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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 흑인의 실제 경험
라깡 “실제란, 우리가 부딛힐 때이다.” “Le réel, c'est quand on se cogne."
The Lived Experience of the Black/ L'expérience vécue du Noir
실제 = 살아진 경험
제목 : 검은 피부(단수)와 하얀 가면들(복수)
CF : Black Skin White Masks/ Peau noir, masques blanches
단수 : 개인의 경험, 내가 원하지 않아도 흑인으로서만 소환되는 존재 양식
복수 : 흑인되기에서 인간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5장 특징
-개인의 경험과 관점들을 빠르게 편집해 삽화와 다른 장르적 실험적 시도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에서 타인의 양상 (그외 메를로퐁티, 헤겔, 실존주의 등)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의 노예가 아니라 나의 외관의 노예이다."
- 사르트르에게 타인의 존재는 우리를 우리가 반박하는 우리 존재의 일부로 되돌리기 때문에 우리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다.
-이성-> 비이성
-산문-> 감각
주어: 우리 nous에서 나je
-한 존재 (여기에서는 파농 자신이나 그가 군인으로, 학생으로, 환자를 진찰하는 의사로, 독자로,..)가 실제 경험하는 것 (타인의 말과 태도)
-그에 대해 이성적인 방식, 역사적인 방식, 이성을 넘어서는 시적인, 감각적인, 음악적인 방식 등으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들
“백인 세계에서 흑인의 신체적인 출현은 그가 하위인으로 전락하는 첫걸음이다. 그의 몸은 다른 사람들을 식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는 옷을 입어도 피부 한 조각이 넘어가면 흑인으로 인식될 것이다. 백인의 객관적인 시선은 그를 인간성의 벤치에 앉히고 사물의 범주에 가두었다.”
L’apparition corporelle du noir dans le monde blanc constitue la première étape de son abaissement au statut de sous-homme. Son corps constitue ce moyen d’identification pour les autres ; il aura beau se draper de vêtements, dès lors qu’un bout de peau dépassera, il sera reconnu comme un Noir. Le regard objectivant du Blanc le met au banc de l’humanité et l’enferme dans la catégorie des objets.
https://blogs.mediapart.fr/yunnes-abzouz/blog/100620/fanon-et-l-experience-vecue-du-noir-le-corporel-vecu-comme-une-decheance
문제 상황 :
나 je는 세상 안에 존재한다. 세상과 만나고 대화하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타인은 나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어떤 것으로, 시선, 제스처(몸짓), 태도, 로 고정 fix시킨다.
고정시키다 : 액자나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처럼 꼼짝못하게..
자기 나라에 있는 경험이 백인의 세상에서는 다르다 (시선에 노출될 때)
신체 도식 schema corporel :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갖는 신체 도식이 백인의 나라에서는 (식민지적 나라, 백인의 나라에서는) 식민주의자가 정한 방식으로 정해진다
흑인이라는 것이 벗어나야 할 신체적 저주 malédiction corporelle로 받아들여진다
개별적 경험들
-“검둥이다”라는 말이 되풀이된다
-실제로 어린 아이가 나를 두려워한다.
-기차를 타면 사람들이 자리를 피한다
: 나의 몸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배경은 식민주의자들이 만들어낸 바나니아 Y a bon banania의 이미지로 고정된다
개별적 경험들2
-“아랍인은 우리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알제리에서 온 동료)
-”인종 편견같은 것은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누군가(세네갈 사람)는 아주 세련되었다
-“우리 예전 식민지에서 온 마르니티끄 사람”
-”엄마, 검둥이 !” (무서워! 나를 잡아먹을거야!) “아이라서 선생님도 우리처럼 문명인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순수한 아이가 보여주는) 자신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
: 타인의 말이 나를 계속 한 이미지에 소환시킨다
→ 문제적 상황 : 어디에 스스로를 둘 것인가? Me situer (위치시킨다) ( / me fourrer ? (쑤셔 넣다) : 하나의 사물처럼.
사르트르의 유대인 담론과 비교: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닌 척 숨을 수 있다. 그들의 육체는 백인에 가까우므로. 성격(돈을 밝힌다, 배후의 권력자, 등)에 국한되었다. 유대인이 관념에 대한 문제라면, 흑인성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을 수 없는) 피부 표피 epidermique에 대한 문제다.
ex1 말, 액센트 (그것을 듣는 타인의 판단에 맡겨지는 대상으로서의 존재)
ex2남성 챕터에서 거진 유럽인이라고 여겨지는 흑인 남성, 지성과 레퍼런스으로 유럽인 되기
→ 주체는 숨기 시작한다. 흑인성에 좌우되지 않는 한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러나 그 시도는 매번 (아마도 좋은 의도를 가진 착한 사람들에 의해) 실패한다
- 주위에서 자꾸 인용하는 훌륭한 흑인 남자이자 교수, 흑인 여가수, 흑인 과학자, … + 친흑인 negrophile 이라고 주장하는 이.
ex. 단어 “흑형”에 나타나는 한국의 “긍정적” 인종 차별 편견
→ 수치심 honte
- 흑인들에게 향한다, 그러나 흑인들은 조금 더 하얗게 되고자 한다. (백인과의 결혼, 혼혈 아이들)
야만인/문명인 사이의 구도는 그나마 나아졌지만 (“흑인” 지식인들의 존재) 교수, 의사 들의 케이스. “흑인” 의사가 실패하면? (당사자성) 지성과 교양은 아직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없애지 못한다. 그 편견은 이성적이지 못한 것이다.
→ 파농은 이성적인 존재로서 “편견”이라는 비이성적인 것과 대면하고 이성으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한다.
그러나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과학은 인류학의 이름으로 식인종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 “프랑스 미덕이 살아남고 인류 race 가 구원되길 ! 국가 동맹을 해야 해, 서로 싸우지 말고! 외국인들 (내 쪽을 돌아보며) 이 누구건 간에 말이지.” 국가주의적 편견
ex. 한국의 (민족) 국가주의와 상통. 외국인 (부당 수혜자라고 상상되는 존재들, 조선족, 중국인, 동남아 이민자, 이슬람 난민들, … )에 대한 혐오
한 교수의 말 : 반유대주의자 Antisémitisme = 검둥이 혐오자 négrophobe
이것은 보편적인 문제다. 반유대주의자가 말하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은 흑인에 대한 편견과 동일하게 작동한다. 인종주의적 태도는 한 인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네그리튀드 Négritude 운동
→ 리듬 rythme의 등장
- 수치심 honte이 자부심 fierté으로
- 비하어 니그로를 고귀하게 만들기
편견을 이성적으로 추방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이성적인 것으로 향한다.
생고르 : 검둥이 예술 Art négre, 조각 sculpture
ex : 영화 블랙 팬더(상상적 예술인 와칸다)의 흥행, 팬아프리카니즘
→ 하지만 이것을 부분적으로 긍정하면서도 파농은 이러한 태도를 경계 se méfier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신비주의, 역사 이전의 시간, 원시성, 성욕, 등으로 대변되는 비이성적인 것
아프리카는 단일한 문화적 본질적인 무엇이 아니라 실제로 탄압이 이루어졌던 영토
경계할 것 : 흑인성이라는 일종의 본질주의로 환원하는 태도
흑인이 어떤 한 명의 흑인이 아니라 전능적인 검둥이로 백인과 대립하여 백인에게서 마법적인 것이고 시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훔친다.
→ 백인의 “설명”과 함께, 그것은 곧 “검둥이의 본래적/본질적인 것”이 된다. 이것 역시 식민주의자의 언어다.
→ 그는 역사로 눈을 돌린다. (쇨셰르) 그러자 그는 더이상 원시인이나 (반 동물) 반인이 아니고 문명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 된다. 그것은 유럽-백인에 비해 모자라지 않았다. (백인은 계속 묻는다, 병원도 학교도 없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다른 문명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문명이었다.)
흑인은 반인종적인 인종주의의 발명 : 그는 지배하지 않는다. 모든 억압받는 자와 연대한다.
네그리튀드와 프롤레타리아와 연결
EX
사르트르의 흑인 오르페 (생고르가 쓴 아프리카 흑인 시집전 서문)비판
- 이성적인 것에서 벗어나 부정성 négativité 을 향할 때 의식은 그것을 잊어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너무 원론적인 것, 절대성으로 가버렸다.
- 헤겔 변증법적인 부분에서 하나의 단계로 네그리튀드를 이해한다
- 그것을 말하는 화자는 사르트르
나는 절대성의 가능성 potentialité이 아니라 단지 나일 뿐이다. 검둥이는 한 명이 아니라 모든 다른 이들이다. 사르트르는 백인은 타자가 아니라 주인이라는 것, 검둥이가 겪는 것은 몸의 경험이라는 것을 잊었다/몰랐다.
마지막 문단 : (첫 문단으로의 귀환)
검둥이로서 존재하는 것이 그냥 우연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영화 대사 인용) 그러나 파농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이 세상 안에 존재하며,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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