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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방송 (24.05.21 녹음) : 모든 것을 아는 것으로 가정된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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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희 (인간무늬 연마소 대표)

 
하이브 민희진 사태 관련 여러 유튜브 영상들과 그곳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을 살펴보다가 놀라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의 댓글이 양쪽으로 갈린 첨예한 사안에서 자신의 주장을 확신을 갖고 펼치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사태를 지켜보며 내가 모르는 부분을 알고 싶다는 의견이 없었습니다. 말투만 봐서는 모두가 방시혁이나 민희진 같은 사건 당사자 급의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K-팝 문화산업에 대한 박식한 전문가라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문득 이런 태도야말로 오늘날 현대인들이 취하는 보편적인 마음의 자세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앎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름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을 모르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명제를 떠올리게 됩니다.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지’, 즉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정확하게 어떤 부분을 얼만큼 모르는 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야말로 배움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이 지와 무지에 대한 사분면에서 현대인은 ‘아는 것을 아는 자’의 위치에 머뭅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것을 모르는 자’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이런 자리를 고집하는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 외에 새로운 것을 배울 수가 없게 됩니다.
<냉소적 이성 비판>의 저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현대인이 처한 이런 곤경을 ‘냉소주의’의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근대 이후에 과학적 사고방식이 계몽을 통해 개인의 사고와 사회 구성의 원리에 도입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리주의를 지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무엇이 합리적인가 평가하는 방법론에서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도입된 것이 회의주의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과 전제들을 의심하고, 실험과 재연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참인 것으로 인정되기 전까지는 거짓으로 가정하는 것이 회의주의적 방법론인데요. 이를 통해 신학의 시대가 종료되고 과학의 시대로 넘어갑니다. 즉, 우리는 궁극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최종근거, 이를테면 신마저도 의심하게 됐습니다. 문제는 이와 같이 근거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세상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믿지 못해 냉소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냉소주의자들에게는 새로운 계몽이 불가능합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모든 지혜와 통찰 역시 신뢰할 수 없는 그저 그런 ‘허위의식’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냉소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아는 막강한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실상은 모르는 것을 모르는, 구제불능의 막장에 내몰리게 되는데요.
슬로터다이크는 이에 대한 파훼법으로 견유주의적 실천을 권합니다. 자신의 육체적 감각을 많이 사용하는 삶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경험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만, 저는 약간 다른 해법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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