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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7. 9. 사회심리학 세미나 발제문
<동기간 성과 폭력> 6장, 누가 내 의자에 앉아 있었던 거지?
이것은 보편성을 제안하는 그 어떤 이론에서건 중대한 도전이다. 그것은 레비-스트로스 못지않게 정신분석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정신분석의 경우에는 햄멜의 비판이 종종 유효하다고 해도, 어느 정도까지 잘못은 임상 자료를 관찰하는 것과 그것을 이론으로 변형하는 것 사이의 빈틈에 놓여 있는 것 같다. (p.213)
*구조주의와 정신분석의 ‘보편자’ 개념 비교
항목 | 구조주의 (레비-스트로스) | 정신분석 (프로이트) |
주장되는 보편 구조 | 이원적 논리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해석 대상 | 신화, 문화, 언어 | 개인의 행동, 무의식, 욕망 |
작동 방식 | 보편 구조로 각 문화 설명 | 보편 심리로 각 개인 설명 |
햄멜의 비판이 적용되는 지점 | 이항 대립이 관찰자의 분석 틀일 뿐일 수 있음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서구 가족 구조를 보편화한 것일 수 있음 |
-> 미첼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히스테리 등 개념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배태된 이원론적 구조 자체에 질문을 제기하는 방식
그렇지만 햄멜은 더 나아가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 이야기가 이 삼각 구조를 중요하게 초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골디락스(침입자)는 아기 곰 의자가 딱 좋다. 그녀는 그의 자리를 원한다. 아기 곰 의자에 앉다가 골디락스 – 더 나이 많은 여동기 – 는 의자를 망가뜨린다. 그녀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삼각화에 마주 대하는 이원적 논리를 망가뜨린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p.215)
사람은 어떤 다른 종류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동기와 전적으로 유사하지만 동시에 또한 다르다는 것이 인정되는 누군가로서 말이다. 몇몇 문화에서 측면적인 같음과 다름에 대한 인정은 처음에 다른 곳에서 주체에게 와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부모가 아이들의 차이를 인정해야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 또한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 (p.216)
-> 주체화 과정에서의 인정(차이를 가진 타자들로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부모-자녀라는 수직적 구도뿐만 아니라 아이들 상호간의 측면적 인정도 본질적임을 드러냄
나는 히스테리 문제를 연구하다가 제4항과 그 너머를 병합하는 선형적 모델에 이르게 되었다. 이 장에서 나는 동기 반응의 정상성을 강조할 것이다. (p.217)
-> 미첼은 히스테리를 단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구조의 파열로 보지 않고, 그것이 단순한 병리가 아닌 타자성과 차이에 대한 동기적 반응(인정받지 못하는 주체가 겪는 정체성의 곤경)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기들이 관찰에서 주목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그 일체의 판본들에서 정신분석 이론이 동기를 무의식적 과정의 생산에서의 구조화하는 역할로부터 제외시킨다는 것이다. (p.219)
-> 임상이나 경험적 관찰에서 동기가 자주 등장하지만, 이론상 무의식의 구조화에서는 간과된 것에 대한 비판
무의식적 과정들을 유발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전적으로 그것은 오이디푸스적 욕망에 대한 억압, 부인, 폐제인데, 이는 이러한 소원과 그에 대한 금지를 무의식적으로 만든다. 나의 주장은 이렇다. 동기는 이원적 관점과 함께 작용하는 수직적 오이디푸스적 욕망과는 다른 욕망 집합을 제공하며, 또한 이러한 욕망들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방어들에 종속되어야 하며 따라서 무의식적 과정에 대해 생산적이다. (p.220)
-> 고전적인 무의식에 대한 설명과 함께 동기 또한 무의식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주장
미첼을 누락된 동기들로 이끈 것은 히스테리증자들과의 임상작업이었다. 그렇지만 오이디푸스적 문제틀의 유일무이한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이끈 것은 상담실에서 히스테리의 현존이 아니라 바깥에서, 길거리나 전쟁터나 침실의 드라마들에서 히스테리의 현존이었다. 상담실 바깥으로 밀려나온 것은 정신 질환의 사회적 표현이며 기원이다. 정신분석은 개인 심리학이 아니며 결코 그런 적도 없다. 여기서 대부분 무시되고 있는 것은 저기 바깥 거인들의 마당에 아이들 또한, 심지어 다른 아기들과 유아들 또한 있다는 사실이다. 동기들과 또래들은 돌봐주거나 파멸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반영할 수도 있다 – 아기는 자기 같은 다른 아기들을 통해 자기의 어떤 이미지를 형성하기 시작할 수 있다. (p.222)
-> 히스테리는 단지 오이디푸스적 갈등이 아닌, 횡적(동기적), 역사적, 사회적 차이에 의해 구조화 된다는 인식으로 확장
사회적 세계의 내재화를 더 고찰하기 위해서 나는 그것의 실패를 바라보는 한 방법론을 따를 것이다. 내가 제안하는바, 정신병자는 자기나 타자에 대한 내재화된 개념을 획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자존감이나 타자들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다. 우리는 모두 때때로 정신병적으로 행동하거나 정신병에 빠져든다. 감옥 같은 제도가 정신병자를 구속한다면, 큰 사업들 같은 제도는 또한 정신병자를 생산한다. 합법적인 정신병적 행동과 불법적인 정신병적 행동의 구분선은 가느다랗다. (p,223)
-> 큰 사업들(개인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들 중 하나)은 획일적인 기준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나는 어떤 개성을 가지고 있는데 획일적 기준과 다르다는 데서 오는 커다란 압박을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로 인해 정신병자가 지속 생산되고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우선 공표된 히스테리 사례를 살펴보고 그 뒤에 정신병 사례를 살펴볼 계획이다. 그 두 상태의 병인론에서 동기와 또래의 중요성을 예증하기 위해서 말이다. (p.224)
*히스테리, 외상신경증, 정신병의 구분
유형 | 외상의 시간적 위치 | 주된 특징 | 주체의 반응 |
히스테리 | 과거에 위치 | 반복, 멜로드라마화, 연극성 | 과거 외상을 반복 재연하며 현재 문제를 만들어냄 |
외상신경증 | 현재에 위치 | 현실 사건에 대한 충격, 플래시백 | 현재 사건이 내 자아를 압도함 |
정신병 | 지속되는 과거 (영원한 현재) |
세계의 기본 구조가 무너짐 | 현실과 상징계 사이의 단절 |
일상적인 비유적 사례
1. 히스테리 (과거 외상의 반복)
정의: 히스테리에서 외상은 과거에 일어났고, 주체는 그 외상을 반복적으로 재연(reenact)하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외상이 현재를 덮쳐버리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예시: 어릴 때 부모에게 무시당했던 A는, 성인이 되어 친구들이 단순히 늦게 연락만 해도
“내가 또 버림받았어!”라고 느끼며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실제로는 아무도 그녀를 버리지 않았지만, 과거의 상처를 반복적으로 되살리며 해석합니다.
→ 이건 ‘현재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내상’이 지금의 모든 상황을 극적으로, 감정적으로 오염시키는 방식입니다.
“항상 이런 일이 반복돼.”
“또 나만 사랑받지 못했어.”
→ 현실의 갈등이 아니라, 연극적 장면 속의 자신을 살고 있음.
2. 외상신경증 (현재의 충격에 압도됨)
정의: 이 경우 외상은 지금 막 벌어진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 커서 자아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너져버립니다. 외상은 아직 상징화되지 않았고, 몸과 감각에 남은 채 되살아납니다.
예시: B는 자동차 사고를 당한 뒤, 멀쩡해 보이지만, 길을 건너려고 하면 숨이 멎고, 큰 소리가 나면 몸이 튀어나갑니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몸은 여전히 사고 현장에 있음. 이런 경우는 우리가 아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유사합니다. 시간이 멈춘 듯, 외상이 현재성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어.”
“지금은 안전하지만, 몸은 믿지 않아.”
3. 정신병 (외상이 영원한 현재로 붙박힘)
정의: 여기서 외상은 과거이지만 결코 과거가 되지 못한 사건입니다. 상징화되지 못한 외상이 계속해서 현재에 침투하며, 세계의 구조 자체—즉 자기와 타자, 현실과 상상 사이의 질서가 무너져 있습니다.
예시: C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애정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고, 그 상처는 상징화되지 못한 채 자아를 침식합니다. 성인이 된 후, 그는 “내 몸속에 카메라가 있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이 자기를 지켜보고 조종하고 있다고 진지하게 믿습니다.
→ 여기서 외상은 현재에도 그대로 존재하며, 그는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이것은 정신분열증이나 편집증적 반응에 해당합니다. 라캉 식으로 말하면, 상징계(법, 이름, 규칙)가 주체에게 도입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건 진짜야. 누군가 날 감시하고 있어.” 현실에 대한 신뢰가 붕괴됨.
히스테리의 경우 나는 「외상 히스테리를 가장한 한 남자의 무의식적 임신 환상」을 이용하기로 했다. (p.225)
*아이슬러의 전차 인간 사례, 라캉의 해석, 그리고 미첼의 비판
전차 인간 사례 간략 개요
· 출처: 미하일 아이슬러가 1921년 발표한 사례.
· 환자: 전차에서 추락한 뒤 고통을 겪는 남성.
· 외상 내용: 겉으로는 육체적 외상 혹은 PTSD처럼 보임.
· 아이슬러의 해석: 환자는 사실 “아버지에게서 아이를 받고 싶어하는” 수동적 남성으로, 여성적 히스테리 구조를 지닌 자라고 분석함.
· 문제점: 동기관계와 복제욕망 등은 분석되지 않음. 라캉도 이를 오이디푸스 구조 안에서만 재해석하며 동기를 삭제함.
1. 외상신경증적 해석 (겉보기 반응)
현상: 환자는 전차에서 떨어진 뒤 사고의 충격으로 증상을 겪는다. → 이것만 보면 현재의 외상에 대한 반응, 즉 PTSD적 구조로 보일 수 있음.
특징: 사건은 현실에 발생했고, 이후 신체 증상, 감정 둔화, 회피 행동 등이 나타난다. 자아가 현재의 충격을 소화하지 못하고 플래시백 등으로 괴로워함. 미첼의 관점에서는 이 해석은 1차적이고, 핵심을 놓침.
2. 히스테리적 해석 (미첼의 입장)
미첼은 이 환자를 히스테리 구조에 놓인 자로 본다. 왜 히스테리인가? 사고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사고를 통해 나타난 과거의 외상이기 때문. 그는 “출산” 혹은 “자신을 낳고자 하는 소망”을 경험하는데, 이는 단지 여성적 욕망이라기보다 자기 복제, 단성생식적 상상이다.
특징: 실제로는 사고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상상/환상을 따라간다. 이 욕망은 아버지, 어머니, 아기와의 중첩된 동일시에서 기원한다.
→ 즉, 그는 아버지이자 아기이고 어머니이기도 하다. 이것은 대상 선택 없는 욕망의 구조이며, 히스테리의 전형이다. 여기서 전차는 "출산 장치"이고, 전차에서 떨어졌다는 것은 출산 실패, 자기 탄생 실패에 대한 상징적 반복이다.
3. 정신병적 가능성 (암시적으로만 존재)
이 환자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세계의 기본 구조(상징 질서)를 무너뜨릴 정도의 환각이나 망상을 보였다는 증거는 없다. 따라서 정신병의 구조와는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만약 그가 “나는 전차를 통해 신이 아이를 주려 했다고 믿는다”고 말하거나, “내 안에 아기가 있다”고 현실 검증 없이 확신한다면, → 이는 현실의 틀이 무너지는 정신병적 반응에 가까워질 수 있다.
하지만 미첼과 아이슬러 모두 이 사례를 정신병보다는 히스테리의 문맥에서 해석한다.
1921년 헝가리 분석가 미하일 아이슬러가 분석한 한 환자는 열 세명의 동기를 가진 매우 복잡한 가족 구조를 가지고 있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러는 오이디푸스와 거세 콤플렉스를 사용하여 설명
1956년 라캉은 이 사례를 재해석하며, 환자의 무의식은 어머니와의 상상계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
미첼은 임상자료의 풍부한 동기 역동이 무시된 점을 비판하였고, 수직적 구조에 집중하는 한계를 지적
전차 인간의 증상, 환상, 꿈은 그가 임신했다고 상상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나는 아이슬러와 라캉 모두가 무시하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가, 연상에 의해, 죽은 아기를 임신했다는 것. (p.229)
꿈에는 한 형제를 향한 전차 인간의 무의식적 감정이 있을 수도 있다 – 그 형제는 전차인간이 한 살 무렵일 때 태어나 젖을 먹었고, 실제로 죽었지만 그 한 살배기가 애도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그의 죽음은 전차 인간을 유령처럼 따라다닌다.
사실 전차 인간에게 문제의 표면적인 시작은 여섯 살 때 그의 첫 여동생의 탄생이다. 그는 여동기들을 모델로 해서 아내에게 성마르며 모욕적이다. 이 동기적 우월성은 동기적 경쟁과 선망의 게임에 대한 이름이다 – 내가 우월하고 선망받을 수 있다면, 나 자신은 타인에 대한 선망의 아픔을 겪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종종 전차 인간의 경우처럼 남성 우월성으로 표현된다는 것은 내가 나중에 고찰하게 될 중요한 측면이다. (p.230)
전차 인간은 아이를 갈망하지만 갖지 못한다. 아이슬러와 라캉은 다양한 행동을 전차 인간의 잠재된 동성애의 표시로 본다. 나는 그것이 틀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전차 인간의 관계들과 관련해 사례사가 입증하는 바를 부정확하게 분석한다. 동성애와는 달리 히스테리에는 복제가 있으며, 대상 선택의 실재적 가능성은 전혀 없다. (p.231)
->
1. 히스테리에서의 복제 욕망
히스테리에서 나타나는 욕망은 보통 ‘성적 대상에 대한 욕망’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과 같은 존재를 복제하려는 욕망’, 즉 자기복제의 환상에 더 가깝습니다.
히스테리 증자는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를 닮은 존재(아기, 동기, 예술 작품 등)를 자신의 일부처럼 만들어내려는 환상을 가집니다. 이때 성적 욕망이나 임신에 대한 욕망이 등장하더라도, 그건 누군가를 욕망한다기보다 '자기 자신을 복제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상상'일 수 있습니다.
전차 인간은 자신이 임신하고 싶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는 남성 동성애 욕망(아버지에게서 아이를 받고 싶어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복제해서 자기와 닮은 아이를 가지려는 히스테리적 상상입니다. "나는 누군가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낳고 싶다."
2. 동성애와 동일시 구조의 차이
동일시는 자기와 같은 존재를 닮고자 하거나, 동일한 위치에 놓이고자 하는 무의식적 작용입니다. 히스테리에서는 이 동일시가 욕망의 대상 자체를 지워버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다시 말해, 실제 대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욕망은 자기 안에서 닫혀버립니다.
반면 동성애는 단순히 ‘같은 성을 욕망한다’고 해서 동일시 구조라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성애는 욕망의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 대상은 나와 같기도 하지만 "나와는 다르다"는 인식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전차 인간은 부모가 그의 첫 여동생의 탄생을 기대하고 맞이했을 때 보여준 흥분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그는 그녀에 의해 전치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의 자리를 반복하는 그녀의 자리(그의 부모의 아이)라는 면에서나 그녀의 젠더라는 측면에서나 (p.233)
전차 인간의 딜레마는 꿈의 이미지들에서 잘 포착되어 있는 것 같다. 그가 불안한 것은 꿈의 후반부에서 모든 아이들/동기들이 죽었기를 소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차 인간은 정반대 이유로도 불안하다: 그들의 죽음에 대한 그의 소원은 실패했을 수도 있으며 그들은 사실 살아서 춤추고 있다. (p.234)
-> 꿈 속의 장소는 출산, 양육, 생산을 상징하는 장소로 해석됨. 주체는 이 장소 안에서 '유일무이한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품고 있음. 하지만 동기들이 너무 많고 비슷하기 때문에, 주체는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할 수 없음. 동기관계에서의 자리 다툼, 인정 욕망, 복제의 환상을 보여주는 핵심적 장면으로 해석합니다.
아이슬러는 그를 프로이트의 환자처럼 잠재적 동성애자로 간주한다. 수직적인 오이디푸스적 도식에 충실하게도 아이슬러는 이렇게 적고 있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논문에서 형제를 대수롭지 않게 다루듯이, 아이슬러는 여동생에 대해서 그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동생의 중요성은 모든 곳에서 분명해 보인다. 그는 여동생에 대해서, 의식적으로도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무의식적으로도, 강렬한 질투심을 느끼며, 그의 아내는 여동생의 재구현물이고 그는 아내에 대해 살의적인 질투심을 느끼는데, 왜냐하면 동기처럼 그녀는 그가 자신의 자리라고 여기는 곳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p.239)
햄멜은 이원성이 우리의 사고의 한 부분인지를 묻는다. 전차 인간은 그것이 그렇기를 원하지 않을뿐더러, 또한 그것이 ‘자연 안에’ 있지 않으며 우리의 사고 속으로 강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생산은 상이한/이원적인 두 성들로부터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이성애와 이원성을 고집하지만 이성애처럼 보이는 것도 심적으로 동성애이거나 심적으로 상상된 나르시시즘적 클로닝일 수도 있다. (p.241)
어른 히스테리증자는 그가 아이로서 가질 수 없는 아기를 애도하지 않았다 – 그 대신 그는 아기 갖기를 실연한다.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있는 히스테리증자는 성적 재생산의 이원성을 거짓되게 이용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여자와 남자 양쪽 모두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더 깊은 딜레마 – 세계 안에 그와 동일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를 숨기기 위해 그렇게 한다. (p.243)
-> 모든 측면에서 애도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 죽음도 그렇고, 한 인간이 마주치는 애도가 가능한 모든 일들.
골디락스는 어린 동기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가족 안에서 자리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하다가, 아기 의자를 망가뜨린다. 그렇지만 어떤 판본에서는 예쁘고 어린 골디락스는 새총을 쏘는 짓궂은 아기 곰의 손을 잡는다. 그들은 책가방을 메고 함께 학교로 떠난다.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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