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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P57~106장 아감벤 2022.7.24. 바다사자

리바이어던과 베헤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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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 리바이어던표지 그림은 현대의 정치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시각 이미지이다. 당시 우의형상적 문헌이 만개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하나의 이미지 속에서 저작의 내용 전체를 요약할 의도가 저자에게 있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57). 우의형상의 의미는 정치철학의 자원들과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 철학적 도상학 지식을 필요로 한다. 홉스는 은폐된 방식이지만 문제의 핵심으로 이끌어 줄 문 또는 문턱이다. 슈미트는 실제로 리바이어던이 비의적인 책(59)일지도 모른다고 암시했다.

모든 비의적 표상은 불가피하게 모순을 포함하는데 감추고 있는 것이 진지한 어떤 것이라면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표지그림 자체에서 홉스가 비의적 베일같은 것을 암시했을 가능성도 있다(61).

리바이어던의 표지그림에서 권력의 상징적 중심을 감추고 있는 베일 또는 커튼은 위에있는 두 개의 끈으로 묶여 있으며 대지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져 있다(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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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는 홉스가 찰즈 2세을 위해 필사해 둔 표지 그림의 이미지와 몇 가지 차이를 보인다.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리바이어던의 신체를 형성하는 작은 인간들의 눈길이 주권자의 머리가 아니라 독자, 즉 주권자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칼과 제사장의 나무지팡이가 만나는 우의상징의 가장 높은 부분에서 욥기,(63) 라틴어 인용문(지상의 누가 그와 겨루랴)이 있는데 하느님은 욥의 어떤 항의도 묵살하기 위해 태곳적의 두 마리 무시무시한 괴물을 욥에게 그려 보인다. 베헤못(거대한 황소)과 바다의 괴물인 리바이어던이 그것이다. 리바이어던의 묘사에서는 그의 무시무시한 힘이 강조된다(65).

라틴어 인용문은 우의상장의 모토인데 이 모토 아래에서 거대한 형상을 볼 수 있다. 상반신은 작은 인간(66)의 모습을 한 무리로 형성되어 있다.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오른손에는 현세적 권력의 상징인 검을, 왼손에는 영적 권력의 상징인 제사장의 나무지팡이를 들고 있다. 전경에는 완만하게 구릉진 풍경이 도시의 이미지까지 그려져 있는데 대성당과 요새를 볼 수 있다. 그림의 아랫부분에는 일련의 작은 우의상징이 양쪽에 다섯 개씩 배치되어 있다. 각각 현세적 권력과 교회 권력을 가리킨다. 이 둘 사이에 책의 제목이 적힌 무대의 막이 걸려 있다. 현세적 권력(요새,왕관,대포,깃발들)과 교회 권력(교회,주교의관,파문의 번개, 논리적 삼단논법 상징들, 공의회)을 가리킨다. 이 둘 사이에 책의 제목이 적힌 무대의 막이 걸려 있다(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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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리비우스의 인체 황금 분할도에 따라 가려져 보이지 않는 거대한 인간의 신체 부분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표지의 맘즈베리의 토머스 홉스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그 부분에 발이 떠 있는 것 같은 인간의 형상이 나타나게 된다. 완만한 풍경 너머에 바다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성서의 전통에서 베헤못은 육서동물이고 리바이어던은 해서 동물, 일종의 거대한 물고기나 고래라는 사실과 부합한다. 둘의 대립은 대지와(68) 바다라는 기본적인 지정학적 대립에 상응한다(슈미트의 가설). 결정적인 것은 지상의 신”, “코먼웰스 또는 국가라고 불리는 인공 인간이 도시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거주한다는 경이로운 사실이다. 그의 장은 외부에 있으며 무인 지대 또는 바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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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특이성은 몇 명의 무장 위병과 대성당 근처에 위치한 아주 특수한 두 형상을 제외하면 도시에 주민이 완벽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도시 주민 전체가 리바이어던의 신체로 옮겨졌다(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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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어던은 자동장치들에 빗댈 수 있는 인공물임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맬컴은 리바이던의 거대한 신체는 기계장치가 아니라 광학 장치임을 암시한다. 현실이 아니라 착시이다(71). 시민의 무리가 단 하나의 인격으로 통일되는 것은 원근법 장치에 의한 환영 같은 것이다. 정치적 대표[재현]는 광학적 표상[재현]에 불과하다(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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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상징의 수수께끼는 텅 빈 도시, 지리적 경계들 바깥에 위치한 국가라는 것이다. 홉스는 인민과 무리를 구분하면서 자(74)신의 기본 정리 중의 하나를 역설로 규정하고 있다. 단절적(무리/인민: 시민의 무리는 인민이 아니다)과 동일화(왕은 인민이다)(76)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인민은 자신을 분할한다는, 즉 자신을 무리와 인민으로 나눈다는 조건하에서 주권자이다(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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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은 주권자를 선택하는 바로 그 순간 혼란스런 무리로 해체된다. 왕이 선택되자마자 인민이 더 이상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왜냐하면 인민이 하나의 인격인 것은 단지 주권 권력인 덕분이기 때문이다- 해체된 무리가 되는 것은 군주제뿐만 아니라 의회가 구성되자마자 인민이 동시에 해체되는민주제와 귀족정에서도 일어난다(78).

인민-정치적 신체[정치체]-자신들 모두의 인격을 지닌 한 사람 또는 합의체를 임명할 때의 오직 한 순간에만 존재한다. 동시에 인민이 해체된 무리로 사라지는 시점과 일치한다. 따라서 정치적 신체란 무리-인민-왕 사이의 긴장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불가능한 개념이다. 항상 이미 주권자를 구성하면서 자신을 해체하는 행위 속에 존재한다. 한편 주권자는 단지 인공 인간일 뿐으로 그의 통일성을 가면의 효과이다. 아마 홉스 사상의 기본 개념은 신체일 것이다(79).

인민-왕이라는 역설의 구성은 무리로부터 시작해 무리로 되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통일되지 않는 무리-인민--해체된 무리라는 원환은 한 점에서 깨지며, 최초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내전과 일치한다(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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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에서 무리는 아무런 정치적 의미도 갖지 않으며 국가가 존재할 수 있으려면 무리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상투어이다. 하지만 통일되지 않은 무리로 구성되는 인민은 다시 무리로 해체된다면 무리가 인민-왕보다 선재할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 존속한다. 사라지는 것은 오히려 주권자의 형상 속으로 옮겨진 인민으로 이 인민은 모든 도시에서 통치하지만도시 안에서 살 수는 없다. 무리는 비정치적 요소로 도시는 그것의 배제에 기반해 건립된다. 도시 안네는 오직 무리밖에 존재하지 않는데, 인민은 항상 이미 주(81)권자 속으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무리는 간접적으로밖에는 재현[표상]되지 않는다.

페스트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의사 형상은 선택과 배제를 상기시키며, “페스트와 건강 그리고 주권성 사이의 관계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재현불가능한 무리는 페스트 환자 무리와 비슷하며 위병과 의사들을 통해서 밖에는 재현될 수 없다(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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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이라는 개념은 내적 분열을 포함하고 있는데 항상 이미 자신을 인민과 무리, 민중과 군중, 인구와 군집, 부유층과 빈민층으로 나눔으로써 인민이 하나의(84) 전체로 전면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막는다. 한편 인민은 항상 이미 자신에게 현존하고 있다. 다른 한편 정치적 통일체로서 인민은 오직 인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현존할 수 있다. 인민은 절대적으로 현존해 있지만 그 자체로서는 결코 현존할 수 없으며, 오직 대표될 수 있을 뿐이다. 인민의 부(85)재를 아데미아로 부를 수 있다면 홉스적 국가는 모든 국가와 마찬가지로 영속적인 아데미아라는 조건 속에 있게 될 것이다(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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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무리가 도시에 머무는 유일한 존재라면 그리고 무리가 내전의 대상이라면 내전이 국가에서는 항상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리와 주권자 사이의 투쟁의 운명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동안 국가는 해체되지 않는다. 내전과 코먼웰스, 베헤못과 리바이어던이 공존하는 셈(87)이다. 오직 국내 전쟁이 무리의 승리로 끝나야 비로소 코먼웰스로부터 자연 상태로, 해체된 무리로부터 통이로디지 않은 무리로 돌아가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자연 상태란 도시를 해체된 것으로, 내전을 과거로 신화적으로 투사하는 것이다. 역으로 내전이란 자연 상태를 도시로 투사하는 것이다(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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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는 자기 저서의 제목의 부정적 함의를 알고 있었다(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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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리바이어던을 악마적으로 해석하고, 리바이어던과 적그리스도를 도상학적으로 연결한 전통에서 베헤못과 리바이어던은 모두 적그리스도 그리고 요한의 묵시록의 괴물과 연결된다(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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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적 주제가 리바이어던3부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데, 홉스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신약성서적 개념을 비유적 의미로 해석하는 지배적인 학설에 맞서 신약구약모두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실제로 존재하는 정치적 왕국[나라]을 의미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94). 하느님의 나라는 단지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만 지상에 실현될 것이다. 정치신학은 홉스에게서 결정적으로 종말론적 관점에서 나타난다. 리바이어던에서 홉스는 기독교 신학을 예언과 종말론으로 환원시킬 뿐만 아니라 예언의 권위를 종말론적으로 투사하고 있다.” 그의 정치학은 메시아적 차원을 띠게 됨, 함축하는 메시아주의 또(96)한 거의 조야하달 정도로 정치적이다. 하느님의 나라와 세속의 왕국은 완벽하게 자율적인 반면 종말론적 관점에서 볼 때는 두 나라 모두 지상에서 일어나며 리바이어던은 하느님의 나라가 정치적으로 실현되면 필연적으로 사라져야 하기 때문에 이 둘은 조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홉스 이론을 규정하고 있다(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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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적 관점을 통해 표지 그림의 수수께끼들을 풀 수 있다(97). 표지 그림의 이미지는 리바이(98)던과 신민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의 세속적 대응물로 나타낸다. 현재 상태에서 그리스도는 회중의 신체의 머리이다. 하지만 지상의 시간이 종말을 고할 때 천상의 나라에는 더 이상 머리와 신체 사이에 어떤 구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지상의 시간이 종말에 이를 때 리바이어던은 머리라는 허구는 지워지고 인민이 자신의 신체를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제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가시적이지 않은 무리를 나누는 간극은 결국 완벽한 교회에 의해 메워질 것이다. 이것은 또한 그때까지는(99) 어떤 현실적 통일도, 어떤 정치체도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체는 다만 무리로 해체되어 들어갈 수 있을 뿐이며 리바이어던은 단지 최후까지 베헤못과, 즉 내전의 가능성과 공존할 수 있을 뿐이다(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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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는 코먼웰스를 여전히 적그리스도와 동의어이던 리바이어던이라는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국가에 대한 구상을 결정적으로 종말론적 관점 안에 위치시키고 있다. 홉스의 기독교 정치에서 국가는 어떤 식이든 지상의 시간의 종말을 붙잡고 제지하는 권력의 기능을 가질 수 없다. 실제(103)로 그러한 것으로는 결코 제시되지 않는다. 반대로 지상의 시간의 종말은 어느 순간이든 일어날 수 있다. 국가는 제지하는 자로 행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지상의 시간이 종말에 이르면 제거되어야 할 종말론적 짐승과 일치하기도 한다.

현대 정치는 종말론의 세속화에 기반하고 있다. 종말론에 구체성과 고유한 공간을 허용해주는 홉스의 사유에 이보다 더 낯선 것도 없을 것이다. 홉스의 정치를 규정하는 것은 상호 자율적인 두 권력 사이의 독특한 관계이다. 리바이어던의 왕국과 하느님의 왕국은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두 개의 현실로, 결코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후자가 실현될 때 전자는 필연적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둘은 종말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104).

리바이어던, 얄궃게도 종말론 냄새가 이 정도로 짙게 밴 이 텍스트가 현대의 국가 이론의 패러다임 중의 하나가 된 것은 운명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대 정치 철학은 신학적 뿌리를 의식하는 것을 통해서말고는 자기의 모순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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