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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 1982년 1월 20일 강의

 

 

주체의 해석학 3강(1월20일) 전후반부 발제 16.05.14.hwp

 

전반부

 

자기 배려 조건과 양상의 변화

이번 장에서는 기원 후 1∼2세기의 자기 배려 양상을 살핀다.

철학 사조로 따졌을 때 로마 스토아주의의 개화에서 기독교 보급 직전(초기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의 출현 직전)까지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자기 배려의 역사에서 진정한 황금기였다. 개념, 실천, 제도 수준 모두에서 자기 배려가 널리 확산된 시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시기 자기 배려의 특징은 무엇일까?

우선 ≪알키비아데스≫에서 확인한바, 곧 기원전 5세기에 자기 배려의 존재 이유와 형식을 결정했던 조건세 가지를 떠올려 보자. 첫째, 자기 배려가 적용되어야 하는 장(場)은 특정되어 있었다. ≪알키비아데스≫에서 자기를 돌보아야 할 자들은 권력을 행사할 예정인 젊은 ‘귀족층’으로 명시되어 있다. 알키비아데스는 언젠가 도시국가를 통치해야 하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돌보아야 하는 자들이다. 둘째, (첫째 조건과 연관해서) 자기 배려는 목적은 하나였고 그 자체로 정당화되었다. 정해진 권력을 훌륭하고 합리적이며 덕망 있게 행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셋째, 자기 배려의 주된 형식은 ‘자기 인식’이었다.

그런데 이 조건들은 기원 후 1∼2세기에 오면 흔적을 찾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소멸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다. 또 상당 부분 생활의 기술(l'art de vivre)로서 제시된 견유주의·에피쿠로스주의·스토아주의와 같은 철학의 영향하에 이루어졌다.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첫째, 자기 배려는 신분과 관계없이 만인에게 부과되는 보편적·무조건적 원칙이자 정언 명령이 된다. 둘째, 자기 배려의 최종 목적이 도시국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변화한다. ≪알키비아데스≫에서 배려의 대상은 일견 ‘자기’이지만 실제로는 ‘도시국가’였다. 반면 로마제정기의 자기 배려에서 자기는 그 자체로 대상이자 목적이 된다(‘자기 관계의 자목적성’). 셋째, 자기 배려의 주된 형식이던 자기 인식이 주변화된다. 자기 인식은 자기 배려를 구성하는 좀 더 폭넓은 범주, 방대한 총제 속에 편입·통합된다. 이 총체는 자기 배려와 관련된 어휘군을 통해 파악 가능하다.

 

Epimeleia 관련 어휘들

Epimelesthai heautou(자기를 배려하기, 자기에 대해 고심하기, 자기에 대해 우려하기)라는 표현에서 출발해 보자. Epimelesthai는 정신의 태도, 일정한 형식의 주의, 어떤 산물을 잊지 않으려는 태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말은 meletan, melete, meletai 등과 같은 일련의 단어에 뿌리는 두는데, meletan은 동사 gumnazein과 짝을 이뤄 ‘수련하다’나 ‘단련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meletai는 체육 훈련, 군사 훈련과 같은 훈련을 의미한다. 곧 Epimelesthai는 정신적 태도보다는 행동의 형식, 응용적이고 규칙화된 경계 행위라는 의미를 갖는다. 덧붙여 4세기 기독교들은 epimeleia를 금욕적 수련의 의미로 사용했다.

이처럼 epimeleia/Epimelesthai는 행동의 형식들을 지시하며, 철학 텍스트나 문학 텍스트 내에서 여러 관련 어휘와 표현들과 연동되어 있었다. 그 표현군은 다음 네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표현군은 인식 행위와 관련된다. ‘자기 자신에게 주의하기’,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기’, ‘자기 자신을 점검하기’ 등등. 이들은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기울이는 주의·시선·지각을 표현한다.

두 번째 표현군은 자기 자신을 통제하며 자기 자신으로 회귀하도록 유도하는 실존 전반의 운동을 함의한다. converter와 metanoia가 이 표현군을 대표하는 어휘들이다. 구체적은 표현으로는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기’, ‘자기 자신으로 후퇴하기’, ‘자기 자신의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 등등이 있다. 피신처, 성채, 요새와 같이 자기 자신 내에 거처를 정하고 거주한다거나 자기 자신의 주변에 다시 모이거나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동 및 태도와 관련된 표현이 여기에 포함된다.

세 번째 표현군은 특수한 행동거지와 관련된다. 어떤 표현들은 의학 용어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즉 ‘자신을 치료하고 치유하며 자신의 몸의 일부를 절개하여 종양을 제거해야 한다’는 식이다. 법률적 유형의 자기 배려 관련 표현, 예컨대 ‘자기 자신을 주장하기’도 있다. 자신은 자기 자신이 갖는 권리를 유효하게 해야 하며 빚과 의무에 예속되어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기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결국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되고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유형도 있다. ‘자기 스스로를 경배하고 존중하며 신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네 번째 표현군은 자기와의 항구적 관계 유형을 표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제와 지고성, 감각의 관계다. ‘자신으로부터 즐거움을 얻어내기’, ‘자기 자신으로부터 환희를 느끼기’, ‘자족하기’ 등등.

 

자기 배려의 보편화 1: ‘청소년기’에서 ‘전 생애’로

자기 인식보다 자기 실천을 중요시하는 이 다채로운 표현군은 자기 배려가 그만큼 보편화되었음을 예증한다. 자기 배려의 보편화 과정은 두 가지 축을 토대로 분석 가능하다. 첫 번째 축은 개인 생활 전반으로의 보편화이고, 두 번째 축은 모든 개인들로의 보편화다. 그렇다면 먼저 첫 번째, 어떻게 자기 배려는 개인 생활 전반으로 그 외연을 넓힐 수 있었을까?

≪알키비아데스≫에서 자기 배려는 실존의 어느 순간, 특정 계기에 필요한 것이었다. 이 계기를 그리스인들은 hora라 불었으며, 이는 자신을 돌보아야 하는 실존의 순간 또는 계절을 의미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젊은이가 교육자의 지배와 욕망의 대상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기이자 사회생활에 입문해 능동적 권력을 행사하는 시기를 일컬었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의 이행 시점’에 특권적 위상을 부여하는 것은 (스파르타와 비교할 때) 청소년의 사회 입문을 도와줄 규칙적, 효과적 교육 제도를 갖추지 못했던 당대 그리스의 결함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그 후 자기 배려는 점차 청소년과 성년기 사이의 이행기에 국한된, 교육적 결함과 관련된 정언 명령을 넘어서게 된다. 기원 후 1∼2세기에는 오히려 인생 전반에 걸쳐 지속되어야 할 항구적 의무 사항이 되기까지 한다. “젊을 때 철학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되고, 또 나이가 들어서 철학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는 이른 것도 없고 늦은 것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젊을 때나 나이가 들어서나 사람은 철학을 해야 하며, 후자의 경우 신과의 접촉은 통해, 지난날들을 회고하며 회춘하기 위해 철학을 하고, 전자의 경우 어리더라도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미래 앞에서 확고해지기 위해 철학을 해야 한다”(에피쿠로스). 즉 철학하기는 자기 자신의 영혼을 배려하기와 동일하며, 그 목표는 행복에 도달하는 것이고, 이 자기 배려 행위는 젊던 늙던 전 생애에 걸쳐 실천해야 하는 것이 된다.

토아주의자인 무소니우스 루푸스 또한 “스스로를 부단히 치료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을 구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자기 배려는 평생의 일이다. 젊은이와 장년 모두에게 조언을 하 ‘세네카’의 편지글들, 젊은이뿐만 아니라 성인 대화자들에게도 교육을 제공하려 한 ‘에픽테토스’의 일화들도 마찬가지 사례들이다(125∼128쪽 참고).

두 가지 사례를 더 덧붙여 보자. ①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은 ≪명상 생활에 관하여≫에서 유대인 고행자 그룹(Therapeute)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불명성과 행복한 생애에 대한 그들의 열망은 그들로 하여금 유한한 생을 이미 마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유산을 자식들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맡긴다. 일부러 그들은 미리 상속을 한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배우자와 친구들에게 유산을 남긴다.” 여기서 자기 배려의 주체는 알키비아데스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는 이미 아이가 있고, 가정을 갖고, 유한한 생명을 긑마쳤다고 생각하며 영혼을 돌보로 가는 사람이다. 자기 실천의 무게 중심이 청년에서 장년으로의 이행기가 아니라 장년 자체로 옮겨진 셈이다. ② ≪헤르모티무스≫의 주인공 헤르모티무스는 40세에 철학을 하기 시작했고 20년째 철학의 스승과 만나고 있으며 철학과 삶의 기술과 행복의 수련을 마치는 데 20년 정도가 더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헤르모티무스와 대화하던 리키우스는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 참 괜찮은 것 같다. 나는 40세인데 내가 내 자신의 수양을 시작해야 하는 바로 그 순간이군. 내 안내자가 되어 내 손을 잡고 인도해 주렴.”

 

비판적 기능의 강화와 교육적․교정적 기능의 변화

이러한 보편화는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먼저 자기 배려가 성인의 활동이 되면서 그 비판적 기능이 더욱 강화됐다. 자기 실천은 자기 자신, 자신의 문화적 환경, 타인들이 영위하는 삶에 대한 점차적 비판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기 배려의 교육적 기능이 예전과 달라진다. ≪알키비아데스≫에서의 교육 쟁점이 훌륭한 통치자를 길러내는 것이었다면, 헬레니즘·로마 시대에는 모든 사고, 불행, 불운, 몰락 등을 품위 있게 견디도록 하는 교육이 중요해졌다. 개인을 준비시키고 보호하는 이러한 교육을 그리스인들은 paraskheue라 불렀고, 세네카는 이를 라틴어로 instructio로 번역했다. instructio는 사건에 직면한 개인들의 기반이다.

교정적 기능도 달라진다. 준비와 보호로 교육적 방점이 이동하면서, 자기 실천은 교육-지식 축이 아니라 교정-자유 축에 가까워진다. “악은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부과된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다. 더 나아가 악은 우리의 내장 속에 있다. 자기 실천을 통해 우리 내부에 있는 악을 추방하고, 정화하고, 지배하고 또 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정진해야 한다. 물론 이 악을 아직 인간이 어리고 유순한 시절에, 또 악이 아직 고착되지 않은 시기에 공격을 하면 자기를 교정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즉, 이미 존재하는 악을 수정해야 한다. 이로써 ‘단 한 번도 되어 본 적 없는 자기가 되기’가 자기 실천의 핵심 요소이자 중심 테마가 된다. “훌륭한 영혼은 나쁜 영혼, 즉 영혼의 오류 이전에 오지 않는다. 영혼의 훌륭함은 항시 영혼의 오류 다음에 온다”(세네카). 그리고 이러한 자기 교정은 모든 것을 재검토하게 한다. 그 예로, 어린 시절에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던 모든 것을 정화해야 한다. 어린이의 정신을 삐딱하게 만드는 유모의 교육, 가정이 전승하는 모든 가치 체계들(현대적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가족 이데올로기’), 초등교육 담당자(특히 수사학 선생)의 교육 체계에 대한 비판이 요구된다.

 

자기 실천과 의학의 근접

보편화 과정을 통해 자기 실천은 또한 의학적 실천과 가까워진다. 에피쿠로스에게 진실되게 철학하는 것(ontos philosophein)은 진리를 통해 치료하고 치유하기(kat’aletheian hugianinein)를 의미했다. 포시도니우스나 스토아주의자들은 사람들이 아플 때 의사를 부르는 것처럼 [*영혼이 아플 때?] 철학자를 부른다고 말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의학과 철학은 mia khora(같은 지역, 같은 나라)라고 표현했다.

주요 개념을 좀 더 살펴보자. ① pathos는 ‘정념’이자 동시에 ‘병’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로부터 무수한 유비가 발생했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정념의 변화를 병의 변화와 동일시해 기술했다(병듦에 대한 스토아주의자들의 1~5단계 참조, 137쪽). ② therapeuien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치료를 위한 의료 행위, 주인의 명령에 따르는 집사의 활동, 그리고 경배. 따라서 therapeuien heauton은 자기를 치료하고 자기 자신의 충실한 종복이 되고 자기를 경배한다는 뜻을 동시에 갖는다. 그 실제 사례가 필론의 ≪명상 생활에 관하여≫에 등장하는 유대인 고행자 그룹(Therapeute)이다(138쪽 참고). 그리고 이처럼 철학과 의학, 영혼의 실천과 인체 의학의 긴밀한 관계는, 자기 배려를 위한 연합 단체나 철학 학파로 하여금 영혼의 진료소와 같은 것을 실제로 구축한다는 관념을 낳게 했다.

 

후반부

노년의 위상 변화

자리 배려 시점의 이동으로 노년은 새로운 중요성과 가치를 띠게 된다. 노년은 ‘지혜’이지만 ‘쇠약’이고, ‘많은 경험을 쌓은 상태’이지만 ‘능동적일 순 없는 상태’이기도 했다. 노년은 영예로운 것이었지만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 노년의 가치는 제한적이었다.

반면 자기 배려가 인생 전반에 걸쳐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 되면서, 노년은 자기 배려의 최고 도달 지점과 형식 그리고 그 보상과 결부된다. 육체적 욕망과 정치적 욕망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두루 거쳤다는 점에서 ‘노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지고한 자, 자신에 대해 전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자다. 노인은 자기 자신에게서 완전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자,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는 자, 모든 즐거움과 만족을 자기 내부에서 설정하는 자다. 따라서 노년은 자아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시점, 곧 자기가 자기 자신과 완숙하고 완결된 지배 및 만족의 관계를 설정하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 바람직한 시점을 의미하게 되면서, 노년은 실존의 긍정적 목표점으로 재설정된다. 적극적으로 노년을 향해 나아가야지 노년과의 대면을 마지못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인생 전반이 자신의 고유한 형식 및 가치를 갖는 노년에 집중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세네카는 “마치 당신이 추적을 당하는 것처럼 행동하십시오. 서둘러서 살아야 합니다. 인생 전반에 걸쳐 뒤에서 당신을 추격하는 사람들과 적들이 있다는 것을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고 말했다. 여기서 적들이란 인생의 권태로움, 또는 정념이나 동요 등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 적들로부터 가능한 한 신속히 도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도주의 목적지는,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은신처를 제공할 ‘노년’이 될 것이다. 우리는 ‘늙기 위해 살 필요’가 있다.

따라서 노년에는 단순히 물리적, 연령적 노년을 넘어 이상적 노년, 자기 스스로 만드는 노년, 단련시키는 노년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진다. 우리는 스스로 생을 ‘이미 완수한 것처럼 살 수 있는 그런 상태에 놓여야’ 한다. 청소년이든, 성년이든, 장년이든, 매 순간 우리는 우리의 행위와 상태와 관련해 이미 노년에 접어들어 생을 완수한 것 같은 사람의 태도, 행동, 초연함, 완결감을 가져야 한다. 늙기 위해 인생을 조직해야 하고, 노년을 향해 서둘러 가야하며, 젊다고 해도 자신을 늙게 만들어야 한다(이는 죽음의 연습, 죽음에 대한 명상과 관련된다).

 

자기 배려의 보편화 2: ‘특권층’에서 ‘모든 시민’으로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네가 타자를 지배하려거든 너 자신을 돌보아라”라고 말했다. 반면 기원 후 1∼2세기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 자신을 돌보아라. 그것이 전부다.” 자기 배려가 지배자에게만 국한된 덕목이 아니라 만인을 향하는 보편적 언명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상 변화를 두고 자기 배려가 ‘법제화’ 되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법 자체는 자기에 대한 주체의 테크닉과 테크놀로지의 역사라는 훨씬 더 보편적인 역사에 속하는 하위 범주라 할 수 있다. 법은 자기와 관련된 주체의 테크놀로지의 한 양태다.

실제로 그리스-헬레니즘-로마 문화에서 자기 배려는 모든 개인에게 유요한 보편적 ‘법칙’으로 여겨진 적도, 주장된 적도 없다. 오히려 자기 배려 행위는 특정 생활 방식의 선택 여부로 나뉘는 자들 간의 분할과 관련된다. 자기 배려는 서로 완전히 구별되고, 종종 폐쇄적이며, 대체로 배제를 내포하던 집단들 내부에서 구체화되었다. 자기 배려는 실천이나 협회, 동지 관계, 학파, 종파 등의 조직화에 바탕을 둔다. 요컨대 자기 배려는 하나의 원리로서는 일반화되었을지라도, 항상 파당적 현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비특권층과 특권층의 자기 배려

자기 배려는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확산되었다. 이들은 결코 특권 계층이 아니었다. 이 계층 내에서 예식화된 절차를 갖는, 실존과 연관된 자기 실천과 배려가 출현한다. 이러한 실천은 종교적이고 예식적인 틀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것은 일반인들이 자기에 대한 자기의 탐색, 분석, 고안과 같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실천을 수월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 반대편에 좀 더 복잡하고 정교화된 실천, 곧 개인적 선택과 교양 있는 여가, 이론적 탐구와 밀접하게 연관된 특권층의 실천도 활발해졌다. 이는 일종의 ‘유행’의 성격을 띠었으며, 이미 사회적으로 존재하던 네트워크인 개인 간 ‘우정’에 근거했다. 로마 사회에서 우정이란 의식과 의무를 바탕으로 각 개인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위계를 말했다. 예컨대 일정한 수준의 친분에서 다른 수준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함축적으로 구체적인 조건이 필요했다. 또 우정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의식과 몸짓, 문구도 존재했다. ‘영혼의 도움’으로서 자기 배려는 바로 이 우정의 네트워크에 통합되어 갔다.

즉 한편으로는 더 대중적이고 종교적이며 문화적이지만 이론적으로 덜 세련된 자기 실천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더 개인적이고 교양 있으며 특권층과 가까운 자기 실천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 스펙트럼 사이에 여러 다양한 실천의 양태가 존재했다. ① 에피쿠로스주의단체들은 종교적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장인, 소상인, 부유하지 않은 농부로 이루어진 대중적 공동체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플라톤주의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단체들의 귀족 정치에 반대했으며 민주 정치를 선호했다. 아울러 대중적이었지만 또 이론적이고 철학적 성찰을 발전시켰다. ② 유대인 고행자 그룹(Therapeute)은 알렉산드리아 부근에 은거한 사람들로, 공동체 공간을 공유하면서 각자 작은 방에 주거하는 공간에서 같이 생활했다. 이들은 그들 나름의 종교적 예식을 실천했고, 지적이고 이론적 앎을 대단히 강조했다. 또 모든 덕의 기초가 egkrateia(자기 제어)에 있다고 파악했으며 매주 일요일마다 한 epimeleia tes psukhe(영혼의 배려)에서 신체의 배려를 병행했다. 이 단체에 속한 개인들이 귀족 또는 특권층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나, 어쨌든 이들은 지식, 명상, 학습, 독서, 우의적 해석 등에서 매우 괄목할 만한 수준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자기 배려는 제한되고 구별되는 단체 내에서 행해졌다. 자기 배려는 종파와 단체 내에서 출현한 것이지 ‘인간 공동체’라는 보편적 수준에서 출현하거나 실천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편적 호소와 능력의 분할

이러한 단체들의 공통 특징이 하나 있다. 신분의 차이를 강조하거나 반복하기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 단체들의 존재 이유였고, 헬레니즘과 로마 사회에서 이러한 단체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토대였다. 자기 배려 단체와 종파 내에서 빈자와 부자의 구분, 출신이 화려한 자와 출신이 불투명한 자의 구분,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자와 은둔자의 구분은 용인되지 않았다.

신분의 차이가 무의미하기 때문에, 어떤 개인이 자기 배려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에 대한 선험적 자격 박탈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만인이 원칙적으로 자기 실천에 접근하다는 말은, 뒤집어 말해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실제로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용기, 역량, 인내력처럼 자기 배려 과업의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나 수행 능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소프라테스를 보아라.… 그의 말을 경철하고 자기 자신을 배려하게 될 사람을 발견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을 불러 세워야 했을까? … 자기 배려를 하게 된 사람은 1000명 가운데 한 명도 안 되었다”(에픽테토스).

자기 인식의 정언은 만인에게 주어졌지만 그것을 경청할 능력을 갖춘 사람은 소수였다. 이로써 탁월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이 분할되었지만, 이는 예전과 같은 위계적 분할이 아니라 능력 여부에 따른 실행적 분할이었다. 자기와의 관계, 자기와의 관계 양태와 유형, 배려의 대상으로서 자기를 고안하는 방법이 뛰어난 사람과 다수 평범한 사이에 분할선이 그어진다.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자는 소수의 탁월한 자들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기 배려는 만인에게 호소되었다.

 

‘구원’의 계보

만인에게 호소되지만 오직 소수만이 들을 수 있는 이 목소리 형식은 신의 계시, 신앙, 성서, 은총 등의 문제 주변에서 재분절되어 기독교의 중심부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처럼 서구에서 자기의 문제와 자기와의 관계 문제는 이미 두 가지 요소(호소의 보편성과 구원의 희소성)를 포함하고 있었다. 즉 서구에서 자기와의 관계,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노력, 자기에 의한 자기의 발견은 소수의 특정한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밖에 없는 호송의 보편성으로부터, 그 누구도 처음부터 배제되지 않았던 구원의 희소성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의 위상을 차지했다. 소수에게만 들리는 보편적 원칙과, 선험적으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희구한 구원 간 놀이. 이야말로 기독교의 신학적, 영적, 사회적, 정치적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나 기독교 출현 전까지는, 어쨌든 이러한 목소리 형식은 자기 기술(technologie du soi)과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여러 다양한 ‘자기 수양’을 탄생시켰다. 로마 시대의 자기 수양은 호소의 보편성과 구원의 희소성과 맞물려 구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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