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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월6일 강의 후반부

주체의 해석학 1강(1월6일) 후반부 발제.hwp

                                                                    화니짱

 

영성이 요구하는 사항들의 분쟁적 현존: 데카르트 이전의 과학과 신학 / 고전철학과 근대철학: 마르크시즘과 정신분석학

 

진실 접근과 주체 존재 자체의 변형요청 사이의 연결고리는 갑작스럽게 절단된 게 아닙니다. (64) 오래전부터 분리가 진행되었고 어떤 부분은 위의 두 요소들 사이에 위치하게 됩니다. 그 부분은 신학으로부터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신학은 기독교에 입각해 보편적 신앙을 기초하는 합리적 성찰을 자기 자신에게 부과하고 동시에 보편적 인식 주체의 원리를 기초합니다. 여기서 인식주체는 신에게서 자신의 모델, 최상의 완벽성을 발견하고, 그와 동시에 창조자와 그 모델을 발견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신과 신앙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주체의 일치는 서구의 사유로부터 그 당시까지 항시 그들을 따라다니던 영성의 조건들로부터 분리시키고 해방시킵니다. 그 중 epimeleia heautou는 가장 보편적 표명이었습니다. 5세기말부터 17세기를 관통하는 기독교의 주요 분쟁은 영성과 과학간의 분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성과 신학 간의 분쟁이었습니다. (65) 주체가 자신의 존재를 변형시키는 대가로만 획득될 수 있다고 생각된 연금술은 과학과 영성 간에 구성적-구조적 대립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잘 증명합니다. 16세기말과 17세기 초를 특징짓는 흥미로운 개념 ‘오성의 개혁’응ㄹ 취해 봅시다. 거기서 아주 명백히 스피노자는 진실 접근의 문제가 공표에 있어서도 어떻게 일련의 주체 존재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문제를 칸트에 입각해 제기해 보면 영성의 구조들이 철학적 성찰과 심지어는 지식으로부터 사라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66) 헤겔 - 니체 -후설 - 하이데거 등 19세기 철학 전반을 재검토해 보면 영성이 아무리 신뢰성을 잃고, 비판적으로 고찰되며 반면에 헤겔에 있어서는 찬양되기 까지 했다 했도, 인식은 영성의 요청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철학에서 영성의 일정한 구조가 인식, 그 결과를 주체 존재의 변형과 연관시키려고 시도합니다. 결국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바로 그런 의미에 다름 아닙니다. 그리고 19세기 철학사 전반은 데카르트 이후로 영성의 구조들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했던 철학의 내부에서 영성의 구조들을 재성찰하기 위해 가한 일종의 압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고전 철학과 가장 오래된 영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자기 배려의 고심을 무언중에 발견하는 19세기 철학간에는 심층적인 적대성이 존재합니다. (67)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시즘의 지식 내에서도 epimeleia heautou라는 유구하고 근원적인 문제, 즉 진실 접근의 조건인 영성의 문제가 재발견됩니다. 사람들은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시즘이라는 지식 형식이 갖는 고유한 영성의 조건들을 다수의 사회 형식들 속에 은폐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주체와 진실’의 문제를 단체-학교-당-계급 등과 같은 것에의 소속 문제로 몰아가기 때문에 결국 주체와 진실 간의 관계의 망각을 당연한 대가로 치르게 됩니다. 그리고 라캉은 프로이트 이래로 정신분석학 문제의 중심을 주체와 진실의 문제로 이동시킨 유일한 사람입니다. (68)

 

스파르타의 한 격언 분석: 신분적 특권으로서의 자기 배려

철학적 성찰에서 epimeleia heautou가 출현하는 시기인 소크라테스-플라톤 시기, 다음으로 기원후 1-2세기에 위치시킬 수 있는 자기 양성과 자기 배려의 황금기, 그리고 고대 이교 문명의 철학적 자기 수련으로부터 기독교 금욕주의로 넘어가는 이행기인 4-5세기 이렇게 세 시기를 따로 떼어내어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시기는 소크라테스-플라톤 시기입니다. (69) “자기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는 단언과 원리는 그리스 문화의 오래된 금언이었습니다. 그것은 특히 스파르타의 금언이었습니다. 철학과 주지주의를 극히 긍정적 가치로 여기지 않은 이들에게 자기 배려는 정치적 특권과 관련된 생활 형식의 단언이었습니다. “우리가 노예를 소유하고 있고 토지를 우리 손으로 경작하지 않으며, 이 모든 물질적 배려를 타인들에게 맡기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배려하기 위해서이다.” 스파르타 귀족계급의 특권은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현시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노동을 타인에게 위임한다.” (70) 따라서 ‘자기를 돌본다’는 것은 비철학적 일상의 원리로서, epimeleia heautou 역사 내에서 줄곤 발견되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

플라톤은 epimeleia heautou 문제를 재검토해 언어로 표현할 때 그는 이 문제를 전통에 입각해 재론합니다. 그리고 <알키비아데스>의 자기 배려에 관한 최초의 중대한 이론에서부터 스파르타에 대한 언급이 출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내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바 이상의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생을 영위하기보다는 차라리 오늘 죽겠다”라고 답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접근해 말을 걸었습니다. (71) 알키비아데스는 백성 쪽으로 관심을 돌려 도시국가 아테네의 운명을 담당하려 하고, 타인들을 통치하려고 합니다.

 

알키비아데스의 정치적 주장과 소크라테스의 개입

그는 신분적 특권을 타인에 대한 통치로 변형시켜야 합니다. 바로 이 순간에 자기 배려가 탄생한다는 것은 <알키비아데스>에서 분명한 사실입니다.

 

젊은 스파르타인들과 페르시아 군주들의 교육과 비교한 알키비아데스의 교육

“교육의 측면에서 네가 받은 네가 받은 교육을 스파르타인이나 페르시아인이 받은 교육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합니다. 스파르타식 교육은 훈련-승리-명예 등의 취향을 심어 주는 교육입니다. 페르시아 젊은 군주는 4명의 선생들의 보살핌을 받습니다. 지혜의 선생, 정의의 선생, 절제의 선생, 용기의 선생입니다. (74) 이런 조건하에서 약간의 비교를 할 필요가 있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합니다. “너는 정치계에 입문하여 아테네의 운명을 짊어지려 하지만 너는 너의 적들과 동일한 부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특히 너는 그들과 같은 교육을 받지 못했다. 너 자신을 좀 성찰할 필요가 있고 너 자신을 좀 알 필요가 있다. 바로 여기서 gnothi seauton이라는 개념과 원칙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배려 개념에 앞서 gnothi seauton의 출현이 미약한 형식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그것은 네가 대면하려는 적 앞에서 너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좀 돌아보면, 그 결과 너의 열세를 알게 되리라는 신중성의 충고입니다. 그런점에서 그 이후에 출현하게 되는 자기 인식 개념과는 거리가 멉니다. (75)

 

<알키비아데스>에서 최초의 자기 배려 요청의 출현 맥락: 정치적 주장 / 교육의 결함 / 비판적 나이 / 정치적 지식의 부재

이 열등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별다른 열세 없이 적들과 대면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인 앎, tekne가 그에게 없다는 말입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애초의 열세를 상보해줄 수 있는 tekhne가 없습니다. (75) 철학적 담론에서 최초로 출현한 ‘이 자기 자신을 배려하기’ ‘자신을 배려의 대상으로 취하기’에 잠시 주목해 봅시다.

첫째로, 자기 배려의 필요성은 권력 행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자기 배려는 알키비아데스의 특권과 같은 신분적 특권에서 한정된 정치 행위, 아테네의 실제적 통치로 넘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돌보기’는 타인들에게 정치 권력을 행사하려는 개인의 의지에 내포되어 있고 또 거기로부터 연역됩니다. (76) 자기 자신을 배려하지 않으며 타자들을 잘 지배할 수 없고 자신의 특권들을 타인들에 가하는 정치 행위로 변환시킬 수 없으며, 합리적 행위로 변환시킬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 배려의 출현 지점은 특권과 정치적 행위 사이에 놓이게 됩니다.

둘째로 자기 배려 개념과 자기 배려의 필요성이 알키비아데스의 교육 결함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알키비아데스의 선생은 무지한 노예였습니다. 남성들의 eros는 알키비아데스를 위해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특성은 알키바아데스가 50세였다면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과 관련있습니다. 50세는 자기 배려를 할 나이가 아닙니다. 교육자의 휘하에서 벗어나 정치활동을 하는 시기에 접어든 비판적 나이에 자기배려를 배워야 합니다. (77) 소크라테스-플라톤 형식 내에서 자기 배려는 오히려 행위였고 젊은이들과 스승 간에, 그들과 연인들 간에 혹은 그들과 스승-연인 간에 필요한 행위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 배려의 세 번째 특징입니다.

넷째로 자기 배려의 필요성은 알키비아데스가 정치적 계획을 공표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무지함을 깨닫는 순간 긴급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는 무엇이 훌륭한 다스림의 대상인지 몰랐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배려해야 합니다.

한정되지 않은 자기의 속성과 그 정치적 함의

자기를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우리가 배려해야 할 이 자기는 무엇일까요? (78) “너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 그러나 돌보아야 할 것이 너 자신이기 때문에 이 자기라는 것은 무엇인가?”가 됩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주체의 문제라고 부르는 바입니다. 이 주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숙고된 행위가 지향해야 하는 주체라는 이 지점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입니다.

해결해야 할 두 번째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우리가 자기배려를 적절히 전개하고 또 진지하게 여길 경우 어떻게 이 자기 배려는 알키비아데스를 그가 원하는바 쪽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달리 말해서 어떻게 타인을 통치하기 위해 알키비아데스가 알아야 할 tekhne, 즉 잘 다스릴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을까요? 요컨대 대화 후반부의 관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자기 자신을 배려하다’라는 표현에서 훌륭한 통치에 필요한 지식을 함축하고 열며 거기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규정을 ‘자기’에게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화의 관건은 내가 다스려야 할 타자들을 적절히 배려하기 위해 내가 배려해야 할 자기가 무엇인지를 아는 일입니다. 배려 대상인 자기로부터 타자 통치로서의 통치에 대한 앎에 이르는 원이 대화 종반부의 핵심을 이룹니다. 바로 이 물음이 고대 철학에서 epimeleia heautou 문제의 일차적 출현을 결과시켰습니다.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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