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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의 망명 H. 스튜어트 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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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2. 2. 23.()

발제 : 꽃지

 

3.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 전후의 논쟁(P202)

 

- 종전 후 독일 복귀, 과거 독일과 나치 이후 새로운 문화 사이에 벌어져 있는 망명의 간극을 메우는 작업. 냉전 시대 미국 대중문화와 소련·중국의 전체주의 비판. 미국에서 습득한 경험주의 사회과학을 넘어 비판이론의 기본명제를 충분히 재천명하고, 비판이론 가운데 다른 양식의 사회사상과 양립될 수 있는 측면 및 양립될 수 없는 측면을 구분해주는 일(202~3)

-부정의 변증법(1966): 그가 일생 동안 공격해온 관념론 전통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 아도르노의 철학적 정수. 에세이 형식의 형이상학적인 수사와 신비스런 표현형식(그것은 현대문학의 반극’(anti-drama)이나 반영웅’(anti-hero)을 모델로 한 일종의 반체계’(anti-system)였다. 반체계란 주관적인 것 그 자체의 힘을 갖고 주관성의 오류를 돌파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204)

- “한때 쓸모없어 보이던 철학이 계속 살아남게 된 이유는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들에게 약속한 고전철학의 유산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대신 나타난 것이 관리받는 삶의 출현이었다. 그래서 철학은 여전히 필요했다. 아도르노는 상대주의를 유물론의 대중화된 형태로 파악했기 때문에 포기했다. 프랑스식의 실존주의는 아직도 관념론에 속박되어 있음을 발견했다.(205)

- 헤겔의 변증법 세계정신개념 및 그에 수반되는 내재적인 사물의 논리개별자를 희생시키고 보편자만을 강조하게 되며, 그 강조가 도를 지나치게 되면 결국 사회 그 자체의 숭배에까지 이른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생태학적 위기 고찰(206~7)

- 실증주의 비판

베버 : 아도르노는 윤리적 혹은 미학적 가치의 개념이 경제적 교환비율을 모델로 하고 있음을 명쾌하게 지적했다. , 역사적으로 우리를 제약해왔던 존재와 당위의 이분법은 사실상 그 제약의 정도만큼이나 가짜문제이기도 했다는 것이다.(208)

비트겐슈타인 : 후기저서 철학적 탐구에서 규명하려 했던 것을 검토하지 못함으로써 지성사의 중요한 기회, 즉 철학사의 전통을 연결시키는 작업의 기회 상실(209)

- 논리적-과학적 사유의 방식 안에서는 현실적인 사회적 적대관계가 지각될 수 없었다. “과학적 진리의 이념은 진실한 사회의 이념과 분리될 수 없다.”(210)

- 사후 평가

표현방식과 내용 간의 부조화 : 틀에 박히고 신비적이며, 일상 어법과는 거리가 먼 표현양식. 완벽한 인위성에 이를 정도로 세련되고 형식화된 문제를 의식적으로 선택 지적 비타협성의 필연적인 표현, 진실한 사고를 하기 위해 지불한 대가(211)

헤겔식의 문체 고집 : 철학, 역사, 미학, 심리학, 사회학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추었으며 미숙한 점은 경제학 분야. 프랑크푸르트 학파 철학자들은 변증법적 방법을 적용할 때에도 관습적인 이해방식과는 달리 경직되고 도식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헤겔 혹은 마르크스의 전통 가운데 많은 것들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포괄적인 구조 혹은 기본적인 구조가 발견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은 포기하지 않았다.(212)

 

4. 마르쿠제의 행복관(P213)

 

- 1단계 : 하이데거의 지도 아래 3년에 걸친 정규 철학연구를 마친 후 1933년 사회조사연구소 가입. 근대 과학기술에 관한 마르쿠제의 뿌리 깊은 적대감도 사실은 하이데거에서 연유했던 것 같다.(213)

- 그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에 비해 훨씬 강한 유토피아적·무정부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었고, 혁명 이후의 새로운 사회가 현실적으로 취할 모습을 그려보고자 노력했으며, 그 과정에서 개인적 행복의 관념에 실체를 부여하는 일을 자기의 독특한 영역으로 삼았다. 스탕달과 니체가 아름다움을 행복의 약속이라 지칭했을 때 실제로 의도하던 것을 정의하는 일(214)

- 자유주의 사회와 파시즘 통치의 출현 간의 관계, 자본주의 체제하의 인간의 소외, 외면적으로는 무전제성을 주장하는 실증주의의 지적 기만성, 특권적인 사유양식으로서의 변증법의 지위(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와 유사)(214~5)

-쾌락주의 비판(1938): 쾌락주의 윤리와 쾌락주의 가르침의 해방적인 측면 구별. 쾌락 추구의 기준은 바로 그것이 틀렸을 때 오히려 옳다고 그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때의 그것은 불행의 모든 이상화에 대항해서 행복에의 요구를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쾌락의 평가절하에 대한 균형추로 작용한다. 특히 괘락주의는, 성욕이 의무·관습·정서적 위생법 등으로 축소됨으로써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성적 행복의 희생을 회상시켜주는 것이었다. ‘성관계의 순화되지 못한, 비합리적인 해방은 쾌락 그 자체의 가장 강력한 해방일 것이며, 또한 노동 그 자체를 위한 노동의 완전한 평가절하일 것이다. 노동조건의 황량함과 부정의는 각 개인의 의식에 폭발적으로 침입할 것이며, 부르주아 세계의 사회체제에 대한 각 개인의 평화적인 복종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215)

- 2단계(유예기간) : 노이만과 워싱턴 전략사무국 근무. 개인적·이데올로기적 압박이 극대화된 시기의 은신.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서평 쾌락주의 연구 암시(218~9)

- 3단계 : 에로스와 문명15년에 걸친 정신분석이론 연구결과. 프로이트의 메타심리학이 후학들에게 남겨놓은 사회학적 문제-, 어떻게 해서 에로스가 문화의 건설자인 동시에 계속적인 승화과정을 통해 억제되고 약화되어야 하는 힘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명하려 했다. 그는 비억압적인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는 프로이트의 발언에 천착해 들어가 서구사상의 지배적인 전통을 분쇄하고 그것을 역전시킬 수 있다고 믿어지는 요소들을 발견해냈다.(219)

- 인류가 스스로 부과한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프로이트 자신도 제시할 수 없었다고 주장.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트의 범주를 결합하며 독창적이고 장대한 지적 작업 수행(220)

잉여억압’ : 사회적 지배에 의해 요구되는 제약 가운데 본능에 대한 기본적인 수정-인류가 문명 속에서 계속 존속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수정-을 넘어서는 것. 현대 산업사회에 대한 철저한 사회경제적 비판을, 프로이트의 이론 가운데에서 본능적-생물학적 근간에 접목(220)

실행원칙’ : 프로이트의 현실원칙이 현재 취하고 있는 역사적인 형태 , 공장의 조립 라인에서든 부부의 침실에서든 사회의 기대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명령-. 마르크스의 소외물화의 개념을 성의 영역에까지 확장(220~1)

생식기 우위 : 리비도를 신체의 한 분위에 집중시킴으로써, 그 밖의 모든 부위는 노동의 도구로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길은 신체의 성적 기능을 다시 회복하는 데에 있다. 단순한 생식기의 지배는 이른바 도착, 즉 원래 미분화된 성욕의 다형 도착적 경향을 복원함으로써 분쇄되어야 하며 또 분쇄될 수 있다. 이 도착은 사회가 관습적으로 정상상태라고 인정하는 것에 의해 부여하는 것보다 훨씬 큰 행복의 약속을 제공한다.(221)

- 정신분석이론의 임상적 토양을 무시한 채 프로이트의 대담한 사변적 주장들로부터 극단적인 의미들을 도출해냈다. 이드-무의식, 본능-충동, 억압-억제 중 거의 배타적으로 본능과 그것의 억압만을 다룸으로써 무의식에 대한 분명한 규정을 회피해왔다.(221)

- 프로이트의 메타심리학의 비관적인 측면들 , 성욕의 지배, 유아기의 정서적 사건에 의한 미래의 행동 결정, 죽음충동 등-을 충분히 받아들이면서도 긍정적인 결론으로 전환, 성욕을 부정하기보다는 성욕의 해방 주장, 프로이트를 혁명적 인물로 전환(222)

- 마르쿠제의 행복관 : 금욕의 결과인 동시에 조건이 되는 비생산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소외된 노동도 존재하지 않은 상태, 노동이 점점 기계화 되어감에 따라 본능적 에너지의 많은 부분이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가서 생의 본능의 에너지로 다시 전환되는 상태. 소외된 노동에 소비되는 시간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각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은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 일이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소외된 노동의 시간은 최소한도로 줄어들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소멸되어버리고 인생은 자유로운 시간으로만 이루어질 것이다. 청년 마르크스 아침에 사냥하고, 오후엔 고기 잡으며, 저녁때는 소를 치고, 식사 뒤엔 비평을 하게 되리라.” 인간의 잠재적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현대에 실현 가능하다고 봄(223)

-일차원적 인간(1964): 프로이트에서 마르크스로 되돌아가는 과정. 선진산업사회 분석 안락하고 부드럽고 합리적이며 민주적인 부자유(224) 20세기 중반의 문화에서 언어와 사유가 스스로의 환기력을 잃고 그것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과 똑같이 일차원적인 것으로 되어감. 새로운 방식의 실증주의 공격과 결합하여 영미의 언어철학 비판

- 정치적 행동주의(1967~) : 베트남전쟁에 대한 격분과 독일 학생운동과의 관련성에 관한 논쟁적인 저작 호전적인 젊은이들의 철학적 우상(225)

- 인류가 지금까지 희생시켜온 유희의 요소를 힘닿는 데까지 구출해내려 했으며 동시에 그것이 사유하는 삶과 양립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르쿠제는 성숙한 마르크스를 닮았다기보다 청년 헤겔주의자 또는 헤겔 좌파를 닮았다. 인간의 성적 욕구로부터의 소외 강조, 인간에게 원초적인 순진성을 회복시키려 노력(226)

- 한계 : 행동주의적 역할과 수동적이고 비적극적이며 촉각적인 행복관은 서로 조화되지 못했다.(227)

 

5. 마르크스에서 프로이트로, 프로이트에서 마르크스로(P228)

 

- “정신분석학에서는 과장된 표현들만이 진실한 것이다.” 아도르노, 마르쿠제가 프로이트에서 관해 공통적으로 발견한 요소. 양자 모두 충격적인 것과 문화적으로 전복적인 요소들에 주목했으며, 또한 그들이 마르크스에게서 획득한 철학적·사회학적 범주들의 범위를 정신분석학적 통찰을 통해 확장할 수 있는 지반을 확보하려 했다.(228)

- 프로이트를 있는 그래도 파악한다는 것은 그를 변증법적으로 파악한다는 뜻이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프로이트가 삶의 결핍이라는 형태로 인식하고 있던 경제적 압박을 강조한다는 뜻이었다. 양면적 평가 비판적인 통찰력은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체념적인 수용의 태도에 대해 경고(229)

-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 심리학과 사회학을 자의적으로 종합하려는 사람들에게 아도르노는 지적인 통합이라는 구호를 무기력함의 표현이라 규정. , 정신과 그것을 규정하는 사회를 분리하려는 사람은 허위의식에 빠질 것이며, 인간의 내면생활과 외면생활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잘못된 일. 개인과 사회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기원을 갖고 있으며, 사회에 의해 영속화되며,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230)

- 성공적인 정신분석 치료조차 정서적인 손상 및 무익한 적응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음이 여기에서 드러났다. 원형 그대로의 정신분석 요법도 물화라는 지배적인 양상과 합치된다. 사회적 메커니즘 그 자체 안에 구비되어 있는 정신분석 요법이 기능적 사회 내부에서 인간의 기능적 역할을 강화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경멸이 생존하는 개개인에게 부과한 해악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프로이트, 실존주의자의 불안세계 내에서의 폐소공포증의 감각, 현대사회의 전반적인 냉기 속에서,” 인류에게 가해진 저주의 필연적인 형식“(230~1)

-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들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회의적, 희석화 되었으나, 사례들을 다룰 때 무엇인가 교시를 얻기 위해 마르크스에게로 돌아갔다. 세련된 복잡성과 조야한 단언 간의 기묘한 교착상태, 실증주의에 대한 뿌리깊은 적대감과 질타,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결코 바꿀 수 없었던 무언가의 한계. 그들의 철학적 경향은 고정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문화적 업적의 현란한 다양성 밑에는 독단론의 잔재가 자리 잡고 있었다.(231~2)

- 그들이 정말 이해하고 있던 것은 헤겔적인 청년 마르크스였다. 그들에게 경제적 합리화의 과정은 자본주의를 필연적인 단계로 보는 후기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계몽주의가 조작으로 타락해간다는 중요한 징후로 이해되었다. 오히려 전원적 가치와 공동체적 연대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시대착오적이고 낭만화된 독일과 흡사했다. 혁명적 분노와 지적인 속물근성(232)

- ‘관리받는 삶도래.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런 삶에 대해 점증하는 불만이 비생산적이고 조정되지 못한 폭력으로 폭발했으며 아도르도 자신도 그 폭력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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