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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구체의 과학
#추상적 관념어
저자는 개념을 표현하는 ‘추상적 관념어’가 문명화된 사회와 미개를 구분하는 기준처럼 제시되는 풍조가 연구인들에게도 퍼져 있었고, 원주민은 쓸모와 관심에 따라 명칭과 의미를 부여하기에 개념어가 부족하고 지적으로 빈곤하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있습니다.
“추상적 언어의 사용은 그것이 지적 능력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민족사회 속의 특정 집단이 지니고 있는 관심의 차이에서 온다.”(51)
원주민들도 사고의 방식에서 지적 활용과 관찰 방식은 닮은 데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조화로운’(52) 지적 욕구와 객관적 사고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원주민의 사회에도 지식이 형성되어 있고, 이 지식은 자연을 식별하거나, 식물, 동물에 대한 방대한 지식 체계를 가지고, 지식을 형성하기 위한 연구 행위, 환경에 대한 주의력과 관심, 실용적인 차원을 넘어선 고도화된 지식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여러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52-60)
“그러나 그녀는 이들을 식별할 수가 없었다. 그 식물들이 진기한 것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식물계가 얼마나 풍부하고 다양한가에 대해 그동안 그녀가 관심을 가져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그러한 관심을 가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56)
“즉 동식물에 관한 지식은 그 유용성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선 지식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유용하거나 흥미롭다고 간주된다는 것이다.”(60)
#주술과 과학
“과학의 기본 가정은 자연 그 자체에는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 모든 이론과학이란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분류학이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론과학과 동일한 것이다.”(61, 재인용)
주술적인 것에 대해서는 과학과는 다르고 오류라고 여기지만, 사물을 관찰하며 질서화의 사고에서 발견되는 과학적 공통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의 ‘인과율’과 주술의 ‘결정론’적인 것은 달라 보이고,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술에서도 질서를 부여하여 ‘구조화’되어 있다는 형식적인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주술은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결정론을 전제하는 데 비해, 과학은 우선 여러 개의 차원을 구분하고 그 중의 일부에만 결정론적 형식을 부여하며 그 밖의 차원에는 같은 결정론적 형식을 적용하지 않는다.”(63)
“실물보다 항상 앞서가는 그림자처럼 주술은 어떤 의미에서 그 자체로서 완벽한 것이며, 실물은 아니면서도 곧 뒤에 올 실체와 마찬가지로 완성되고 논리정연한 것이다. 주술적 사고는 하나의 발단이나 기초, 초안,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전체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훌륭히 구축된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과학 체계와는 별개의 것이다.”(65)
주술과 과학은 지적발전이나 정도의 차이가 아닌, ‘필연적 연관성이 두 개의 상이한 경로로 도달될 수 있는 듯 여겨지는바, 하나는 감각적 직관에 매우 가까운 길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먼 길인 것이다.’(68) 감각적 특성이 필연적이지 않더라고 경험적인 연관성이 있으며, ‘정밀 자연과학의 성과와 다른 것’이지만 ‘과학적이며 그 결과의 진실성에도 다름이 없는’(69) 것임을 설명합니다.
#브리콜뢰르
사고에서의 이런 방법론을 설명하는 단계를 원시적이라는 말이 아닌, '전(prior)과학'이라는 성격을 가진 브리콜라주(bricolage)와 브리콜뢰르(bricoleur)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합니다.
“브리콜뢰르는 아무것이나 주어진 도구를 써서 자기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사람을 장인에 대비해서 가리키는 말이다. 신화적 사고의 특성은 그 구성이 잡다하며 광범위하고 그러면서도 한정된 재료로 스스로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무슨 과제가 주어지든 신화적 사고는 주어진 재료를 할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달리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화적 사고는 일종의 지적인 ‘손재주(브리콜라주)’인 셈이다. 이것으로 기술적 측면과 지적 측면의 양자 관계가 설명된다.”(70)
사고의 방식을 원시가 아닌 ‘신화적 사고’라는 표현으로 설명하는 데에는 그들이 사고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관계 맺음에서 나타나는 중간적인 특성이 보여줍니다. 이를 브리콜뢰르의 ‘부품들이 단번에 정확하게 쓰이기는 미흡’하지만, ‘각 부품이 실제적이면서도 가능한 관계들의 집합’으로서 ‘조작매체(opérateur)'적 유형을 보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신화적 사고의 여러 요소들이 지각(percept)과 개념(concept)의 중간지점에 위치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71)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 매개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기호로서, “기호란 이미지와 개념을 연결시키는 것”이고, “이렇게 성립된 결합에서, 이미지와 개념은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의 역할을 한다”(72) 이것은 “구성된 집합과 재료의 집합은 부분의 내적 배열 면에서만 다른 것”(72)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엔지니어가 우주를 향해 묻고 있는 반면에 ‘손재주꾼’은 인간이 만든 제작품의 나머지인 잡동사니들, 즉 문화의 하위 집합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 과학자라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손재주꾼’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 그도 역시 미리 정해져 있는 이론적․실제적 지식과 기술적 수단의 목록을 먼저 검토하여 가능한 해답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73)
“다시 말해서 엔지니어는 개념을 갖고 작업을 하는 데 반해 ‘손재주꾼’은 기호를 사용하여 작업하는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두 집합(개념과 기호)은 자연과 문화라는 대립의 축에서 양끝의 거리에 있다.”(74)
#기호의 역할
분명 관념적인 사고와는 차이가 있지만, 기호를 통한 사고의 방식들에서도 우리가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고 조작하는 과정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호는 이미지와 관념을 공존하게 하고, 관념으로 다가가기 위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작동합니다.
“기호와 이미지는 의미는 지니게 되었으나 함축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개념처럼 같은 유형의 다른 요소와 동시적이며 이론상 무한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permutable) 있게 되어 비록 수적으로는 제한되어 있지만 다른 요소와 연속적 관계를 가질 수 있다.”(75)
#신화적 사고
“신화적 사고가 아직 이미지 속에 묶여 있기는 하지만 일반화 능력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과학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신화적 사고도 유추(analogie)와 비교를 통한 작업이다.”(75)
신화적 사고의 과정은 “‘손재주’의 한 지적인 형태”로서, ‘우연과 필연’, ‘사건과 구조를 구별짓는 것’(76)으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학이 가설과 이론의 구조화된 것들의 성과로 사건을 창조한다면, 신화적인 사고는 사건의 잔재들로부터 구조를 만들어 냅니다. 이 두 가지 접근방법은 ‘단계’나 ‘국면’이 아닌,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며 신화적 사고만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화적 사고는 사건과 경험의 포로가 되어 그것들이 의미를 발견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그렇게 포로일 뿐만 아니라 해방자이기도 하다. 무의미하게 된 것에 대해 과학은 타협하고 포기했으나 신화적 사고는 이의를 제기하고 있으니까 말이다.”(77)
#예술의 문제
“예술이 과학적 인식과 신화적 또는 주술적 사고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음을 잠시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예술가는 과학자와 ‘손재주꾼’의 양면을 모두 갖고 있다.”(77)
저자는 예술적인 것의 특성으로서 ‘축소화’를 설명하면서, 축소의 효과로 ‘파악하는 과정의 전도’(80)로, 한눈에 파악하게 하는 축소모형에서 전체를 인식하고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는 부분을 조명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규모의 문제만은 아니며, 축소모형은 “대상물에 대한 실제 경험을 구성”하는 것으로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지고, 만든 방법의 파악은 그 모형에 다른 영역을 추가해주는 것”(80)이라는 설명을 통해 축소의 지적 차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술은 실물과 동일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축소시킨 크기로 작업하는 데 반해 과학은 실물의 크기를 다루지만 기계를 발명하여 작업하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이 환유적 질서 위에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즉 결과를 원인으로 바꾸는 데 반해서 예술의 방법은 은유적이다.”(81)
“미적 감동은 구조적 질서와 사건의 질서 간의 결합에서 생긴다. 다시 말해서 감상자는 예술 작품을 통해 이러한 결합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때 미적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82)
“이러한 분석에 의해 몇 가지 점을 알게 된다. 우선 신화는 추상적 관계로 이루어진 체계이면서 동시에 미적 감상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신화를 낳게 한 창조 행위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행위와 정확하게 대칭적이다.”(82)
#우연성
“이 그림에서 사건이란 우연성(contingence)이라는 하나의 양식일 뿐이며 그것이 구조와 결합하여(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보이는데) 미적 감동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의 어떠한 형식에도 마찬가지이다. 양식, 장소 시대에 따라 이 우연성은 세 가지 측면 혹은 세 가지 서로 다른 계기에서(혹은 겹쳐서도) 미적 창조의 역할을 담당한다. 우연성은 제작의 기회에, 제작 기술에, 그리고 제작 용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83)
“대체적으로 말해서 각 경우는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예술의 형태에 하나씩 대응한다. 그 대상이 모델일 경우가 서양의 조형미술, 재료일 경우가 이른바 원시미술, 그리고 사용자일 경우가 응용미술이다. …… 모든 예술의 형태는 이 세 가지 면을 담고 있으며 이 세 가지의 상대적 비율에 의해서만이 구분될 수가 있다.”(85)
한 형태가 이루어지는데 구조화되어 가고 있는 방식들을 관찰하는 데에서 ‘세 가지의 국면’(85)을 언급하면서 과학-주술-예술의 상태를 설명하는 듯 보입니다.
우연성이 비율을 이루며 구조화되는 상태에서 예술을 서술하는데, 민속예술과 원시미술이라는 것은 ‘우연성이 희생되어 제작 기술과 용도를 위해 쓰여지기 때문’(87)이며, 구조적인 측면에 따라서 새로운 방식으로의 변형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큰 상태입니다. 이런 서술을 통해서 “사유적 면에서의 신화적 사고는 실용적 면에서의 ‘손재주’와 유사성을 가지며 또 예술적 창조는 앞줄의 두 활동 형식과 과학의 중간 지점에 놓여 있음”(89)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의례
“게임의 경우 대칭성은 미리 결정되어 있으며 구조적인 성격을 갖는다. 왜냐하면 어느 편이든 간에 규칙은 같다는 원칙하에서 대칭성이 나왔기 때문이다. 비대칭성은 그 후에 생긴다. 의도적인 일이든, 요행이든, 재능에 의한 일이든 일의 우연성으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으레의 경우는 그 반대가 된다. 성과 속, 신자와 의례 집행인, 죽은 자와 산 자, 통과의례를 받은 자와 받지 않은 자 사이에 비대칭성이 미리 결정되어 있으며 ‘게임’은 모든 참가자를 사건을 이용하여 승자로 만든다. 이때의 사건의 성격과 그 배열을 매우 구조적인 성격을 띤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게임도 역시 구조에 의해서 사건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경쟁적 시합이 왜 현재의 산업 사회에서 성황을 이루는지 이해할 수가 있다. 그에 반해서 의례와 신화는 ‘손재주’와 마찬가지로 사건의 집합들을 분해해보고 다시 조립도 해보며 또한 그것들을 파괴할 수 없는 부속품으로 사용하여 목적도 되고 또 수단으로도 쓰이는 구조적 배열을 만든다.”(91-92)
게임의 의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구조화하는 체계들을 가진 형태들, 원시적이라 생각해 왔던 것들에도 ‘구체화’를 하는 과학의 형태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원시를 무시하는 풍조를 경계해야 함을 1장을 통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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