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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Feb 2022 대중사회와 비판이론 인무연
2022년 2월 16일 전주 ‘인간무늬연마소’ 정신분석학 및 사회심리학 연구모임 –
주제: 대중사회와 비판이론 요약 및 발표 콩빠
요약한 문헌은 다음과 같습니다:
H 슈튜어트 휴즈 (김창희 옮김), 지식인들의 망명 – 사회사상의 대 항해 1930 – 1965, 개마고원 2007, 제 4장 170 - 185쪽
<H 슈튜어트 휴즈의 . 대중사회와 비판이론에 대한 내용 요약>
1. 대중사회
대중사회(Mass Society) 라는 개념은 1950년대 미국의 사회학자 가운데 다분히 사변적인 학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대중사회라는 개념은 상당히 애매하게 사용되었다. 그것이 사용된 방식들은 부정확하고 중복되며 때로는 서로 상충되기도 했다. 그것은 미분화된 다수를 강조하는가 하면, 때로는 기계화를 강조하기도 하고, 때로는 관료 지배를 강조하기도 한다. (슈튜어트 휴즈 170쪽)
대중사회분석가들은 몇 가지 결정적인 특징에서 만은 동의했다. 그들은 주위에서 획일적인 동시에 유동적인 상황 – 즉, 공동체 관념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각 개인은 정치적/경제적 권력자의 직접적이고 압도적인 압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중간집단의 차폐막도 상실된 사회적 무방비 상태 – 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이 심중에 가지고 있던 도덕적 목적은 지위와 문화적 특권에 기초를 둔 사회로부터 아직까지 남아 있는 부분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상실된 것을 보여줌으로써 대중 자신을 그들의 해방의 열매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슈튜어트 휴즈 171쪽)
그것은 미국 태생의 학자들 대부분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망명자들은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에서 이데올리기적 출발점을 발견하려 했다. (슈튜어트 휴즈 171쪽)
하지만 대중은 영웅적인 행동보다는 동물적인 안락한 생활을 더 즐겼으며, 자기 의식의 고양보다는 저속한 일에 탐닉했던 것이다.
그래서 19세기에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경제적’ 비판으로 성립되었던 것이, 이제는 망명한 대중사회 연구자들의 손에서 대규모산업이 만들어 낸 기업문명에 의해 ‘문화적’ 비판으로 변형되었다. 단순한 풍요만으로는 충분할 수 없다는 가정이 그 분석 속에 함축되어 있었다. (슈튜어트 휴즈 172쪽)
아도르노와 그들의 동료들은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과제를 애매하게 두 전선에 걸친 투쟁이라고 보았다. 대중의 취향과 태도를 가차 없이 비판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전통적인 ‘고급문화’의 가치를 옹호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대중이 그렇게 실망스럽게 행동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그들 자신의 잘 못은 아니었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대중사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관리사회’(verwaltete Welt – 생활이 관리받는 세계 - 라는 표현을 선호했던 것 같다.(슈튜어트 휴즈 174쪽)
2. 비판이론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는 그들의 작업을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이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비판이론이란, 일련의 강렬한 집중포화에 의해 주제가 선명히 부각되거나 간파될 때 까지 부정에 부정을 계속해 나가는 사유 양식을 의미했다. 비판이론은 그 정의 (定義)와 실제에서 비체계적이었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폐쇄적인 철학적인 체계에 대해 적대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판이론이 헤겔에게 빚을 졌다면 그것은 비판이론의 최종적인 형태라기 보다는 공격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슈튜어트 휴즈 181쪽)
그들은 독창적인 헤겔좌파와 마르크스의 길을 따라 갔다. 비판이론은 헤겔의 유산과 그 이후 19세기의 사회사상을 통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판이론은 해겔의 방법을 사용해서 부정의 과정을 부단히 전개시켜 나가는 가운데 헤겔 자신의 체계까지도 능가하여 그것과 적대되는 위치에 서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는 방법론적으로 마르크스의 변증법보다도 더 파괴적인 새로운 형태의 변증법, 즉 ‘종합의 계기를 갖지 않는 변증법’ 이었다. (슈튜어트 휴즈 182쪽)
그래서 그들의 이론은 ‘사물’이 인간의 지각에 우선한다는 단호한 주장과 세련되기는 했지만 극도로 추상적인 표현 양식사이에 불안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이 중 후자의 의미에서 그들은 여전히 그들은 여전히 관념론적이고 형이상학적 틀 속에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직접 인식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자연계나 인간세계의 모든 일들은 무엇인가에 의해 ‘매개’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헤겔보다 더 엄격하게 펴는 것을 보면, 비판이론은 다면적이고 애매하며 당혹스러운 것이라고 하겠다 (슈튜어트 휴즈 182쪽)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저술에 두 가지 중심용어 – 하나는 호의적으로 사용되었고 다른 하나는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 는 ‘이성’과 ‘실증주의’였다. 전자는 주체와 객체가 잠재적으로 공유하는 성질, 즉 ‘실재에 내재하는 원칙’이라는 전통적인 헤겔식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후자는 비판이론이 반대하는 수 많은 지적 경향을 모두 포함하는 일종의 잡동사니 보따리로 사용되었다. 이미 세기의 전환기의 사회사상가들이 자기들이 싫어하는 것들을 ‘실증주의’라는 표현으로 총괄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용법은 더욱 느슨한 경우였다. 이 두 프랑크푸르트 철학자는, 이미 1980년에 비판의 뚜렷한 표적이었던 유물론과 ‘과학주의’를 실증주의라 다시 매도했을 뿐 아니라 모든 유명론적/경험론적 전통까지도 그 안에 포함시켜 버렸다. 실증주의와 경험주의 계열에 속하는 모든 이론들은 ‘이성’을 단지 ‘주관적인 정신능력’으로 환원시켜버렸기 때문에, 비판으로 보기에 그것들은 모두 이성의 적이었던 것이다.(슈튜어트 휴즈 183쪽)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명백한 비 합리주의는 비판이론 앞에서 더욱 나쁜 것으로 단죄되었다.(슈튜어트 휴즈 183쪽)
동시에 그들은 이 두 세계관이 보통 생각하는 것 처럼 그렇게 완전히 모순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점진적으로 형성되어 온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신념, 즉 ‘20세기의 신야만주의가 18세기 계몽주의의 직접적인 계승자라는 생각’은 그들의 생각가운데 가장 독창적이고 새로운 부분이었다.(슈튜어트 휴즈 184쪽)
<비판이론 관련 문헌 >
비판이론에 대한 이해를 얻기 위해 본인은 아래의 문헌을 함께 참조하였습니다.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은 20세기의 야만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이성과 지배의 상호 연관을 설명하는 하나의 전형을 제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계몽의 변증법』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다음의 세 가지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20세기의 야만은 계몽의 필연적인 변증법적 자기 파괴의 결과이다(계몽의 변증법). 둘째, 이성은 필연적으로 억압적 지배와 결합한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한다(총체적 이성 비판). 셋째, 지배는 곧 억압이며 정당한 권력은 가능하지 않다(아나키즘). 문제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전개되는 아도르노의 총체적 이성 비판과 그 귀결인 아나키즘이 권력의 정당성이라는 정치철학의 근본문제를 해소시켜버린다는데 있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전개되는 아도르노의 세 가지 주장(계몽의 변증법, 총체적 이성 비판, 아나키즘)은 이성과 권력 정당성의 상호연관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정태창, 아도르노 철학에서의 이성의 파괴 - 계몽의 변증법에 대한 정치철학적 비판, 철학사상 제40권 2011.05, 167 - 205 pages, 167쪽)
비판이론은 “유럽 시민사회의 자기파괴와 사회주의적 대안의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인식을 추구하거나, 과거에 매달려 현실의 변화를 등한시하지 않았다. 대신 인간의 해방이라는 목표를 견지하면서, 현실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철학과 구체적 사회연구의 결합을 지향했다. 그 결과 비판이론은 주체/대상 변증법 속에서 구체적 시간개념에 의해 제한된 비초월적 진실개념을 갖게 되었으며, 특수 속에 보편이 재인식 가능하게 등장한다는 원칙을 세우게 되었다. 이러한 원칙은 현재의 사회 분석에서 여러 장점이 있다. 첫째, 비판이론은 시대적 전환기에 확립된 것으로서 급격한 변화 속에 놓인 현대사회 연구에서 분석적 장점을 갖는다. 둘째, 이론과 실천의 전통적인 결합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한 방식으로 더 나은 사회를 고민할 수 있게 한다. 셋째, 주체-대상에 대한 변증법적 인식은 기존의 서구식 이분법에 대한 훌륭한 대안을 제시해준다. 넷째, 보편이 특수한 대상 속에서 재인식 가능하다는 관점은 다양한 개별 사회연구들이 전체에 대한 인식을 놓치지 않도록 해준다.” ( 권오용,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非)하버마스적 비판이론: 현대사회연구에서 분석적 장점과 연구전략, 한국사회학 제54집 제1호 2020.02, 27 – 63 pages, 27쪽)
"푸랑크푸르트 학파 이론의 핵심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유산인 변증법을 부정하는 '부정(否定)의 변증법'이라는 개념체계였고, 시대적 문제의식은 혁명을 해야하는가 였다. 초기 마르크스의 낙관주의적 견해에서는 자본주의 발달 속에서 노동자의 해방 전망이 높아져 간다고 했으나 실제론 그 가능성이 쇠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계급의 혁명적 역할에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게 되었다. 왜 합리적, 이성적 서구문명이 비이성적 파시즘으로 전락했는가? 왜 비인간화가 추진될 수 있었는가?
이들의 관심은 이데올로기 비판에서부터 출발한다. 현실속에서 불균형적 힘의 관계를 왜곡, 은폐, 정당화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를 비판함으로써 현실세계의 왜곡을 드러내려 하는 것이다. 이들의 이론을 비판이론이라 규정하게 된다.
고전적 마르스크주의가 정치경제학에 집중되어 있음에 비해 마르크스주의의 영역이 그들에게서 더욱 확대되었다. 정신분석학자들의 견해를 광범위하게 끌어들여 사회심리학이나 문화비평 등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한 것이다.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는 역사의 소명을 실천할 역사적 계급이 아니라고 인정하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과정이 분절화되어 노동계급이 총체적 인식에 도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리하여 인간해방을 기대할 이는 프롤레타리아라기보다는 비판적 지식인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계급적 운동이라기보다는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비판운동에 희망을 걸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 위키백과)
위르겐 하버마스는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와 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1세대는 철학에서 전통적인 이성 개념이 자연과 타자에 대해 폭력과 착취를 가하는 힘일 뿐이라고 생각하여 극히 부정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이성이 단순히 그러한 도구적인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성이 가진 긍정적인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였다. 이러한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주제로 하여 비판적 사회이론, 담론윤리학, 법철학, 민주주의 이론과 정치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해나갔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대한 상호이해는 해석학과도 연관되는데 스승인 가다머와의 논쟁에서 많은 부분을 수용한 것이다. (위르겐 하버마스, 나무위키)
<나오며>
슈튜어트 휴즈의 역자인 김창희에 의하면 비판이론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먼저 파시즘을 자유민주주의의 대립물이 아니라 산업사회의 극단적인 모습 – 즉, 비합리적 지배에의 경향 – 으로 파악하고, 미국 사회 자체 내에도 잠재적인 파스즘 성향이 내재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추론을 ‘개몽주의’ 그 자체가 가진 논리적 허구성에 까지 추적에 들어간다. 즉, ‘왜 인류가 진정으로 인간적인 상태에 돌입하지 못하고 자기 파멸적인 야만상태에 빠져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발견해내려 했던 것이다.
또 한 가지의 특징은 그들의 독특한 변증법에 있다.
논리적으로는 ‘종합의 계기를 갖지 않는 변증법’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즉, 비판이론은 헤겔의 방법을 사용해서 부정의 과정을 부단히 전개시켜 나가는 가운데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변증법에 도달했던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앞의 특징이 그들의 미국생활의 긍정적인 결과였다면, 이 부분은 그들이 처음에는 강력한 ‘행동지행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미국 생활 속에서 결국 대중사회에 대한 ‘문화적 비판’에 주저안고만 이유를 설명해주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김창희, 역자 후기, 슈튜어트 휴즈 349/350쪽)
대중사회 비판이론은 본질적으로 비실천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문제를 제기는 하되, 어떻게 누구에 의해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지 전혀 가르쳐주는 바가 없다.
망명세대의 지식인들이 왜 대중의 실천을 포기했으며 그러한 포기가 그들의 사상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주의 깊게 읽어야 할 것 같다. (김창희 상게서 353).
프랑크프르트 학파의 한 사람에 속하는 위르겐 하버마스는 국제 국가 공동체는 국가와 세계 시민의 우주정치적 공동체로 발전해야 한다 (Die international Gemeinschaft der Staaten muss sich zu einer kosmopolitischen Gemeinschaft der Staat und Weltbuerger fortentwickeln)라고 말하고 있다.
(Juergen Habermas, Theorie des kommunkations Handelns, Bd. 2, Zur Kritik der funktionalstischen Vernunft, Frankfurt/M. 1981, S. 524ff.)
세계적 차원의 시민사회, 법치사회, 민주사회 그리고 복지 사회에 대한 하버마스의 꿈은 우리에게 요원한 희망으로 남아 있다.(참조 Habermas 전게서) 의사소통을 통하여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을지 막연한 기대감을 본인은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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