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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4장 청년기의 교육 P352~425 루소                                                                 2022.8.10. 바다사자

 

4장 청년기의 교육

우리는 두 번 세상에 태어난다. 첫 번째는 존재하기 위하여, 두 번째는 살기 위하여. 처음에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두 번째는 남성이나 여성으로 태어난다(352). 남성은 일반적으로 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자연에 의해 정해진 시기에 그 상태로부터 벗어난다. 기질의 변화, 빈번한 흥분, 끊임없는 정신의 동요가 자제할 수 없게 한다. 보호자를 인정하지 않고, 간섭받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 얼굴 생김새도 변화가 나타난다. 솜털이 농밀해진다. 목소리를 잃어버린다. 눈은 어떤 언어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정열이 눈에 생기를 준다. 눈을 내리깔고 얼굴을 붉히는 법을 익히기 시작하고 감수성이 예민해지면서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분이 된다(353). 이것이 제2의 탄생이다. 참으로 인생으로 들어간다. 보통의 교육이 끝나게 되는 이 시기야말로 정말로 교육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이다.

정념은 자기 보존을 위해 중요한 수단이다(354). 정념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근원은 자연이다. 그러나 다른 데에서 오는 무수한 흐름이 그것을 크게 하고 있다. 정념의 근원인 단 하나의 정념은 자기애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원시적인 정념으로 다른 모든 정념에 우선한다(355). 자기애는 언제나 좋은 것으로 언제나 자연의 질서에 부합된다. 따라서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이의 최초의 감정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두 번째 감(356)정은 자기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이는 도움을 받고 보살핌을 받는 것에 의해서만 사람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에게 호의를 느끼는 성향을 가진다. 그 관계, 필요, 능동적 또는 수동적인 의존 상태를 확대해감에 따라 타인과의 관계라는 감정에 눈뜨고, 의무감이나 좋고 싫은 감정이 생겨난다.

자기애는 자신의 일만 문제 삼으므로, 자신의 진짜 욕구가 충족되면 만족한다. 그러나 이기심은 항상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 보기 때문에 만족하는 일이 결코 없고 또 만족될 수도 없다(357). 온화한 애정이 넘친 정념은 자기애로부터 생겨나고, 증오에 넘치고 초조해지는 정념은 이기심으로부터 생겨난다. 도덕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느끼기 시작하면 인간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반려를 필요로 하게 되면 인간은 이미 고립한 존재가 아니다. 모든 관계와 애정은 반려와의 관계가 생겨남과 동시에 생겨난다(358). 한 성이 다른 성에 매혹된다. 자연의 충동이다. 연애는 언제나 뛰어난 성질이 있으며 이성으로부터 생겨난다. 사랑이 자연에서 생겨난다는 말은 당치도 않다. 자연의 경향을 규제하는 것, 억제하는 것이다.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다른 이성에 대해 냉담하게 만드는 것이 연애이다. 사랑은 상호적인 것이어야 한다. 사랑받으려면 사랑스러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로부터 경쟁심·질투심이 생겨난다(359). 연애와 우정과 함께, 불화·적대·증오가 생겨난다.

아이 시대로부터 사춘기로 바뀌는 시기는 자연에 의해 확실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서는 체질에 의해, 국민에게서는 풍토에 의해 달라진다(360). 교양이 있고 개화된 국민 사이에서 사춘기와 성의 능력이 한층 더 빨리 나타난다(361). 인간이 자신의 성을 의식하는 시기가 자연의 작용과 마찬가지로 교육의 효과에 의해 달라진다면 아이를 기르는 방법에 의해서 이 시기를 이르게 하거나 늦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다(362).

아이의 호기심은 자극하기보다는 만족시켜 주는 편이 훨씬 덜 위험하다. 대답은 언제나 성실하게, 단순하게, 확실히 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숨길 수 없는 것은 일찍 가르쳐 주는 것이 좋다. 우연에 맡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성의 차이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하려면, 열 살이 될 때까지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좋다(363). 품행이 방정한 사람들은 대단히 솔직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덕에 의해 더럽혀진 상상력은 음란한 관념에 민감하게 되므로 멀리해야 한다.

수치심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악을 아는 것에 의해 비로소 생겨 나는 것인데 아이는 악을 알지 못한다. 악을 알지 못하는 아이에게 부끄러움, 품행을 바르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며 은밀한 욕망을 느끼게 하는 것이 된다. 상상력에 닿는 최초의 불꽃은 관능을 급히 일깨운다. 아이는 어른과 같은 욕망을 가지지 않는다. 자연은 은밀한 쾌락의 기관과 불유쾌한 욕구의 기관을 같이 놓음으로써, 절제, 청결함에 의해 경계를 하고 있다. 아이가 순진한 마음을 계속해서 가질 수 있게 하는 좋은 방법은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순진한 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이다(364).

그 나이에 어울리게 키워지고 있는 아이는 고독하다. 습관에서 생기는 애착 외에는 가지지 않는다. 자신의 성을 의식하지 않고 인간의 한 동료라는 사실도 의식하지 않고 있다. 똑같이 미지의 존재이며 그들의 행위나 말을 자신과 결부시켜서 생각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무지인데 바로 그 자연이 아이를 계발하려는 배려를 준다. 그런 때에만 자연은 위험 없는 교육에 의(367)해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준다(368).

세속에 익숙해진 세련된 아이, 개화된 아이는 욕망을 경험하기 훨씬 전부터 어떤 것이 자기의 욕망의 대상이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아이가 자연을 독촉한다. 아이가 실제로 어른이 되기 훨씬 전부터 기분상으로는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369). 자연의 바른 과정은 단계적으로 서서히 진행된다. 최초의 성욕에 앞서 오랫동안의 불안한 마음이 있고 무지가 욕망의 대상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게 한다. 남아 돌아가는 생명력은 밖으로 뻗치려 한다. 다른 존재를 바라보고 주위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며 인간적인 애정에 대해 마음이 열리고 애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주의 깊게 키워진 청년이 느끼는 최초의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다. 인류에 대한 감정이 이성에 대한 감정보다 일찍 눈뜬다. 나타나기 시작한 감수성을 이용하여 젊은 청년의 마음에 인간애의 최초의 씨앗을 심는다. 일생 동안에 이 시기야말로 그러한 배려가 참으로 결실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이다(370). 출신 성분이 나쁜 아이가 아니라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순결을 잃지 않았던 아이는 그 또래에서는 가장 관대하고, 선량하고, 누구보다도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로 만든 것은 인간의 약함이다. 인간애를 느끼게 하는 것은 우리들 공통의 비참함이다. 모든 애정은 부족함이 있다는 증거이다. 덧없는 행복은 우리의 약함 그 자체에서 생겨난다. 참으로 행복한 인간은 고독한 인간이다(371). 인간에게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것은 괴로움에 대한 감정에 의해서이다. 공통되는 괴로움은 애정에 의해 우리를 결속시킨다. 연민은 달콤하다. 선망의 감정은 괴롭다(372).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국왕도, 귀족도, 궁정인도, 부자도 아니다. 모두 벌거숭이 가난한 인간으로서 태어난다. 열여섯 살이 되면 청년은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를 안다. 감각의 범위가 넓어져 상상의 불이 점화되면, 인간 가운데서 자신을 인식하고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373). 고통은 느끼면 동정심이 생겨난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최초의 상대적인 감정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깊은 동정심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기가 고민했던 것을 고민하고 있고 자기가 느꼈던 괴로움을 느끼고 있고, 자신도 느낄지 모르는 것으로서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375).

정념의 세 가지 준칙(376).

첫 번째 준칙 인간의 마음은 자신을 자기보다 행복한 사람의 입장에 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의 입장에 자신을 놓고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청년에게 인간애를 느끼게 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부러운 운명에 감탄하게 하지 말고, 그에게 인생을 슬픈 측면에서 나타내 보여주어 그의 두려움을 일깨워야 한다(377).
두 번째 준칙 사람은 오직, 자신도 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는 타인의 불행만을 동정한다. ‘불행을 아는 사람만이 불행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준칙 타인의 불행에 대하여 느끼는 동정은 그 불행의 크고 작음에 비례하지 않고, 우리가 그 불행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베푸는 감정에 비례한다.
- 불행한 사람을 동정하는 것은 자신이 동정받아야 할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는 한에서이다. 고통을 느끼도록 하는 것은 기억력이며 그것을 미래로 잡아 늘여 우리를 참으로 불쌍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상상력이다(379).
인간은 어떤 신분에 있든 같은 인간이다. 가장 수가 많은 신분이야말로 가장 존경할 가치가 있다. 사려 깊은 사람에게는 사회적인 차별은 모두 무시되어 버린다(380).
모든 인간을 사랑할 것, 자신을 어떤 계급에도 두지 않으면서도 모든 계급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좋다(382).

청년의 정열은 교육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서 비로소 교육이 마무리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힘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존재가 되었을 때, 그의 마음을 붙잡는 실마리를 주는 것이다. 그의 최초의 애정은 모든 마음의 움직임을 이끄는 고삐가 된다. 사랑하게 되면 그 애착에 속박당하게 된다. 그를 인간에 묶어 두는 최초의 고삐가 만들어진다. 감수성은 처음에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작용할 것이다(395). 천성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른 후에 자기 자신의 감정과 타인에게서 관찰되는 감정에 대하여 많이 반성한 후에 비로소 그는 개인적인 관념을 인류라는 추상적인 관념으로 일반화하기에 이르고, 자신의 개인적인 애정에 그를 자신의 동료(인류)에 동화시킬 수 있는 애정을 결부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396).

그를 어른으로서 취급하는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당신들에 대한 그의 의무 같은 것을 결코 문제 삼아서는 안된다. 오직 자신에 대한 의무만 문제 삼아야 한다. 그를 순종시키려면 완전한 자유를 주도록 하라, 이해에 관한 것 외에는 결코 그에게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마음을 감사의 고귀한 감정으로 끌어올리도록 하라. 상대가 하는 일이 그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것을 그가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지금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 시작한 그는 친구의 애정을 보고 있다. 인간의 마음에서 확실히 구별되는 우정의 목소리만큼 무게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점점 도덕적인 질서 속으로 들어간다. 인간의 두 번째 단계를 지난 것이다. 마음의 최초의 움직임으(398)로부터 양심의 최초의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 사랑과 미움의 감정으로부터 선악의 최초의 관념이 생겨난다. ‘정의은 단순히 추상적인 언어나 오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비추어진 정신이 참으로 느끼는 것이며 양심과 상관없이 이성만으로는 어떠한 자연의 법칙도 확립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자연의 권리도 인간 마음의 자연적인 요구에 기초한 것이 아니면 모두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에밀이 동료 인간에게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 자신을 그들과 비교해 보게 될 것이다(399). 비교가 불러일으키는 최초의 감정은,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욕구이다. 이것이야말로 자기애가 자존심으로 변하고, 자존심에 기초하는 모든 정념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기점일 것이다

인간을 독립된 존재, 자유로운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은 완력보다는 오히려 중용을 얻은 마음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사실상의 평등, 현실적으로 불멸의 평등이 있다(400).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차이가 한편을 다른 편에 종속시킬 만큼 큰 경우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명 사회는 권리상의 헛된 가공의 평등이 있다. 약자를 억압하기 위해 강자에게 주어지는 국가 권력이 자연에 의해서 양자 사이에 놓여진 일종의 균형을 깨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401).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경험을 통해서 청년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402).

청년을 이론에 입각하여 교육하려고 생각하여, 인간의 본성과 함께 우리들의 성향을 악덕으로 향하게 하는 외부적인 원인이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를 그에게 가르쳐 인식시키려 하면, 갑자기 감각적인 대상으로부터 지적인 대상으로 이행시키는 것에 의해, 그가 아직 이해할 수 없는 형이상학을 사용하는 것이 된다. 그 자신의 경험과 이성의 진보 대신 교사의 경험과 권위를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게 하는 오류 속으로 다시 떨어지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역사를 가르칠 시기가 된 것이다. 역사를 통해 재판관으로서 보는 것이다(403).

역사의 큰 결함의 하나는 나쁜 면에서 그리는 일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온화한 정치가 행해져 태평한 가운데 인구가 증가하고 나라가 번영하는 동안에는 역사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는 모두 끝나야 할 곳에서 시작하고 있다. 쇠락해 가고 있는 구민에 대해서는 대단히 정확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부유해져 가고 번영해 가는 구민의 역사이다. 좋은 일이 한 시기를 귀획했다는 일은 거의 없다. 유명하게 되는 것은 악인뿐이다. 역사는 철학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인류를 중상하게 된다(404).

사실들은 역사가의 머릿속에서 모양을 바꾸고 이해 관계에 따라 틀이 만들어지며 편견으로 채색된다. 역사가는 어떤 원인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만든 것이다(405).

청년에게서 가장 나쁜 역사가는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역사가이다. 판단은 학생으로 하여금 내리게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인간을 아는 것을 배우게 된다(406).

학생에게 소질이 있고, 선생이 신중하게 선택하여 독서하게 한다면 그러한 공부는 학생에게서 실천 철학의 강의가 된다(413).

자존심(이기심)이 발달하면 곧 상대적인 자아가 끊임없이 작용하다. 젊은이가 타인을 관찰할 때에는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오고 자신을 타인과 비교해 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기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인물이 되고 싶어하는 자는 이윽고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린다(416).

인간을 올바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알려고 하는 큰 욕구, 인간을 판단하는 데에서의 공평함. 인간의 모든 정념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고 정념에 빠지지 않을 만큼 냉정한 마음이 필요하다. 에밀은 인간으로서 동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공평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동료를 판단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모두 자신의 손이 닿는 곳에 있다. 그는 스스로 만족할 줄 알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므로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 욕망은 크지 않아 그것을 만족시킬 수단을 가지고 있다. 더없이 절대적인 자유 속에서 자라난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은 예속이다(418).

에밀이 다른 사람들의 방법보다 자신의 사는 방법, 보는 방법, 느끼는 방법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면 그는 올바른 것이다(420).

에밀 또래의 청년, 그리고 그 아이만큼 분별이 있는 청년은 이미 그런 잘못을 저지를 만큼 어리석지도 않고, 또 잘못을 저질러서 좋을 일도 아니다. 그가 자기의 교사에 대하여 가져야 할 신화는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이성의 권위, 뛰어난 지혜, 청년이 알 수 있는 장점으로, 자신에게서 그 효용을 느낄 수 있는 장점과 같은 것들에 의거해야 한다. 선생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 자기를 이끌어 주는 그 사람은 현명한 사람으로 자기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행복을 자기 손에 넣어 주는 방법을 알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423).

잘못에 빠지기 전에 경고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비난해서는 안된다. 잊어버린 체하는 것이다(424). 당신들의 위로의 말도,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에, 그에게 한층 유익한 교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잘못의 시기는 우화의 시기이다. 잘못을 범한 자에게 타인의 가면을 씌워 비난함으로써 우리는 그이 마음을 상처 입히지 않고 가르칠 수 있다(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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