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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실천과 유토피아
p335 : 엄밀한 의미에서 남성성을 뿌리째 뽑아내려면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야구하는 여자아이들이나 관료적 기술을 행사하는 여자들을 좌절시키는 일이 정의에 부합하는지는 바로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2장에서 살펴본 대로 육체적 차이는 재귀적 몸실천으로 사회적 현실이 된다. 젠더의 사회적 관계는 몸 안에서 경험되며(성적 흥분과 성욕 감퇴, 근육의 간장과 자세, 편안함과 불편함) 그 자체로 육체적 행동 속에서 구축된다(섹슈얼리티, 스포츠, 노동 등). 가부장적 젠더 질서에서 이런 실천의 사회적 조직화는 차이를 불가피한 위계인 지배로 구축한다. (337) [남성페미니스트] 프로젝트가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해체하려는 시도인 탈젠더화 전략으로 귀결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탈젠더화된 권리에 기반한 사회정의의 정치는 그런 전략 없이는 더 나아갈 수 없다. (…) 재귀적 몸실천의 변화는 역할 개혁과 관련된 탈체현보다는 남자들에게 재체현을 요구한다. 남성의 몸들을 사용하고 느끼고 드러내는 다양한 방식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전쟁, 스포츠, 산업 노동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남성의 몸들이 지닌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상이한 쾌락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남자들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때의 감각적 쾌락을 강력하게 전달하는 이미지의 엽서나 포(338)스터, 심지어 록 뮤직 비디오가 나온다면 어떨지 궁금하다.
p341 : 남자들 사이의 성차별 대항정치가 지닌 구조적 문제는 계속 얼버무려졌기 때문에 솔직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 급진 정치의 익숙한 형태는 이해관계를 공유한 연대의 동원에 의지한다. 노동계급 정치, 민족해방운동, 페미니즘, 동성애 해방운동이 공통적으로 이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이것은 남자들 사이의 성차별 대항 정치에서 주된 형태가 될 수 없다. 왜냐하(342)면, 젠더 관계에서 사회 정의의 프로젝트는 남자들이 공유하는 이해관계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하면 반성차별 정치는 남자들 사이의 연대가 아니라 불화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1980년대의 흐름은 가혹한 논리를 보여준다. 남성 그룹과 구루들이 남자들 사이의 연대를 강조할수록(’남자를 긍정하기’나 ‘심원한 남성성’ 찾기 등) 사회 정의의 문제는 방기된다는 점이다.
→ 남성유대를 무너뜨리는 것으로서의 진보남성, 페미엘라이 남성들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페미니즘남성이라는 이름으로 모이기가 존재적으로 힘든 남함페의 조건.
p344 : 이 지점에서 관련이 되는 것은 남성 운동보다는 동맹의 정치다. 여기서 사회 정의의 프로젝트의 성패는 (공통된 이해관계가 중심이 된 한 집단의 동원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포개지는 데 달려 있다. 이해관계가 포개지는 게 일시적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345) 남성성의 찬양이나 부정 사이에서 무의미한 선택을 할 것이 아니라면 모든 커리큘럼은 남성성들의 다양성과 젠더와 인종, 계급, 국적의 상호 작용들을 다뤄야만 한다. (346) 여기에는 타자의 관점을 취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헤게모니 남성성은 그 능력을 체계적으로 부인해왔다. (348) 가부장제에 관한 남자들의 이해관계는 헤게모니적 남성성 안에 응축돼 있고,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칭송하는 모든 문화적 기구가 그 이해관계를 수호한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국가 안에 제도화돼 있다. (349) 그렇지만 그 이해관계는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남성성의 사회적 구성에 내재된 모든 복합성 때문에 쪼개진다. 헤게모니적 남성성과 공모적 남성성 사이에는 차이와 긴장이 있다. 헤게모니적 남성성과 종속되고 주변화된 남성성들 사이에는 대립이 있다.
-> 이대남 문제를 대통령이 남성차별(역차별) 검토해봐라는 식의 남성성의 위기라는 문제의식 하에서 대안적 남성성, 롤모델으로서의 남성상(->보수화, 남성연대를 강화), (남성페미니스트로서의 전략이나) 을 위한 작업보다는 남성 운동 바깥과 연대하는 동맹의 정치를 어떻게 꾸릴가를 고민해보자. / 반일 정서 -> 반중 정서, 혐중정서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젠더 문제만 보면 되면 안되고, 연대의 범위를 넓혀가는 작업. / 독일 사람들이 난민들이나 이민자들을 받아주는 나라 -> 연대를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나, 그로인해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가 있지 않느냐, 이런것을 감당할거냐? : 캄보디아 인신매매, 불법과 범죄의 소굴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 -> 외국인(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국인, 조선족) 혐오! / 이런 불안감과 공포, 반감이라는 정서 자체를 무시하면 안된다. : 이런 정동의 정치, 마음의 사회학 차원에서 접근해야 되는 것이고, 백래쉬를 막기위한 작업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나이브하지 않게 제대로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P350 : 새로운 남성성의 정치는 새로운 무대에서 전개될 것이다. 예를 들면 커리큘럼의 정치, 에이즈/HIV를 둘러싼 작업, 반인종주의의 정치가 있다. 새로운 남성성의 정치에는 ‘새로운 형태’가 필요한데, 나는 그 형태가 남녀를 모두 포함하고 ‘남성 그룹’보다는 동맹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운 남성성의 정치는 다른 민주주의 운동들처럼 '하향식 지구화'와 경합하면서 지금까지 펼쳐진 남성성의 정치보다 훨씬 국제주의적인 모습을 띨 것이다.
: 하향식 지구화 : Global North(강력하고 부자인 나라: 유럽, 미국, 캐나다, 한중일, 러시아 ) / Global South (아시아, 아프리카, 군도들) -> 지구의 지정학적 배치자체가 굉장히 위계화, 베트남, 캄보디아..나라별로 서로 연대가 힘들다. 프롤레타리아들을 지역적으로 계급이 나뉜다. -> 국제적인 연대로 극복해야!! / 에이즈라는 질병은 이데올로기화되어 있다. 기독교단체에서 퀴어축제에서 반대하는 플랭카드나 문구가 에이즈가 항상 출현해야! 낙인된 질병. 남색하는 문란한 사람들. 그런 낙인당한 사람들, 그런 같은 인간의 조건에서 누락당한 사람들을 어떻게 동맹의 바운드리 안에 끌어넣을 수 있을까? 우리는 낙인을 극복할 수 있는가? 내 안의 편견, 혐오,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는가? 동시에 다른 사람이 그 소수자들에게 갖고 있는 편견과 혐오, 불안감을 어떻게 극복하게 해줄 것인가?
p358: 그러나 같은 해에 ‘남성 해방’을 향한 최소의 요구가 나타났다. '남성 해방’은 남자들이 여성 해방에서 혜택을 받을 것이고 남녀는 성역할의 종식이라는 근본적 이해관계를 공유한다고 가정했다. 약 5년 동안 미국의 반성차별 남성 운동은 여성 조직과 동맹을 맺고 여성 운동을 지지하면서 남자들을 동원하려고 했다. 이런 생각은 널리 퍼졌다. 스웨덴의 사회민주당 소속 총리 올로프 팔메(Olof Palme)는 전통적 성역할에 기반한 남녀의 성 해방이라는 관념을 가장 체계적으로 설명한 인물이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두 진영은 동맹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 시기에 확인된 반페미니즘 ‘남성 권리’ 담론이 득세했고, 서구 페미니즘도 남성 폭력에 초점을 맞추면서 분리주의 경향으로 옮겨갔다. 이런 경향이 두 진영에 대립하고 있고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느낌을 강화시켰다. 결국 남녀 사이 동맹의 환상을 표명하기 힘든 지점(359)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의식 있는 ‘친페미니즘’ 남성 그룹은 활동을 지속하기가 훨씬 힘들어졌다.
-> 남성해방이라는 것은 중요하죠. 페미니즘을 통해서 가부장제를 해체하면 여성해방과 함께 남성해방도 가능하다는 것은 사실이죠. 문제는 남성해방을 목표로 움직였던 과거의 이 남성페미니스트 단체들이 결국에는 여성해방, 젠더 다양성 연대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왜냐면, 남성해방과 여성해방만을 목표로 움직이는 양쪽의 움직임 속에서 남성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Gray Zone이 사라지고 있다. '남녀갈등'이라는 표현을 쓰면, 반페미 진영에 동참하는 것다라는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이 있죠. 성평등을 이야기하면 동성애를 조장하는 거다라는 우파들의 비판이 있죠. / 코넬이 이 목표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죠.
P360 : 주요 제도들은 남성 지배적일 뿐 아니라 계속해서 남성 중심적 젠더 문화를 적극 생산하고 있다. 오늘날 서구 사회의 주요 문화 제도 세 가지 중 두 가지인 교회와 미디어가 여기에 포함된다. (교육은 별개의 이야기다).
: 교회가 오늘날의 젠더정치관련해서,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의 마지막 보루같은 역할, 결혼과 재생산(임신과 출산)을 전제로 한 가족이성애 정상 성규범을 옹호하기 위해서, 페미니즘, 퀴어에 굉장히 적대적으로 사회참여하고 있다. 미디어: 영화, 드라마에서 이성애의 로맨스, 욕망들을 재현해내고, 퀴어들은 범죄자나 괴짜, 변태,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됨. 스포츠나 폭력물(전쟁, 형사,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헤게모니 남성성, 폭력적인 남성성이 반복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 교육계에서 '전통적인 이성애 규범'을 강조할 수 없죠. 남자는 이래야돼! 교사가 대놓고 말하면, 불만과 민원이 들어올 수 있음. 교육은 교회와 미디어와 달리 전통적 젠더 규범을 대놓고 욕망할 수 없다. 0교육과정처럼 재현되고 전수되는 것이 분명히 있지만, 교육계는 항상 진보적인 이념(보편주의적 가치 : 인권 -> UNESCO나 UN과 국제기구 : 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의 가이드북, 지침)을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따를 수 밖에 없다. / 학교라는 국가와 사회의 규범을 재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기구죠. 그런데 동시에 '보편주의'적인 세계시민으로서의 가치, 진보성을 담지하고 갈 수 밖에 없는 기구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굉장히 복합적이고 모순적이기도 하죠. / 학교는 관료기구 : 관료주의(국가주의, 보수주의) + 능력주의(신자유주의 : 자기계발, 자기자신을 하나의 자원, 상품으로 운영) + 보편주의(인권, 소수자, 진보적 담론) => 우리는 어디로 갈것인가? 중고등학교 특히 입시로 흘러가니까 능력주의가 짱짱맨이지만, 관료주의의 자장 안에서 능력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실천하려고 할것 같다. 보편주의는 양념처럼 표면적인 슬로건으로만 걸어놓고 가지 않을까.
p362: 그렇다면 백래시는 정치적 측면보다 문화적 측면에 훨씬 강하다. 백래시는 남자들을 집합적 이해관계를 수호하려고 정치적 전투에 나서는 하나의 성 계급으로 동원하지 않는다 백래시는 ‘신사나이’new lad잡지처럼, 초남성적 컴퓨터 게임, 스포츠 팬 문화 같은 장르의 소비자라는 범위 안에서 남자들을 동원한다.
-> Backlash (반동) : 진보적인 의제(여성해방)-> 반페미니즘 : 문화적인 부분에서 나타난다. 맥심같은 잡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스포츠 팬들이 남초적인 문화 속에서 묘사되는 여성 케릭터들은 굉장히 성차별적(여성을 상품화, 도구화하는 구도로 포르노화)/ 오타쿠 남성성 : 섬세하고, 자기반성적인 자아로 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 (협 -> 윤석열 탄핵 집회 ) 이지만, 동시에 여성을 대상화시킨다는 점에서, 파시즘 남성성과 연대할 여지가 더 크다. (여가부가 게임 규제, 검열반대)
p366: 낡은 헤게모니적 남성성들에서 그토록 두드러지던 동성애 혐오가 줄어들고 심지어 부재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 다른 유대 관계는 폐기하고 특정한 수행(삶을 부인하는 기업가적 경영이라는 노동)을 기꺼이 할 수 있는 의사와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계급 역학과 젠더 역할은 서로 얽히면서 기업가적 경영의 남성성이라는 형상을 띤다.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역학은 남자들에게 자원을 옮겨놓을 수도 있다.
-> 능력주의 (자기계발, 자기경영)의 남성성으로 통일되다 보니, 가부장적 남성성으로서의 보수성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헤게모니 남성성 : 게이혐오-> 기업가 남성성 - 감각있는 게이(디자이너, 요리사).
p375 : 초극적 비즈니스 남성성은 동질적이지 않다. 동아시아에 기반을 둔 유교적 변종은 위계와 사회적 합의에 강한 무게를 둔다. 북아메리카에 기반을 둔 세속화된 기독교적 변종은 쾌락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사회적 갈등에 훨씬 관용적이다. 이 남성성의 형태들을 체현한 비즈니스와 정체적 리더십 사이에서 벌써 갈등이 생긴 영역이 있다. 이를테면 ‘인권’ 대 ‘아시아적 가치’나 무역 범위와 투자 자유화를 두고 벌어진 갈등이다.
-> 헤게모니 남성이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유교적 헤게모니, (세속화된) 기독교적 헤게모니-> 미국적, 복음주의적 기독교 : 사회참여에 관심이 없다. 사회의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없다. 심하면, 사회참여하는 움직임을 빨갱이(공산주의)담론으로 비판. 이런 지역별 문화적 차이에 따른 다층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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