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哲,테츠)알튀세르 - 검은 소 2장 22차 당대회의 모순, pp76~135.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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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알튀세르, 검은 소2:22차 당대회의 모순, pp.76~135

1장은 알튀세르가 자신에게 제기된 몇 가지 의혹에 대해 답하는 내용입니다. 프랑스 공산당원이자 이론가 이면서 공산당의 잡지나 기관지에 전혀 언급되지 않는 상태에 대한 질문의 답에서, 알튀세르는 자신이 공산당원으로서 마르크스의 철학에 대해 어떠한 글을 써왔는지 소개합니다. 또한 자신의 저술이 공산당에 의해 외면되어 왔으며, 당시 프랑스 공산당 지도부와의 역학적인 관계에서 배제되어 왔던 자신의 이론과 저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혼란한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저는 (사회주의 국가를 포함하여) 세계 전체에서 지배적인 부르주아 철학의 이데올로기, 신논리실증주의의 대표자들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구조주의적’(매우 광범위했던 불명예스런 비난)이라고도, 또는 도그마적이라고도, 또는 신스탈린주의적이라고도, 또는 실증주의적이라고도, 또는 기능주의적이라고도, 또는 겉으로는 자유를 중시하는 척하는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프랑스 공산당에서 매수되었다(랑시에르, 글뤽스만)고도 간주되었습니다. 이는 정말이지 마치 몇몇 이들이 저를 68혁명 이후 몇 해 동안의 프랑스 좌익주의조직들의 패배의 원인이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에요(저는 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p72)

그리고 22차 당대회 이후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포기한 당의 결정에 반대하는 지식인으로 알려져, 공산당 내의 반동을 조성하는 지식인으로 알려지면서 그를 비난하는 프랑스 공산당과의 사이에서 이를 토론하는 내용의 인터뷰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2: 22차 당대회의 모순]

Q. 당대회의 준비 과정, 그리고 22차 당대회의 준비 과정에 대해

프랑스 공산당의 중앙위원회, 정치국, 서기장과 서기국 구성원들을 선출하는 당대회는 세 단계의 투표를 거쳐 선출된 대표자로 구성되게 됩니다(세포조직-지부회의-연합회의 당대회). 과반수 투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소수파는 선거과정에서 걸러지고 대표자를 가질 수 없는 구조이며, 각 회의에서 선출된 후보자 위원회라는 관행에 의해서 민주주의적이지 못한 성격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지적하고 있습니다.

당대회는 제출된 결의안, 이전 회의 단계에서 표결된 수정안, 공산당 당대회에서 발표된 안건 등을 실은 토론 지면을 출판하는 개인적인 수정안 등을 토론합니다. 결의안은 서기국과 서기장의 지시에 준비되어 중앙위원회를 거쳐 만들어진 것이며, 공산당 내에서 새로운 결의안이 제시될 수 있지만 모리 토레즈 서기장 이후 그런 사례가 없음을 지적합니다. 대부분의 사안이 공산당 지도부에 의해 결정되고 만장일치 표결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레닌 시대를 들어 당대회에서는 다른 성향의 활동가들의 복수의 결의안이 논의되었고, 만장일치란 없이 다양한 분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에 대해 분파가 공산당의 단결에 위험이 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알튀세르는 공산당의 단결이라는 이름아래 자행되는 비민주주의적 양태에 대해 비판하고 22차 당대회 이후의 프랑스 공산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Q. 22차 당대회에 관한 인터뷰의 이유

알튀세르는 공산주의자로서 22차 당대회 이후의 많은 동지들이 느꼈던 질문과 불안, 초조에 대해 답한 당대회에 대해서 불편함이 초래되었다 지적하고 있습니다.

 

Q. 당대회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인 것 아닌지

알튀세르는 22차 당대회가 특이한 형태로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위원회 보고자인 장 카나파가 문서라 부른 내용(80)에 대해서 의례적이지 않은’(알튀세르의 강조) 문서의 성격에 대해서 논평하고 있습니다. ‘잠재적인 여려 유형의 문서’(81)를 언급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문서는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제시된것으로 공개된 것들이지만, 장 카나파에 의해 제공된 리스트결의(일정기간 공산당의 과업 규정) 테제(공산당이 정치이론의 여러 측면을 규정하는 제한된 정치 이론, 즉 역사유물론, 변증법적 유물론 등) 통치강령(하나의 통치강령) 등 서로 다른 유형의 문서이지만, 여기에 네 번째 종류의 문서로서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83)

이것은 바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위치, 계급관계, 그러므로 세계적 차원과 국민적 차원에서 동시적으로 제국주의적이고 프롤레타리아적인 계급투쟁의 상태로 필연적으로 향하는 그러한 분석’(83)이 빠져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계급분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한 강조가 84-86에 이어져 있습니다.) 계급분석과 자본주의 착취 형태를 분석하지 않은 상태에 대해서, “비난받지만 분석되지는 않고 있는 이러한 도덕의 위기’”(87)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해야 한다 주장합니다.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심각한 위기(87)상황에서 부정적이 상황, 그리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 관한 분기들’(89)과 스탈린주의적 관행의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소련인들이 옹호하는 소위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89)

이런 상황 속에서 이를 분석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했지만, 22차 당대회에서는 그러한 노력도 없었다는 것이 불편함의 이유이며, 분석에 대한 토론 없이 그저 ‘[공허한] 선언만이 존재’(90)22차 당대회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Q. 22차 당대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포기 문제에 대한 개입

알튀세르는 그의 저술과 독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서 밝히듯이, 자신이라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Q. 토론 트리뷴이 아닌 마르크스주의 서적 판매 행사를 기다린 이유

당대회 중앙위원회는 공산당 활동가들을 무시한 채로 프랑스를 위해 사회주의자들은 어떠한 사회를 원하는가라는 문서를 제시하고, “모든 이의 언어로 말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부르주아나 사회민주주의와 다르게 공산주의자는 과학적 독트린을 가지고 있으며, 계급투쟁의 분석을 위해서는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다는 부르주아적인 지배 이데올로기의 편견에 굴복한 것’(92)이라는 말에서 당시 공산당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활동가들은 무시하면서 독트린을 뒤엎은 당대회의 태도에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마르셰의 방송과 라디오 출연, 그리고 그 안에서 행해진 발언에 대해 논란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의견으로 제시되었지만, 프랑스 공산당의 서기장의 개인적인 의견은 곧 정치적 지침이라 할 수 있으며, 중앙위원회나 정치국을 무시한 채 내려진 지침으로 외부에서 해석되게 됩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지점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 세포조직의 토의 가운데에서도 그 의도를 진지하게 묻지 않았다는 것이며, 서기장의 개입에 따라 준비된 문서의 해석과 공개 선언 사이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준비문서는 명시 또는 암묵적이든 프롤레타리아 독재 포기의 의도를 진지하게 함의하는 어떠한 부분도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

이런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몇몇 표현이 문서 자체 내에서 해명 대상이었거나, 이 문서와는 다른 입장에 의해 반박되는 대상이었다는 점

이 문서는 명시적인 방식, 최소한 정치적 발화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

서기장에 의해 공개적으로 제시된 프롤레타리아 독재 포기를 표현하는 문서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문서의 실제 내용과 모순되어 있다는 점

 

서기장의 발언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 자체가 아닌, 프롤레타리아 독재 자체만을 포기 가능하다는 것은 수하학적이고 이론적 효과를 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효과를 끌어내기 위한 말놀이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이 단어들이 역사적인 매우 긴 시기 동안 이론적인 또는 정치적인 규정된 실천, 예를 들어 계급투쟁 조직의 실천들과 일체가 되는 순간부터, 단어들은 이미 단어들이 일체를 이루는 그 실천과 독립적으로 취급될 수 없습니다.’(97)라고 주장합니다. ‘대중이 관념에 사로잡혔다던 그 단어를 역사적 현실과 구분하며 개념자체로 구분하는 것은 책상머리에서 나온 것일 뿐’(98)이라며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리고 이어 문서와 공산당 서기장의 발언의 4가지의 모순점을 조목조목 짚어보고 있습니다.

중앙위원회 소속 카나파의 텍스트에는 어디에서도 프롤레타리아 독재 원칙의 포기에 대한 명시적 선언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하는 듯 생각하게 만드는 몇몇 표현이 문서(99페이지의 문서 내용) 속에서 발견합니다. 먼저 국가에 대해서 억압기계이기를 멈췄다는 표현은 맑스주의적 개념에서 벗어나며, 노동자들의 정치권력과 노동자들의 국가에 대한 개념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모순되지 않는 것처럼 수정되고 교정되었다. 국가의 개념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과 상이하긴 하지만 뒤따른 문장에 의해 수정되는 교묘함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민주주의적인 교묘함으로, ‘노동자들의 정치권력에 참여하지 않는 프랑스 대중에게 그들 고유의 경험을 형성할수 있다고 가정하는 약간의 민주주의적 환상과 같은 생각임을 지적합니다.(101) 이는 문서를 통해 노동자 계급의 지도적 역할, 그리고 계급 투쟁에서 사회주의 전략과 강력한 공산당의 필요성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22차 당대회에서 밝힌 뉘앙스는 염려할만한 사실입니다. 알튀세르는 프랑스 공산당의 사유에 진정한 통일성이 있기 위해서는 잠재적인 모호함이 없어야만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프랑스 공산당의 언어적 뉘앙스에 대해 지적합니다.(103)

오히려 문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입장을 견지하며, 이를 증명하는 문장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특히 문서는 21차 당대회를 비롯 이전 문서의 노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적인 길, 혁명적인 길’(104)이라는 제목 아래의 인용들(104 - 105), ‘노동자계급과 인민의 투쟁의 지도적 힘의 제목 아래 인용(106), ‘프랑스 공산당의 인용(106 - 107)에서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인되지 않습니다.

세계적 제국주의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모든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입니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세계시민주의적 몽상과는 관계가 없는, 국제적 성격의 노동자 계급투쟁과 착취 조건들에 대항하는 요청이었지만, 제국주의 계급투쟁 앞에서 약화되었고 스탈린주의적 편향으로 인해 국제 공산주의운동에 위기가 왔으며, 중국과 소련의 분쟁, 소련의 체코 침공의 결과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스탈린주의적 형태와 관행에 의해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소련식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에 대해 거리를 두고 분열된 상황입니다.

프랑스 공산당은 자신들의 정책적 결정이 소련이 아닌 프랑스 파리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선언하고, 거리두기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체코슬로바키아로의 군사개입과 브레즈네프 독트린방식의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에 대한 거부에 기반을 두고, 프랑스 공산당은 맑스-레닌주의적 입장을 채택해왔으며, 부르주아 독재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자본주의적 국제주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이론 위에 기초하여 국민적이고 국제적인 무기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네 번째 지점, 문서의 내용과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의 공개적 발언과 해석의 노골적으로 모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튀세르는 당 지도부가 책임있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책임에 대해 의식하고 있다면, 그들은 그들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반응을 삼가고 삼가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115) 공산당의 활동가들은 명료하고 과학적이며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에 최선을 다해 봉사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22차 당대회 이후 나타난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서기장의 개입에 의해 초래된 정치적 상황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하지 않은 세포조직 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자신의 의견 쪽으로 힘이 실리도록 만든’(116) 서기장의 문제는 1)불완전한 문서를 제시하면서 모호한 해석을 제시하며 책임을 방기했거나, 2)문서의 의미가 서기장에 의해 날조되었다고 상황을 분석합니다.

집단지도부의 말과 이해관계 속에서(지도부 단결을 통한 공산당 단결을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희생) 중앙위원회도 피해자일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프랑스 공산당 차원에서 단결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장 카나파의 비판, ‘토론을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 한이 있어도 공산주의자들의 마르크스주의적 언어로 말하지 않았던 텍스트에 대한 개선을 고집했던 것’(118)이 옳았다고 알튀세르는 주장합니다.

활동가들은 구체적 상황에 대한 궤적 분석을 기대했지만, 지도부는 여기에 모든 이의 언어로 쓴 선언문을 제시하면서 서로의 이해의 간극은 벌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나아가 프랑스 공산당 지도부가 활동가들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 포기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활동가들에게 도덕성에 대한 토론의 주제는, 탈억압적 해방으로서의 68혁명 이후 토론의 방향전환이 일어나고, 스탈린의 문제 등을 포함해 정치적으로 세공되지 않은 채로 도덕성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알튀세르는 이러한 혼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토론 트리뷴에 개입하지 않았으며,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이유에서 그러했음을 설명합니다. 만약 동지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 맑스주의의 근본이념임을 알았다면 이를 포기하는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을 것이며, 잘못된 관념에 대한 진지한 설명이 필요함을 주장합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포기에 대한 것은 오해이고, 허접한 결정에 과거의 당의 행적과 모순됨을 주장하며 1)공산당 당대회가 과학적 개념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음을, 2)프롤레타리아 독재 핵심 개념이 과학적 개념으로서 맑스 이론에 기초해 있는 것이라 설명합니다.

 

Q. 바스티유에서의 발표 이후 프랑스와 세계의 알튀세르에 대한 논평의 의미심장함

<뤼마니테>에 알튀세르의 공개 토론이 실리며, 이 토론이 유용하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것임을 밝힙니다. 특히 22차 당대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포기의 문제에 대해 서기장의 선언과 이에 힘을 실어주는 당대회의 선언, 동지들의 절대다수의 인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토론이 부재했고, 그 토론에 제출된 문서에 대해 정치적으로 책임이 있는 중앙위원회는 활동가들에게 전혀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부분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포기하는 것이 사회계층을 안심시킨다는 근거도, 깊이 있는 전략적 이유들(민주주의적인 길), 맑스의 독트린을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대중의 정치경험에 따라 판단된 상황에서 불필요하다 여겨진 언어적 표현을 포기한 것인지, 이 개념을 포기할 때 실제로 포기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당한 질문들에 대해서 어떠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Q. 프롤레타리아 독재 포기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주요 현안으로 만들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정치적으로도 주요한 현안이며, 과거 부르주아 독재에 의해 피를 흘렸던 1848년 프롤레타리아 혁명, 1871 파리코뮌, 1917 허시아 혁명의 기억에 기초하여 계급의 적에게 대항하는 정치적 힘들을, 22차 당대회를 통해 야만적인 방식으로 포기하는 문제에 대해 지적합니다. 물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혁명의 권력의 힘으로만 사고해온 개념에서 해방시켰다는 의의도 있어, 이제 더욱 정확하게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확한 의미를 되찾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설명합니다.

1) 먼저 히틀러와 무솔리니, 프랑코 이후 독재라는 단어가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며, 2) 프롤레타리아라는 용어가 광범위한 통합의 정치에 조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파시즘에 대한 혐오와 독재의 문제는 독재라는 것에서 파시즘적 피비린내와 소련식의 공포와 억압의 형태를 보이는 소련에 대한 거대한 환멸’(130)의 문제와 이어져 있습니다. 공산주의 활동가들에게는 60년 동안 사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소련의 역사적 사건과 동일시되었음을, 40년 동안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스탈린 독재가 동일시 되어왔던 상황에서, 스탈린의 추악함에 의해 공산당의 독재, 국가의 독재, 한 개인의 독재’(130)로 타락해버린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분석할지 수단이 제시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공산당은 소련과의 단절을 위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하는 선택을 내린 것입니다. 알튀세르는 이런 선택이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내다 버린’(131) 것이라 비판하고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포기는 과학적 개념의 포기이자, 소련과 스탈린과의 관계에서 내려진 정치적 이유라는 점에서 프랑스 당대회가 억눌린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선택의 문제점을 이론과 정치의 문제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알튀세르의 분석입니다. 소련식 사회주의에 대한 부인의 작업, 스탈린주의적 실천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매우 거대한 방해물’(132)에서 과학적 개념을 분리하고 해방한다는 것의 정치적 중요성, 하지만 이로 인해 근본적인 맑스주의 이론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구체적인 실천과 정치적 문제를 제기하고 해소해나가야 한다는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음에도, 프랑스 공산당은 이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쉽게 회피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요?

 

Q. 방해물이 제거될 수 있던 조건들과 알튀세르의 작업에 대해

알튀세르는 22차 당대회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이론적이데올로기적정치적역사적 조합물로부터 해방시켰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를 포기라는 역설적 형태로 보여주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의 모순 또한 가지고 있음도 지적합니다. ‘매우 무거운 방해물을 제거’(133)해야 하지만 성급하고 부정확한 용어들로 인해 마르크스주의적 분석도 제거되어 버렸다는 점이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진지하고 책임있는 분석을 통해 스탈린은 포기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개념의 유효성은 말할 수 있는 논리를 전개하고,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가능성들과 함께 논의되어야 함을 주장합니다.

프랑스 공산당과 당대회의 선택이 새로운 인민 연합의 계급투쟁의 길을 제시했을지도 모르나, 근본적인 테제의 상실은 공산당을 더 큰 위험에 노출시키고, 부르주아적인 변화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부분을 환기하면서, 이러한 경향의 위험성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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