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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UhdiiXnmHE?si=pvEz0lFl6papc0Pr
p10 : “이 개요서와 일반적인 요약서(compendium)의 주된 차이는 그것을 인도하는 원리인 방법(method)에 있으며, 철학의 전체적인 사변적 인식 양식(entire speculative mode of cognition)은 다른 인식 방식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11) [진리는] 법과 도덕에 이미 객관화되어 있다 (objectified) 그러나 아직 자기 의식적으로 파악되지 않았다. Geist는 이 객관적 내용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헤겔 철학의 전체 구조 : 객관적 정신 → 자기 인식 → 자유
(12) 사실 이러한 당혹(perplexity)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은 숲을 보지 못하는 처지에 있으며, 실제로 존재하는 유일한 당혹과 어려움은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의견과 존재의 허영(vanity)과 특수성(particularity)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실질적 권리, 곧 윤리와 국가의 계명(commandments)에 밀착하고 그에 따라 삶을 규율했을 것이다. 정신의 자유는, 공적으로 인정된 것과의 불일치, 심지어 적대 속에서만 입증될 수 있다는 표상(Vorstellung)은 오늘날 특히 국가와의 관계(relation, Beziehung)에서 가장 강하게 뿌리내린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표상(Vorstellung)이라는 단어는 플라톤이 episteme (지식)에 견줘, 소피스트들의 doxa (의견)을 구분한 것과 닮아 있다. 내 생각에, Vorstellung은 진리를 이미지와 감정의 형식으로 붙잡는 단계라는 점에서 감정정치와도 연관되어 있다. 즉, Vorstellung
- 자기 매개적이지 않고
- 내적 필연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 구조를 해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Vorstellung의 과정을 거쳐, 그 진리를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단계인 개념(Begriff)으로 나아가야 한다.
| 1. 감각적 확신 | 즉각적 지각 |
| 2. 표상 (Vorstellung) | 이미지·상징적 사고 |
| 3. 개념 (Begriff) | 자기매개적 사유 |
| 4. 이념 (Idee) | 개념과 현실의 통일 |
헤겔의 인식 위계
p13 : 자연에서 가장 높은 진리는 법이 단지 존재한다는 것 자체이다. 그러나 권리의 법에서는, 사태[Sache]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유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은 그것이 자신의 고유한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정신의 특권(prerogative)이 이처럼 불화(discord)와 불행으로 이끄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삶의 자의성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을 관조하고 그것을 모범으로 삼고자 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대립(Gegensatz) — 그 자체로 존재하는 권리와, 자의성이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 사이의 차이 — 이야말로 우리가 정확히 무엇이 권리인지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강제한다.
자연법과 권리법[ 독일어 Recht는 아래의 뜻을 모두 포괄한다. : 법 (법 체계), 권리 (claim, entitlement), 정당성 (rightness), 정의로운 것]은 일치하지 않는다. 오늘날 인권이나 정치적 자유에 대한 견해차가 심하다는 사실 그 자체야말로, 우리가 이 Right(법,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공부해야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 책의 제목인 Philosophie des Rechts도 사실 '법철학'보다는 '권리에 대한 철학'이 원어의 뜻에 가까운 번역이다.
| 자연법 (laws of nature) | Recht (권리/법) |
| 단순히 존재한다. | 인간이 제정한 것 (laid down) |
| 우리가 위반할 수는 있어도 그 법칙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 성찰이 개입하는 영역 |
| 자연적 필연성 | 보편성과 특수성이 매개된 윤리적 질서 |
laws of nature 와 Recht의 비교
p14 : 오늘날의 교양(Bildung)은 새로운 방향을 취하였고, 사유는 가치 형성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만약 사유가 권리에 우선한다면, 이는 우연적 의견들에 문을 열어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사유는 어떤 것(die Sache)에 대한 의견이 아니라, 사태 그 자체(Sache)의 개념이다. 사태의 개념은 자연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 1) 감정정치에서는 자유란 기존 질서와 다르게 말할 권리이다. 반면, 헤겔에게 자유는 이성이 자기 자신을 '개념을 통해' 인식하는 상태이다. 전자는 충돌을 증폭시키고 후자는 충돌의 구조를 이해한다. 2) 헤겔은 왜 “과학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는 단순히 학문적 엄격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말한다: "권리는 존재한다고 해서 정당하지 않다. 하지만 자의적 의견도 정당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권리의 합리성을 개념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즉, 과학적 인식은 권위를 대체하는 또 다른 권위가 아니라 자의성을 넘는 방식이다. 3) 오늘날 플랫폼 환경, SNS 구조는 opinion(의견, 여론) 증폭기로, algorithmic visibility, antagonism을 강화하여 마녀사냥에 특화되어 있다. 이에 비해, 개념적 사유는 '느리다, 비가시적이다, 경쟁적 구조에 불리하다.' 그래서 현대는 opinion 정치가 구조적으로 우위에 있다.
https://youtu.be/HdcXdWGH88w?si=R9R_yvrM-RawaWdF
p15 : 자칭 철학은 명시적으로 이렇게 말해왔다. 진리 그 자체는 인식될 수 없으며(erkannt), 진리는 각 개인의 마음, 감정, 열정 속에서 윤리적 문제들, 특히 국가·정부·헌법과 관련하여 솟아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감정정치에 대한 헤겔의 비판!! 즉, 보편적 진리가 불가능하고 객관적 기준이 부정 당하며, 개인 감정이 진리의 원천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팩트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 “나의 경험이 진리다.” * 그 결과는? : 공적 판단의 기준이 해체됨
프리스(Friess) 씨는, 국가와 헌법을 주제로 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Vostellung]을 제시할 무모함(temerity)을 보였다. “진정한 공동 정신이 지배하는 민족 안에서는, 모든 공적 사무는 아래로부터, 국민 자신으로부터 생명을 얻을 것이며(life from below), 신성한 우정의 유대로 굳건히(steadfastly) 결합된 살아 있는 사회는 모든 대중 교육과 대중 봉사의 각 사업에 헌신할 것이다” 등등. 이러한 피상적 철학의 주된 경향은 윤리적인 것, 곧 국가의 복잡한 내적 분절, 그 합리성의 건축적 구조(architectonics)를 축소시키는 데 있다.
감정 중심 정치 → 자의성(arbitrariness), 자의성 → 보편적 기준 붕괴, 기준 붕괴 → 갈등(discord) 증폭 ; “정신의 특권은 discord를 낳는다.” 즉, 자의성의 자유는 결국 구조 없는 갈등을 낳는다. 포퓰리즘은 자유를 외친다. 하지만 헤겔의 기준에서 보면 자유란 보편성과 동일한데 반해서, 포퓰리즘은 특수성의 절대화이다. 그래서 그는 포퓰리즘을 자의성의 자유로 본다.
p16 : 공적 삶의 다양한 영역들과 그것들이 근거하는 권리들[Berechtigungen] 사이의 구분과, 각 기둥·아치·버팀기둥(buttress)이 엄격한 비례 속에서 결합되어 그 부분들의 조화로부터 전체의 힘을 산출하는 이러한 정교한(gebildeten) 구조를, ‘마음·우정·열정’의 흐물거리는 덩어리(mush)로 환원한다는 말인가? 이성이 수천 년에 걸쳐 사고하는 개념에 의해 인도되어 합리적 통찰과 인식을 생산하기 위해 애써온 모든 노력을, 단순히 느낌(feeling)에 이성을 귀속시키는 가정적 처방으로 손쉽게 피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이 가장 정신이 없을 때 가장 ‘정신(spirit)’에 대해 많이 말하고, 가장 건조하고 생기 없을 때 가장 ‘생명(life)’과 ‘생기를 불어넣는다(enliven)’는 말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공허한 오만의 극도의 이기심을 보일 때 가장 자주 ‘인민(people)’을 언급한다.


p17 : 그 이마에 새겨진 표지는 법에 대한 증오이다. 감정과, 권리를 주관적 확신과 동일시하는 그 양심에게는, 바로 이것이 정당하게도 주된 적으로 간주된다. 의무로서의 권리의 형식과 법은 죽은 차가운 문자(dead, cold letter)이며 족쇄(shackle)로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러한 감정은 법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의 자유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은 사태[Sache]의 이성이며, 이성은 감정이 자기 자신의 특수성(Partikularität)의 열기 속에서 스스로를 따뜻하게 하도록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은 — 내가 이 교과서의 전개 과정에서 다른 곳에서도 언급했듯이 — 이 거짓 형제들(brethren)과 소위 ‘인민’의 친구들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주된 구호(shibboleth)이다.
감정정치 하에서는 법에 대한 불만과, 법조인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다. 법을 넘어서는 마초 행정부를 갈망하는 우파 포퓰리즘은 트럼프를 소환할 수 밖에 없다. 트럼프가 문제적 인물인게 아니라, 트럼프를 추종하는 인민의 감정이 문제적이다!
p20 : What is rational is actual, What is actual is rational
1. 이성적인 것은 결국 현실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즉, 이념은 공허한 이상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자신을 구현한다.
2. 진정으로 현실적인 것은 단순 우연이 아니라 이성의 자기 전개다. 즉, 역사적 제도, 국가, 법은 무작위 산물이 아니라 이성의 결과다. 그렇다고, “지금 존재하는 질서는 다 정당하다.”라고 해석하면 안된다. 헤겔적 해석은 “진정으로 지속되고 구조화된 현실은 자의적 우연이 아니라 합리적 원리에 의해 형성된다.” 즉, 구조를 보라는 의미!
p21 : 이 논고(treatise)는 정치학을 다루는 한에서, 국가를 본질적으로(inherently) 합리적인 존재로 이해하고 묘사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철학적 저작으로서, 그것은 국가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구성하려는 의무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것이 포함할 수 있는 교훈은 국가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 윤리적 우주로서의 국가를 —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려는 데 있다.
“Hic Rhodus, hic saltus.”
-> 한 사람이 로도스 섬에서 엄청난 도약을 했다고 자랑한다. 그러자 누군가 말한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 라틴어 격언, 이솝 우화) 증거 없이 떠들지 말고, 지금 여기서 증명하라는 뜻.
존재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철학의 과제이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것은 이성이기 때문이다. 개인에 관해서 말하자면, 각 개인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 시대의 자식(child of his time)이다. 따라서 철학 역시 자기 시대가 사유 속에서 파악된 것(its own time comprehended in thoughts)이다. 어떤 철학이 자기 시대를 초월(transcend)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개인이 자기 시대를 뛰어넘어 도약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 따라서 시대정신을 파악하고, 우리가 어떤 시대변화를 겪고 있는지 국제정세와 한국의 국민성에 대해서 민감하게 추적하고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그 시대정신이 정확하게 우리 자신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p22 : 조금 바꾸어 말하면, 방금 인용한 격언은 이렇게 읽힐 것이다
“Hier ist die Rose, hier tanze.”
-> “여기가 장미다, 여기서 춤춰라.” 즉, 먼 이상 세계로 도피하지 말고, 지금 여기 현실에서, 이성과 자유를 실현하라!
현재의 십자가 속에 있는 장미로서 이성을 인식하고, 그리하여 현재 속에서 기뻐하는 것 — 이러한 합리적 통찰이 바로 철학이 이해(comprehend)하라는 내적 부름을 받은 이들에게 부여하는 현실과의 화해(reconciliation)이다.
-> 현실은 단순히 고통이 아니다. 그 속에 이성이 작동하고 있다. 십자가(고통·갈등) 안에 장미(이성·합리성·자유)가 있다. 이걸 보지 못하면 현실은 부정해야 할 대상이 된다. 즉, 이상 세계를 만들려 하며, “로도스를 뛰어넘으려” 한다.
p23 : The owl of Minerva begins its flight only with the onset of dusk.
-> Minerva는 로마 지혜의 여신 (그리스의 Athena). "지혜는 황혼에 날기 시작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 철학은 세계가 형성된 후에 그것을 이해한다. 철학은 세계를 설계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학은 항상 “늦게” 온다. 헤겔에 따르면, 철학자는 혁명가가 아니라 해석자다. 그리고 이걸 전복한게, 바로 맑스. 맑스가 헤겔을 거꾸로 뒤집었다고 평가받는 이유. 본인의 책 제목을 <Philosophie des Rechts>라고 지어 놓고, 철학의 사후성을 강조하며 서설을 마무리하는 이유가 뭘까?
제목만 보면: 법을 설계할 것 같고, 국가를 규정할 것 같고, 정치적 프로그램을 제시할 것 같아 보이지만 헤겔은 "국가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국가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이런 모순점들, 우리 기대와 이 책 내용의 긴장을 우리가 민감하게 의식해야 한다. 헤겔에게 황혼은 단순한 “지나간 세계”가 아니다. 황혼은: 하루가 완성된 순간, 형태가 드러난 순간, 의미가 응축된 순간. 즉, "세계가 충분히 형성되어 개념이 그것을 파악할 수 있"는 때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황혼은 쇠퇴만이 아니라 성숙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헤겔은 근대 국가가 충분히 형성된 이후에 그 구조를 개념적으로 파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우리는:
- 황혼을 기다려야 할까?
- 아니면 진행 중인 세계도 개념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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