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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 단상, 더 인플루언서, 서울대스티커] -김환희

저번 주말에 삿포로에 3박4일 다녀왔는데 일본의 모습을 보며 참 한국적이다, 혹은 참 미국적이다라고 느꼈다.

<A. 보여주고 싶은 면>


훗카이도 대학교 박물관에 새겨져있는 Boys be ambitious(구내 카페의 포스트잇 공간에 적힌 관객의 소감에도 이 문구를 많이 발견할수 있었다)를 보면서 직설적으로 느끼게 됐다.

미국이라는 대타자의 시선(에 대한 강박적 응시는)은 영어로 번역된 ‘무사도’라는 책이나 훗카이도 근대미술관에서 상시 전시되어있는 우키요에의 미인도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인이 나 같은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랑스러운 영역은 크게 두가지로 함축된다.

1. 서구적 근대화를 잘 따라가고 있다.(Boys be ambitious!, 기타 서구적 과학 기준과 박물학에 따라 잘 표준화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통째로 알코올에 담긴 듯한 일본 대학 각 학과의 표본들)




2.역오리엔탈리즘 : 비서구적인 우리의 것이 새로운 근대화의 지표이다!


반고흐에게 사랑받고 인상파혁명의 전초가 되었던 우키요에는 2번의 전형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이런 것들이 타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라면(어느 나라의 것이든 대개 관광객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지는), 사실 나같은 이방인에게 인상깊게 보이는 것들은 그들이 보여주기 싫은 욕망과 치부들이다.

<B. 보여주기 싫은 면>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애니미케이션(혹은 게이미피케이션)된 사회라는 것이 느껴졌다. 익히 일본 사회의 모에화에 대해서 많이 들어왔지만, 직접 보고 듣는 것에서 오는 참신한 충격이 있었다ㅎ


건물 네온사인, 광고판, 전단지 등 나 같은 뜨내기에게 내보내는 시각적 정보의 상당수가 귀여운 동물이나 여성의(혹은 두가지가 합체된?!) 캐릭터로 되어있었고, 5-6층 건물 전체가 뽑기머신으로 차있거나 빠친코 머신으로만 차있는(상당수가 에반게리온 등 에니메이션 케릭터 테마의) 광경은 그저 놀랍기만 했다. 입구쪽에서 손을 내미는 모습의 귀여운 소녀의 전신화는 (오덕이 아닌 나에게도) ’사회관계에서 버림받은 오타쿠에게 내미는 천사의 손길로‘ 상상될 정도로 성스러웠다(?!)


각 건물에는 한개 이상의 메이드 카페가 있었는데, 메이드 컨셉이 가장 인기있는 테마일뿐 비슷한 메커니즘의 바가 엄청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k-pop 바라고해서 케팝팬들이 음악들으러 가는 곳인 줄 알았는데 (완전 틀리진 않지만 ㅎㅎ) 바텐더들이 아이돌로 분장해 뮤직비디오에 맞춰 춤추고 퍼포먼스 하며 술을 따라주는 곳이었다 ㅎㅎ


아케이드엔 한 블록마다 거대한 장식이 천장에 달려있었는데 그 중 한곳엔 엄청난 크기의 너구리 인형이 매달려 있었고 아마도 바람넣는 용도의 똥구멍이 쓸고퀄로 뒷부분에 달려있어 이 거리의 독특한 미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넷플에 <더 인플루언서>가 떠서 보기 시작했는데 요즘 방시혁이랑 함께 엮인 과즙세연도 나오고 내가 최근 좋아하기 시작한 걸밴드 QWER(유튜버 김계란이 데뷔시켰으며, 여캠출신 멤버들로 인해 많은 논란과 악플을 받고 있기도 한 그룹)멤버 마젠타 등 여러 미디어의 샐럽들이 출연하고 있었다.

내가 일본에서 느낀 속물적 상품화(미국의 동물적 상품화와 대조되는)가 그대로 구현되고 있어 7화까지 너무 재밌게 빨려들 수 밖에 없었다. 그라비아, AV배우가 공중파에 출연하는 일본처럼 한국도 점점 연예인과 화류계의 경계가 얇아지고 있는 것 같다.(이미 유튜브만 봐도 탁재훈 등 공중파 방송인도 이런 테마를 다루며 큰 인기를 누리는 것 같고..일년에 삼십억 넘게버는 아프리카 VJ와 강남 텐프로가 본질에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진짜 건물이 통째로 이런 걸로만 돌아갈 정도로 일본 자본주의 시장은 여기에 경색되어 있나 싶었는데 이미 한국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완전히 KO 당한 것은 랭귀지 익스체인지하는 미국인 친구랑 일본여행기 나눴다니 그 친구가 자기가 한국 처음 왔을때 모텔마다 있던 다방선전 굿즈(라이터,성냥, 전단지 등등)을 볼때 느낀 것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을때. 커피라고 써있지만 분명 그 이상을 파는 것 같다고..

나는 스놉과 진정성(오직 상대적 대쌍의 의미로서)의 구분은 염치의 경계가 어디까지 내려오나에 달려있다고 본다. 섹시컨셉을 공개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이 컨텐츠의 형식을 다방, 도색잡지 등 다소 사적이고 음침(?)해 보이는 형식에서 점점 더 남에게 대놓고 드러낼 수 있는 영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스놉화(일본)라면 아예 염치없음의 영역(염치를 따지는 것이 무효한)이 동물화(미국)일 것이다.

<C. 설대 프라우드 스티커>
설대맘, 설대디 스티커가 나에겐 그런 동물(적 상품)화의 전형처럼 느껴진다. 한국사회는 (미국과도 같이) 엘리트주의를 추종하는 사회이다. 서울대로 상징되는 명문대를 정점으로 하는 (유)초중고교육 시스템은 입시성적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으며 (청소년 자살 1위, 우울증 1위 등등) 우리 공교육을 완전히 실패하게 만드는 교육불가능성의 주범인데도, 아무도 개혁을 하지 못하는(혹은 원하지 않는) 물리법칙처럼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나락워너비 국민답게) 사교육에 비해 공립학교 교사들이 게으르고 무능해서 입시에 뒤처지며 그게 공교육 붕괴의 원인이라는 믿음이 비학계의 정설(?)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승자독식주의 시스템의 이 전국가적 self-esteem 체계는 가족,학교,언론, 친지들을 통해 학업성적(최종적으로 대학입시 성적)에 맞춰 모욕감과 자부감을 아이(0-19세)에게 존재론적으로 부여해왔다.

그런 체계적인 모욕의 시스템의 최종 승자로서 우리 아이를 다른 아이들의 시체 위에 굳건히 세웠음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그 염치없음은 가히 동물적이고, 가히 미국적이다.  (반면, “한국이 야만적이고, 그래서 미국 등 선진국은 안그렇다”는 야만론으로서의 스티커 비판은 앞서 말한 일본적 모더니티의 종속성을 잘 보여준다. “후진국형 천박한 문화”를 보여준다는 등의 비판 자체가 사실 야만-교양의 대쌍인 속물적 교양주의(=엘리트 위계주의)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증상적!)

(태어나자마자 갈리는 수컷 병아리나, 한뼘 닭장에서 부리와 날개가 잘린채) 생이 지옥과도 같은 고통스러운 짧은 생애를 보내는 고기로 태어난 숱한 생명체에 대해서 어떤 양심적 가책없이, 염치없이, 만물의 영장이자, 최강 육식동물이니 당연히 어떤 생명체든 고기로 다룰 수 있다 주장하는 뻔뻔한 동물성(애니메이션 man에서 잘 보여지는 너무나 폭력적 뻔뻔함)과 같은 맥락으로 느껴진다.(물론 내가 현장에서 매일 이를 체감하는 교육자이기에 과도하게 감정이입한 것일 수 있다)

나는 교육자로서, (공익적 목적으로) 이번 해프닝을 기회로 삼아 ‘서울대없애기 스티커’ 전국민운동이 펼쳐지기를 염원한다.

서울대없애기(학부없애기 혹은 지방국립대로 쪼개기) 스티커를 다는 일과 서울대프라우드 스티커를 다는 일은 같은 선상의 문제 일 수 없다. 그러나 동물화든 속물화든 쌍방으로 상품화되어가는 우리에게 “그 어떤 스티커를 달든 남이 뭔 상관이냐”는 무이데올로기(사실상 상품화라는 독재적 주장 외의 모든 정치적 주장을 무화시키는 자유주의적 스탠스) 인간이 대세가 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HateSNU #서울대해체 #서울대반대 <-요런스티커들출시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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