수적이었고 이를 성취하기 위한 볼셰비키의 수단은 도덕적 우월성을 얻어야 한다는 것(27). |
1부 우리의 맑스
능동적이고 효과적인 중립
구체적 문제
당은 점진적으로 성숙해 가는, 잠재적인 하나의 국가다. 당은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일종의 라이벌로서 적들과의 일상적 투쟁을 통해서, 그 고유의 내적 변증법의 발전을 통해 적대자를 무찌르고 흡수하기 위해 필요한 기관의 창조를 추구한다. 이 과정에서 당은 자주적이다. 당은 궁극적 목적에 대해서만, 계급들 사이의 투쟁이라는 본질적 특성에 대해서만 인터내셔널에 의존한다. PSI만이 유일하게 합당한 심판관이다. 홀로 투쟁을 경험하고 현실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실체이기 때문이다(64).
두 개의 중립
규모의 거대함에 상대적으로 무방비상태였던 위기의 초창기에 ‘절대적 중립’은 유용했다(64). 그러나 초기의 잠정적인 정식에 안주해선 안되며 ‘능동적이고 효과적인 중립’으로 변형시켜야 한다. 이는 계급투쟁을 국민적 삶의 중심에 복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비참한 상태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모든 제도들을 포기해야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당은 전쟁의 공포가 씌운 부르주아의 외피를 벗겨낼 수 있다(65).
무솔리니의 경우
무솔리니 파동에 대해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로마냐 지방 사람으로서의 무솔리니와 이탈리아 사회주의자로서의 무솔리니를 구별해야 했다. 당 지도부의 교조적 형식주의와 <아반티!> 편집자 무솔리니의 구체적 실용주의를 타협시킬 수단을 찾으려 비판의 방향을 잡았어야 했다(66).
전쟁의 신화
그는 부르주아 계급이 필연적으로 전쟁에 이끌려질 수밖에 없는 것을 말했다. 무솔리니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반대지상주의적 태도를 단념할 수도 있다는, 정부의 통제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67).
프롤레타리아트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
절대적 중립이라는 태평한 입장으로 인해 현재 상황의 중대성을 잊거나, 스스로를 방기하여 수동적 관조에 이르게 되어선 안된다(68).
사회주의와 문화
문화는 조직이며 한 인간의 내적 자기에 대한 훈련이고 한 인간의 인격에 대한 통제이며 보다 높은 수준의 자각의 획득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역사 속에서의 우리의 가치와 위치, 생활 속에서의 우리의 바람직한 기능, 우리의 권리들과 의무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역사의 창조물이다. 처음에는 몇 명의 소수만이, 다음에는 한 계급 전체가 지적으로 숙고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 모든 혁명을 선행하여 치열한 비판적 활동과 새로운 문화적 통찰의 과정이 존재했다. 자신들의 고유한 경제적, 정치적 당면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 몰두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집단들에 의해 확산되는 과정이 존재한다. 최근의 사례는 프랑스혁명이다(71).
오늘날 통합된 프롤레타리아 의식이 형성되고 형성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은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이다. 이 비판은 문화적인 무엇이다. 자생적인 자연 진화가 아닌 자기 발견을 함축한다. 자신을 다른 것들에 대항한 척도로 내세움에 따라, 자신을 차별화함에 따라, 대자적으로 한 목적을 창조하자마자, 사실과 사건들이 스스로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목적을 실현시킬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도 평가된다(72).
역사
자신의 신념 모두를 삶에 바치고 자신의 개체성을 보편적 대의와 성과의 무대에 밀어넣어도 삶 속의 허무를 의식하게 된다. 인간 이성만으로는 불충분한 듯이 느껴지며 우발적 사슬들을 추적하다 보면 궁극의 이성이, 알려질 수 있는 것들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이성이 필요한 지점에 이르게 된다. 무한대 속에서 자신의 환상적 방랑으로부터(74) 크나큰 어려움을 느끼는 한 명의 인간이 된다. 종교적 감상은 전적으로 출구가 없다.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삶 자체의 힘이다. 역사적 활동은 그것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기원은 추적될 수 있고 극복할 수도 있다. 그것들을 역사의 객체로 만든다면 그것들의 공허함도 알아챌 수 있다. 역사의 영역 안에 사실과 감정을 도입하게 됨으로써 우리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 존재하는 곳은 오직 역사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성의 초월적인 상태의 비유기적 흔적과 같은 나쁜 것들[즉, 종교적 심성]들은 필연적으로 가톨릭주의와의 갈등에 들어서게 하는데 이것이 근대적(modern)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역사화된 과거가 우리의 종으로서 우릴 계몽시키는 그런 종류의 과거[종교적 미망의 과거]이기 때문이다(75).
사회주의와 협동조합
사회주의의 목적이 단지 생산된 것들의 분배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혁명의 정당화는 집산주의가 생산성을 방해하는 모든 인위적 요인들을 제거함으로써 생산의 리듬을 고양시키는데 기여하리라는 확신으로부터 비롯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현존 생산수단을 비판하는 가운데 획득된다.
보다 근대적인 발전단계 속에서 공적 기업들은 산업 협동조합과 같았다. 자본을 수익성 높고 효율적으로(76) 사용하기 위해 형성되었으며 부르주아 체제가 자본가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자본 공급으로부터 생산상의 기술적 요소들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기업은 사회주의에 커다란 이득을 던져 주는 사회적 실험이다. 자본가라는 존재가 결코 필연적이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비는 자본주의 부르주아지의 행정 및 국가가 소비를 국내 생산에 맞추기 위해 보호주의와 관세 장벽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이유의 전장을 이룬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소비자다. 그래서 가혹한 조처들과 물가 인상에 대한 저항에서 단결하기 마련이다. 고로 협동조합 운동은 본질적으로 사회주의적이 아님이 분명하다.
협동조합은 사회적 책임의 사회주의적 의미를 정제하는 거대하고 인상적인 실험실이다(77). 사회주의의 경제적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접붙여진 이질적인 자본주의로 인해 불이익의 고통을 받고 있다.
자본주의 자체는 부르주아적 상부구조다. 새로운 계급이 정치권력으로 부상하고 난 이후에 세상에 뿌리내리기 위한 투쟁으로부터 비롯된 경제적 발전의 구체적 형태인 것이다. 부르주아 사회의 심장부 안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들의 계급적 목표를 위해 창조한 경제적 중핵들은 부르주아 사회를 붕괴시키는 강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소비자 협동조합은 현재와 미래를 접합하는 일종의 연결고리다. 발전·강화되고 다양화될 경우 이들은 부르주아 체제에 직접적인 무기가 될 것이다(78).
세 가지 원칙과 세 종류의 정치 질서
법적 원리는 인간 의지의 산물이다. 다양한 정치 질서들은 법적 원칙을 완전하게 실행으로 옮기려는 욕구로부터 창출되었다. 1789년 혁명가들은 인간의 권리라는 원칙을 실행에 옮기고 싶어 했고 그 결과 부르주아 문명이 탄생했다(80). 역사에서 절대적이고 고정된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주의라는 이상적인 기준은 이성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일단 인정되면 ‘실제로 작동하는 이상’으로 변화된다. 하나의 이상적 기준으로서 자유주의적 강령은 국가의 경제적 실체를 구성하는 상이한 집단들 사이의 계급 갈등과 끝없는 재편성 및 충돌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국가를 창조한다. 이러한 국가는 하나의 정치적 열망이다. 이를 강화시키고 보수적 힘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환상이라는 사실이다.
모델이 되는 두 국가가 영국과 독일이다. 두 국가 내에서 추동력으로 작용한 사상은(81) 영국은 ‘자유방임’, 독일은 ‘이성의 발현으로서의 권위’였다. ‘자유방임’은 혁명적 봉기의 전 역사를 포함하고 있는 공식이다.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온 사고 형태이다. 실패한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개인에게 비난을 돌릴 수 없으며 계획이 실행되지 않아도 주창자들이 그러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82).
영국 같은 부르주아 국가 –사회주의-비사회주의적 사회주의- 의 존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보호받고 있다고 확신한 후 그들은 노동자 운동의 특징인 도덕적 분노 없이 계급투쟁을 조심스레 수행했다.
독일은 보호주의적이다. 의회는 단순한 자문기관이며 의회와 토론 또한 진리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때문에 유지된다. 다수는 진리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인정받지 못하며 최종 지시는 수상 혹은 황제에게 달려 있으며 제국법령으로만 대체될 수 있다. 다양한 계급들은 자신들의 기본권이 보호되고 있으며 다수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통해 역사적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져야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83).
두 유형이 이탈리아 ‘공공질서 정당들’의 기본 모델이다. 반사회주의 논쟁의 구도는 잠재적인 윤리적 국가에 대한 열망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다. 이탈리아는 점진적 발전기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자유당과 국민당이 주장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희생만을 가져온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이 필연적 진보를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질서를 확립될 수 있고 확립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이러한 상황이 우리에게는 더 큰 에너지와 투쟁 정신의 원천이다. 인민들의 열망을 억누르고 모든 방법으로 가혹하게 요구하는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 없는 곳에서는 더욱 그러하다(84).
사회주의자의 임무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질서를 수립해야 한다. “모든 시민들은 각자의 고유한 인격을 최대한 도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리가 실행될 때 모든 특권은 폐지되고 최소한의 강제와 최대한의 자유가 있게 될 것이다. 개인의 삶과 사회적 역할은 각각의 능력과 생산성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사회주의적 강령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구체적 보편이며, 의지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 그것이 사회주의적 질서의 원칙이다. 이탈리아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다(85)
자유와 규율
사회주의 청년 운동에 결합하는 젊은이는 독립과 자유를 향해 한 발을 내딛고 있다.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어떤 규율에 맡김으로써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된다. 어떤 규율에도 따르지 않는다면 기체 상태이거나 오염된 물체가 되므로 쓸모없고 해롭다. 정치의 규율은 정신의 순수한 합금을 정제한다. 그것은 삶에 어떤 목적을 부여한다(86).
사회주의와 이탈리아
50년 전만 해도 ‘이탈리아인’가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민주의 역사, 정신적인 역사는 쓰여지지 않았으며 사회적 통일체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수백만의 개인들이 있을 뿐이었다. 세금징수원과 경찰, 순회법정의 재판관이 그들에게는 곧 이탈리아였다. 그러나 이제 수백만의 개인들은 진보했다. 단일한 사회적 통일체를 형성했으며 타인과의 연대를 느끼고 이탈리아어의 사용법을 깨달았다. 새로운 사회적 유기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이 창조한 유기체의 부분을 이루며 그 유기체를 통해 세계의 삶과 역사에 관여하게 되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한 르네상스가 찾아와서 문명화된 삶, 정치투쟁, 시민의 세계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대중들이 하나의 사상과 단일한 프로그램 아래로 뭉쳐 이탈리아는 정치적 통일체로 변모하게 되었다(88).
사회주의는 이탈리아 민중을 통합해 주는 유일한 사상이었다. 사회당은 통일체와 새로운 의식, 세계의 구체적인 대표자이다. 그런데 지금 저들은 사회당과 사회주의자를 사냥하러 다닌다. 민중의 운명을 그들의 손아귀에 쥐고 흔들려는 망상에 빠져 있다. 여론의 지배자가 되는 가학적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한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탈리아인의 역사를 파괴하고 분쇄해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뿌리뽑지 못할 것이다. 단지 개인을 뿔뿔이 흩어 놓는 것뿐이다. 이탈리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적 통일체를 흩어 놓을 것이나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속박하게 될 것이다. 시민으로서 자유를 존중하는 국가를 제약하는 유일한 방해물은 국가에 적대적인 세력이다. 이탈리아의 자유는 강력하고 통일된 이탈리아 프롤레타리(89)아의 존재에 의하기 때문에 타인을 억압하면 스스로 억압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고 있다. 민중의 연대의 끈을 자르려고 하기 때문이며 이탈리아 민중이 세계를 보도록, 인간답게 살도록 만들어 주는 빛을 차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90).
러시아혁명에 관한 노트
혁명은 단순히 권력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 행동의 혁명이 있어야 하고 도덕적인 혁명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러시아 혁명과 프랑스혁명을 비교해보면 서로 닮아 보이는 것은 피상적이며, 폭력적이라는 것과 파괴적이라는 점이 닮은 것뿐이다.
러시아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신을 담은 행위이며 역사적 사건임을 확신하며 사회주의 체제로 나아갈 것이 필연적임을 확신한다. 러시아혁명은 자코뱅주의와 무관하다. 전제권력의 타도에 있(91)지 폭력을 이용한 권력의 쟁취에 있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혁명 | -부르주아 혁명이다. 부르주아는 혁명 이후 작동시킬 보편적인 프로그램이 없다.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위해 봉사한다. 부르주아 혁명은 권위주의적 체제를 또 다른 체제로 대체한 것에 불과하다. |
러시아혁명 | 권위주의 정부를 파괴하고 보편적인 참정권을 쟁취했으며 여성에게까지 확대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민중의 마음 속에 이미 주어져 있으며 절대적인 정신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표현될 수 있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 된다. 산업노동자들은 이 단계에 들어서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준비되어 있다. 집산적 공산주의에 익숙한 농업노동자들 역시 새로운 형태의 사회로의 이전을 위한 준비가 잘 되어 있다. 러시아 혁명가들은 정치범뿐 아니라 일반 형사범죄 사범 역시 석방했다(92). 러시아혁명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출해 냈다. 새로운 도덕적 분위기와 새로운 정신의 자유를 가져다주었다(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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