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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1장 조르조 아감벤 2022.9.4. 바다사자

 

1 통치 패러다임으로서의 예외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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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는 공법과 정치적 사실 사이의 불균형점을 구성하며, 이 불균형점은-내전, 봉기, 레지스탕스와 같이-“법률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교차하는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경계선에 자리한다. 따라서 경게에 대한 물음이 가장 시급한다. 예외상태는 법률 차원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법률적 조치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인다. 다른 한편에서 법이 생명을 포섭하기 위한 근원적 장치가 예외상태에 관한 이론은 살아 있는 자를 법에 묶는 동시에 법으로부터 내버리는 관계를 정의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이 연구에서 공법과 정치적 사실성 사이의 그리고 법질서와 살아 있는 자 사이의 영역을 살펴볼 것이며 그래야 서양 정치사에서 정치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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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이란 규정 불가능한 영역이다. 히틀러는 1933국가와 민족 보호에 관한 긴급 조치를 공표했는데, 개인의 자유에 관한 모든 조항을 효력 정지시키는 것이었다. 법률적 관점에서 제3제국은 12년 동안 지속된 예외상태로 간주될 수 있다. 현대의 전체주의는 합법적 내전을 수립한 체제로 정의될 수 있다. 이때부터 항구적인 비상 상태의 자발적 창출이(15) 현대 국가의 본질적 실천이 되었다.

예외상태가 점점 더 현대 정치의 지배적 통치 패러다임이 되고 있다. 예외상태는 민주주의와 절대주의 사이의 확정 불가능한 문턱인 것처럼 보인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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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가 가진 생명정치적 의미는 법이 스스로를 효력 정지시킴으로써 살아 있는 자들을 포섭하는 근원적 구조라는 것인데 2001.11.13. 미국 대통령의 군사 명령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테러활동이 의심되는 비내국인을 무기한 구금하는 것과 군사 위원회가 재판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개인들의 법적 지위를 철저하게 말소하고 법적으로 명명하거나 분류할 수 없는 존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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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예외상태와 긴급 상태용어를 이탈리아와 프랑스 법학에서는 긴급 명령과 계엄, 영국은 전시법과 긴급 권한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18).

예외상태는 특수한 법이 아니다. 법적 질서를 효력 정지시키는 하니에서 예외상태는 법의 문턱 혹은 한계 개념을 정의한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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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적 또는 정치적 계엄 상태라는 용어는 프랑스 법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폴레옹의 1811년 법령과 관련된다. 도시가 적군의 공격을 받는 여부와 관계없이 황제가 계엄을 선포할 가능성을 규정하고 있다. 계엄의 포고는 프랑스 제헌의회 1791년 법령에 기원을 두는데(19) 군사적 요새와 군항에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이후 점점 더 국내의 소요와 질서 붕괴에 대처하기 위한 치안 유지용 비상 조치로 사용되었고 실제적 계엄 상태에서 픽션적 즉 정치적 계엄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현대적인 예외상태가 민주주의 혁명 전통의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헌법의 효력 정치는 무장 봉기나 소요가 일어날 경우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대해 헌법을 효력 정지시킬 수 있다. 이 경우 행정부의 법령에(20) 의해 사전에 포고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도시나 지역은 헌법 바깥에 있는 것으로 선포되었다. 이 패러다임은 문민적 영역 속에 군사적 전시 권한이 확장되는 것이고 한편 헌법의 효력이 정지되는 것이지만 둘 다 예외상태라고 부르는 현상 속으로 합류한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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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를 특징짓는데 사용되는 전권표현은 통치 권한의 확장, 법령을 포고할 집행권의 부여와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교회법 속에서 주조되었다. 예외상태란 상이한 권력 형태들(입법, 행정 등)이 원초적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외상태는 오히려 텅 빈 상태, 즉 법의 공백 상태에 근거하며 원초적 권력이란 자연 상태라는 개념과 유사한 법적 신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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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론은 1934~48년 사이에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이 와해되는 틈에 각별한 순간을 맛보았다. ‘입헌 독재를 둘러싼 유사 논쟁의 형태로 등장했다. 프레데릭 와킨스, 칼 프리드리히, 클린턴 로시티 등에 의해 자세히 발전되었다. 헤르베르트 팅스텐의 전권: 1차 대전 기간 및 이후의 통치권 확장에서(22) “예외상태가 상례가 된순간부터 점점 더 예외적 조치 대신 통치술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법질서를 구성하는 패러다임으로서의 본성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그의 분석은 전권법이 초래하는 권력 위임과 집행 권력의 입법 공간으로의 확대에 논의를 집중한다. 긴급 사태나 비상 사태 등 예외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포고되어야 하는 법률들은 민주적 헌법의 토대를 이루는 법률과 하위 규정이라는 위계적 법체계 질서와 갈등을 빚고, 의회의 입법권을 집행 권력에 위임하기 마련이다(23).

의회 입법권의 점진적 침식을 그때부터 흔한 일이 되었다. 1차 대전과 이어진 몇 년의 기간은 통치 패러다임으로서의 예외상태의 기능적 메커니즘과 장치들을 시험하고 발전시키는 실험실 역할을 했다. 입법, 행정, 사법 권력의 구분을 일시적으로 폐기하는 일이 통치의 영속적인 실천으로 전환되는 경향이 나타났다(24).

독재론이 민주주의 헌법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정당화하려는 비상 조치가 바로 헌법을 몰락으로 이끄는 것이 된다. 로시터는 역사적 검증을 통해 드러내놓고 입헌 독재를 정당화하려 한다(25). 그는 입헌 독재가 실제로 통치 패러다임이 되었으며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정확히 입헌 독재의 내재적 필연성을 보여주려 했다. 위임 독재와 주권 독재의 구분은 본질적이라기보다 정도의 문제이다. 다른 모든 기준이 환원되는 절대적 필요와 한시성이라는 두 가지 본질적 기준이 서로 모순되는 것을 로시터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예외상태가 상례가 되었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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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가 헌법의 조문 속에 예외상태를 규정하고 있는 법질서와 문제를 분명하게 규정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법질서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27). 전자는 프랑스, 독일, 후자는 이탈리아, 스위스, 영구, 미국이 속한다. 실질적 구성 차원에서 예외상태는 두 가지 법질서 모두에서 존재할 수 있다. 1차 대전 이후 예외상태와 관련된 제도는 입헌적이거나 입법적인 정식화와 상관없이 발전해왔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예외상태는 더욱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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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 문제는 저항권 문제와 뚜렷한 유사성을 보여준다. 저항이 권리 또는 심지어 의무이기까지 하다면 헌법은 절대 침해될 수 없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가치로서의 타당성(29)을 갖기를 그칠 뿐 아니라 결국 시민들의 여러 정치적 결정들 또한 법률적으로 규범화되고 말 것이다. 저항권과 예외상태 양쪽의 경우 모두에서 궁극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자체가 법 바깥에 있는 행위 영역이 법률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느냐이다. 법이 반드시 규범과 일치해야 한다고 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규범을 넘어서는 법의 영역을 고수하고자 한다. 두 입장은 법 전체가 제거된 인간 행동 영역의 존재를 배제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게 된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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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의 약사

프랑스 계엄 상태는 혁명기 프랑스에 기원, 1791, 1797년 법령에 의해 픽션적 또는 정치적 계엄 상태라는 고유한 형상을 획득하게 된다.
헌법의 효력 정지는 혁명력 8년 프리메르 22일자 헌법에 의해 도입된다(30).
계엄 상태는 1815년 헌법 추가 조항에서 명확한 표현을 얻었는데 계엄 상태는 법률에 의해서만 선포될 수 있다고 규정되었다.
1848년 신헌법에 계엄 상태를 선포할 수 있는 조건들, 형태, 운용 등은 법률로 정해야 한다는 것을 명기했다. 이때부터 효력 정지의 힘은 의회에만 속할 수 있다는 것이 프랑스 전통의 지배적인 원리가 되었다.
보불전쟁과 파리 코뮌 봉기는 예외상태의 전례 없는 일반화와 중첩되었다(31).
1차 대전은 항구적인 예외상태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생필품의 제조와 판매를 법령으로 규제할 수 있는 사실상의 절대권을 정부에 허용한 1918년 법률에서 행정부는 실질적인 의미에서 입법 기관이 되었다. 행정부의 법령을 통한 예외적인 입법화가 유럽 민주주의에서 통상적인 일이 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32).
전후에 군사적 비상 사태는 경제적 비상 사태로 대체되었다(33).
양차 대전 사이에 민주 헌정 체제를 변형시킨 독재 체제가 탄생한 것은 서구 사회의 정치적·입헌적 삶 전체가 하나의 새로운 형태를 뚜렷하게 띠기 시작했다(34).
현재 서구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예외상태의 선포는 안보 패러다임의 유레없는 일반화에 의해 점점 더 통상적인 통치술로 대체되고 있다(35).
독일 샤이데만 내각부터 시작해 바이마르 공화국의 여러 정부는 250회 이상 예외상태를 선언하고 긴급 조치를 선포했다. 현대에는 정치적·군사적 비상 상태와 경제적 위기가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34).
바이마르 공화국의 종말은 민주주의 수호란 민주주의와는 무관하며, 입헌 독재 패러다임이란 오히려 불가피하게 전체주의 체제로 향하는 전환 국면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37).
스위스 스위스 법학자들은 국가의 존재 그 자체에 내재하는국가 긴급권에서 그에 대한 정당성의 근거를 찾아내거나 특별 조치로 메꾸어야 하는 법의 공백에서 그에 대한 정당성 근거를 찾으려 했는데 이러한 집요함은 예외상태론이 결코 반민주적 전통의 배타적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법률적 실험실로 기능해 왔다. 이는 정부가 빈번히 교체될 정도로 불안정한 국가야말로 민주주의가 의회 주도에서 정부 주도로 전환되는 본질적인 패러다임을 주조해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39).
모든 계엄 상태는 국왕의 법령을 통해 포고되었고 모두 의회에서 승인되었다(40).
파시스트 정부 이후 정부 주도하에 긴급 조치를 통해 입법화가 이루어지는 일이 이탈리아에서는 상례가 되었다. 정치적 위기가 도래할 때마다 긴급 법령 포고라는 수단에 의존했고, 법률로만 시민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헌법의 원리만 무시된 것이 아니다(41). 긴급 조치는 정상적 입법 형태의 토대를 이루게 되었다. 이것은 권력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오늘날 의미를 잃어버렸으며, 행정 권력이 사실상 입법권을 흡수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회는 의무를 부과하는 독점적 권한을 가진 주권 기관이 더 이상 아니다. 행정 권력이 선포하는 여러 법령을 인가하는 존재로 축소되어버린 것이다. 이탈리아 공화국은 행정부 주도의 국가인 셈이다
서구의 정치 문화를 민주주의 형태로 다른 문화와 전통들에 전파하려는 바로 그 순간 민주주의를 위한 원칙을 철저히 져버렸다는 사실을 서양의 정치 문화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42)
영국 전시법이 있다. 너무나 모호한 개념이지만 반란법상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국왕의 권한은 전시로 제한되었다. 그러나 그 권한은 법 바깥의 민간인들에게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전시법은 법도 법률도 아니다. 특정 목적에 의해 지배되는 절차일 뿐이다. 1차 대전은 정부가 예외적 통치 장치를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토방위법으로 1914년에 통과된 법률은 광범위한 권한을 정부에 부(43)여했을 뿐 아니라 시민의 기본권을 크게 제한했다.
미국 슈미트는 독재에서 링컨을 위임 독재의 전형적 사례로 제시했다(46).
연방의회는 여러 입법 권한들이 침범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링컨 대통령의 행동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링컨은 1862년 단독 권한만으로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2일 후에 미합중국 전역으로 예외상태를 확대시켰다. 미국 대통령은 예외상태에 관한 주권적 결정권자가 되었다.
1차 대전 기간 윌슨은 링컨보다 더 광범위한 권한을 손에 넣었다. 연방 의회를 무시하는 대신 문제가 되는 권한을 연방 의회로부터 그때그때 위임받았다(47). 예외상태를 선포하기보다는 특별법을 포고하는 쪽을 선호하는 현재의 통치 행위에 가깝다.
전쟁이라는 은유는 20세기 내내 생사가 걸린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 된 사안을 결정해야 하는 문제를 다룰 때마다 대통령이 사용하는 정치적 어휘가 되었다(48).
헌법의 관점에서 뉴딜은 국가 경제 활동의 모든 측면을 규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무제한의 권한이 대통령에게 위임된 결과였다(49).
시민권의 침해 중 가장 스펙터클했던 것은(인종주의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심각했다) 1942년 미국 서해안에 거주하던 일본계 미국 시민 7만 명이 수용소에 억류되어 수감당한 일이었다.
2001년 부시 대통령이 군 최고 사령관임을 자임한 것은 긴급 사태가 평시가 되는 상황, 평화와 전쟁 사이의 구분이 불가능한 상황을 창울하려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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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를 법질서의 영역에 포함시커려는 사람들이, 다른 한편에서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또는 법률 외적인 현상으로 간주하려는 사람들이 있다(50)

전자 산티 로마노, 모리스 오(50)리우, 콘스탄티노 모르타티 예외상태를 기초짓고 있는 긴급 사태가 자율적인 법의 원천으로 기능한다는 이유로 예외상태를 반드시 실정법에 통합되어야 한다.
호에르니, 오레스테 라넬레티, 로시터 예외상태를 국가가 자기 보존을 위해 보유하고 있는 주체적인 권리로 이해한다.
후자 비스카레티, 발라도레-팔리에리, 카레 드 말베르 에외상태와 긴급사태를 실질적으로는 법률의 영역 바깥에 있는 사실적 요소들로 간주한다.
차이분석 율리우스 하첵 객관적 긴급 사태론 긴급 사태에 직면해 법률 바깥에서 또는 법률을 어기면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는 법에 위반되는 것이며 법률적으로 죄를 물을 수 있다.
주관적 긴급 사태론 예외적 권력은 국가의 입헌적 혹은 전입헌적(자연적) 권리에 기초해 있으며 선의만으로도 면책을 보증하기에 충분하다(51).

예외상태는 법질서 바깥에 있는 것도 안에 있는 것도 아니며, 서로를 식별하지 못하는 구분 불가능한 영역에 놓여 있다. 규범의 효력 정지는 규범의 폐지를 의미하지 않으며, 효력 정치가 만들어내는 아노미의 영역은 법질서와의 관계를 잃지 않는다(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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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사태는 법률을 갖지 않는다. 이는 긴급 사태에서는 어떤 법률도 인정될 수 없다이고, “긴급 사태는 그에 고유한 법률을 만들어낸다이다. 모두 예외상태론은 긴급 상태론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가 버려 긴급 상태의 지속 여부에 대한 판단이 예외상태의 정당성 문제를 해소시켜버린다. 이 격언이 따르고 있는 원리는 그라티아누스의 교령집에서 공식화되었다(53).

긴급 사태는 적법하지 않은 것이 적법한 것이 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넘어, 특수한 개별 사례마다 예외를 통해 법률 위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되고 있다(54).

긴급 사태론은 개별적인 사례를 법률 준수의 의무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예외(면책)론에 다름 아니다. 긴급 사태는 하나의 개별적인 사례를 규범의 적용으로부터 면제해주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 긴급 사태에 직면하면 만인의 행복이라는 목적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법률의 구속력은 약해진다. 법률의 힘과 근거가 적용될 수 없는 모든 개별 사례가 문제인 것이 예외의 궁극적 토대가 되는 것이다(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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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예외상태는 외부의 사실을 향한 법률 체계의 열림을 나타내는 것이고 사교 서훈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일종의 법률적 픽션이었던 셈이다. 근대의 예외상태는 법질서 속에 예외 자체를 포함시켜 사실과 법이 일치하는 식별 불가능한 영역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이다(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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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상태가 법질서 속에 포함되고 법의 고유하고 진정한 상태로 등장하는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이다. 법률의 궁극적인 기초와 원천 자체를 구성한다는 원리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외상태에서 행정부가 선포한 법률의 힘을 가진 법령의 효력의 근거를 긴급 사태에서 찾은 일전의 법학자들에게도 타당한 것이었다(57).

긴급 사태를 유효한 입법과 원리에 기초한 국가의 주체적 권리라는 주장, 예외적 권한은 어떠한 토대도 갖지 않는다는 주장에 관해 로마노는 법과 법률을 동일시하는 데서 모두 틀렸다고 본다. 법의 진정한 기초가 입법 행위를 넘어선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때문이다(58).

예외상태는 비합법적이지만 절대적으로 법률적이고 헌법적인하나의 조치로 모습을 드러내며, 새로운 규범의 생산으로 구체화된다(59). 1944년 이탈리아 내전에 로마노는 긴급 사태 문제를 혁명과 연관 속에서 제기했다. 혁명도 원래적인 법질서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할 하나의 질서이며 혁명의 법(권리)이라고 했다. 혁명은 폭력이지만 법적으로 조직된 폭력이라는 것이다. 긴급 상태는 예외상태와 혁명이라는 형태 속에서 모호하고 불확실한 영역으로 나타난다(60). 그 자체로는 법률 바깥에 있거나 반법률적인 사실이 법 속으로 이행해 전개되며, 법률적 규범들이 단순한 사실과 식별 불가능한 것이 된다. 즉 긴급 상태는 사실과 법 사이의 구분이 결정 불가능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문턱인 셈이다. 본질적인 것은 사실과 법이 서로 상대방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규정 불가능성의 문턱이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이로부터 긴급 사태를 정의하지 못하는 아포리아가 생겨난다(61).

긴급 상태론의 극단의 아포리아는 긴급 사태의 본질 자체와 관련되어 있다. 객관적으로 주어지기는커녕 주관적 현상이라는 사실, 긴급하고 예외적인 상황이란 그렇게 선언되는 상황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한다는 법학자들의 비판은 적절하다. 긴급 사태에 의존하는 것은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인 하나의 가치 평가를 포함하고 있다(62). 법질서를 거스를지도 모르는 대가를 치루고서라도 보존되고 강화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긴급 사태 원리는 모든 경우에, 언제나 혁명적 원리인 셈이다. 긴급사태란 궁극적으로 하나의 결정으로 환원될 뿐 아니라 그것이 결정해야 하는 대상 자체가 실제로는 사실과 법 사이에서 결정될 수 없는 무언가라는 것이다(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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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트는 예외상태를 법의 원천적 기초로 삼으려 했던 로마노의 시도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법이 법률로 완전하게 흡수될 수 없다는 생각을 로마노와 공유하고 있다(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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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 문제는 법의 공백과 연관된다. 법률에는 공백이 있지만 법에는 있을 수 없다는 원리에 따라 예외상태로 공법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공백이라고 해석되어 행정 권력에 의해 복구되어야 할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사법 권력의 원리가 행정 권력으로 확장되는 셈이다(64).

예외상태는 규범의 존립과 정상 상황에 대한 규범의 적용을 보증하기 위해 질서 안에 하나의 픽션적 공백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공백은 법률이 현실과 맺는 관계, 법률의 적용 가능성 그 자체와 관련된다. 법률의 적용은 정지되지만 법률 자체는 효력을 갖는 영역을 창출함으로써만 채워질 수 있는 단절을 내포한다(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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