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제3부 목적론
제9장 정의는 선인가
78절 자율성과 객관성
어떤 사람이 채택한 도덕관은 자연적 우연성이나 우연적인 사회적 여건들로부터 독립적이며 도덕감이 습득되는 심리적 과정은 행운이나 우연사에 의해 왜곡되지 않았으며 그가 공정하다고 인정하게 될 조건들 아래서 그 자신이 선택하게 될 원칙들에 부합하는 것이다(659).
계약론과 그 원칙들이 질서정연한 사회의 도덕 교육 체제를 규정한다.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대한 칸트적 해석에 의하면 이러한 원칙들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사람들은 자율적으로 행위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합리적 존재로서 자신들의 본성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조건들 아래서 인정하게 될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율성이란 인간 존재에만 적합한 개념이므로 도덕 교육은 자율성에 대한 교육이다. 일정한 과정만 거치면 모든 사람들은 정의의 원칙들을 택하는 이유와 도덕적 인격들의 사회에 있어서 동등자로 규정하는 조건들로부터 그 원(660)칙이 도출되는 과정을 알게 된다. 계약론의 입장에 의하면 자율성과 객관성의 개념은 양립할 수 있는데 자유와 이성 간에는 이율배반이 없기 때문이다. 둘은 원초적 입장에서 일관되게 규정된다. 자율적으로 행위한다는 것은 자유롭고 평등한 합리적 존재로서 합의하게 되고 그러한 방식으로 이해하게 될 원칙에 따라 행위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원칙들은 객관적인 것이다(661).
정의의 문제가 갖는 복잡성은 결정을 하는 원초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윤리적인 의견 차이는 많지만 사회를 원(662)초적 입장에서 보게 됨으로써 중대한 합의에 이르게 된다. 정당성 및 정의의 원칙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시민적 우호 관계의 유대 형성과 존속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예의의 기반을 확립해준다.
자율성과 객관성에 대한 해석은 정의론에 의거하며 원초적 입장이라는 관념이 이용된다. 공리의 원칙에 의하면 자율성이란 도덕적 견해를 형성하는 완전한 자유이며 모든 도덕적 행위자의 양심적인 판단이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이 경우 객관성이란 자유롭게 결정하는 모든 기준을 만족시키는 판단에 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은 공통 관점을 취하는 것과 관련이 없고 자율성 관념도 관련되지 않는다(663). 공정으로서 정의의 관점에서는 각자의 양심적인 판단이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은 참이 아니며 개인들의 도덕적 신념을 형성하는데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도 옳지 않다. 그릇된 양심에 따라 행위하고자 할 경우 이것은 원초적 입장이 해답이다. 개인의 양심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는 않는다. 원칙들이 허용하는 대로 행위를 제한함으로써 그를 존중하게 된다. 원초적 입장에서 당사자들은 선택되는 정의관에 대해서 책임질 것에 동의한다. 원칙들이 제대로 지켜지면 자율성은 침해되지 않는다. 부정의한 명령을 수행하거나 방조한 사람들은 모르고 했다거나 과실이 전적으로 상급자에게 있다고 항변할 수 없게 된다. 중요한 점은 (664) 우리의 본성에 가장 잘 부합되는 원칙 그 자체가 우리의 책임성을 확립하고 있다.
사회적 신념이 상실될 경우 신의, 성실, 정심, 서약, 진실성 등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이것들은 도덕적 관점을 구성할 수 없으며 2차적인 것인데 올바른 자율성과 객관성을 줄 수 있는 관점과 결합되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원초적 입장이라는 관념과 그로부터 채택된 원칙들은 이것이 달성되는 방식을 보여준다(665).
79절 사회적 연합의 관념
정당성과 선의 합치는 질서정연한 사회가 공동체의 선을 성취하려는 여부에 있다(666).
공공선은 국가가 지니고 있는 수단 및 조건들로 구성되는데 수단이 허용할 경우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이용할 수 있다. 경쟁 시장론은 이러한 사회 유형에 대한 전형적인 기술이다. 이 사회의 성원들은 정의로운 행위의 욕구에 의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체제의 안정성은 어떤 제제 조치를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사적인 이해와 전체의 이해의 일치는 안정을 위한 제도적 방편의 결과이다. 사적인 사회는 정의로운 공공 신념에 의해 결코 주장되지 않고 자신의 사적인 목적을 추구하는데 이용할 수단의 양을 감소시키게 되리라는 계산에 의해서 주장된다. 이득의 분배가 적합한 호혜성의 기준을 만족시킬 경우 사적인 사회가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계약론에 함축되어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타당하지 않다(668).
우리는 각자가 타인들의 실현된 자연적 자질의 총체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그 성원들의 필요와 잠재력에 입각한 사회적 통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서로 간의 탁월성과 개성을 향유하며 전 체계가 모두에게 인정되는 완전한 활동에 있어서 각자의 선을 하나의 요소로서 인정하고 있는 인간공동체라는 개념에 이르게 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부분적인 능력만 배양되도록 운명지어졌다. 그가 다양한 대상들로 나아가게 되면 그의 정력은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이 개별적으로 발휘되고 있는 능력을 결합시키려는 시도에 의해서, 발휘될 능력을 증대시키려는 노력에 의해서, 그 능력들을 조화시키려는 시도에 의해 일방성을 피할 능력이 있다. 개인의 경우 과거, 미래, 현재의 결합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 사회에서는 성원들 간의 상호 협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각 개인들은 능력 실현 중 한 가지만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가 모든 타인들이 갖는 풍요한 전체와 자질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사회 성원들의 내적인 욕구와 능력에 기초한 사회적 통합을 통해서이다(훔볼트)(670). 각자의 능력이 유사한, 한정된 경우에 있어서 집단은 동등한 자들의 활력을 결합시킴으로써 각자에게 잠재되어 있는 동등한 총량을 달성하게 된다.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발휘하는 것은 타인들과의 적극적인 협동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직 사회적 연합을 통해서만 개인은 완전하게 된다(671).
여러 가지 삶의 형태는 사회적 연합체의 특성을 갖고 있다. 과학과 예술, 가정, 친구 관계, 다른 집단들도 사회적 통합체들이다(672). 사회적 통합체의 공동 목적은 공동의 욕구만으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탁월성과 즐거움이 상대적으로 모든 이의 선을 가져오게 되는 합의된 행위의 체제가 있어야 한다. 모든 이에게 용납될 수 있는 계획을 수행하는 경우 타인들의 행위에 대해서 즐거움을 갖게 된다. 서로의 노력을 통해서 배우고 그것들의 여러 가지 기여를 평가함으로써 인간들은 서서히 지식과 믿음의 체계를 배우며, 일하기 위해 인정된 기술과 감정 및 표현의 정치한 양식을 만들어 내게 된다(673).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의 성취에 대한 공공적인 인정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의 궁극 목적과 공인된 방식이 있다는 점이다. 여러 유형의 사회 통합체가 있는데 서열을 매기지 않으며 일정한 크기, 시간, 공간적 제한도 없다. 질서정연한 사회는 그 자체가 사회적 연합체들의 사회적 연합이다. 정의로운 제도가 성공적으로 운영됨으로써 사회의 모든 성원들은 공동의 궁극 목표를 갖게 되며 제도적 형태는 그 자체로서 선으로 평가받게 된다. 첫째 특성은(674) 자신과 타인의 본성을 실현하는 데 함께 협동하자는 공동 목표를 작는다. 전체의 의지는 모든 사람이 효과적인 정의감을 가짐으로써 생기는 결과이다. 둘째 특성은 정의로운 헌법과 법 질서가 사회적 통합이라는 관념에서 전체로서의 기본 구조에 적용될 경우 그 자체로서 선이 된다(675).
도덕적 덕성이란 탁월성이다. 이것은 공공 생활에서 나타난다. 정의로운 전체적 활동 체계는 인간 번영을 위한 특출한 형태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본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각자를 가능한 한 가장 널리 규제하는 탁월성을 성취하기 위해 공공 체제를 지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정의로운 제도는 개인들이 특정한 목적을 실현할 단체들의 다양한 내면 활동을 허용하고 권장해준다. 그래서 정의의 공공적 실현은 공동체의 가치가 된다.
질서정연한 사회는 노동의 분화를 포기하지 않는다(628). 각자에게는 다양한 직무가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의존을 극복할 수는 없으며 또한 극복하고자 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특유한 방식으로 그들의 선을 추구하며 동료에게 의지하게 된다. 남의 도움 없이는 우리가 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일부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이 갖는 사회성의 특징이다. 우리가 보류해야만 하거나 결여하고 있는 탁월성을 타인들에게서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의 전체 활동, 즉 최대 공동체가 갖는 공공 생활은 우리의 기여를 유도해낸다. 그러나 공통의 문화로부터 얻어지는 선은 우리가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므로 우리의 작업을 훨씬 능가하며 우리가 실현하는 부분은 보다 광범위하고 정의로운 체제에 결합된다. 분업은 자유로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 통합체의 정의로운 사회적 통합 속에서 뜻에 맞는 의미 있는 활동을 함으로써 극복된다(677).
80절 시기심의 문제
합리적인 인간은 차등이 부정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고 시기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특수한 심리들 역시 무지의 베일 속에 있다. 정의관의 선택은 우연적 여건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가정한다(678).
시기심의 문제는 차등의 원칙이 허용하는 불평등이 사회적으로 위험할 정도의 시기를 불러일으킬 만큼 대단한 것일 수 있다. 일반적인 시기심은 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최소 수혜자들이 경험하는 시기는 그들이 보다 나은 처지(679)에 있는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대상 때문이 아니고 여러 종류의 선 때문에 그들을 시기한다는 의미이다. 특수한 시기심은 적대나 경쟁에 있어서 특유한 것이다. 직위, 애정 등에 실패한 사람들은 경쟁자의 성공을 시기하고 똑같은 것을 탐내기 쉽다. 정의의 원칙들을 파괴할 정도의 일반적 시기심의 실제 유발 가능성이 문제이다.
다른사람이 보다 유복한 것이 우리의 이득을 줄이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의 보다 큰 선을 적대적으로 보려는 경향을 시기심이라 할 수 있다. 시기는 전체적으로 손실이 되는 것으로서 타인을 시기하는 사람들은 그들 간의 격차가 줄어들면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일도 할 각오를 하게 된다. 칸트는 시기심이란 인간을 혐오하는 악덕이라 하였다(680). 타인의 보다 큰 선에 시기심을 갖는 것을 온건한 시기심이라 할 수 있는데 악의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이다. 타인들이 누리고 있는 어떤 것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사실상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일종의 찬사이다. 경쟁적 시기심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시기심으로 객체나 주체 모두를 해치게 될 증오의 형식이다. 어떤 패배의 상태나 실패감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681). 시기심은 도덕적 감정은 아니다. 좌절감과 상실감으로 증오와 적개심이 유발된다. 질투와 인색은 시기와 대조적이다(682). 인색하고 악의적인 사람은 자신과 타인들 간의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포기할 용의를 갖는다. 시기심이 달리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존감의 상실에 대한 반응일 경우 그것은 허용될 수 있는 것이 된다. 자존감은 주요한 기본 선이 까닭이다(683).
81절 시기심과 평등
시기적 성향의 중요한 심리적 근거는 무력감과 관련된 자신감의 결핍이다. 최소 수혜자들이 자존감이 보다 불안정하고 전망을 개선할 수 없다는 느낌이 커질수록 보다 나은 처지의 사람들을 더욱더 시기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경쟁과 적대에 의한 특수한 시기심은 패배가 보다 처절할수록 더 강해지기 쉽다. 자존감에 대한 타격이 극심하고 상실감이 회복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684).
시기심의 적대적 발로를 조장하는 세 가지 조건 중 첫째는 심리적 조건인데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감이 없는 것이다. 둘째는 고통스럽고 창피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자신과 타인들 간의 격차가 사회 구조 및 자신의 사회 활동의 양식에 의해 가시적으로 전개된다. 셋째, 자신들의 지위가 혜택받은 사람들의 유리한 여건에 대적하기 위한 어떤 건설적 대책도 없는 경우이다.
질서정연한 사회는 이를 완화시키는 작용을 하게 된다. 첫 번째 조건, 심리적 상태를 사회 제도가 부추기는 기본 원인이 분명하다. 계약론적 정의관은 일반 시민들의 자존감을 보다 확고히 지지해준다. 공의회에서 동등한 주권자에 해당하는 존경을 받게 된다. 모든 이는 최초의 상황에서 동등한 기본권을 갖게 된다. 공동체의 성원들은 공통된 정의감을 가지면 시민적 우호의 유대로 결속된다. 일부에게 준 보다 큰 이득이 보다 불리한 사람들에게 보상적 이익으로 되돌려져야 하며 보다 큰 몫을 갖는 사람들이 도덕적 관점에서 더 대접받아야(685)된다고 생가하지 않는다. 개인이나 단체들이 보여주는 탁월성에 상관없이 사회적 자원에 대한 그들의 요구는 상호 정의의 원칙에 의해 판정된다. 이러한 이유들로 해서 보다 불행한 사람들은 열등한 존재하고 생각할 이유가 없으며 공공 원칙들이 그들의 자신감을 보증해준다. 그들은 타인들과의 격차를 더 쉽게 수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조건, 허용되는 절대적·상대적 차등이 보다 적을 것이다. 차등의 원칙이 큰 불평등을 허용할지 모르나 배경적 제도가 성립할 경우 소득과 부의 간격이 실제로는 그리 대단하지 않게 된다. 확고한 내적 생활을 갖는 단체들이 많으므로 엄청난 격차를 줄여주는 경향이 생긴다. 시민들은 평등한 정의의 원칙들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의해 부와 처지에 있어서의 차등을 개의치 않는 일이 보다 쉬워진다(686). 질서정연한 체제의 특성들로 인해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그들의 처지를 찌들고 창피스러운 것으로 느끼기 쉬운 기회가 감소하게 된다.
세 번째 조건, 시기심의 적대적 발로에 대해 건설적인 대책을 제시할 것이다. 특수한 시기심은 경쟁심과 결부되어 어떤 사회든 그러한 것이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갖는 위험이 어떤 다른 입장보다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의해 규제되는 사회가 덜 하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정의의 원칙들이 이유 있는 일반적 시기심을 곤란할 정도로 유발할 가능성은 없다(687).
두 원칙에 의해 지지되는 평등에의 요구는 시기심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시기심에서 생겨나는 평등의 유형도 있을 수 있다. 모든 기본 선의 동등한 분배를 내세우는 엄격한 평등주의의 평등관은 당사자들이 충분한 시기심의 소유자라고 가정할 경우에만 원초적 입장에서 채택될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은 결코 정의의 두 원칙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것이 규정하고 있는 상이한 평등관은 시기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받아들여지게 된다.
프로이트의 정의감의 기원은 결함을 갖고 있다. 시기심과 질투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하지만 질투심으로 이익을 보존하고자 할 경우 보다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을 뺏고자 하는 시기심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689). 정의감이란 반동 형성물로 질투나 시기였던 것이 모든 이에게 평등을 내세우는 정의감이라는 사회적 감정으로 변형된 것이라는 생각이 현실성을 갖기 위해서는 최초의 태도가 정확히 기술되어야 한다(690). 정의감을 작동시키는 에너지는 시기와 질투에서 주어진 것이며 그러한 정력 없이는 정의를 베풀고자 하는 욕구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은 시기심과 의분을 잘못 혼동한 것이다.
82절 자유의 우선성에 대한 근거
원초적 입장은 인격체들 간의 적절한 호혜성 및 평등을 구현하도록 구체화되어 있다. 제1원칙의 제반 자유에 의해 보장된다는 점이 주어진다면 그들은 제1원칙에 우선성을 부여한다. 원초적 입장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특수한 이해 관심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그들은 공약의 부담에 따라 기본적 자유에 우선성을 부여하도록 인도된다. 질서정연한 사회는 당사자들의 고차적 이해 관심은(693) 다른 관심들이 사회적 제도들에 의해 형성·규제되는 방식이라는 점을 인식한다. 그들이 최종 목적을 수정·변경할 수 있으며 자신들의 자유 보호에 우선성을 부여하는 자유로운 인격체로 파악한다. 정의의 원칙들의 방식은 가장 고차적인 이해 관심이 질서정연한 사회에서 획득된다는 점을 보여준다(694).
정의로운 사회에서 자존감의 근거는 소득의 몫이 아니라 공공적으로 인정된 기본적 권리와 자유의 분배이다. 이러한 분배는 동등한 것인 까닭에 모든 사람들은 보다 넓은 사회의 공동사를 처리하멩 있어 유사하고 확고한 지위를 갖는 것이다. 평등하지 못한 자유를 받아들이려는 성향도 없다. 그들에게 불리하게 될 것이며 정치적 지위가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696).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 집단 간의 사회적·경제적 차등은 적의를 일으킬 가능성이 없지만, 정치적·시민적 불평등이나 문화적·인종적 차별로부터 생겨나는 고통은 쉽사리 용납될 수가 없다. 인간의 자신감을 지지해주는 것으로서 상대적인 경제적·사회적 이득의 중대성을 낮게 평가하려는 정의관을 선택할 경우 자유의 우선성이 확고히 유지된다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도 당사자들은 두 원칙의 축차적 서열화를 채택하게 될 것이다
자존감은 모두를 위한 평등한 시민권의 지위에 대한 공적인 인정을 통해 공고해진다. 또한 물질적 수단의 분배는 시기심이 발생하지 않도록 불평등의 범위를 좁히는 정의로운 배경적 제도들에 의해 규제되는 순수 절차적 정의에 따라서 저절로 해결되도록 남겨둔다(697).
원칙들은 모든 사람의 이익을 가져오는 기여에 대한 보답으로 불평등들을 허용하기는 하지만, 자유의 우선성은 자존감이라는 사회적 기초에서의 평등을 함축한다(698).
정의관을 선택하는 당사자들은 제도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연적 여건과 사회 집단의 활동 및 충돌에 따라 변경되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는, 즉 자연의 제약이 인정되기는 하지만 사회 체제를(699) 형성함에 있어서 무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도 역시 정의론에 있어 배경의 일부를 이룬다. 원초적 입장에서 받아들이게 될 원칙들에 부합하는 사회에 있어서 공지성의 조건은 당사자들이 사회의 성원으로서 일반적인 사실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를 요구한다. 최초의 합의에 이르게 하는 추론은 공공적인 이해가 가능해야 한다. 우리는 확립된 지식이 변함에 따라 정의의 원칙들도 마찬가지로 변하게 될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동등한 자유에 대한 효과적인 보호는 자존감을 뒷받침하는 데 있어서 점차 가장 중대한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제1원칙의 우선성을 확언한다(700).
'세미나 발제문 >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치란 무엇인가? / 조르조 아감벤 (0) | 2022.04.17 |
---|---|
왕국과 영광 / 조르조 아감벤 / 보론 (0) | 2022.04.10 |
왕국과 영광 / 조르조 아감벤 / 8장 영광의 고고학 8.17~경계영역 (0) | 2022.03.20 |
『정의론』 3부 목적론-8장(73-77) 존 롤즈 2022.3.20. 바다사자 (0) | 2022.03.20 |
지식인들의 망명- H. 스튜어트 휴즈 / 22. 03. / 16.개벽크 (0) | 2022.03.16 |
- Total
- Today
- Yesterday
- 개인심리
- 계급투쟁
- 옥중수고이전
- 한국전쟁의기원
- 의식과사회
- 신학정치론
- 옥중수고
- 이데올로기
- 이탈리아공산당
- 안토니오그람시
- 알튀세르
- 로마사논고
- 야생의사고
- 그람시
- 프롤레타리아 독재
- 생산양식
- 레비스트로스
- virtù
- 집단심리
- 공화국
- 루이알튀세르
- 헤게모니
- 스피노자
- 마키아벨리
- 브루스커밍스
- 생산관계
- 루이 알튀세르
- 무엇을할것인가
- 딘애치슨
- 검은 소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